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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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명조차 보이지 않는 새벽.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요즘 제도가 부산스럽기에 미리 집무실에 박혀있는 것이 마음 편하다.
괜히 저택에 머무르면 손님이나 찾아오고, 남들 출근할 때 움직이면 출근길이 막힌다. 그건 곤란한 일.
그렇기에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지만 손목이 잡히는 느낌에 옆을 돌아봤다.
“리오… 벌써 가는 거예요?”
“라나.”
반대쪽 손으로 라나의 머리를 쓰다듬자 비몽사몽 떠졌던 눈이 도로 감겼다.
마치 고양이가 졸고 있는 것 같은 모습. 물론 사람을 고양이에 비유하는 건 실례겠지만.
“아침은 같이 먹고 싶었는데…”
눈을 감으면서도 칭얼거리는 라나의 모습에 슬며시 등을 토닥였다. 확실히 요즘 들어 아침도 먹지 않고 출근하고 있다. 라나 혼자 남아서 쓸쓸하기는 하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저택에 있으면 인파도 저택에 몰리고, 덩달아 라나도 피곤할 테니. 피곤한 것보다는 쓸쓸한 게 낫지 않나.
“저녁에는 올 테니 걱정 마라.”
“진짜죠오오…?”
그러면서 몸을 꿈틀거리더니 새끼 손가락을 내미는 라나.
“그래, 진짜로.”
손가락을 걸어주고 나서야 라나는 안심하고 잠에 들었다.
‘일찍 와야겠군.’
라나가 다시 깨지 않게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일찍 오는 건 어렵지 않다. 일이 많아서 조기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빨리 업무를 시작하니 퇴근을 앞당길 수 있다.
게다가 5과는 감찰부 중에서도 업무가 많은 편이 아니니까. 툭하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3과에 비하면 사무직이나 다름없지.
‘오늘은 아무 일도 없기를.’
5과장이 된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한 아침 기도.
당연히 이 기도가 이루어진 적은 극히 드물었다.
오늘의 기도도 실패했다. 이제는 딱히 놀랍지도 않다.
‘벌써 일이 생겼나.’
집무실 문고리를 잡자마자 느꼈다. 저 너머에 화려한 난장판이 진행 중이라고.
하지만 이 생활도 2년. 이제는 대충 견적이 잡힌다. 이건 집무실에 들어가도 문제없을 난장판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여니 1과장에게 멱살이 잡힌 2과장이 보였다.
‘별일 아니군.’
안심했다. 혹시 예측이 틀린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아, 5과장.”
문을 열자마자 구석에 있던 3과장이 반겨줬다. 아무래도 1과장의 폭주 속에서 몸을 숨긴 모양.
사실 3과장의 덩치면 어디에 있든 눈에 띄지만, 지금의 1과장이라면 2과장밖에 보이지 않을 거다.
“일찍 왔군.”
“일찍 와야지. 이래저래 들러붙는 사람이 많으니 원.”
귀찮다는 듯 머리를 긁적인 3과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겪는 귀찮음이면 다른 과장들도 마찬가지일 터. 다들 같은 생각으로 조기 출근을 하고 있다.
“부장님은 무섭고 우리는 만만한가 봐.”
“귀족들의 호기심은 공포를 누를 때가 많지 않나.”
“흐으, 그것도 그렇지.”
영양가 없는 말을 주고 받으며 멍하니 1과장의 분노를 구경했다.
1과장의 멱살잡이에 종이인형처럼 나풀거리는 2과장을 보면 조금은 안쓰럽지만, 저게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하니 일말의 안쓰러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게 입을 함부로 놀려서.’
며칠 전의 그 사건을 생각하자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무리 술이 들어갔어도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는 법인데.
감찰부 간부들이 모인 회식 자리, 그 자리에서 터진 참사. 오늘은 취하고 싶다며 달리던 2과장은 정신줄을 제대로 놓고 말았다.
“야, 너 이제 어쩌냐?”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개로 퇴화해가던 2과장은 묵묵히 술을 마시던 1과장에게 짖었다. 하필 근래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던 1과장에게.
“마종공 각하는 예비 시어머니도 만났다는데, 넌 뭐하나 해서.”
낄낄거리는 2과장의 말에 1과장의 손이 우뚝 멈췄다.
그리고 지켜보던 나도, 안주를 집던 차장님도, 부인에게 늦을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던 3과장도 굳고 말았다.
마종공이 부장님의 영지에 갔다는 소문, 백작부인과 긴밀한 대화를 나눴다는 소문은 널리 퍼졌다. 부장님을 진지하게 노린다는 걸 알린 사건이라 아직도 제도는 그 일로 시끄러울 정도.
그런데 그 사건을 1과장과 엮었다.
‘설마 1과장도 그랬을 줄은.’
방금 막 2과장을 바닥에 메다꽂은 1과장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마종공 사건과 1과장을 엮는다면 뻔하지. 1과장도 부장님을 마음에 품었다는 것.
정말,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다. 2과장이 미쳐서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회식 자리에서 보인 1과장의 반응은 설마를 사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가리!”
손을 떨던 1과장은 들고 있던 잔으로 2과장의 머리를 내리쳤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공격에 감탄을 할 뻔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1과장은 2과장과의 전투에서 이겼지만 진실과의 전쟁에서는 지고 말았다. 그 살벌한 반응은 누가 봐도 제 발 저린 사람의 반응이었으니.
“…들으셨어요?”
머리에 와인을 흘리며 쓰러진 2과장을 뒤로 하고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던 1과장.
“응? 나 부인하고 대화하느라. 뭐라고 했어?”
마침 통신구를 만지작거리던 3과장은 알리바이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못 들었다.”
상관인 차장님은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
“…….”
1과장과의 숨 막히는 시선 교환.
그 무언의 살기를 이기지 못한 나는 회식 자리에서 네 발로 기는 연기 끝에 취했다는 걸 어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우리는 1과장의 짝사랑 상대를 모른다.
“아, 두 분 다 오셨네요!”
“방금 왔다.”
후련한 듯 이쪽을 돌아보는 1과장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1과장의 사랑, 1과장의 분노.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오직 2과장만이 아는 사실이다.
‘힘내라.’
1과장 뒤에서 꿈틀거리는 2과장에게 조용히 명복을 빌어줬다.
물론 다 자업자득이다. 아무리 1과장이 평범한 여성과 거리가 멀다고 해도, 레이디의 짝사랑을 떠벌리면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지.
본인도 그걸 아니 가만히 맞기만 하는 것 같지만.
‘사랑가지고 떠벌릴 입장은 아닐 텐데.’
생각해 보니 우습다. 2과장이 오늘은 취하고 싶다며 폭주하던 그날, 왜 그런 상태가 됐는지 다 아니까.
‘장관님의 처조카.’
실소가 나올 것 같다. 하필 건드려도 그런 사람을 건드리는지.
심지어 교제 사실을 장관님에게 들키기도 했다. 덕분에 2과장은 장관실에 소환됐을 정도로. 그래서 오늘은 취하고 싶다고 징징거린 거고.
아니, 어쩌면 본인이 연애 관련으로 털렸으니 상대의 연애 문제도 털어버린 걸 수도 있다.
놀라운 집념이다. 절대 혼자 죽지 않겠다는 집념.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언제나 훌륭한 반면교사다.
차장님이 출근한 건 늦은 아침이었다.
“아, 차장님!”
“오셨습니까.”
“그래.”
작게 한숨을 내쉰 차장님은 피로에 찌든 안색이었다.
사실 평소에도 그런 모습이었지만 요즘은 더욱 심해졌다.
‘전부 차장님에게 몰렸군.’
안타까운 현상이다. 당사자인 부장님은 멀고, 부하인 과장들은 숨어다니는 상황. 결국 남은 건 차장님뿐이니 차장님만 고생이다.
사실 차장님도 피하려면 피할 수 있지만, 부장 대리로서 부서를 관리하는 입장 아닌가. 필연적으로 타 부서나 다른 귀족들과 만나야 하니 결국 어디선가는 붙잡힐 수밖에 없다.
“괜찮으십니까? 소문이 잠잠해지기는커녕 더 불타오르던데.”
초췌한 차장님을 보던 3과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렇다. 보통 소문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기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날이 갈수록 화끈하게 제도를 태우고 있었다.
‘가라앉을 소문이 아니기도 하지만.’
물론 이번 소문이 화려하기는 하다. 100년이 넘게 홀로 지낸 마종공의 반려, 혹시 단절되는 게 아닌가 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던 카토반 공작가의 혼사.
하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다.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퍼뜨─
‘음.’
본능적으로 생각을 멈췄다. 위험한 비밀에 접근할 뻔했다. 쓸데없는 호기심은 명만 단축시키는 거지.
“괜찮다. 앞으로는 숨 좀 돌릴 수 있으니.”
그렇게 말한 차장님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와 달리 미묘한 안도가 섞인 한숨을.
“부장님께서 궁금한 게 많은 귀족들 연락은 전부 자기 앞으로 돌리라고 하셨다.”
“오.”
숨 죽이고 있던 2과장의 감탄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확실하군.’
짧고 간단한 명령이지만, 효과는 무엇보다 확실하다.
어지간한 귀족들은 감히 부장님에게 직통으로 연락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차장님을 대신 털고 있는 거고.
그리고 부장님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인물이라면 진작에 부장님을 놀리고 있을 거다. 예를 들면 장관님이라거나, 장관님이라거나, 어쩌면 장관님이.
“너희도 그렇게 해라. 부장님께서 허락하셨다.”
“알겠습니다.”
기꺼운 소식에 빠르게 대답했다.
“아침은 같이 먹고 싶었는데…”
출근 전, 라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는 사람들을 피해 조기 출근할 필요가 없어졌다. 평범하게 출근해도 문제 없으니, 라나와 아침을 함께 할 수 있다.
다행이다. 적어도 남편이 부인과 식사 정도는 같이 하는 게 도리 아니겠나.
이 사소한 소식에도 기뻐할 라나를 떠올리니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야, 5과장도 많이 시달렸나 봅니다.”
“그러게요. 웃는 거 오랜만에 봐요.”
도로 내려갔다.
***
통신구를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차장이 쓰러지면 곤란하지.’
내 멘탈 관리도 힘들어서 미처 차장을 생각하지 못했다.
사고 하나가 더 터지면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던 안색. 통신구 너머로도 초췌함이 느껴지더라.
그래서 괴롭히는 것들은 나한테 말하라고 했다. 표현이 조금 이상하지만 대충 뜻은 비슷하다.
– 예, 부장님.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들을 때는 미안하기까지 하더라.
‘정작 말하라고 하면 입도 못 여는 것들이.’
차장에게 ‘불만 있으면 나한테’ 라는 선언을 하고 수시간 후, 내 통신구는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그렇게 시끄럽던 것들이 정작 상을 차리니 먹지를 못한다. 만약 나한테 연락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말 친절히 대화할 생각이었는데.
물론 이 상황을 원하기는 했다. 어떤 정신나간 사람이 감찰부장한테 ‘님 그래서 카토반 공작가 기둥 서방임?’ 이라는 질문을 하겠나.
‘뭐야.’
그리고 그 생각을 하기 무섭게 통신구가 진동했다. 연락이 아닌 문자가 날아왔다는 신호.
[ 너ㅓㅓㅓㅓ 구래ㅓ 마ㅗㅇ공ㅇㅇ이랑 결호ㅗㄴ하?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참담한 심정에 다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대충 누가 보낸 건지 알 거 같으니까.
대낮부터 거하게 알코올을 흡수한 것 같은 문자.
‘이런 게… 현명?’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었다.
현명공이 아니라 주량공 아니냐 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