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1)
제 21화
윗분이 가리키면 아랫놈은 구른다 – 3
감찰부의 업무상 실수로 피해를 입은 가문이 존재한다면, 그 피해를 능가하는 이득과 배려를 주며 수습하는 것이 관례다. 이건 내가 감찰부에 들어오기 전부터 있던 관례니, 역사적으로도 감찰부의 오인사격에 뚝배기 날아간 가문이 종종 있었다는 소리기도 하다.
사실 말이 좋아 피해를 능가하는 이득과 배려지, 잘 살다가 갑자기 죽기 직전까지 처맞은 가문 입장에서는 쌍욕이 절로 나온다. 결정적으로 감찰부의 오인사격을 맞고, 그것이 오인사격임이 밝혀질 때까지 버틸 수 있는 가문이 드물다. 어지간하면 즉사거든.
그런 의미로 요룬 백작가는 운이 좋은 편이고, 나도 운이 좋은 편이다. 요룬 백작가는 살아서 피해 배상을 받았고, 나는 ‘멀쩡한 백작가 날려버린 놈’ 이라는 타이틀을 피했으니까. 과거, 실수로 귀족가 대여섯을 멸문시킨 감찰부장은 처형 당했다는 흉흉한 사례도 존재한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표정이 어두우세요.”
“아,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야.”
걱정스레 묻는 루이제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지금 생각해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사건을 떠올리니 표정이 썩어들어간 모양이다.
내가 괜히 당시에 간부들 전원이 보는 자리에서 3과장 보고 대가리 박으라 한 것이 아니다. 일이 대차게 꼬였으면 처형까지는 아니겠지만, 무거운 징계를 받았겠지. 그러니 그 사건의 피해자인 요룬 백작가의 영애가 루이제의 친구라는 걸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겠냐고.
‘내가 감찰부장인 것도 알고 있는 것 같고…’
루이제를 처음 만났던 날. 내가 적당히 자리를 벗어나려고 할 때, 나를 잡으려던 루이제를 만류한 것이 이리나였다. 처음에는 내가 떠나려는 걸 알아 챈 눈치 빠른 아이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냥 내가 무서워서 보내준 거다.
물론 요룬 백작가에는 3과장이 직접 찾아가 사과와 배상을 했고, 나도 사과 서신을 보내며 공식적으로 마무리 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리나 입장에서는 본인 가문을 부술 뻔한 부서의 수장이 눈 앞에 나타난 거다. 신종 티배깅으로 여겨서 기겁했어도 할 말 없다.
“그러고보니 가끔 이리나가 오라버니에 대해 묻던데, 혹시 아는 사이셨어요?”
빤히 내 눈을 바라보며 묻는 루이제의 모습에 한숨이 나올 뻔했다. 꿈에 보기도 두려운 인간이 절친 옆에서 어슬렁거리니 더 무서웠겠지. 혹시라도 지나가다 마주칠까 물어봤을 거다.
“아니. 감찰관이 고문을 하는 게 신기해서 물어본 거겠지.”
내 부하가 네 친구 가문 명치에 죽창 꽂았어, 라고는 차마 대답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루이제의 눈에는 이미 약간의 의심이 깃들어버렸다. 내가 자기 친구하고 트러블이 있나 걱정되는 거겠지. 틀린 말은 아니라 슬픈 일이다…
‘찾아가서 대화라도 해야 하나.’
망할, 그러면 더 기겁할 것 같은데. 그런데 대화라도 해야 조금 관계가 진전될 것 같기도 하고.
점점 의심의 기색이 짙어지는 루이제의 시선을 받으며 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딘가 토라진 듯 한 루이제의 시선을 받은 그날 밤. 교감을 계속 메신저로 쓰기는 미안해서 새롭게 장만한 통신구로 빌라르의 연락이 왔다.
“빌라르 경?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 드렸습니다.
그리고 빌라르가 말하는 소식은 눈물 겨운 고난의 소식이었다.
소풍으로 인해 삼국 주요 인사가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니, 호위 명목인 삼국 전력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는 아득바득 기를 쓰며 기어코 아카데미에 기어온 개노답 삼인방. 호위를 위해 따라가겠다는 호위 전력에게 괜찮다며 끝까지 사양했다고 한다.
‘미친 놈들 아냐 진짜.’
그 비보를 듣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목숨을 바쳐 상처 하나 없이 지켜야 할 호위 대상이 따라오지 말라 했다고 ‘아, 그래요? 히히 오늘은 쉬어야지.’ 하는 정신 나간 호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호위 대상이 계속 호위를 거부하니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
그 안타까운 소식을 알리기 위해 빌라르가 이 시간에 연락을 건 것이다. 뒷목을 잡기에 충분한 소식이다.
아니, 밀착 경호도 아니고 거리를 벌려서 지켜보는 건데 그것도 거부해? 아무리 던전을 털었다지만, 나도 모르는 원작의 힘이 무슨 일을 터뜨릴지 모른다. 당연히 적당한 거리에 삼국 전력이 있다는 가정으로 소풍을 가는 거지, 미쳤다고 나 혼자 호위를 해.
잠시 할 말을 잃은 나는 초췌한 빌라르의 얼굴을 보고 눈물을 흘릴 뻔했다. 위에서 지랄을 떠니 아래가 고생한다. 이건 제국뿐만 아닌 삼국도 적용되는 진리였다.
결국 나는 언덕 근처의 숲에 호위 전력이 숨는 건 어떠냐고 말을 꺼냈다. 소풍 장소와도 가깝고, 숲 주변은 평야라 다른 존재의 접근을 파악하기도 쉽고, 밖에서 보면 호위가 있는지도 잘 보이지 않는다.
“몸을 숨기기에는 적당할 겁니다.”
–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게 감사 인사를 들을 일은 아닌 것 같아 그저 미소로 화답해줬다. 애초에 호위가 호위 대상이 모르게 숨어야 한다는 상황 자체가 말이 되나. 누가 보면 오히려 암살자로 오해할 상황이다. 개같은 것들 진짜.
그렇게 나와 빌라르는 아랫놈의 애환을 공유하며 조용히 연락을 끊었다.
딱히 기다리지는 않은 소풍 날이 밝았다. 벚꽃을 보며 먹을 도시락은 에리히와 루이제가 알아서 가져오겠다고 했으니, 난 몸만 편히 가면 된다. 대신 어젯밤에 기괴한 연락을 나눴기에 머리는 편하지 못했다. 이게 그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가 그건가. 차라리 몸이 힘들고 싶은데.
그 와중에 아침부터 호위 전력 일부가 미리 숲으로 향하는 모습은 가슴 뭉클해지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빌라르에게 연락을 걸어 혹시라도 숲에 숨은 게 들키면 내 부탁으로 던전 토벌을 위해 갔다고 말하라 일러주었다. 아무튼 던전이 있었긴 했으니까. 특별히 알려드리는 겁니다…
던전이라는 말을 들은 빌라르가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처럼 들썩이길래 어제 토벌했다고 덧붙였다. 그 말에 표정이 조금 오묘해졌지만, 아무튼 배려에 감사하다고 답하더라. 뭘, 가녀린 공무원끼리 서로 도와야지.
“다 모였으니 이제 가지.”
아침부터 숲으로 떠난 호위 전력과 달리, 제과 동아리는 동아리 시간이 돼서야 느긋하게 교감이 제공해 준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6명이 무난하게 탈 수 있는 크기라 애들은 뒤에 태우고, 나는 적당히 마부 옆에 같이 앉았다.
마부의 몸이 좀 떨리는 것 같지만 이해 좀 해줬으면 한다. 저 오밀조밀하게 모인 6명 사이에 껴있는 건 나도 좀 꺼려지거든. 수고하라는 의미로 은화 몇 개를 마부에게 쓱 찔러주니 떨림이 급속도로 잦아들었다.
“빠르게 모시겠습니다!”
“무리하진 말고, 안전하게.”
안에 타고 있는 사람 중 하나라도 다치면 목이 날아간다는 경고는 하지 않았다. 아무튼 긴장이 가라앉자 의욕이 샘솟는 모양. 역시 금융치료가 최고지. 황금공에게 배운 교훈이다.
그 이후로는 나도 마부도 대화 없이 가만히 있었다. 기껏 긴장을 풀어줬는데 여기서 말을 걸면 오히려 겁을 먹겠지. 대신 마부석이 조용해서인지, 마차 안에서의 대화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가끔 들판이나 숲에서 난데없이 던전이 생기기도 하지.”
어떤 새끼가 기분 나쁘게 이미 뽑고 온 던전 플래그 얘기하냐. 또 류티스냐? 목소리를 들어보니 맞는 것 같다. 원작에서는 악마의 주둥아리로 악명 좀 떨쳤을 놈 같으니.
“그걸 방지하기 위해 아티팩트를 만든 것 아닌가. 몇십년 전부터는 던전을 보는 게 더 힘들었지.”
이번에는 라테르가 류티스의 말을 받으며 내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그렇지. 던전은 이제 보는 게 더 힘들지. 그게 하필 이 타이밍에 이 근방에서 생길 줄은 정말 몰랐지.
“던전은 본 적이 없는데, 어떤 곳이야?”
“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루이제 영애. 던전의 마수들은 아주 흉폭하거든요.”
어쩌다보니 주제가 던전으로 꽂혔는지 루이제와 아인테르도 던전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차 안에 가만히 있는 것도 심심하던 찰나, 마침 대화거리가 생겼으니 놓치고 싶지 않겠지. 이거 원작을 본다는 가정으로는 완전히 복선 아니냐. 소름 돋을 정도네.
“아무리 작은 던전이라도 노련한 기사가 지휘하는 정예병 10여명은 있어야 토벌이 가능하다는 기록이 있어. 덩치도 힘도 일반 짐승에 비하면 상당하니까.”
“오, 구체적인 기록인데?”
“그 기록이 남은 던전이 우리 영지에서 열렸던 던전이거든. 아티팩트 개발 이후라 좀 충격이있지.”
에리히가 말한 건 나도 들은 적이 있다. 한 몇십년 전 일이었나, 그래서 당대 크라시우스 가주가 친우들에게 조리돌림을 좀 당했다지. 대체 뭘 해야 영지에 던전이 열리냐고.
그리고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앞장서서 놀리던 친우의 영지에도 던전이 열렸다. 그때는 크라시우스 가주가 앞장서서 놀렸고. 인상 깊은 두 친구의 자강두천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뭐, 그것도 병사들 기준이지. 우리라면 어지간한 던전은 가볍게 토벌할 거다.”
‘개새끼가.’
웃음 섞인 류티스의 말에 마차 안으로 난입할 뻔했다. 토벌 여부는 둘째 치고, 그 과정에서 생채기 하나라도 생기면 호위 전력들은 모가지에 절취선이 생긴다. 윗사람의 작은 행동이 아랫사람에게 전해지면 지진이나 다름 없는 것을.
이래서 날 때부터 위에 선 놈들은 글러 먹었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답답한 심정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냥 도착할 때까지 잠이나 자야지.
“이거 계속 얘기를 하다보니, 괜히 던전 구경이라도 하고 싶어지는데!”
‘…….’
난 자느라 아무 말도 못 들었다. 개같은 놈.
그렇게 난 소풍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으로 울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작에서는 던전이 나오지 않으면 독자가 민망할 정도로 복선을 사방에 남발했습니다. 하지만 그 복선은 칼이 처리했으니 안심하라고!
내일 회차는 평소보다 많이 늦게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오늘 약속이 있어 나갈 일이 있는데, 약속을 마치고 돌아온 내일의 제가 컨디션이 어떨지 장담할 수가 없네요. 그래도 1일 1연재는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