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2)
제 22화
윗분이 가리키면 아랫놈은 구른다 – 4
손에 들고 있던 쿠키 위에 벚꽃잎이 살포시 내려 앉았다. 가볍게 입으로 불어 날리니 바람을 타고 허공에 휘날린다. 다른 벚꽃잎과 어우러지니 분홍색 비를 보는 것 같았다.
‘예쁘네.’
이렇게 벚꽃을 구경하는 것도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애초에 꽃구경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으니. 가만히 분홍색 비를 바라보다 쿠키를 한입 베어 물었다. 쿠키도 맛있네.
슬쩍 시선을 돌려 부원들을 바라 보았다. 샌드위치나 토스트를 하나씩 들고 먹고 있는 모습. 저건 고급 입맛인 놈들에게도 먹을만한지, 표정도 일그러지지 않고 무난히 잘 먹고 있었다. 저건 잘 먹으면서 왜 쿠키는.
덕분에 여전히 아무도 먹지 않는 루이제의 쿠키는 자연스레 내 담당이 되었다. 이 악물고 먹지 않는 다섯도 굉장하지만, 꿋꿋하게 만드는 루이제도 대단하다. 단 하나라도 먹는 사람이 있으면 만들 이유로는 충분하다는 건가? 엄청난 신념이다.
그러던 중 허공에서 춤추던 벚꽃잎 한 장이 루이제의 머리에 달라붙었다. 저렇게 보니 정말 머리가 벚꽃 색깔이기는 하네. 자유분방한 머리 색깔을 자랑하는 이 세계에서도 저렇게 깔끔한 분홍빛 머리는 드물다.
“꽃과 자매님이 구분이 되지 않아서 이제야 알았군요.”
‘세상에.’
루이제의 머리에 붙은 벚꽃잎을 떼기 위해 손을 뻗으며 말하는 타니안을 보고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폐쇄적인 신성교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타니안이다. 가슴 두근거리는 연애적 표현에는 재능이 없겠지.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하겠다고 한 말이 저 수준인 것에 참담한 심정을 느낀다.
“고마워.”
루이제도 면전에다 그런 말을 들어 민망한지 어색하게 웃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타니안은 그런 반응에도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의 기준이 정말 낮구나. 욕심이 없으면 인생이 행복하다는 게 저런 의미인가? 물론 저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사제님이라 그런지 표현이 고풍스럽구만!”
류티스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웃으며 타니안의 등짝을 몇 번 후려쳤다. 저게, 고풍? 지금까지 내가 알던 고풍은 대체?
“류티스, 너무 놀리지 마세요.”
미소를 지으며 류티스를 말리는 아인테르의 모습에 안심했다. 그래, 내가 아는 고풍은 아직 멀쩡히 살아있구나. 아아, 안심했다. 요즘 신경이 곤두서서 그런지 가벼운 농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라버니, 다른 건 안 드셔도 괜찮겠어요?”
“어. 이걸로도 충분해.”
웃으며 부원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루이제가 갑자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슬쩍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주려고 하는데, 진짜 이걸로 충분하다. 벚나무 아래에 자리 잡고 도시락을 깐 이후, 난 쉬지 않고 쿠키를 먹고 있었다. 아카데미로 돌아가기 전까지 다 먹을 수 있을까?
“다른 것도 맛있는데…”
“난 이게 제일 좋으니 괜찮아.”
그러니 더 들이밀지 말렴. 샌드위치 하나 먹을 배면 쿠키가 여섯 개야…
난 자연스럽게 시선을 허공으로 돌려 루이제의 시선을 피했다. 야, 벚꽃 예쁘네.
나는 샌드위치를 사양하고 다시 쿠키를 입에 무는 칼 오라버니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작 오라버니는 벚꽃 구경을 하느라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맛없을 텐데.’
나도 바보는 아니다. 내가 만든 쿠키의 맛이 좋은 편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해주는 부원들도 쿠키를 보면 어색하게 피하려고 할 정도니까.
물론 정말 쿠키를 못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부원들에게 제과를 가르쳐주지도 못했겠지. 기본은 잘 한다. 단지 그 기본을 넘어 나만의 색다른 쿠키를 만들어보고 싶을 뿐. 그렇기에 다양한 시도를 했고, 다양하게 맛없는 결과물이 나왔다.
그럼에도 눈 앞의 칼 오라버니는 언제나 그 결과물들을 먹어줬다. 분명 맛이 없을 텐데도,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응원해주는 것처럼 매일매일 먹어줬다.
‘좋은 사람.’
예전 에리히에게 말한 것처럼, 나는 칼 오라버니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겉으로는 차갑고 무뚝뚝해 보일지라도, 언행에는 그 사람의 본성이 묻어 나오는 법이니까. 처음 오라버니를 만났을 때. 오라버니가 에리히에게 보내던 눈길은 동생을 염려하는 이상적인 형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오라버니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철저한 사람이라도 무의식적인 표출은 통제할 수 없고, 그게 가능할 연기력이면 겉으로도 에리히에게 살갑게 대했을테니. 표현이 서툰 사람, 그것이 오라버니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오라버니를 생각 한 적은 없다. 업무 관련으로 아카데미에 머물게 됐다고는 하지만, 나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그저 오고가다 만나면 인사를 할 사이. 딱 그 정도였다. 동아리를 만들기 전까지는.
기껏 최소 인원인 셋을 모았지만, 간단할 것이라고 생각한 고문을 구하지 못해서 동아리를 만들지 못했을 때. 나는 우울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입학 전부터 원하던 제과 동아리가 허무하게 날아가게 생겼으니.
“더 안 찾아도 돼. 내가 고문을 맡게 됐다.”
그때 칼 오라버니가 고문을 맡아주겠다며 말해줬을 때, 얼마나 기뻤던지. 나중에 생각해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활짝 웃고,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었다. 그런 모습에 오라버니는 어깨를 토닥여주더니 등을 돌려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렇게 동아리 고문이 된 오라버니는 언제나 세심하게 우리를 챙겨주셨다. 그러면서도 어떤 생색도, 힘든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것처럼.
에리히를 비롯한 부원들의 민망할 정도의 배려를 받던 나에게, 그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지켜봐주는 듯한 모습은 큰 위안이 됐다. 옛날부터 가지고 싶었던 오빠가 든든히 뒤에서 받쳐주는 것 같았으니.
그때부터 의지할 수 있는 오빠가 생긴 것 같은 기분에 칼 오라버니를 바라보게 되었다. 무엇을 하는지, 어디를 가는지. 혹시 내가 보답해줄 수 있는 건 없는지.
“맛있네. 팔아도 되겠다.”
“남으면 내가 처리하지. 여기에 담아.”
그럴수록 배려를 받는 건 나였다. 혹시 내가 마음이 상할까 언제나 쿠키를 먹어줬으니까. 덕분에 자신감을 얻어서 요즘은 괜찮은 쿠키들도 만들 수 있었다.
‘…예, 예전보다는 나아졌지 않았을까? 조금 정도는…?’
오라버니는 다 맛있다고 하시니, 맛이 달라졌어도 알 수가 없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슬쩍 미소가 지어지려는 찰나, 어제의 일이 떠올라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리나가 칼 오라버니에 대해 묻던 것이 떠올라 얘기를 꺼내니 적당히 넘기려던 모습. 무언가 숨기는 것 같았고, 결국 마지막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와 의지할 수 있는 오빠 사이에 내가 모르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 그리고 그걸 말해주지 않는 것이 서운했다. 물론 오라버니가 나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지만,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불만 어린 눈빛으로 오라버니를 바라보자 내 시선을 눈치 챘는지 그제서야 칼 오라버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왜?”
“저도 쿠키 하나 주세요!”
그 말에 칼 오라버니는 마침 새로 들었던 쿠키를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그 쿠키를 손으로 받지 않고 그대로 입으로 물었다.
당황한 듯 흔들리는 오라버니의 눈동자를 보니, 눈웃음 짓는 내 모습이 보였다. 어째서인지 서운한 마음이 가라앉고 기분이 좋아졌다.
소풍을 끝낸 뒤 복귀한 감찰관 숙소. 지친 마음에 침대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졸지에 소풍 장소에서 1:5 결투를 벌일 뻔했다. 갑작스러운 루이제의 장난에 다섯 놈의 시선이 어찌나 따갑던지. 노려보는 것에도 물리력이 있었다면 많이 아팠을 거다…
‘걔는 갑자기 왜.’
갑자기 루이제가 내 손에 들린 쿠키를 입으로 물 줄은 몰랐다. 그러면서 웃는 모습을 보니 나에게 장난을 칠 정도로 친해졌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 딱히 나쁜 소식은 아니긴 한데, 하필 목격자가 다섯이네.
마른 세수를 하다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루이제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활발한 것이 하루이틀도 아니니, 고민해봤자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어차피 내일 동아리실에서 만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활기차게 인사하겠지.
그리고 그대로 잠에 들려는 찰나, 책상 위에 던져둔 통신구가 빛을 내뿜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보랏빛이었다.
…? 보랏빛?
“이 시발!”
황급히 달려가 통신구로 날아온 연락을 받았다. 그러자 한 노인의 얼굴이 나를 반겼다.
– 오랜만이오, 감찰부장. 아카데미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은 진즉에 들었는데, 안부 인사가 늦었구려. 노고가 많소.
“아닙니다. 별 말씀을요. 제국을 위해 할 일을 하는 것 뿐인데요.”
– 과연. 부장의 애국심은 언제나 감탄스럽구려.
껄껄 웃음을 터뜨리는 노인의 모습에 나도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연락을 건 노인은 황실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는 자이자, 제국 행정부서 중 1위인 궁내성의 장관. 요약하면 제국 공무원의 정점이다. 그 위에는 황실밖에 없는 미친 끝판왕.
조직도상 내 직속 상관은 아니지만, 황실의 입이나 다름없는 이 노인이 연락을 걸었다는 건 황실의 의지가 내려왔다는 뜻이다. 올 게, 올 게 왔구나…
– 그래, 건강해보여서 다행이오. 황태자 전하께서도 부장이 먼 타지로 파견을 간 것에 안타까워 하셨소. 혹여나 낯선 타지에서 불편함을 겪지는 않을까 말이오.
“제국 전체에 황제 폐하의 은덕이 닿는데, 제가 불편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 폐하의 은덕은 실로 천하를 뒤덮음이나, 제국의 질서가 유지됨은 부장과 같은 충신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오?
“과찬이십니다.”
– 하하, 과찬이라니. 이건 단순히 내 의견만이 아닌 황태자 전하께서도 동의하신 말이오. 제국을 위한 부장의 노고는 마땅히 이루어져야 함이나, 그 충심은 실로 훌륭하다고 하셨으니.
궁내성 장관은 옆집 노인처럼 털털하게 웃었지만, 나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황태자의 명령이 생각보다 직설적으로 하달되었기 때문에.
단순한 덕담으로 보이는 이 말의 진의는 이렇다. 불편함은 3황자 아인테르의 행보, 제국의 질서는 황실과 계승권의 안정, 내 노고는 신나는 숙청 작업으로 해석하면 바로 정답이 나온다.
= 3황자를 주시하여 유사시 처리하라.
‘환장하겠네.’
다행이라면 즉각 처리가 아닌, 조건부 처리기는 하다. 전적으로 내 판단에 맡기겠다는 말. 그동안 피를 볼 일이 없었더니 황태자에게도 자비라는 것이 생긴 모양이다.
“과분한 말씀에 황송할 따름입니다. 황태자 전하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게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 대답에 궁내성 장관이 미소를 지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부장의 충정은 꼭 황태자 전하께 전해드리겠소.
“감사합니다.”
– 이 늙은이가 갑자기 연락을 해서 미안했소. 그럼 푹 쉬시오.
연락이 끊기며 빛이 사라진 통신구.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통신구를 다시 책상에 던졌다.
‘황태자도 지랄이네.’
이젠 단순히 루이제 쟁탈전의 주자가 아닌, 3황자로서의 아인테르도 지켜봐야 한다.
골치 아픈 일이다. 빌어먹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작가, 외출했다가 술에 취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대로 잠들면 언제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냥 정신을 붙들며 오늘 올려야 할 회차를 작성했습니다…
아침 해를 보며 완성한 회차는 새벽 여신의 기운을 받았겠지요. 썩 나쁘지 않은 기분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난 회차 후기에 오늘은 늦게 올라올 것 같다고 했는데, 이건 후기 사기인가?
아무튼 이 작가는 이제서야 자보겠읍니다… 독자님들도 안녕히 주무시거나 좋은 아침 보내세요.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