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23)
갑작스레 공녀님의 호출이 날아왔다. 중요한 일이니 되도록 빨리 와달라는 말과 함께.
이리나도 같이 찾으신 걸 보니 분명 오라버니와 관련된 일. 그렇기에 공녀님의 호출을 받자마자 달려가다시피 찾아갔다. 오라버니 일이라면 조금도 늦을 수 없으니.
“선배. 들어가도 될까요?”
“아, 빨리 왔네요. 들어오세요.”
조심스레 노크를 하고 문 너머로 말하자 공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리나 영애도 왔군요. 어서 와요.”
나와 이리나가 같이 들어오는 걸 확인한 공녀님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찻주전자가 있는 선반으로 향하는 공녀님. 처음에는 공작가 일원이 직접 차를 타주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초대한 주인으로서 자신이 하는 게 맞다고 하시니 차마 끼어들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몇 번 겪어서 익숙하다. 게다가 그 대신이라고 하기는 묘하지만, 가끔 부회장실에 올 때마다 쿠키, 이리나는 작은 화분 같은 걸 선물로 드리니까 나름 물물교환이기도 하고.
“갑자기 불러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바쁜 일이 있던 것도 아니니 괜찮아요.”
공녀님의 사과에 이리나가 빠르게 대답했다.
이리나의 말처럼 종업식이 코앞이다 보니 딱히 바쁜 일은 없다. 그나마 기말 시험 준비가 있기는 하지만, 공녀님의 호출에 불응할 정도로 바쁜 건 아니다.
“후후, 다행이네요.”
작은 웃음소리. 하지만 오히려 그 웃음 때문에 긴장감이 고개를 들었다.
미묘한 근심이 섞인 웃음이었으니까. 공녀님은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감정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하셨다.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거든요.”
그리고 그 말에 확신이 섰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다는 직감. 이제 몸 전체를 덮은 긴장감에 슬며시 주먹을 쥐었다.
공녀님이 직접 긴 얘기가 될 거라고 한 적은 드물었다. 오라버니가 마종공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 그 사건을 설명해주실 때 말고는 없을 정도로.
“어제 칼이 제도에 올라가 마종공 각하를 뵈었다고 해요.”
옆에서 이리나가 흠칫 몸을 떠는 게 느껴졌다.
아마 나도 마찬가지겠지. 현 시점에서 가장 위협적인 사람을 오라버니가 직접 만나러 간 상황. 도대체 무슨 이유로 만났고, 어떤 대화가 오고 갔을─
“그리고 크게 싸웠다고 하고요.”
“…네?”
머리가 이해하기 전에 입이 먼저 열렸다.
공작과… 싸웠다고? 오라버니가?
‘왜?’
혼란스럽다. 하지만 너무 이른 혼란이었다.
“그게─”
뒤이어 이어지는 공녀님의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수명 연장, 마종공의 오열과 사과, 하룻밤 같은 저택에서 잔 오라버니와 마종공, 화해의 의미로 서로 손을 잡고 마탑으로 이동.
이상하다. 내가 들은 걸 이해할 수가 없다. 분명 공녀님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셨는데, 이해하기가 어렵다.
“조금 당황스럽죠?”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입을 여는 공녀님에게 겨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조금, 은 아니지만 당황스럽기는 하다.
“칼은… 더 당황한 것 같아요.”
조금 침울한 목소리가 귀에 꽂히자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거다. 이게 공녀님이 우리를 찾은 용건이다.
“우리가, 우리가 칼을 보듬어줘야 해요.”
방금 전의 침울한 목소리가 거짓말인 것처럼 공녀님은 결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셨다. 지금부터 할 얘기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는 듯이.
그 장렬한 기세에 나와 이리나도 비장한 각오로 마음을 다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셋이 울음을 터뜨리는 눈물의 장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동아리 시간.
“오라버니. 피곤하지는 않으세요? 바람도 차가우니 몸이 뭉칠 수도 있어요.”
“괜찮아.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요. 아, 어깨라도 주물러 드릴게요.”
“아니 괜찮─”
오라버니의 대답을 듣지 않고 바로 어깨를 주무르자, 오라버니는 난처한 듯 웃으시더니 결국 어깨를 맡기셨다.
그리고 어깨를 주무를수록 여기저기 뭉친 것이 느껴졌다.
‘많이 힘드셨구나.’
이 뭉침은 오라버니가 홀로 고생하셨다는 증거겠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남들 모르게 홀로 짊어진 무게.
“칼이라고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아니, 오히려 저희보다 생각해야 할 것이 많죠.”
“정말, 정말 많아요. 저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하지만 그 고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죠.”
“그래서, 그래서 칼은 지금 아파요. 아주, 아주 조금요.”
결연했던 공녀님은 말을 이을수록 눈가가 붉어지셨다. 그리고 그건 나와 이리나도 다를 것 없었다.
당당하고 굳건한 오라버니. 이 세상 누구보다 든든한 오라버니. 그런 오라버니가 정신적으로 몰려서 망가졌다는 게…
‘아니야.’
황급히 끔찍한 생각을 털어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오라버니는 망가진 게 아니야. 공녀님 말처럼 조금, 아주 조금 아픈 거야.
아무리 튼튼한 사람도 감기는 걸리잖아? 가끔 넘어져서 무릎이 까질 수도 있고, 발목을 접지를 수도 있어.
딱 그 정도야. 오라버니는 그런 수준으로 아픈 거야.
“모든 신부와 합동 결혼식을…”
순간 공녀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지만 애써 넘어갔다. 감기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우면 이상한 말을 할 수도 있잖아.
‘우리가 보듬을 수 있어.’
그래, 분명 그럴 수 있어. 그러면 오라버니도 금방 괜찮아지실 거야.
“루이제. 나 왔어.”
코끝이 찡해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절절히 느끼는 사이, 동아리실 문이 열리더니 이리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 이리나.”
“안녕하세요, 오빠.”
오라버니가 반갑게 맞이하자 이리나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나도 오라버니 마음에 깃든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온 거니까.
“다른 부원들은 없네요?”
“족구하러 나갔어.”
오라버니의 대답에 이리나는 눈을 깜빡이더니 다시 나를 쳐다봤다.
그 시선에 나도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족구하러 나갔거든.
“우린 잠깐 밖에 있을게.”
“응? 갑자기 왜?”
트럼프 카드를 섞던 에리히가 먼저 입을 열었고─
“라테르가 본인이 개발인 걸 인정하지 않더라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
“보통 그런 말을 한 쪽이 짧던데.”
그 뒤를 류티스와 라테르가 이어 받으며 자연스럽게 단체로 퇴장했다.
‘배려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아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꼈다.
내가 오라버니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니까, 내가 무언가 애타는 눈으로 오라버니를 보니까 알아서 자리를 비켜준 거다.
날씨도 추운데 일부러 밖에 나가고. 정말 과분한 배려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 ──!”
“──? ─!”
뒤뜰에서 정말 혼신을 다해 노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지만, 그래도 나를 생각해서 나가준 거니까.
정말 족구 때문에 나간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응, 정말 그게 이유는 아니겠지.
“다들 기운이 넘치네요.”
“알아서 기운을 빼고 다니니 다행이지.”
이리나의 말에 오라버니가 퉁명스레 답했다.
그 말에 무심코 웃고 말았다. 사실 에리히나 류티스의 체력을 생각하면 밤새 뛰어다녀도 멀쩡할 것 같지만.
“전부 나가 있으면 제과는 힘들까? 좋은 차를 가져왔는데.”
“아, 내가 할게!”
“천천히 해. 차부터 마셔도 되니까.”
들고 있던 봉투를 탁자에 올려놓는 이리나를 보며 황급히 볼을 꺼냈다.
좋은 차. 분명 이리나는 마음을 다스리는데 효과가 좋은 걸 구해오겠다고 했었다. 자신만만하게 들고 온 걸 보면 정말 괜찮은 걸 가져온 모양.
“오빠는 어때?”
그리고 그런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이는 이리나.
“아직 모르겠어.”
민망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