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24)
오라버니는 평소에도 힘든 기색을 내는 사람이 아니니까. 만약 오라버니가 마음의 감기에 걸렸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면 아무 눈치도 채지 못했을 거다.
그렇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공녀님이 걱정할 정도로 아프면서 티를 내지 않다니, 혼자 얼마나 앓고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건 혼자 아픈 거다. 누구의 관심도, 걱정도 받지 못하고 홀로 아픈 것.
‘잘못되면 안되는데.’
작은 감기도 방치하면 심각한 독감으로 변하는 법. 오라버니도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그래도 계속 지켜보면 뭔가 보이겠지.”
“곧 종업식인데?”
그 말에 도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렇다. 그게 문제다. 이제 2학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오라버니를 볼 수 있는 날은 보름도 되지 않는다.
가까이서 오라버니를 봐야 하는데. 오라버니가 기침이라도 하면 바로 달래줘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에.’
에넨이 원망스럽다. 왜 이런 시기에 오라버니를 아프게 한 걸까.
아니, 애초에 아프지 않은 게 최선이지만 어차피 아플 거라면 간병인이 많을 때 아프게 할 수도 있잖아.
“…이번에도 제도에 놀러 가자고 할까?”
조심스레 아이디어를 냈다. 저번 여름 방학처럼 오라버니와 같은 저택에서 지내는 거 어떻겠냐고.
“위험하지 않을까? 오빠도 편히 쉬어야 하는데, 우리가 근처에 있으면 제대로 쉬지도 못하잖아.”
“그, 그렇지…?”
굉장히 설득력 있는 말에 도로 철회하고 말았지만.
“일단 신년하례식이라도 참가하자.”
“응?”
오라버니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겨울 방학. 너무나도 추울 것 같은 겨울을 상상하는 사이, 이리나가 다른 의견을 냈다.
‘신년하례식?’
의외의 말에 멀뚱히 이리나만 바라봤다.
신년하례식. 새해가 시작하는 날, 제국의 모든 작위 귀족들이 황제 폐하 앞에 모여 충성을 재확인하고 앞으로 제국이 나아갈 방향을 논하는 자리.
모든 작위 귀족이 모이기에 제국에서 가장 거대한 사교장이지만, 오히려 모든 작위 귀족이 모인다는 압박과 부담으로 인해 평범한 귀족 자제들은 불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 또래의 일반 귀족들은 아예 영지에 머물거나, 가주를 따라 상경한 귀족끼리 모여 자기들만의 연회를 여는 편. 분명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우리도 신년하례식에 참가할 수는 있어. 필수가 아니라 불참한 거지. 갈 이유도 없고.”
거기까지 말한 이리나는 흘끗 오라버니를 쳐다봤다.
“이제는 갈 이유가 생겼지만.”
이리나를 따라 오라버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작게 미소를 지어주는 오라버니.
언제나 동아리실에서 따뜻하게 대해주는 오라버니라 가끔 잊지만, 오라버니는 무려 부장급 관료다. 작위 귀족이 아니어도 신년하례식에 참가할 의무가 있는 고위 관료.
“좋아.”
계산을 끝내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조금은 긴장된다. 공작, 후작, 백작 같이 고귀한 대귀족들이 모이는 자리. 내가 작위를 물려받기 전까지는 스스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내 불안보다 오라버니를 돌보는 게 더 중요하다.
그리고 오라버니 옆이라면, 황제 폐하 앞이라도 괜찮을 것 같다.
***
루이제와 이리나가 무언가 열심히 속닥거렸다.
‘다 들린다.’
유감스럽게도 그 무언가가 전부 들렸다. 같은 공간, 심지어 저 둘밖에 없는 상황이면 아무리 작게 얘기해도 다 들린다. 나도 나름 마나를 다루는 무인이라 감각이 예민하니까.
‘너무 걱정을 끼쳤나.’
조금 머쓱해졌다. 아무래도 마르게타에게 했던 말이 저 둘에게도 흘러 들어간 것 같다.
그래, 인정한다. 마르게타는 물론, 루이제와 이리나도 충분히 걱정할 발언을 하기는 했다.
‘너무 급진적이었지.’
파격적인 것도 적당히 파격적이어야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내 파격은 정말 저세상, 세기말 파격이었지.
마르게타는 마음이 여려 내 말에 공감하는 척 했지만, 뒤로는 온갖 걱정을 했을 거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어.
‘시간을 두고 말했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다. 백신도 강도를 조절하고 여러 차례 나눠서 접종해야 효과가 있는 법.
다짜고짜 풀파워로 후려갈기면 그냥 바이러스다.
반성하자. 선구자는 언제나 신중해야 하니까.
감찰부 2과. 전투보다는 보조, 정확히는 정보 수집이 주요 업무인 과. 그 덕분에 2과 소속 감찰부원 대부분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온갖 지역을 떠돌며 정보를 긁어모은다. 물론 적당히 담당 구역을 나눈 덕분에 제국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달려갈 필요는 없지만.
그리고 과장인 내 담당 구역은 제도다. 당연한 일이다. 무려 과장이라는 중책을 맡은 내가 제도를 담당하지 않으면 누가 제도를 관리하겠나.
일부 어리석고 치졸한 녀석들은 본인들이 구르는 동안 상사가 제도에 있는 걸 언짢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불변의 진리.
“꼬우면 승진하든가.”
부장님의 말버릇이자 나 역시 애용하는 말. 나도 과장이 되기 전에는 정말 개처럼 굴렀다. 이제 승진해서 좀 편하게 지내는 게 뭐 그리 잘못인가.
게다가 내가 숨만 쉬다가 과장이 된 것도 아니다. 나름 인생을 건 도박에서 승리하여 당당히 쟁취한 전리품이다. 2년 전, 부장님이 집권하자마자 빠르게 부장님에게 붙어서 지금 자리를 얻었으니.
아무튼 과장이 된 이후로 어지간하면 제도에만 머무르고 있다.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닌 이상 제도에 뿌리를 박고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야망을 품고 풍류를 아는 신사라면 제도에서 지내야 하는 법 아니겠나.
‘미리 묫자리라도 알아볼까.’
그리고 요즘 들어 그 다짐이 더욱 굳건해졌다. 난 죽어서도 이 제도에 묘비를 세울 거다. 제도의 바람이 내 귓가에 머무를 수 있게.
“과장님.”
“어, 왔냐.”
나와 함께 제도와 수도권을 담당하는 수석 팀장. 평소에도 술자리를 같이 갖는 사이라 반가운 얼굴이지만, 요즘은 더욱 그렇다.
“소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제 수도권이라면 작은 마을에서도 알음알음 퍼질 정도입니다.”
“최고구만.”
수석 팀장을 통해 유쾌한 보고만 듣고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부장님.’
아카데미에 있을 부장님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제도에만 머무는 부하가 심심할까봐 직접 흥미로운 사건을 터뜨려주다니, 이 얼마나 참된 상사인가.
이제 내 돈 주고 연극을 볼 필요도 없다. 무료, 심지어 흥미진진한 연극이 잊을만하면 터지고 있으니.
‘저도 보답했습니다.’
뿌듯함이 몰려왔다. 참된 상사 아래에는 참된 부하가 있는 법. 부장님이 즐거운 연극을 던져주셨으니, 나도 부장님을 위해 조금 움직였다.
거창한 건 아니다. 이른 아침부터 부장님과 마종공이 손을 잡고 마탑에 갔다는 걸 미친 듯이 퍼뜨렸다. 가만히 둬도 퍼졌을 소문에 부채질을 하여 더욱 빠르게.
목표는 소소하다. 신년하례식 전까지 제국 전역에 퍼지는 것.
“다른 소문은?”
“완전히 묻혔습니다.”
“완벽하군.”
더욱 뿌듯했다. 소문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욱 큰 소문으로 덮는 것이다.
1과장이 부장님 앞에서 오열한 것은 부장님이 국립묘지에서 노숙한 것으로 덮었다. 그리고 부장님이 국립묘지에서 노숙한 사건은 이번 마종공 사건으로 완벽히 덮었다.
분명 부장님도 기뻐할 거다. 본인의 부끄러운 과거를 부하가 덮어주지 않았는가. 게다가 한밤 중에 마종공이 울며 제도를 방황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같이 덮었다.
‘이건 포상감이다.’
연말 회의 때 정식 건의라도 해야겠다. 부장의 명예를 지킨 2과 전체에 보너스라도 달라고.
“수고했다. 이대로만 가자고.”
“예, 과장님.”
“퇴근하면 한잔?”
“좋습니다.”
씨익 웃은 수석 팀장은 그대로 집무실을 나갔다. 같이 한잔 할 장소는 수석 팀장이 알아서 고르겠지.
‘요즘만 같았으면.’
그리고 수석 팀장이 나가자마자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요즘 업무 만족도가 너무 좋다. 이런 관료 생활이면 20년 정도는 더 할 수 있지.
‘1과장도 괜찮은 것 같고.’
게다가 부장님이 감찰부 외부에서 즐거움을 주는 요즘, 감찰부 내부 생활도 즐겁기 그지 없다.
부장님의 분홍빛 연애 소문이 퍼질 때마다 자연스레 시선이 가는 1과장. 예전에는 1과장의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괜찮아요! 부장님은 제 눈에 들어온 남자인데, 당연히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죠!”
“그러면 뺏길 가능성도 높은 거 아니냐?”
“흐흥! 부장님은 저를 버릴 사람 아니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도대체 1과장을 어떻게 홀린 건지, 예전이면 민감하게 반응했을 1과장이 헤실헤실 웃으며 넘어갔다.
물론 긍정적인 일이다. 1과장이 근거 없는 자신감에 빠진 덕분에 나도 거침없이 움직일 수 있었으니.
‘제발 좋은 결말을 맞기를.’
히죽거리던 1과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짧게 기도를 했다. 같은 동료로서 행복 정도는 빌어줄 수 있으니까.
부디 행복해라, 1과장.
‘나는 내 행복을 찾을 테니.’
품 속에서 통신구를 꺼냈다. 그리고 통신구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웃음이 터졌다.
마종공 사건… 이렇게만 말하면 황태자비 생일 연회하고 헷갈리네. 대충 2차 마종공 사건 이후로 부장님에게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지금 걸면 기념비적인 첫 연락.
가슴이 두근거린다. 과연 부장님은 어떤 표정을 지으며 온몸을 비틀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