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26)
절로 한숨이 나왔다. 멀쩡… 아니, 처음 관료가 됐을 때도 멀쩡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싱싱했던 관료 하나가 4년 만에 망가졌다.
본인 입으로 40년 같은 4년, 400년 같은 4년이라는 개소리를 하기는 했지. 그 말을 지키기 위해 정말 40년 구른 것처럼 망가질 줄은.
“나가봐. 다른 녀석들한테 절대 말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일단 예비 처조카사위를 돌려보냈다. 해결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과장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으니.
그렇게 빠르게 퇴장하는 예비 처조카사위를 보다가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가 도움이라도 주면 좋을 텐데.’
물론 과한 욕심이라는 건 안다. 제도도 아니고 아카데미에 있는 사람 중, 그 새끼의 광기를 고쳐줄 사람은 딱히 없다. 다독이는 사람은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
공녀는 잘못 건드리면 더 맛이 갈까 봐 조심스레 대하겠지. 교장이나 교감 같은 인물들은 공적으로 교류하더라도 사적 친밀감은 없을 거다. 학생? 무서워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고.
‘적당한 사람 없나.’
감찰부장이라는 직함에 짓눌려 겁을 먹지 않고, 적당히 사적인 친밀감도 있고, 미친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당당히 직언을 할 수 있는 관계.
‘…없군.’
유감스럽게도 모든 조건을 충족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카데미에서 회복하는 건 포기하자. 그나마 그 새끼가 자기 미친 걸 여기저기 광고하고 다닐 놈은 아니라는 게 다행이지.
***
혼신을 다한 족구 최약체 선발전. 그 결과가 나왔기에 경기장 구석에 앉아 열을 식히고 있었다.
애초에 이런 선발전을 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 중에서는 라테르가 가장 몸을 못 쓰는 편이니까. 누가 봐도 개발에 몸치인데, 본인만 인정하지 않았다.
“족구 족같이 하는군.”
“칭찬 고맙다.”
결국 자신이 개발이라는 것만 열렬히 뽐낸 라테르는 류티스에게 극찬을 남기며 저 멀리 날아간 공을 주우러 갔다.
경기장 밖으로 날아간 공은 날려버린 당사자가 수거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라테르는 시합 시간 중 절반 이상이나 경기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더 해야 하나?”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옆에 있던 류티스의 말에 짧게 대답했다.
오늘따라 루이제가 형 근처에서 떠나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은 더욱 그랬다.
누가 봐도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은 모습. 그래서 적당히 자리를 비워줬다. 마침 카드 놀이도 질리던 참이라 새로운 놀이를 찾아야 했고.
그 자리 비움을 얼마나 유지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러고 있지만.
“라테르는 아직도 안 온 겁니까?”
류티스와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는 사이, 물을 가지러 갔던 아인테르와 타니안이 돌아왔다.
“응. 꽤 멀리 찬 것 같더라고.”
“그 힘의 절반 정도만 정확도에 투자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당사자가 없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서글픈 말을 꺼내는 아인테르. 웃는 얼굴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저런 거구나 싶다.
“더 할 생각입니까?”
“그러려고.”
“좋군요. 오랜만에 땀을 흘려서 상쾌합니다.”
물통을 건네며 가볍게 웃는 아인테르를 보다가 타니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도 괜찮습니다. 눈이 오면 이러지도 못할 테니, 할 수 있을 때 해야죠.”
타니안도 좋다고 하니 결정이 났다. 이제 라테르가 족같은 족구 그만두자고 해도 다수결로 밀어붙일 수 있다.
물론 라테르의 성격상 본인이 지던 타이밍에 그만하자고 하지는 않을 거다.
‘대신 최약체인 건 인정하겠지.’
본인이 최약체가 아니라고 아득바득 우기며 하는 게임과 본인의 처참함을 인정하고 임하는 게임은 다른 법. 그 차이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아니겠나.
“그가 말하기를, 내 두 다리는 주께서 인도하는 길을 따라 영원히 나아가리.”
“오.”
라테르에게는 유감스럽게도 타니안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성법을 썼다.
피로가 순식간에 풀리며 다시 쌩생해진 몸. 오히려 족구를 하기 전보다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다.
“차기 성자의 성법이라니, 너무 과분한데?”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피던 류티스가 말하자 타니안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쓰라고 있는 성법 아닙니까. 주께서도 자주 쓰는 걸 좋아하실 겁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그러려니 했다. 성자는 교리상 신의 아들이니까. 아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남의 가정 문제에 개입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나 타니안의 배려가 무색하게도, 족구는 강제로 마무리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라테르가 들고 온 공은 터져 있었으니까.
“창립자 동상에 꽂혀 있었다.”
순간 라테르가 고의로 찌르고 온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계속 밖에서 얼쩡거렸다. 족구, 축구, 발야구. 아무튼 공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했다.
“이제는 꽤 춥군. 그냥 안에 있으면 안되나?”
기약 없는 야외 활동에 류티스가 난색을 보였지만─
“저런. 이 정도 추위에 움츠러들다니, 단련을 게을리했군.”
얼음 속성 마법사라 추위 내성이 있는 라테르의 도발에 다시 투지를 불태웠다.
기사하고 마법사 사이가 안 좋기는 하구나. 툭하면 충돌하네.
‘예전에는 자제라도 했는데.’
루이제에게 잘 보여야 하던 시절에는 서로 자제했지만, 이제 거릴 낄 게 사라진 두 왕자는 광기에 몸을 맡겼다. 그래도 주먹다짐은 안 하는 게 어디야. 서로 놀면서 싸우는 거지.
헤딩을 했음에도 공이 앞이 아닌 뒤로 가는 묘기를 뽐내는 라테르를 보다가 슬쩍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 좀.”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류티스가 공에 마나를 두르고 차기 시작했으니까.
‘미친 놈.’
능력을 이상한 곳에 쓰고 있네.
눈 앞에서 펼쳐지는 능력 낭비에 참담함을 느끼며 건물로 들어갔다. 다른 기사부 학생들이 저 꼴을 못 봐서 다행이다. 봤으면 자괴감만 느꼈을 테니.
“아, 에리히.”
그렇게 화장실로 가려던 찰나, 뒤에서 루이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지. 동아리실은 윗층이라 마주칠 일도 없는데? 애초에 루이제가 형이 있는 동아리실에서 나올 리도 없고.
“루이제? 무슨 일이야?”
“말할 게 있어서. 마침 딱 들어왔네?”
작게 미소를 짓는 루이제지만 안색은 묘하게 어두웠다.
그리고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살며시 다가오는 루이제. 긴장감 가득한 얼굴이기에 나도 긴장하고 말았다.
“혹시, 오라버니하고 대화 좀 해줄 수 있어?”
“…어?”
하지만 조용히 속삭이는 루이제의 말에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이건 또 무슨 부탁이야.
형 혼자 남아있을 동아리실로 향했다. 루이제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어버렸다.
“오라버니, 오라버니가… 조금, 아주 조금 마음이 아픈 것 같아.”
최대한 온화하게 말했지만 요약하면 형이 맛이 갔다는 소리. 눈에 콩깍지가 씌였을 루이제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심각하다는 거다.
지금까지는 루이제와 이리나, 공녀님이 어떻게 수습하려고 한 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큰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나를?”
“오라버니도… 가족 말이라면 좀 듣지 않을까…?”
솔직히 형이 딱히 내 말을 들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애절하게 쳐다보는 루이제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형이 미쳤다는 걸 듣지 못했다면 모를까, 알고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가문이 난리가 날 텐데.’
내 개인적인 감정도 그렇지만, 일단 가문은 정말 박살이 날 거다.
형이 닷새 구금됐다는 소식으로도 혼란에 빠졌는데, 작위와 영지를 이을 후계자가 미쳤다? 일단 어머니는 기절하실 거다. 어쩌면 유모도 혼절할 수도 있고.
가주님은… 모르겠다. 그래도 가문의 걸작이라 칭하던 형이 미치면 동요는 하겠지.
‘망할.’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친구의 부탁, 형의 안녕이 아닌 가문의 존폐가 걸렸다.
하지만 망설일 수는 없다. 가족인 내가 도망치고 포기하면 누가 형과 마주 보겠나.
“형.”
“뭐야, 벌써 왔냐?”
심호흡을 하고 빠르게 동아리실 문을 열었다. 괜히 느릿하게 열었다가는 도중에 도망칠 것 같아서.
“잠깐 쉬려고. 계속 뛰니까 힘드네.”
그리고 다시 심호흡을 했다. 지금부터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까.
‘떠보기?’
무리다. 떠보는 화법에는 워낙 익숙하지 않고, 애초에 그런 화법은 나보다 형이 더 익숙할 거다.
‘그냥 기다려?’
그것도 무리다. 이미 루이제가 보다가 보다가 지쳐서 나에게 구조 요청을 한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