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28)
“아카데미도 입학한 순서대로 졸업하는데, 결혼도 고백한 순서대로 하는 거지.”
???
‘그게 무슨.’
정신이 나갈 것 같다. 고백, 결혼 같은 인륜지대사를 아카데미 입학, 졸업에 비교해도 되는 건가?
아니, 그런데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진짜 어차피 정해지는 순번이면 고백 순이 맞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데…”
잠시 입을 다문 에리히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근처에 아무도 없는 걸 알면서도 저러는 걸 보면 심상치 않은 말을 할 조짐.
“공녀님이 뒤로 밀리면 철혈공 각하가 화내지만, 마종공 각하가 뒤로 밀리면 마종공 각하를 설득할 수 있잖아.”
‘오.’
그 말을 듣자마자 멍하니 에리히를 쳐다봤다.
너 천재냐?
***
홀로 사색에 잠긴 형을 뒤로 하고 동아리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복도를 어슬렁거리던 루이제에게는 잠시 형을 혼자 두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말을 걸면 어긋날 수도 있으니.
‘간단한 문제였는데.’
작게 한숨을 내쉬며 건물 밖으로 나갔다. 형과 대화를 해보니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형의 고민이 간단하다는 건 아니다. 형의 광기를 치료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옆에서 말해줄 사람만 있었어도.’
그냥 형이 미쳤을 때 ‘너 미친 것 같아요.’ 라고 해줄 사람만 있었어도 해결될 문제였다. 지금만 해도 툭하고 찌르니 알아서 복구됐으니까.
사실 형도 알고 있었다. 본인이 미쳤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나아갈 방향이 없어서, 현실 도피를 하고 싶어서 무작정 달린 거다.
그런데 그걸 막기는커녕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사람밖에 없으니 이 사단이 난 거지.
‘어쩔 수 없나?’
하긴.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쳤다고 소리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물론 소리칠 수 있는 동생은 있다. 기껏 루이제를 홀렸으면 행복하게 해줘야지, 결혼 전부터 예비 아내를 걱정시키고 말이야.
그래도 괜찮게 풀려서 다행이다. 형 표정을 보니까 앞으로 공동 결혼 운운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
“에리히! 어디 갔다가 이제 오나!”
그리고 부원들끼리 축구를 하던 경기장으로 돌아오자, 류티스가 격하게 손을 흔들며 반겨줬다.
“화장실. 아까 간다고 했잖아.”
“그랬나?”
“저는 못 들었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타니안. 분명 저 놈은 내 옆에 있었는데.
이 새끼들, 진짜 아무도 관심이 없었네.
“뭐, 그래도 딱 맞게 왔군.”
아무래도 좋다는 듯 웃음을 흘린 류티스는 공을 나에게 던졌다.
일단 던져서 받기는 받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웬 꿰맨 자국이 있는 누더기 같은 공. 그 와중에 바람은 제대로 들어가서 빵빵하다.
“다시 족구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3대 3으로!”
“3대 3?”
사람이 다섯인데 무슨 소리야. 한 명은 공기 친구냐.
그런 생각으로 주변을 둘러봤는데, 이 자리에 있으면 안되는 사람이 서있었다.
‘…빌라르 경?’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멍하니 바라보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빌라르 경은 조금 씁쓸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가 맞아야 라테르가 패배를 인정할 것 같아서 말이지.”
나와 빌라르 경의 시선 교환을 눈치 챘는지, 류티스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확실히 라테르는 놀랍게도 자신이 최약체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숫자가 맞지 않아 공정한 대결이 아니었다느니, 이런 비정상적인 게임으로 실력을 가늠할 수 없다느니 등. 평소의 라테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추함, 그 자체였다.
그래서 류티스는 3대 3을 맞추기 위해 빌라르 경을 불러온 것이다.
‘미친 놈.’
족구 한 번 하자고 왕실 기사단 기사를 불러?
‘재밌겠네.’
미친 새끼, 그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경기장에 들어갔다. 아까까지 미세하게 남아있던 형에 대한 걱정이 깔끔히 사라졌다.
그래,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달라지지 않으면 애초에 내 능력 밖인 거고. 그리고 난 형이 멀쩡해질 거라고 믿는다.
“깔끔히 3판 2선승제로 간다.”
“보통 깔끔이면 단판 아닌가.”
서서히 자리를 잡는 부원들과 빌라르 경을 보며 각오를 다졌다.
우리들의 족구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
나는 미쳤었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진짜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다.
‘시발.’
부끄러움에 얼굴을 감싸안았다. 마르게타 앞에서, 2과장 앞에서, 에리히 앞에서 당당히 말한 머저리 같은 논리를 떠올리니 죽고 싶었다.
심지어 그 말을 듣고도 따뜻하게 대해준 마르게타와 루이제, 이리나를 생각하니 더욱 죽고 싶었다.
“생각만 해도 좋네요. 고마워요.”
내 등을 토닥이며 부드럽게 말했던 마르게타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다시 뇌 내에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내 손발도 오그라들었다.
본능적으로 창문 밖을 쳐다봤다. 머리부터 떨어지면 기억이 사라지지 않을까?
‘환장하겠네.’
그래도 기억 상실로 도망치는 건 비겁한 짓이다. 이미 광기에 몸을 맡겨 비겁하게 행동해놓고, 두 번이나 그럴 수는 없다.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통신구를 꺼냈다. 당장 수습할 일이 있으니.
– 부장님?
“어, 나다.”
긴장한 표정의 2과장을 보자 괜히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내가 이 새끼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운 적이 있었나.
“그, 예전에 했던 말인데…”
– 아, 예.
그리고 내 앞에서 이렇게 굳은 2과장은 또 얼마 만에 보는 건지.
“…다른 사람한테 말했냐?”
– 그, 예. 장관님에게는 말했습니다.”
“그 외에는?”
– 없습니다.
딱 예상한 수준, 그리고 수습할 수 있는 범위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다행이다. 장관만 아는 거면 다행이야. 저게 다른 과장들 귀에 들어갔으면 진짜 돌이킬 수 없었다.
– …부장님.
하지만 너무 이른 안도였다.
– 정신이 좀 드십니까?
방금 질문과 한숨으로 무언가 눈치챘는지, 딱딱하게 굳었던 2과장의 표정이 급속도로 웃음에 물들었다.
“아니, 야─”
– 야 3과장! 내가 개쩌는 얘기 들려준다!
그리고 말릴 시간도 없이 2과장은 통신구를 내던지고 사라졌다.
미친 부장 얘기를 하는 건 쉽지 않지만, 제정신을 차린 부장의 흑역사를 말하는 건 즐거운 일이니까.
“시발.”
죽고 싶다.
광기에 먹힌 대가는 참혹했다. 내 얼굴을 보고 끊임없이 웃는 2과장, 굳이 통신구로 공중제비를 보여주며 힘내라고 응원하는 3과장.
– 부장님. 너무 창피해하지 마세요.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 거죠.
“어… 고맙다…”
– 히히, 별 말씀을요!
그리고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고 토닥이는 1과장.
솔직히 1과장이 부드러운 얼굴로 위로할 때가 제일 두려웠다. 사람이 저렇게 바뀐다고? 그때 길바닥에서 울면서 광기도 같이 쏟아낸 건가?
아무튼 과장 트리오의 정신 공격, 정상인 간부들의 평범한 안부 인사 끝에 가장 강력한 한방이 날아왔다.
‘시발.’
장관이 보낸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눈을 감고 말았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날아온 장관의 문자. 별 내용은 없었다. 놀랍게도 비웃음이나 돌려까기조차 없었다.
[ 아우스엔 정신 건강 진료소 – 트리필레 거리 우측 2층 건물. 자세한 사항은 구휼성 의료부장에게 문의할 것. ]단지 정신병원 주소만 찍어서 나에게 보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