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3)
제 23화
윗분이 가리키면 아랫놈은 구른다 – 5
언제나처럼 나 홀로 있는 아침의 동아리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숙소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아카데미에 머무른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동아리실로 출근하는 게 익숙해졌다. 공무원은 아침에 어딘가로 출근해야 마음이 놓인다.
물론 마음만 놓일 뿐, 머리는 여전히 복잡하기 그지 없다.
‘말은 쉽게 하지, 망할 놈이.’
답답한 심정에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듯 기대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천장 무늬는 저렇게 생겼구나, 처음 보네.
절로 나오는 한숨을 애써 참으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인테르가 동아리에 속한 순간부터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오지 않았으면 했던 순간이 찾아왔으니까. 내 입장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순간이 말이다.
궁내성 장관을 통해 황태자의 지시가 떨어졌다. 물론 공식 지시는 아니지만, 차기 황제로 확정된 황태자가 노골적으로 원하는데 그걸 어떻게 무시하겠는가. 나도 일단은 황태자 파벌에 속하는지라, 아무리 개같은 요구라도 따르는 시늉은 보여줘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유사시에 황자를 처리하라니, 너무하지. 대낮에 칼빵으로 죽이라는 건 당연히 아닐 테니 사고사로 위장해야 하는데, 그 고생은 2황자 때로도 충분하다. 애초에 갑자기 황자가 죽으면 아무리 위장해도 황태자 지시지 그게. 2황자 죽였을 때도 다 알더라.
‘다행히 작정한 건 아닌 것 같고.’
황태자가 작정했다면 유사시가 아니라 즉시 처리하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아인테르가 보여준 침묵, 흔들릴 일 없이 굳건한 계승권, 유사시 사용 가능한 나라는 보험이 결합되어 황태자가 자비를 택하게 되었다. 그저 놀랍다. 그 망나니 같은 놈이 자비라니.
그래도 다행인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인테르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는데, 마차 와인 테라스 삼종 세트를 보내는 건 정말 꺼려지니까. 아직 황태자의 발작 버튼이 작동하기 전이니, 최대한 아인테르를 옹호하며 버티는 수밖에.
‘개같은 놈.’
몇 번을 욕해도 부족함 없는 황태자지만, 그래도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동안 관심을 끄고 지냈던 아인테르가 갑자기 타국 왕자, 성자 후보와 같은 동아리라는 소식을 들으면 당연히 기겁하겠지. 2황자와 서로 멱살을 잡고, 동시에 고환을 걷어찼다가 동시 스턴에 걸렸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거다.
하지만 진실을 아는 내 입장에서는 영 아니다. 아인테르를 죽였다가는 괜히 황위 계승과 거리가 먼 황자를 무리해서 죽였다는 타이틀만 얻을 수 있다. 득은 없고 실만 있는 일이니 피해야 한다.
그리고 갑자기 아인테르가 죽는다면 누가 봐도 아카데미에 있는 내가 죽인 거잖아. 어그로 장난 아니게 끌릴 것 같은데.
“예전 빚은 이걸로 갚겠네.”
결국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2년 전, 아인테르를 강하게 압박했던 일은 이걸로 퉁친다. 여차하면 아인테르를 죽여야 하는 내가 아인테르를 옹호하면 빚을 갚기로는 충분하겠지. 아니, 오히려 파격적인 배려다. 이런 보이지 않는 내 노력을 아인테르도 알아야 할 텐데.
‘루이제와 아이들’이라는 메인 퀘스트도 힘든데 ‘아인테르 처우 결정’이라는 서브 퀘스트도 동시 진행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어쩌겠나, 윗분이 그걸 원하시는데. 아랫놈은 가리키는 방향으로 굴러야지. 그나마 어떻게 구를지 정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다행 같지 않지만 아무튼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못 버틴다.
동아리 시간이 되자 다른 이유로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제보다는 덜하지만, 5인방의 눈초리가 여전히 따가웠다. 다들 마음에 좀 오래 담아두는 타입이었구나, 미처 몰랐네…
그 5인방 중에 에리히가 껴있는 것은 더욱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이 형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준 것은 그새 까먹었나? 문득 검은 머리 짐승이라는 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애써 무시했다. 내 동생은 짐승이 아니라고 믿는다.
“오라버니, 여기요. 새로 만들어봤어요.”
사실 꾸준히 나에게 말을 거는 루이제의 맹활약으로 5인방의 눈초리가 여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정작 루이제도 어제 그런 장난을 친 것이 뒤늦게 민망했는지, 볼이 살짝 붉은 상태지만. 그러게 왜 그랬어. 승자 없는 난장판이 돼버렸잖아.
아무튼 새로 만들었다니 맛은 봐야지.
‘과일?’
과일이 알알이 박혀있는 쿠키가 접시에 담겨 있었다. 이런 쿠키도 있다고는 들었는데 처음 봤네. 확실히 루이제가 제과 솜씨가 좋기는 하다. 제과 동아리를 만들겠다고 나설 실력으로는 충분하지.
한입 베어 물자 이번에도 만족스러웠다. 믿고 먹는 루이제 쿠키에 고개를 끄덕여주니 루이제도 배시시 웃으며 기뻐했다.
“나도 먹어볼까?”
‘오.’
그러자 정말 놀랍게도 류티스가 루이제의 쿠키를 먹어 보겠다고 나섰다. 루이제도 예상 외의 시식 지원자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동안 피하던 놈이 먼저 나선 게 기꺼운지 활짝 웃으며 류티스에게 접시를 내밀었다.
“여기! 맛있게 먹어!”
봐라, 열심히 만든 쿠키를 먹어주려는 것으로도 루이제는 저렇게 기뻐하지 않냐. 이렇게 쉬운 길을 두고 빙빙 돌아가던 머저리 5인방이지만, 드디어 깨달음을 얻은 하나가 등장했다.
그 깨달음이 나에 대한 견제로 일어났다는 게 조금 꺼림직하지만, 아무렴 결과만 좋으면 되지 않겠나. 그동안 쓸데없이 플래그만 남발하던 류티스의 주둥아리가 드디어 로판에 어울리는 제 역할을 찾아갔다. 감동스러운 순간이다.
“으음…”
너무 이른 감동이었다. 쿠키를 씹자마자 티가 날 정도로 동요하는 류티스의 모습에 루이제의 어깨도 축 늘어진 게 보였다. 이제는 못 먹는 걸 숨길 생각도 안 하네.
“과일을 과자에 넣는 게 흔하지는 않지. 호불호가 갈리기는 할 거다.”
그 말과 함께 접시를 통째로 가져갔다. 이제 와서는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이럴 때는 내가 루이제의 쿠키를 수거해서 처리한다. 결국 중간에 무슨 일이 있든 마지막은 늘 이렇다.
갑자기 접시를 빼앗긴 루이제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자신 있게 만든 것을 도저히 못 먹겠다는 사람이 나오니 민망하겠지. 나는 자연스레 류티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당하길래 기대했더니.’
류티스는 그냥 행동이 앞서는 머저리였다. 그래도 시도를 했다는 것은 가산점을 줄 만하다. 기본 점수가 한없이 마이너스라 문제지.
절로 류티스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게 되었지만, 정작 류티스는 나에게 아까와는 다른 눈빛을 보냈다. 아까 같은 경계는 아니고, 경외…? 무슨 쿠키 먹는 데 경외감을 느끼고 있어. 미친 거 아냐 저거.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리니, 류티스의 뒤에서 어색하게 서있는 넷이 보였다. 처음 류티스가 치고 나갈 때는 자신들도 쿠키를 먹는다고 나설까 하다가, 반응을 보니 영 아니다 싶어서 접은 모양. 많이 추하다. 적어도 류티스는 실행하는 용기라도 있었지.
조용히 접시에 있는 과일 쿠키를 다시 입에 물었다. 당분이 들어가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뒤에도 평범하게 제과 활동이 이어졌다. 객기로 나섰다가 격침된 류티스가 유독 조용해진 것만 제외하면 특별한 일도 없었고. 자신감과 무모함을 구분하는 건 중요하다네, 애송이. 애초에 쿠키를 먹는데 무모함 운운하는 것도 웃기긴 하네.
단독 선두를 노리다가 단독 꼴찌가 된 것 같은 류티스에게 속으로 애도를 표하는 사이, 품 속에 있던 통신구에서 진동이 몇 번 느껴졌다. 슬쩍 보니 통신구가 빛나지는 않는다. 누가 문건이라도 보낸 모양. 또 궁내성에서 연락 온 줄 알고 놀랐다.
중요한 내용일 수도 있으니 밖으로 나가서 확인하기 위해 일어서자 루이제와 눈이 마주쳤다. 품 속에서 꺼낸 통신구를 보여주니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오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째 요즘 루이제하고 자주 눈이 마주치는 것 같은데.
아무튼 동아리실을 나가 인적이 없는 복도를 걸으며 통신구를 조작했다. 굳이 파견 중인 나한테까지 보낼 문건이 있나?
[ 확인하는 즉시 장관실로 튀어와라. – 재무성 장관 ]통신구에 저장된 내용을 확인하다 눈에 들어온 문구에 몸이 굳었다. 다시 확인하니 다행스럽게도 지금이 아니라 몇 주 전에 날아왔던 내용. 확인하고 삭제한다는 걸 깜빡했나보다.
‘드디어 노망이 났나 했는데.’
아카데미에 있는 사람에게 장관실로 오라니, 미치거나 노망이 났거나 둘 중 하나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장관은 둘 다 아니다. 장관이 시전한 소환술과 함께 예전 내용들을 쭉 넘기며 가장 최근에 온 내용을 확인했다.
[ 감찰부장의 요청에 따라 종합한 정보를 보냈으니 확인 바람. – 특무성 소속 정보부장 ]아, 이거네.
‘벌써 보냈다고?’
아카데미 파견이 결정된 직후, 이런저런 준비를 하면서 정보부장에게도 열렬히 부탁한 것이 있었다. 감찰부도 자체적인 정보 조사 능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작정하고 정보를 다루는 정보부에 비교하기는 많이 민망한 수준인지라.
다행스럽게도 내 열렬한 부탁에 정보부장도 감동했는지, 상당한 양의 정보를 부탁했음에도 벌써 종합하여 보내줬다. 그동안 공무원 생활을 하며 서로서로 도운 것이 이렇게 돌아온 모양이다. 나쁘지 않아…
확인 바란다는 문자보다 먼저 도착한 장문의 문건을 확인했다. 제목을 보니 부탁했던 그 정보가 맞다.
‘원작에서는 이런 것들이 달려든 건가.’
기가 찰 노릇이다. 이거 따로 찾아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정신 없이 두들겨 맞았을 정도.
정보부장이 보낸 정보를 빠르게 훑어봤다. 원작이라는 흉악한 운명으로 인해 원작 남주들이 아카데미에 집결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찾은 정보.
“아카데미 부수기에 환장할 놈들이 이렇게 많네.”
원작에서 주연들의 위기 조성에 기여했을 것 같은 단체들을 싸그리 긁어모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미처 후기에 적지 못했는데, 그동안 일부 독자님들이 궁금해하시던 ‘루이제의 쿠키가 맛없는 건가, 칼의 입맛이 미친 건가.’ 라는 의문의 답은 ‘둘 다’ 였습니다.
루이제가 만든 쿠키는 신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맛이 없어서 원작 남주들도 입에 대지 못했고, 칼은 이미 누렁이 수준이었던 입맛이 과거 북방 생활로 인해 추가적으로 떡락했습니다. 음식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기만 하면 다 잘 먹습니다…
아무튼 오늘도 평소와 달리 오후가 아닌 오전에 올렸습니다. 제 사소한 목표라면 자정 연재를 이룩하는 것이지만, 아직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고정된 연재 시간을 위해 더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타님!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