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31)
시녀장이 낳은 두 자식 중 동생. 하지만 오빠 쪽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 유일한 자식이 되어버린 딸.
게다가 딸도 건강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 시녀장의 아픈 손가락이다. 그래도 시녀장의 극진한 보살핌, 소꿉친구의 딸인만큼 어머니의 아낌 없는 지원 덕에 제법 건강해졌다고 들었다.
‘잘 지내는구나.’
그리고 동생이 좋은 우정을 이어간다고 생각하니 괜히 흐뭇했다. 안 그래도 어머니와 시녀장이 친밀한 사이라 자식끼리도 볼 일이 많았고, 마침 에리히와 세라는 같은 또래라 빠르게 친해졌다.
물론 난 아니다. 난 옛날에도 그냥 인사만 나누는 오빠, 동생 관계였더라. 빙의 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소꿉친구.’
사실 조금 신기하다. 어머니와 시녀장의 인연이 자식까지 이어졌다. 빙의 전 세상에서는 생각도 못할 상황.
가족이라는 게 있다면 이렇게 관계가 퍼지는구나…
“세라가 누굽니까?”
마침 지루한지 카드를 섞고 있던 타니안이 슬쩍 입을 열었다.
이 새끼는 족구하고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게임이야. 차기 성자가 너무 욕망에 충실한 거 아니냐.
“…에리히 소꿉친구. 시녀장 딸이라서 옛날부터 알고 지냈지.”
“오, 좋은 인연이군요. 친구와 술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이 있지요.”
가볍게 미소를 짓는 타니안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는 없어서 모르겠지만, 술은 오래될수록 좋긴 하지.”
그 말에 동아리실의 분위기가 잠시 숙연해졌다. 자기들끼리 떠들던 류티스와 라테르도, 그 모습을 보던 아인테르도, 다른 부원들이 마실 차를 타던 루이제도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아.’
그제서야 깨달았다. 너무 생각 없이 말했다.
친구가 없는 걸 딱히 신경 쓰지 않아서 쉽게 입 밖으로 뱉고 말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눈물이 나올 자폭 멘트일 텐데.
“그, 형은 바빴잖아. 어릴 때는 수련에, 요즘은 관료에…”
“꼭 어릴 때 만난 친구가 전부는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만날 인연은 어린 시절에 비하면 너무나 많지요.”
나와 달리 친구가 많은 에리히, 그리고 본의 아니게 시발점이 된 타니안이 급하게 위로했다.
아니, 그러지마. 그러니까 더 기분이 이상하잖아. 내가 진심으로 딱한 사람이 된 것 같다고.
“…그래, 고맙다.”
그래도 저 위로에 정색을 하면 더 이상하니 애써 평범하게 대답했다.
‘시발…’
사람이 친구 좀 없을 수도 있지.
중간에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아무튼 제도 여행 참가자가 확정됐다. 나, 루이제, 이리나. 그리고 통신구로 묻자마자 바로 좋다고 대답한 마르게타까지.
아무리 고백 답변을 위한 여행이기는 하지만, 멤버가 이렇게 이루어지니 조금 민망하기는 하다. 누가 보면 하렘 여행인 줄 알겠어.
‘…맞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딱히 틀린 시선은 아닌 것 같다. 아니라고 부정하면 오히려 추할 정도.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통신구를 작동시켰다. 애초에 지금 물어볼 걸 생각하면 부정하는 것도 너무 늦었지.
– 응? 부장님?
“어, 나다.”
얼마 지나지 않아 2과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정신 공격을 당하고 며칠 지나지도 않아 내 손으로 연락하는 게 서글프지만, 그래도 내 질문에 제대로 답할 놈은 이 새끼밖에 없다.
“근처에 1과장 있냐?”
– 아뇨. 지금 저밖에 없습니다.
원하던 답변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할 말은 그 누구도, 특히 1과장이 들으면 곤란한 말이니까.
– 왜 그러십니까? 신부 다섯 들어갈 식장 찾으시게요?
“이 씨─”
– 아님 말고요.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욕을 애써 삼켰다. 참자, 여기서 울컥하면 조리돌림만 당하다가 끝날 거야.
낄낄거리는 2과장을 보며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반지 잘 만드는 곳 없냐?”
– 결혼 반지요? 다섯 개 동시에 만들 수 있는 곳은 모르겠는데.
밉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저 새끼가 너무 밉다…!
2과장의 조리돌림에 치가 떨렸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진짜 내가 텔레포트만 쓸 수 있었으면 당장 달려가서 몇 대 패고 올 텐데.
그래도 질문에는 답해주더라. 놀리기만 하고 답도 안 해줬으면 정말 미쳤을지도 모른다.
‘개새끼.’
2과장의 얼굴이 사라진 통신구를 힘없이 내려다 봤다.
사실 이 새끼가 미친 도발을 한다면 반격할 수단이 있기는 하다. 결혼이 임박한 놈이니 그걸로 공격하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나보다 먼저 결혼을 하는 것. 이게 내 공격 수단이자 약점이기도 하다.
‘더 지랄하겠지.’
내가 공격할수록 훗날 돌아올 지랄도 커지는 암담한 미래.
그 미래가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 이 새끼는 분명 본인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내 명치에 죽창을 박을 거다. 내가 놀릴수록 죽창의 개수는 늘어나겠지. 심지어 내 결혼식은 다섯 번이다.
싸우면 싸울수록 마지막에는 내가 패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 2과장도 그걸 눈치챘는지, 예전에는 다소 자제하던 도발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난사하고 있다.
제발, 제발 장관이 나 대신에 엿 좀 먹였으면. 결혼식 때 ‘나를 이기지 못하면 처조카를 가져갈 수 없다!’ 라면서 레슬링이라도 했으면.
‘…부추길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가능하면 장관한테 바람을 넣으면 되잖아.
결혼을 하라고 압박을 넣은 걸 보면 장관도 처조카를 나름 아끼는 것 같다. 아무 감정도 없었으면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신경도 안 썼겠지.
그래, 딸을 놈팡이에게 시집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각성시키자. 2과장이 정상이 아닌 건 장관도 잘 아니까 효과도 좋을 거다.
‘완벽해.’
내가 못하면 오랑캐의 손을 빌려 다른 오랑캐를 죽인다.
미친 것 같지만 멋진 방안이다. 당장 해야지.
말로는 당장이니 뭐니 했지만 이런 건 통신구가 아니라 대면으로 해야 제맛이다. 종업식도 며칠 안 남았으니 감찰부로 복귀할 때까지 참자.
게다가 지금은 이이제이의 계책보다 더 중요한 일에 집중할 때다.
– 이번에도 오시는 거군요.
제도 여행 계획을 집사에게 알리는 것. 집사 입장에서도 미리미리 알아야 손님을 대접하는 게 편하지 않겠나.
그런데 어째 이번에도, 라는 말을 할 때 집사의 표정이 묘하게 굳은 것 같았다.
‘진짜 굳었네.’
사실 그럴만하다. 황족, 왕족, 차기 성자라는 기적의 라인업을 맞이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런 일이 생겼으니.
일생에 단 한 명 보기도 힘든 라인업. 그 한 명조차 딱 한 번이라도 보면 많이 본 건데, 해가 지나기도 전에 또 보게 생겼다.
하지만 오해다. 이번에는 그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
“저번처럼 다 가는 건 아니고, 나 포함해서 넷이야.”
그 말에 집사의 표정이 한결 온화해졌다.
“나, 마르게타 공녀, 루이제 영애, 이리나 영애.”
더욱 온화해졌다.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습니다.
“무리하지는 말고.”
– 하하,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힘을 주겠습니까.
아까의 근심은 사라지고 웃기까지 하는 집사를 보니 덩달아 마음이 편해졌다. 높으신 분들이 자기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니 이렇게 평화롭다.
비록 멤버에 공녀가 끼어 있기는 하지만, 이미 황족이라는 매운맛을 겪은 집사 입장에서 공녀 하나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범위.
거기다 집사도 나와 마르게타의 관계 정도는 알고 있으니 미래의 마님을 맞이하는 기분이겠지. 불편한 손님이 아니라 모셔야 할 윗사람이다.
“그럼 수고하고.”
– 예, 주인님. 다시 뵙는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허리를 숙이는 집사를 보며 연락을 끊었다. 맡기면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니 더 신경 쓸 건 없다.
나는 그동안 반지 디자인이나 생각하자. 다섯에게 전부 같은 반지를 주는 건 너무 성의 없어 보여. 보석은 다이아몬드로 통일하더라도, 모양은 조금씩 다르게 해야지.
‘어차피 내가 만드는 것도 아닌데.’
만드는 건 장인. 그리고 장인은 돈을 주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만들면 그만이다.
돈을 꽂아주면 불가능한 디자인 같은 건 없다. 만약 있다면 그건 돈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
***
소피아와 이불을 짊어진 상태로 창고에 들어갔다. 저택에 있는 모든 침구를 겨울용으로 교체하는 작업.
‘이제야 끝났네.’
고작 침구를 바꾸는 일이지만 저택이 워낙 넓어서 그런지 며칠이나 걸렸다. 창고에 있던 겨울 침구를 빨고, 말리고. 각 방에 있던 가을 침구를 빨고, 말리고, 옮기고.
그렇게 수십, 수백 번을 왔다 갔다 한 끝에 드디어 마지막 방도 처리했다. 제대로 된 월동 준비는 다른 분들이 했으니, 올해 겨울나기 준비도 끝!
“으, 목 꺾일 것 같아.”
마침 마지막 이불을 서랍에 넣은 소피아가 앓는 소리를 냈다. 당연히 아프지. 겨울용 이불을 계속 머리에 이고 움직였으니 그럴 수밖에.
“그러게 그냥 평범하게 들지 그랬어.”
“이래야 빨리 끝나잖아.”
목을 주물거린 소피아가 히히 웃으며 답했다.
바보. 몸도 별로 안 좋으면서. 조금 요령을 부려도 아무도 뭐라고 안할 텐데.
“끝났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