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34)
저 둘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나와 마르게타의 사정 때문에 팔자에도 없는 울켄 압송을 당했으니까. 그래도 당혹감과 별개로 눈에는 흥미가 담겨있어 다행이다.
“생각보다 활기차죠?”
“아, 그, 그게…”
훅 치고 들어온 마르게타의 질문에 루이제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확실히 울켄의 이미지가 조금 묘하기는 하다.
사실 철혈공의 영지, 군수업 특화 지역이라는 더블 래리어트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지. 아마 외부인이 상상하는 울켄은 강에 쇳물이 흐르고 24시간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거대 대장간이지 않을까.
물론 그 대장간의 공녀에게 ‘볼 거 없는 곳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네요!’ 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루이제도 저런 반응인 거고.
“후후,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요. 울켄의 이미지가 삭막하고 딱딱한 건 사실이니까요.”
다행히 마르게타는 객관화가 뛰어난 사람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그래도 울켄에는 울켄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이왕 왔으니 같이 관광이라도 하죠.”
그 말에 루이제도 이리나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공녀가 직접 안내해주는 공작령 투어.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귀중한 추억이 될 거다.
“자, 일단은 들어가요. 관광도 숙소부터 잡는 게 먼저죠?”
그런 둘을 보며 부드럽게 웃은 마르게타는 정문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마왕성 같은 공작성이 순식간에 숙소로 전락한 순간이지만, 마르게타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마르, 저는 나중에 들어가겠습니다.”
“네?”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가던 마르게타가 눈을 깜빡였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미안합니다. 잠시 할 일이 있어서요.”
그 말에 마르게타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한 반응이다. 예정에도 없이 갑자기 끌려온 곳에서 무슨 할 일이 있겠나.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언제쯤 돌아올 것 같나요?”
그럼에도 마르게타는 이해해줬다. 조금 아쉽다는 듯 눈꼬리가 내려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말을 이해하고 수용해줬다.
그 배려에 나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꿇었다.
“각하께서 용서하실 때요.”
난데없는 기행에 마르게타는 물론, 루이제와 이리나도 당황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 내 성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으면 두 다리를 뽑아버리겠다.
이제는 원본도 가물가물한 철혈공의 말. 진짜 저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내 머리는 철혈공의 경고를 저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꿇는다. 마르게타와의 결혼을 위해. 장인 어른의 인정을 받기 위해.
***
공작성에서 가장 거대한 연무장. 공작가의 기사단도 내 허락이 없으면 접근하지 못하는 나만의 장소. 그곳에서 새벽부터 점심까지 쉬지 않고 단련을 했다. 그제는 창, 어제는 검, 오늘은 철퇴로.
아들 녀석에게 사실상 모든 권한을 물려준 이후로 유일하게 매일 반복하는 활동. 비록 업무에서는 손을 뗐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바렌티의 가주가 단련을 멈추는 건 죽는 것이나 다름 없기에.
‘예전 같지 않군.’
그러나 단련할수록 씁쓸함만 몰려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월은 이길 수 없다. 끊임없는 단련도 그저 노화의 속도를 늦출 뿐, 막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 나이에 이 정도면 선방이지. 그리고 나를 이어 제국을 지킬 영웅들이 많으니 걱정할 것도 없다.
전승공도 그렇고, 특무성 장관도 그렇고, 그 놈도 그렇고─
“빌어먹을 놈.”
그 빌어먹을 얼굴이 떠오르자 철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뒤늦게 아차 싶었지만 이미 손잡이가 으스러져 철퇴의 머리 부분은 힘없이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제법 쓸만한 물건이었는데 허무하게 망가뜨리고 말았다. 이 역시 그 빌어먹을 녀석 때문이다.
‘괘씸한 녀석.’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할 수가 없다. 마르라는 누구보다 훌륭한 신붓감을 두고 다른 여성을 홀리다니.
부인이 여럿인 걸 탓하는 게 아니다. 나도 여러 부인을 들였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나. 귀족에게 혼인은 정치의 연장, 사교의 일종, 능력의 과시다.
그런데 결혼도 하지 않고 여자만 늘린다? 우리 마르에게 어떠한 자리도 주지 않고?
‘감히.’
다시 손에 힘이 들어갔다. 처참히 으스러졌던 손잡이는 이제 가루가 되어 바람에 휘날려갔다.
마르와 당당히 결혼을 하여 첫 부인으로 삼았다면, 하다못해 약혼이라도 했다면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을 거다. 부인이 몇이든 마르의 권위는 변하지 않을 테니.
그런데 아니지 않나. 마종공이 그 놈에게 호감을 표하는 상황에서 놈과 마르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했다. 갑자기 마종공이 첫 부인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럴 수는 없다.’
황태자비 생일 연회 이후로 끊임없이 고민했다. 마르와 마종공의 경쟁. 상상도 못한 대립 속에서 아비이자 공작으로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결론은 간단했다. 마르의 아비로서, 울켄 공작으로서 물러서지 말자고. 아무리 마종공이 이기기 어려운 강적이어도, 바렌티는 물러서지 않는다. 자식의 혼인이 걸린 문제에서 두려워하는 자가 어찌 공작이겠는가.
그래서 마르와 놈을 불렀다. 아예 확고한 인연을 맺기 위해서.
‘결국 속도 싸움이군.’
빠르게 움직이는 자가 전장을 주도한다. 만일 마종공이 비겁하다고 따진다면, 먼저 하지 그랬냐는 대답으로 돌려주면 그만이다.
…사실 정말 의문이기는 하다. 지금까지 마종공은 놀랍게도 잠잠했다. 최근 제도에서 영 거슬리는 소식이 들리기는 했지만, 정작 둘 사이에 공식적 관계가 맺어졌다는 소식은 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의문에서 멈췄다. 상대가 움직이지 않으면 먼저 움직이는 게 도리.
“아버지.”
설령 마종공과 충돌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밀어붙이겠다는 각오를 하는 찰나, 뒤에서 리처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오늘도 부수신 겁니까?”
그리고 바닥에 처박힌 철퇴 머리를 보자 작게 미소를 지었다.
“요즘 만들어진 물건은 영 힘이 없다.”
“옛날 물건은 튼튼한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때도 툭하면 망가진 걸로 기억하는데요.”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지간한 무구는 내 손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으니.
그나마 고르고 고른 명품, 혹은 황제 폐하께 하사 받은 물건 정도는 돼야 부수지 않고 사용할 수 있었다.
내 침묵에 리처드는 잠시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마르가 왔습니다. 손님은 둘이고요.”
생각보다 빠른 방문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마르에다가 손님까지 왔다면 직접 나서서 환영을 해야지.
“손님들은 정중히 모셔라. 갑작스레 초대한 것이니 그만한 대우를 해야 한다.”
“예, 아버지.”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마르를 보겠구나.”
그 말에 리처드의 입이 닫혔다.
이상하다. 보통 마르에 대한 말을 하면 이 녀석도 한두 마디 정도는 덧붙이는 편인데.
“저기, 아버지.”
어색한 침묵 끝에 리처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그러느냐.”
“손님 외에 감찰부장도 왔습니다.”
당연한 얘기다. 만약 마르만 보내고 본인은 오지 않았다면 당장 제도로 달려갈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놈이 빌어먹을 놈이기는 하지만 머리가 없는 놈은 아니다. 이번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알고 있었을 터.
“당연히 와야지. 그런데 그게 왜.”
“지금 정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흡족감이 가슴을 채웠다. 그래, 그 놈이 머리가 없는 놈은 아니다.
예전부터 그 놈에게 누누이 말했다. 한 번 마르를 찬 너에게 간단히 기회를 주지 않겠다고. 네가 마르와의 결혼을 원한다면 내 성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할 거라고.
내 말을 무시하고 황태자비 생일 연회에 등장했을 때는 몹시 괘씸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무릎을 꿇었다.
‘망할 녀석.’
딱히 누군가를 무릎 꿇리는 취미는 없다.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겠나.
그래도 그 녀석은 반드시 꿇어야 한다.
“흐아아아아앙! 아빠아아아아!”
“마, 마르야. 진정하거라.”
“흐윽, 흐끄윽… 나, 나 어떡해애애애… 그 사, 람, 그 사람이, 너무 좋은데에에에…”
마르가 그 녀석에게 차인 날, 정말 서럽게 울었었으니.
그러니 녀석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내 딸을 울린 잘못을 인정하고 바렌티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 정도는 해야 마르의 눈물도 헛된 눈물이 아니겠지.
“신경 꺼라. 튼튼한 놈이니 사흘은 그냥 둬도 될 거다.”
물론 사흘이나 둘 생각은 없다. 자기 잘못을 인정한다면 용서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리고 용서한다면 그 놈도 바렌티의 사위, 바렌티의 일원이다.
그러니 바로 가서 이제 일어나라고 해도 괜찮─
“…마르도 옆에서 같이 꿇었다고 합니다.”
“…….”
그 말에 머리가 새하얘졌다.
황급히 정문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마르도 같이 무릎을 꿇고 있으면 아무 의미도 없다.
마르의 부끄러운 기억을 덮기 위한 일이다. 마르가 울었으니 놈에게 무릎으로 보답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마르도 같이 꿇으면 마르만 손해지 않나.
“하.”
그리고 정문에 도착하자 눈에 들어온 광경은 처참했다.
멀찍이 떨어져 안절부절 못한 모습으로 정문을 바라보는 두 영애.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나보다 먼저 달려온 딸들.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