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35)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이는 빌어먹을 놈.
“아버님…”
마지막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마르.
자세히 보니 서로 손도 잡고 있다. 아주 가관이다.
“…들어와라.”
계속 그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 짧게 입을 열고 몸을 돌렸다.
저 빌어먹을 놈, 혹시 마르를 꼬드긴 건가? 같이 꿇으면 금방 끝날 줄 알고?
‘망할 놈.’
벌써부터 순진한 아내를 이용하다니. 정말 의도한 거라면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
망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변하지 않는 결론이 나왔다. 이거 망했다.
설마 거기서 마르게타도 같이 꿇을 줄은 몰랐다. 마르게타의 실행력이 발군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마, 마르! 마르까지 이럴 필요는 없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했어요. 아내가 남편의 고통을 외면하는 건 바렌티스럽지 못해요.”
그렇게 말하더니 무릎을 꿇고 버티기에 돌입하더라. 사실 마르게타가 아무리 버텨도 일으켜 세우는 건 간단하지만, 그건 마르게타도 못 이기는 척 힘을 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일어나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을 억지로 일으키면 어딘가 다치게 되는 법. 차마 강하게 만류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웅다웅하다가 등장한 철혈공. 그런 철혈공의 눈에 들어온 무릎 꿇은 막내딸.
“…들어와라.”
나는 봤다. 그 찰나에 철혈공의 눈에 스쳐 지나간 감정을.
그건 저 새끼를 어떻게 잡아야 잘 잡았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는 망나니의 눈빛이었다.
‘뼈 붙는 데 얼마나 걸리더라.’
뒷모습만 봐도 여전히 언짢음이 느껴지는 철혈공. 그 뒤를 따라 걷다 보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어디 부러지는 건 기정사실이니까.
그래도 사람 패는 전문가인 철혈공이니 뼈 정도는 깔끔하게 부러뜨릴 수 있을 거다. 그러면 붙이는 것도 간단할 터. 아니, 오히려 괘씸죄로 산산조각을 내려나? 그러면 좀 오래 걸릴 텐데.
무심코 오른팔을 매만지자 옆에 있던 마르게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칼, 미─”
하지만 내가 조용히 손을 잡자 도로 입이 닫혔다. 이건 사과를 들을 일이 아니다.
솔직히 마르게타의 행동으로 철혈공의 불쾌지수가 하늘에 닿은 건 사실이지만, 애초에 시발점은 나였다. 내가 처신을 제대로 했으면 공작성 앞에 무릎을 꿇을 일도, 마르게타가 그걸 보고 같이 꿇을 일도 없었겠지.
게다가 마르게타는 나를 위한 마음으로 그런 것이지 않나. 그저 내 이미지가 좋지 않아 이렇게 된 것뿐이다. 만약 철혈공이 나를 좋게 생각했다면 이번 일도 그저 해프닝으로 넘어갔겠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다 잘 될 겁니다.”
그래, 다 잘 될 거다. 일단 철혈공이 안으로 들였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 신호 아닌가.
철혈공이 정말 눈이 뒤집혔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결혼을 허락하지 못한다면 정문에서 칼춤을 췄을 거다. 난 그 칼춤을 피해 다크소울을 찍었을 테고.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제부 말이 맞단다. 너무 걱정하지 말렴.”
그리고 그런 내 말을 지지해준 것은 바렌티의 상징인 붉은 머리를 지닌 여인, 마르게타가 나이를 먹으면 딱 저러지 않을까 싶은 외모의 귀부인.
다른 남매들이 철혈공과 가까이 있는 상황에서 홀로 우리와 붙어있는 별종.
“우리 마르, 그래도 아버님을 놀라게 한 건 심했어. 이따가 사과드리자?”
“네, 언니…”
“옳지.”
마르게타의 바로 위, 넷째 언니 되는 사람이다.
자매라고 부르기는 오묘한 나이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이 세계 귀족들은 대체적으로 동안이라 얼추 자매 같기는 하다.
“제부도 신경 쓰지 말아요. 아버님이 겉은 거치셔도 속은 정이 많으신 분이에요.”
“아,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우리 남편은 그걸 몰라서 겁을 좀 먹었었거든요.”
쿡쿡 웃음을 흘리는 모습에 어색히 마주 웃었다.
저 앞에서 걷던 철혈공이 흘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다. 설마 두 딸하고 같이 있는데 체어샷이 날아오지는 않겠지.
“흐음, 그런데 제부. 설마 결혼 허락을 맡는 자리에 다른 부인들도 데려올 줄은 몰랐네요.”
그 말에 무심코 철혈공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나도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저 분이 손님이랑 같이 오라고 해서.
“혹시 아버님 허락을 받은 뒤에는 다른 아버님을 찾아가는 건가요?”
흥미진진하다는 목소리가 귀에 꽂히자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 얼굴이 붉어진 루이제와 이리나를 보니 차마 눈을 둘 곳이 없었다.
그냥 철혈공 옆에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철혈공 옆이면 몸만 아프고 끝날 것 같은데.
전 철혈공, 후 예비 처형이라는 기적의 포위망은 바렌티 공작가의 집사장 덕에 풀 수 있었다.
처음 집사장이 멀리서부터 달려올 때는 철혈공의 호통을 예상했다. 손님을 맞이하지 못한 집사장. 심지어 자신이 맞이하지 못한 사이에 주인인 공작이 직접 응대한 상황. 공작가의 체면을 훼손시켰다 여겨도 무방한 일이다.
그러나 바렌티의 그 누구도 집사장을 탓하지 않았다.
“집사장. 손님들을 안내해주게.”
“예, 소가주님.”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레 지시를 할 뿐.
그 모습을 보자 대충 짐작이 갔다. 바렌티의 집사장도 과로에 시달리는 가여운 존재라는 걸. 그렇기에 조금 늦은 것 정도로는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는 걸.
‘집사장은 다 이런 건가.’
확실히 크라시우스 가문의 집사장도 과로에 시달리는 편이기는 하다. 애초에 집사장이라는 직책 자체가 한 영지의 행정 책임자니까.
그래도 이건 너무 짠하다. 저런 가여운 존재를 눈 앞에서 보─
“네 놈은 나를 따라와라.”
물론 이 자리에서 가장 가여운 건 나다. 남을 동정할 처지가 아니지.
“예, 각하.”
철혈공의 부름에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레 집사장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귀신같이 들키고 말았다. 그냥 넘어갔으면 했는데 실패했네.
그리고 철혈공을 따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혈공의 자식들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스쳐 지나갔다.
“흥.”
어찌 보자면 내게 우호적인 반응. 그러나 철혈공은 그 모습에 작게 코웃음을 칠 뿐, 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뭐지? 어차피 자기가 조질 테니 다른 사람들은 필요 없다 이건가?
‘대체 얼마나 조지려고.’
분노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여러 사람이 분노를 나눠 가지면 한 사람이 지닌 분노는 적지만, 그 총량을 홀로 짊어지면 분노는 어마어마하다.
지금의 철혈공이 그렇다. 다른 바렌티 가문 사람들이 온화한 모습을 보일수록 철혈공의 분노만 커질 것이다.
“바렌티는 피를 중시한다.”
그렇게 최대한 덜 아프게 맞는 자세를 생각하며 걷는 사이, 철혈공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피.’
순간 주먹으로 적장을 패는 철혈공의 모습이─
“그렇기에 연말이 가까워지면 모든 가족들이 모인다.”
아, 그 피.
“그렇게 모인 바렌티는 연말부터 새해까지 함께 지낸다. 출가한 딸이라도 예외 없이 말이다.”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는 작위를 잇기 위해 형제끼리 죽고 죽이는 일이 잦았지.”
아니 시발.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내면 무슨 리액션을 보여야 돼.
“그 혼란 속에서도 내 조부께서는 가족의 연을 중시하셨다. 지금의 전통도 그때부터 시작했고.”
어딘가 아련한 목소리로 말하던 철혈공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다른 방들과 달리 홀로 동떨어진 방. 흑색으로 칠해진 고급스러운, 동시에 어딘가 섬뜩한 문.
그리고 문 위에 수려한 글씨체로 적힌 문구.
진실의 방
‘이름 살벌하네.’
당장이라도 전격 마법으로 지져질 것 같은 이름이다.
“조부의 염원은 후대로 이어졌다. 내가 이어받은 염원도 내 자식들을 거쳐 미래로 나아가야 하지.”
홀로 이상한 상상을 하는 사이, 문고리를 잡은 철혈공은 나를 돌아봤다. 이전처럼 언짢음이 가득한 얼굴이 아닌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바렌티는 가족을 중시한다.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혈족의 적이면 배척하고, 부족하더라도 혈족이면 감싸 안는다.”
그 말을 들을수록 철혈공이 나를 언짢게 생각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단순히 막내딸을 약탈한 불한당이기 때문이 아니다. 막내를 두고 다른 여자를 들여서가 아니다.
“네가 마르를 밀어냈을 때, 마르가 슬퍼하기는 했지만 거기까지인 일이다. 우리와 연이 없는 사람이면 신경 쓸 것도 없지.”
비록 딸과의 혼사를 거절했지만 혼사는 잘 풀릴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법.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적대할 것은 없다.
“하지만 너는 네가 밀어냈음에도 다시 다가왔다. 네가 바렌티의 일원이 되는 것을 자청했다.”
그래, 그게 관건이다. 철혈공의 제안을 거절했던 내가, 바렌티의 일원이 되는 걸 외면한 내가 다시 다가왔다.
그렇다면 철혈공 입장에서 나는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금 바렌티에 얼맞는 인물인지 판단해야 한다.
“아무리 유능하더라도 혈족의 적이면 배척하고, 부족하더라도 혈족이면 감싸 안는다.”
그리고 내 조건이 좋더라도 마르게타를 박대하면 적이다. 반대로 어딘가 하자가 있더라도 마르게타와 끈끈한 부부가 된다면 가족이다.
그렇기에 철혈공은 나를 불편히 여겼다. 스스로 바렌티의 가족이 되겠다고 했으면서 마르게타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오히려 다른 여자를 늘렸기에.
“너는 너의 반을 바렌티에 맡길 수 있겠느냐?”
철혈공은 물었다. 너는 진정한 바렌티의 일원, 바렌티의 사위가 될 수 있겠냐고.
그렇다면 내 답은 간단하다.
“예, 각하. 물론입니다.”
“대답은 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