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36)
심드렁하게 답한 철혈공은 문고리를 돌렸다.
“그게 진심인지는 지금부터 알아보면 되겠지.”
진실의 방이 열렸다.
…아니, 진짜 고문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
아버님이 칼을 끌고 사라지는 걸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본의 아니게 아버님을 자극한 상황이다. 여기서 내가 나서봤자 당장의 위기만 벗어날 뿐, 결국 아버님의 분노는 풀리지 않을 거다.
“금방 끝나겠지?”
하지만 넷째 언니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겠지. 아버지도 옛날 같지 않으셔서.”
심지어 첫째 언니까지도.
혼란스러웠다. 아버님은 많이 화나신 것 같은데, 정작 언니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한다.
이상해. 아버님이 가족에 대해서 예민하시잖아. 조금이라도 눈에 차지 않으면 결혼은 없다고 말하시던 분인데.
그리고 그런 속내를 눈치챘는지, 넷째 언니는 작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우리 마르. 많이 놀랐니?”
“아, 마르는 처음 보겠구나?’
넷째 언니를 따라 미소를 지은 셋째 언니는 나를 뒤에서 껴안아줬다. 마치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처럼.
“그냥 행사라고 생각해. 늘 저러셨거든. 네 형부들 때도 다 저랬다?”
?
“우리 남편만 고생했지. 하필 아버지가 정정하실 때라 창문 밖으로 던져졌잖아.”
??
“그래놓고 큰형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기어올라왔었지? 아버지도 그거 보고 허락하셨을걸?”
???
더욱 혼란스러웠다. 지금 듣는 대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행사?’
언니들이 결혼할 때마다 이랬다고?
‘던져져…?’
그럼 칼도 던져질 수 있다는 거야…?
무의식적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말았다. 혹시 이미 밖으로 내던져지지 않았을까 싶어서.
‘없다.’
걱정과 달리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르야. 거기가 아니라 반대쪽으로 던져질 거다.”
오라버니의 말에 황급히 맞은편 창문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이번에도 없었다.
…아니, 다행이 맞나? 이젠 나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드넓은 창공에 홀로 서있었다.
아니, 혼자가 아니다. 하나 둘 내 주변에 나타나는 바렌티 사람들. 울려 퍼지기 시작하는 박수 소리.
“축하해.”
“축하해.”
“축하한다.”
“축하하네.”
“축하해요.”
무수한 박수와 축하의 세례가 나를 감쌌다.
그래, 나는 해냈구나.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고 결말에 도달했구나.
그렇기에 웃었다. 모든 속박과 굴레를 벗어던지고 웃었다. 나를 축하해주는 이 사람들에게, 내 새로운 가족이 된 사람들에게.
“고맙─”
“제부?”
‘아.’
훅 치고 들어오는 목소리 덕에 정말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잠깐 정신이 이상한 곳으로 가있었네.
비로소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창공이 아닌 그레이트 챔버. 철혈공과의 진실게임을 마치고 맞이하는 식사 자리. 이런 자리에서 정신을 놓은 걸 보면 피곤하기는 했나 보다.
‘힘들기는 했지.’
애써 어지러운 머리를 진정시키고 목소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마르게타의 넷째 언니가 보였다.
“주인공이 멍하니 있으면 곤란한데요.”
“아, 죄송합니다.”
와인병을 들고 있는 모습에 빠르게 잔을 내밀자 넷째 언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직접 와인을 따라줬다.
“뭐, 이해해요. 다들 그랬으니까.”
그러고는 잠깐 키득거린 넷째 언니… 아니 넷째 처형은 철혈공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허락하실 거면 살살하시지. 매번 이러시면 피곤하지 않으세요?”
넷째 처형의 구박에 철혈공은 코웃음을 치더니 짧게 답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정신이 나갔다고요?”
믿기지 않는다는 대답에 급히 입을 열었다. 가벼운 분위기의 구박이지만, 만약 철혈공이 서운해하기라도 하면 불똥이 나한테까지 튈 테니.
그리고 철혈공의 전적과 별개로 나는 정말 아무 짓도 당하지 않았다. 괜한 오해는 차단해야지.
“정말입니다. 각하와는 심도 깊은 대화만 나눈 것이지,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흐음, 제부가 그렇다면야.”
그 말에 순순히 물러나는 넷째 처형을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진심을 담은 구박이 아닌 장난이었다는 걸.
“아직도 신기하군. 아무 소란 없이 넘어간 건 처음인데.”
넷째 처형이 물러나자 이번에는 마르게타의 유일한 오빠, 내 입장에서는 형님 되는 사람이 참전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형님의 말에 무심코 철혈공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얼마나 전적이 화려했으면 자식들이 이러냐고.
처음 진실의 방을 나올 때부터 이랬다. 평범하게 걸어 나왔는데 놀란 눈으로 보더라. 혹시 네 발로 기어 나와야 했나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지금 반응을 보면 그걸로도 부족했을 것 같다.
‘조짐이 있기는 했는데.’
사실 몸 어딘가가 부러져서 나올 조짐이 있기는 했다.
“남편에게 중요한 건 아내를 향한 사랑과 가정을 지킬 수 있는 힘이다. 지금까지 후자는 내가 직접 시험했지만─”
진실의 방에 들어가자마자 철혈공이 진지하게 꺼낸 말.
“역천자를 죽인 녀석에게 그럴 필요는 없겠지.”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니 소름 돋는 말이었다.
만약 나한테 업적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스파링을 붙었을 거라는 말. 상상으로만 했던 사지 분쇄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졌을 거다. 대체 그 과정에서 바렌티의 사위들은 얼마나 피와 눈물을 쏟았을까.
“마르가 네 놈 때문에 얼마나 울었는지 아느냐?”
“면목 없습니다…”
“그래도 잘못은 아는구나.”
“예…”
“허면 알면서 왜 그랬느냐.”
“…….”
스파링을 넘어간 만큼 말로 신명나게 털리긴 했지만, 차라리 그게 낫다. 공작 겸 장인 어른과 드잡이질을 하는 것보다는 말로 맞는 게 선녀지.
“그래도 무릎까지 꿇은 걸 보면 진심이겠지. 제 자존심이 우선인 것들은 그조차도 하지 않으려 하니.”
“예, 물론입니다.”
“마르까지 같이 꿇은 건 예상 외지만… 그만큼 부부의 관계가 돈독한 거라고 생각해서 넘어가 주마.”
게다가 결국 부부라고 인정도 받았고. 어쨌든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 아니냐.
그렇게 홀로 정신 승리를 하는 나에게 형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막내 매부를 마음에 들어한 것 같다.”
“마르가 좋아하니 넘어간 거다.”
다시 코웃음을 치는 철혈공을 본 형님은 작게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라고는 안 하시지?”
그 말에 슬쩍 철혈공을 쳐다 봤다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리고 뭘 쳐다보냐는 눈빛에 조용히 시선을 내리 깔고 말았다.
비록 허락은 받았지만 저 눈빛은 아직 두렵다. 내 위치는 ‘딸을 울린 개새끼’에서 ‘막내를 훔친 약탈꾼’으로 변한 것뿐이니.
그래도 그런 나에게도 구원자가 있었다.
“여보, 너무 그러지 말아요. 그렇게 구박하면 마르가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크흠.”
잠잠하던 여인이 입을 열자 철혈공도 시선을 거두었다.
“사위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애지중지하던 막내가 출가한다고 하니 섭섭해서 이러는 거예요.”
“예, 당연히 이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