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37)
“장인에게 없는 도량이 사위한테는 있어서 다행이네요.”
살포시 미소를 짓는 빅-마르게타. 아니, 정확히는 마르게타가 저 분의 스몰 버전이겠지만.
어쨌든 침묵을 지키던 여인, 장모님의 지원으로 철혈공의 따가운 눈초리는 피할 수 있었다.
장모님은 내 편이라 다행이다…
코로 먹는 것 같은 식사 시간이 끝나자마자 후원으로 달려갔다. 마르게타가 그쪽으로 와달라고 신호를 보냈으니 바로 가야지.
“칼. 여기예요.”
그리고 후원에 진입하자 동상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마르게타가 보였다.
그 모습이 미행을 따돌리려는 연예인 같다면 기분 탓일까. 어차피 저래봤자 성의 사용인들이 공녀를 놓칠 리가 없는데.
물론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저런 모습도 은근히 귀여우니.
“후우, 밖에 있으니 편하네요. 안에서는 눈치가 보였거든요.”
“우연이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자 마르게타가 쪼르르 달려와 안겼다. 그 사이에 몸이 차가워진 것이 안타까웠지만, 마르게타 말대로 성 안에서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마르?”
품에 안긴 마르게타가 빠르게 내 몸을 더듬거렸다.
체온을 느끼기 위해 꼭 껴안는 것이 아닌, 무언가 찾기 위한 수색처럼.
“어디 다친 곳은 없죠?”
그렇게 한참이나 더듬거리던 마르게타가 걱정스레 물어봤다.
아니, 마르게타까지 이럴 정도라고?
“괜찮습니다. 아까 말한 것처럼 각하와는 대화만 나눴어요.”
사랑하는 막내딸에게도 사위 패는 장인으로 이미지가 박힌 철혈공. 조금은 안쓰러울 지경이다.
“그, 그치만… 큰 형부는 창문 밖으로 던져진 적도 있다고 했어요.”
“예?”
그게 뭐야. 사람을 창 밖으로 던졌다고?
물론 이 세계에는 창문 밖으로 던져져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사람이 많기는 한데. 그래도 예비 사위를 창문 밖으로 투척하는 건 좀.
“다른 형부들이 그 방에 들어갔을 때는…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마르게타가 하는 말을 하루 전에 들었다면, 그냥 마르게타의 언니들이 막내를 놀리기 위해 한 말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남편에게 중요한 건 아내를 향한 사랑과 가정을 지킬 수 있는 힘이다.”
그런데 나는 던져진 현장에서, 던져지기 직전까지 갔다. 힘을 증명하기 직전까지 갔다. 도저히 농담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이상하다. 아무런 하자가 없는 사위들도 철저히 검증했던 철혈공인데, 정작 딸을 한 번 차고 울리기까지 한 나는 그냥 넘어갔다고?
‘정말 나이를 먹었나.’
왕년에는 사위로 쥐불놀이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여력이 없는 건가. 그렇다면 조금 슬픈 일이다.
그래. 철혈공도 마종공에 비하면 젊은 건지, 다른 공작들에 비하면 고령이다. 아들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물려주고 유유자적하게 지내는 것만 봐도 알지 않나.
‘거의 여든이었지.’
순간 자괴감과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난 여든의 어르신에게 사지가 꺾이느니, 저먼 수플렉스를 당하느니 그런 생각을 한 거구나…
게다가 그 생각도 나 혼자만의 상상이지, 철혈공은 나에게 물리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냥 철혈공이니 육체의 대화를 하겠거니─ 지레 짐작했을 뿐.
“장인 어른께서도 세월이 흘렀으니 생각이 변하신 모양입니다. 저야 좋지만요.”
“…그렇죠. 좋은 일이죠.”
일단 걱정 가득한 마르게타를 달랬다.
다행히 철혈공을 장인 어른이라 부르며 친밀감을 과시하니 표정이 밝아지기는 했다.
“그러니 마르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르가 계속 걱정하면 장인 어른도 서운해하실 겁니다.”
“그, 그렇겠죠?”
그럴 거다. 심지어 내 옆에서 나란히 무릎을 꿇었으니 오죽 하겠나.
“그래도 장인 어른께 감사하다거나, 사랑한다고 말하면 좋아하시지 않을런지.”
그 말에 마르게타가 조금 난색을 보였지만 강하게 설득했다. 그게 내 첫 번째 장인 어른을 위한 소소한 보답이니까.
‘첫 번째 장인 어른…’
내가 생각해도 좀 미친 단어기는 한데 어쩌겠나. 부인이 여럿이니 처가도 순서를 정해야지…
그래도 장인 어른도 다섯이지는 않겠네. 마종공은─
‘미친.’
황급히 의식의 흐름을 차단했다. 순식간에 불꽃 패드립퍼가 될 뻔했다.
이딴 생각이나 해서 미안합니다, 마종공.
***
창문을 통해 후원을 내려다 봤다. 마르는 어릴 때부터 후원을 좋아했으니 혹시나 했는데, 이번에도 후원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마르와 딱 달라붙어 있는 빌어먹을 녀석.
‘아니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이제는 빌어먹을 녀석이 아니라 빌어먹을 막내 사위다.
인정하기 싫지만, 순순히 넘어가기 싫었지만 내 입으로 사위라 인정했다. 스스로 한 말을 번복할 수는 없는 노릇.
“얼굴 좀 피세요. 마르하고 평생 살 것도 아니면서.”
옆에서 부인의 말이 들렸지만 도저히 얼굴이 펴지지 않았다. 내 다짐과 별개로 너무 순순히 넘어갔으니까.
마르가 태어난 순간부터 다짐했다.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르를 데려가는 도적놈은 누구보다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하지만 막내 사위 녀석은 이미 검증이 끝났다. 결혼하기 전부터 부인을 울리는 못 미더운 사위지만 그 힘은 진짜다. 그런 상대를 시험하는 것도 의미 없는 짓.
“아버님…”
게다가 마르가 사위 옆에서 무릎을 꿇은 걸 생각하면 차마 강하게 나갈 수 없었다.
처음에야 눈이 뒤집혔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공녀인 마르가 그런 수모도 감수할 정도로 사위를 좋아한다는 것 아닌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그래서 이를 갈던 시간을 생각하면 허무할 정도로 쉽게 인정하고 말았다. 괜히 시간만 끌면 마르가 슬퍼할 테니.
“…아장아장 걷던 게 엊그제 같은데.”
“과장도 참. 마르가 들으면 화낼 거예요.”
부인의 구박에 더욱 기운이 빠졌다.
과장이라니.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날이 보일 정도다.
“혼수나 제대로 준비해요. 괜히 이상한 걸로 주면 마르만 곤란해지는 거 알죠?”
“걱정마시오. 내가 그런 치졸한 짓을 할까.”
혼수는 딸을 위한 아비의 마지막 선물이다. 그러니 사위가 좋든 싫든 화려하게 해야 한다.
일단 제도 근처에 남작령 규모의 땅이 있었지. 제도 거리에도 건물 몇 개가 있었고… 그 녀석은 감찰부장이니 수도권 중심으로 주면…
…
“…몸을 뒤집은 게 엊그제 같은데.”
옆에서 부인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진실의 방 사건 이후로 철혈공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못했다. 철혈공이 나를 외면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마르게타를 가이드 삼은 울켄 투어 때문에 성에 머무를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신나는 공작령 관광으로 사흘 정도 시간을 보내니 철혈공의 호출이 날아왔다. 이제 성에서 방출할 때가 됐다 이거지.
그래도 이번 호출은 딱히 두렵지 않았다.
“왔느냐.”
“예, 각하.”
“업무 중일 때는 상관없다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장인이라 불러라.”
“알겠습니다, 장인 어른.”
막내딸을 약탈 당해 생긴 울분은 막내딸의 애교로 풀었으니까.
“그래도 장인 어른께 감사하다거나, 사랑한다고 말하면 좋아하시지 않을런지.”
조금이라도 철혈공의 분노를 낮추기 위한 제안. 다행히 마르게타는 그 제안을 들어줬다. 철혈공에게 달려가 사랑한다고 말하더라.
덕분에 나를 보는 철혈공의 눈빛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살갑거나 따뜻한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부정적 감정은 없지 않나. 그걸로도 만족한다.
“약혼식은 생략한다. 마르가 졸업하면 바로 결혼할 텐데, 괜히 약혼식으로 하객들을 귀찮게 할 필요는 없겠지.”
서류 몇 장을 뒤적이던 철혈공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약혼식 스킵. 딸바보인 철혈공 입에서 나오기에는 신기한 말이지만, 사실 이게 정상이다.
원래 약혼식은 본게임인 결혼식에 비하면 소소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다. 약혼식은 어디까지나 약속이니까. 심지어 약혼 당사자들도 성인은커녕 10대 초, 심하면 꼬꼬마일 때 이루어지는 게 대부분이니.
나처럼 나이 스물 넘게 먹고 약혼하는 경우는 드물지. 게다가 철혈공 말처럼 1년 후에 결혼식인데 약혼식에 힘을 쏟을 필요는 없다.
“받아라.”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철혈공은 아까 만지작거리던 서류를 건넸다.
“마르 몫으로 준비한 혼수다.”
“…예?”
그 말에 절로 반문이 나왔다. 아니, 혼수를 왜 지금 줘. 원래 혼수가 결혼 전에 오고 가는 거였나?
그런 내 시선에도 불구하고 철혈공은 까딱 턱짓을 했다. 빨리 내용이나 확인하라는 것처럼.
‘와.’
그리고 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