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38)
‘이게, 혼수?’
순간 눈을 의심했다. 내가 아는 혼수는 보통 가구, 진짜 크면 집 정도다. 일단 빙의 전에 구축한 내 상식은 그랬다.
하지만 철혈공이 준비한 건 그 상식을 벗어났다. 제도의 주요 거리에 위치한 건물 몇 채, 제도 근처에 위치한 남작령 규모의 영토.
게다가 이 땅, 내 기억이 맞다면 철광산도 있는 걸로 아는데. 군수업 육성 트리를 타는 철혈공이 철광산을 넘긴다고?
‘이게 귀족의 삶인가.’
두렵다. 그 뒤에 마차니, 선박이니, 보석이니, 금화니 하는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공작이 딸에 미치면 이런 괴물 같은 혼수가 튀어나오는 구나.
“이미 넷이나 시집을 보내서 마르에게 남은 건 적은 편이다.”
‘적은 편…’
무심코 서류를 다시 훑어봤다. 이게 적은 거면 장녀한테는 얼마나 쥐어 보낸 거야. 백작령이라도 서너 개 준 건가.
“더 필요한가?”
“아닙니다, 장인 어른. 저에게는 과분할 정도입니다.”
“그럼 받아라.”
심드렁하게 말하는 철혈공의 모습에 조용히 서류를 챙겼다.
사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혼수를 받는 건 이르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철혈공의 눈빛을 보자 그 말은 도로 들어갔다. 귀찮게 굴지 말고 순순히 받으라는 눈빛이었으니까.
“어차피 결혼할 건데 뭐가 문제지? 설마 약혼만 하고 결혼은 거부할 생각이었나?”
그리고 거절했다가 무슨 말이 돌아올지도 뻔하고. 기껏 중립으로 돌린 철혈공이 다시 적대 상태로 돌변할 수도 있다.
“관리인은 그럭저럭 쓸만한 녀석들이다. 그대로 유임해도 되고, 네가 원하는 사람으로 바꿔도 된다.”
“그대로 두겠습니다.”
물질이 아니라 사람도 주겠다는 관대한 제안.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받아먹었다.
공작이 쓸만하다고 맡길 정도면 어디 가서 구하지 못할 인재다. 준다고 하면 그냥 받아야지. 애초에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해도 아는 사람도 없고.
“이제 나가봐라. 제도로 돌아갈 거면 돌아가고.”
“예. 신년하례식 때 인사드리겠습니다.”
더 할 말은 없는지 축객령을 내리는 철혈공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처음 울켄에 올 때는 사지 분쇄를 각오했지만, 정작 나갈 때가 되니 양손 가득히 선물만 받았다.
‘감사합니다…’
철혈공에게 닿지 않겠지만 마음 속 깊이 감사를 표했다. 솔직히 살려준 걸로도 감지덕지인데, 이렇게 넉넉하게 챙겨주시고.
일단 이건 마르게타 몫의 혼수니 마르게타에게 맡기자. 어차피 내가 백작이 되면 부인으로서 영지 관리도 할 텐데, 미리 연습도 해야지.
예비 처가 식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제도로 향했다. 당연히 텔레포트 마법사에 힘을 빌려서.
덕분에 본래 예정보다 빠르게 제도에 도착했다. 울켄에 방문하지 않았다면 아카데미에서 제도까지 마차로 이동했을 텐데, 그러면 아직도 마차 안이었겠지. 역시 텔레포트가 최고다.
“자, 이제 숨 쉬자.”
그리고 제도에 도착하자마자 루이제와 이리나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솔직히 이번 울켄 여행 최대 피해자는 내가 아니다. 바로 이 둘이다.
나도 마음이 편치 못했는데 순수한 학생인 이 아이들은 오죽했겠나. 예정에도 없던 공작 접견, 심지어 그 공작이 첫 부인의 부친. 첩실은 꺼지라는 호통을 듣지 않을까 쫄았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내가 울켄으로 끌려간 이유는 마르게타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다른 예비 부인들이 존재감을 뽐내면 마르게타에게 실례. 그렇기에 이 둘은 울켄에 있는 동안 쥐 죽은 듯이 지냈다.
그나마 공작령 관광을 하며 숨을 고르기도 했지만, 저녁이 되면 숙박을 위해 공작성으로 복귀해야 했다. 잠자리가 불편하면 숨을 고른 것도 의미가 없지…
“울켄에서 지내는 것도 지루했죠? 미안해요, 정말 고생 많았어요.”
마르게타도 그걸 알기에 루이제와 이리나를 상냥하게 안아줬다. 자기 때문에 후배들이 골골거렸으니 마르게타라고 마음이 편하겠나.
“헤헤, 괜찮아요.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울켄 구경을 하겠어요.”
“저도 그래요.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다행히 두 천사는 밝게 웃으며 마르게타를 달래줬다.
“다음에는 공녀님이 저희 영지에 오시면 되죠. 플란벨의 튤립 동산은 아름답거든요.”
그럼에도 마르게타의 표정에 미안함이 가시지 않자, 이리나가 슬쩍 덧붙였다.
“그럴게요. 당연히 가야죠.”
그 말에 마르게타도 다소 마음이 편해졌는지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큰손일 수밖에 없는 공녀를 자연스레 초대하다니, 이리나도 상업에 재능이 있구나. 역시 요룬이다.
“아, 저희 영지도요! 아티니도 여행하기 좋아요!”
“후후, 그런가요? 아티니는 뭐가 유명하나요?”
작게 웃음을 흘리는 마르게타를 향해 루이제가 당당히 말했다.
“장어가 많이 잡혀요!”
그 당당한 외침에 슬쩍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여행하기 좋다면서 특산품을 말하면 어떡해.
“…장어요?”
하지만 마르게타의 의미심장한 목소리에 주변을 둘러보고 말았다.
그러자 엄격하고 진지한 눈빛이 나를 반겼다. 마르게타는 물론, 이리나의 시선까지 나에게 꽂혔다.
아니, 이 타이밍에 왜 나를 봐. 우리 지금 화목하게 여행지 얘기하던 거 아니었어? 분명 5초 전까지는 그랬는데.
“여행 얘기는 다음에 마저 하고, 지금은 쉬자. 다들 피곤하지?”
일단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지금 대화를 끊지 않으면 영 미묘한 방향으로 대화가 진행될 것 같았다. 본능이 그렇게 말했다.
“그래요. 둘 다 편히 쉬지도 못했으니 어서 들어가죠.”
가장 위험한 조짐이 느껴졌던 마르게타였지만, 다행히 화제 전환에 합류해줬다.
그래, 지금 중요한 건 정신적으로 피곤할 애들을 쉬게 해주는 거니까. 마르게타가 우선 순위도 헷갈릴 사람이 아니다.
“여행 얘기는 느긋하게 하면 되니까요.”
“하하, 그렇게 합시다.”
마르게타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빠른 시일 내에 영지 순회를 돌 것 같아서.
‘…영지 순회?’
그런데 영지 얘기를 하니 갑자기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놓친 것 같은데, 정작 그 놓친 게 뭔지 모르겠네.
뭐, 때가 되면 기억나겠지.
***
연말은 의회의 1년 활동을 정리하고 내년 활동을 기획하는 시기다. 물론 백작령의 활동도 정리해야 한다.
그렇기에 연말에는 다소 바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무언가 직접적으로 행하기보다는 서류를 정리하는 작업이라 양호한 편이지만─
“철혈공 각하?”
– 오랜만이오, 타일글레헨 백작.
그 양호한 연말은 철혈공의 연락으로 인해 파문이 일었다.
이상한 일이다. 본래 철혈공과는 접점이 적었고, 철혈공이 소가주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일임한 후로는 더욱 접촉할 일이 없어졌다. 기껏해야 신년하례식 때 보는 정도.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 마음 편히 쉬는 노인이 불편할 게 있겠나. 잘 지내고 있지.
그래도 일단 예의상 안부 인사를 건넸고, 철혈공도 의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연락을 한 것은 철혈공이니 용건도 먼저 꺼낼 터.
– 게다가 큰 고민을 덜기도 했고.
아니나 다를까, 바로 이어지는 말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무래도 이게 용건인 것 같으니.
무심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접점이 없던 철혈공이 난데없이, 심지어 가신을 시킨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연락을 건 이유.
절대 평범한 일은 아닐 거다. 신년하례식을 앞두고 골치 아픈 일이─
– 사실 예비 사돈이 된 만큼 인사라도 하고자 연락했소. 바쁜데 방해한 건 아닌가 모르겠군.
?
‘사돈?’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돈? 내가 철혈공과?
– 백작?
하지만 계속 입을 다물 수는 없었다. 아직 눈 앞에는 철혈공이 있었으니.
일단 농담은 아닐 거다. 공작이나 되는 자가, 심지어 가족을 중시하는 철혈공이 이런 장난을 칠 리는 없다.
마침 짚이는 것도 있다. 마르게타 공녀와 칼의 관계는 제법 끈끈하지 않았나. 게다가 부인도 공녀를 마음에 들어했고, 사교계에 떠도는 소식마저 둘의 결합을 기정사실화 하는 상황이었다.
그저 그것이 언제일지, 과연 마종공을 젖히고 첫 부인이 될지가 관심사였을 뿐.
“예, 사돈이군요. 조금 낯선 단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 이해하오. 나도 아들 녀석을 장가 보낼 때 그런 기분이었지. 이번에는 약혼이라 결혼과는 다르지만, 어차피 시간 문제 아니오.
아무튼 급하게 입을 열었고, 다행히 정답이었다. 하마터면 자식의 약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가주가 될 뻔했다.
‘모르기는 했지.’
유감스럽게도 정말 몰랐지만.
하지만 어쩌겠나. 결혼은 칼의 의지에 맡기고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칼이 말하지 않는 이상, 내 정보 수준은 사교계에 떠도는 소문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그걸로도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쌓은 인맥은 어지간한 소문도 금방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자부했으니.
설마 아무런 조짐도 없이 약혼이 이루어질 줄은 몰랐지만. 이런 우발적인 약혼은 처음이다.
철혈공과의 연락을 끝내고 급히 부인에게 연락을 걸었다.
혹시 부인은 칼에게 들은 것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니라면 부인이 다른 사람에게 약혼 질문을 받기 전에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 칼이 약혼했다고요?
당연히 부인도 아는 게 없었다. 애초에 부인이 알았다면 나한테 말해줬겠지.
– 저, 저는, 저는 아무것도…
“철혈공 각하께서 급히 결정하셨다고 하오. 1시간 정도 전에 약혼을 마치고 제도에 복귀했다고 하니, 말할 정신도 없었나 보지.”
혼란에 빠진 것 같은 부인을 애써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