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39)
이번 약혼은 우발적이고 갑작스러웠다. 철혈공도 방금 전에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러니 칼도 미처 말하지 못한 거다. 말할 시간이 없어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 그럴, 까요?
“애초에 숨길 일도 아니지 않소. 숨겨도 금방 퍼질 일이지.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그래, 숨길 일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자기가 근신을 당하든 구금을 당하든 묵묵부답이던 아이 아닌가. 그저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
…그래도 이런 경사 정도는 말해줬으면 싶다.
멍하니 침대에 앉아 있기만 했다. 빌리의 말을 들은 이후로는 움직일 힘조차 나지 않았다.
칼이 약혼을 했다고 한다. 그것도 마르게타 공녀와, 이제는 명실상부한 예비 며느리가 된 그 아이와 드디어 약혼을 맺었다고 한다.
마종공이라는 변수가 나타났음에도 기어코 첫 부인의 길을 걷는 아이. 스물이 넘는 세월 동안 홀로 지내왔지만 드디어 짝을 만든 아이. 그 누구보다 축하 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다. 모두의 축하를 받기에 충분한 아이들이다.
‘나는 아니구나.’
하지만 축하하는 사람 중에 내가 있을 자리는 없다. 만인의 축하를 받더라도 나는 자격이 없다.
당연하겠지. 내가 무슨 자격으로 그 사이에─
‘아니야.’
끝없이 몰려오는 음울한 생각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칼도 사정이 있어서 연락을 못한 걸 거다. 빌리도 그러지 않았나. 너무 갑작스러운 약혼이고, 이제 막 끝난 약혼이라고. 도저히 연락을 할 시간도 없었을 거라고.
그래, 칼은 바쁜 아이다. 아직, 아직 말할 시간이 나지 않아서 그런 거야.
– 갑자기 죄송하지만, 레이디에게 줄 선물은 뭐가 좋겠습니까?
얼마 전, 칼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난 믿는다. 내가 그 아이에게 못할 짓을 했지만, 그 아이가 나를 미워해도 할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이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나보다 어른스러운 그 아이는 나 같은 어미에게도 손을 내밀어 주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자.’
애초에 빌리의 말처럼 숨기더라도 퍼질 소문이다. 숨기려고 했다면 다른 방법으로 약혼을 진행했겠지.
그러니 신경 쓰지 말자. 그 아이를 믿자. 만일 그 아이를 믿지조차 않으면 나는 무슨 자격으로 어미라고 하겠나.
– 어머니.
그리고 그 믿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행복으로 다가왔다.
‘정말 바빠서 그런 거였구나.’
당혹감이 가득한 칼의 얼굴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러면 안되지만, 당황한 저 표정이 너무나 신기하고 반가웠기에.
어릴 때부터 감정 표현이 드물었던 아이가 내 앞에서 감정을 보인다. 나에게 본인의 약혼을 다급히 알리려고 한다.
어찌 생각하면 평범한 가정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감정을 보이고, 약혼 소식을 알리는 건 당연하지 않나.
‘우리는 아니었지.’
그 당연을 모르고 살아온 20여 년.
하지만 당연은 기적이라는 바람을 타고 내 곁에 다가왔다.
“그래, 칼. 무슨 일이니?”
그러니 웃을 수 있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아무튼 우리는 걸어가고 있으니까.
***
무언가 놓친 것 같은 찝찝함.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무언가를 알 수 있었다.
“신년하례식이 끝나면 타일글레헨에도 가요. 시부모님께 다시 인사 드리고 싶어요.”
살짝 얼굴을 붉힌 채 말하는 마르게타. 그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장남이 드디어 약혼을 했으니 그 분들도 아셔… 야…”
말하면서 위화감을 눈치챘다.
장남, 가문을 이을 후계자. 그런 후계자의 약혼. 정치의 연장인 귀족의 혼인. 사실 귀족을 떠나서 사람이라면 가족에게 혼인 소식을 알리는 법이다. 약혼도 ‘결혼’ 약속이니 그 범위 안에 들고.
그런데 나, 가문에 약혼 얘기를 했었나?
‘이 시발.’
안 했다. 가주, 어머니, 하다못해 에리히에게도 한 적이 없다.
솔직히 내가 마르게타와 결혼한다는 건 기정사실이기는 한데, 그래도 약혼까지 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건 별개의 문제 아닌가.
“칼?”
그리고 내가 머리를 쓰다듬던 상태 그대로 굳어버리자 마르게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이 걷던 루이제와 이리나도 마찬가지.
“마르.”
“네, 말하세요.”
“자식이 약혼 얘기를 하지 않으면, 부모로서 어떤 기분일 것 같습니까?”
그 말에 마르게타도 굳고 말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빛과 함께.
“…아직 얘기 안 했어요?”
“예…”
“울켄에 머무르는 며칠 동안 한 번도?”
“예에…”
시선이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약혼이 공식적으로 마무리 된 건 오늘이지만, 울켄으로 간 이유가 약혼을 위한 거 아니었나. 말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이유는 별거 없다. 그냥 까먹은 거지.
“저도 울켄에 있는 동안 정신이 없어서…”
“핑계인 건 알죠?”
단호한 마르게타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비겁한 변명이었으니.
자괴감 때문에 시선은 여전히 바닥에 박혔다. 언제나 따뜻하고 온화하던 마르게타의 눈빛이 지금만큼은 따가웠다.
가족을 중시하는 바렌티. 그런 바렌티의 일원인 마르게타 입장에서 약혼 소식도 함구하는 아들은 문화충격 수준의 존재겠지.
“지금이라도 해요. 이런 건 미루면 안돼요.”
당연한 얘기기에 빠르게 통신구를 꺼냈다. 이거 미뤘다가 또 까먹으면 제국 역사에 길이 남을 불효자로 남지 않을까.
아니, 이건 불 수준을 넘어서 쁄이다. 쁄효자 칼 크라시우스. 가슴이 옹졸해진다.
세 여인의 오묘한 시선을 받으며 어머니께 연락을 걸었다. 이런 건 가주에게 말하는 게 맞지만, 같은 공무원으로서 연말 작업의 귀찮음은 잘 알고 있다. 연말에는 건드는 거 아니야.
그렇기에 자동적으로 어머니만 남았다.
– 그래, 칼. 무슨 일이니?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짓는 어머니를 보자 마음 속 삼각형이 맹렬하게 움직였다.
웁니다… 쁄효자는 웁니다…
“그게, 어머니, 그것이─”
하지만 삼각형과 별개로 입은 도저히 움직이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제가 오늘 약혼을 끝냈는데, 말하는 걸 깜빡했어요. 지금이라도 알아두세요.’ 라는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 새끼가 얼마나 있겠나.
– 들었단다. 마르게타 공녀와 약혼을 했다고?
“…예.”
심지어 아들이 말하기도 전에 타인을 통해 약혼 소식을 들었다면 더더욱 고개를 들 수가 없다.
– 잘된 일이구나. 드디어 크라시우스의 미래도 밝아졌어.
그럼에도 어머니는 아무런 질책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가문이 우습냐고 질책을 듣는 것까지 각오했는데, 그저 미소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히려 그 모습에 더욱 마음 아팠다. 차라리 화라도 내면 달게 받을 텐데.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어머니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거라. 네 입장에서도 갑작스러운 약혼이라 말할 정신이 없었겠지. 에리히도 네가 제도로 가는 걸로 알고 있었을 정도니.
따뜻한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마르게타의 시선이 느껴져서 참았다.
여기서 물 흐르듯 넘어가면 마르게타가 어머니 대신 구박할 것 같았다.
“아닙니다. 적어도 약혼이 끝나자마자 말씀드려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 그래. 결혼식 때는 먼저 말해주렴.
“…예.”
대답에 잠시 딜레이가 있었다. 방금은 결혼식이 아니라 네 번 정도 더 할 것 같은 약혼식을 말한 건데.
물론 이 타이밍에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나도 눈치가 있지.
– 시간이 되면 영지로 올 수 있겠니?
“물론입니다. 마침 마르와 그 얘기 중이었습니다.”
– 며느리가 벌써 시어머니 생각을 해주는구나.
묘하게 뼈가 담긴 것 같은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조용히 통신구를 품 속에 넣고 마르게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마르게타.
“잘했어요.”
마치 무죄 판결을 내리는 법관의 모습 같아서 작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칼이 말한 것처럼 앞으로는 이런 일 없게 해야 돼요. 알겠죠?”
“물론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일부러 과장되게 호언장담을 했지만, 그럼에도 마르게타의 시선은 여전히 복잡미묘했다.
이미 한 번 실수를 저지른 놈이니 두 번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틀린 판단은 아니라 가슴이 조금 아팠다.
“오라버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