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4)
제 24화
빙의자(원작 모름)의 생존법 – 1
이 멋지고도 아름다운 세계에 막 빙의했을 무렵, 내가 온몸을 비틀어가며 후회한 것이 딱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이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이 세계의 원작을 접했던 것이다. 날 여기에 처박은 존재가 얼마나 미쳤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원작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갑자기 처박을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겠지.
다른 하나는 어차피 보게 된 원작을 무료분만 찍먹하고 뱉었던 것. 난데없이 빙의라는 참사를 겪을 줄 알았다면 당연히 완결까지 달렸을 거다. 하지만 난 애매하게 웹툰 무료분만 보고 말았다.
심지어 무료분은 어린 시절 이야기라 딱히 유용한 정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아카데미에서 루이제를 처음 봤을 때도 이름을 듣고 나서야 정체를 알았으니, 나에게 원작이란 샥스핀 0.0003% 첨가된 샥스핀 컵라면 같은 수준이었다. 한없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남들은 원작 파괴니 뭐니 헤집고 다니던데.’
난 내가 구르면서도 이게 원작인지, 글러먹은 내 팔자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원작을 모르는 빙의자는 너무나도 무력한 존재다.
하지만 긴 인고의 시간 끝에 마침내 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비록 원작 내용은 모르더라도 이 세상에 원작이 존재한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 추리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주연들이 아카데미에 모이면 당연히 아카데미에서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작품에서는 필연적으로 주연들을 중심으로 한 사건사고가 터지기 마련이니까. 즉, 주연들에게 달라붙을 것 같은 인물이나 단체만 차단하면 나도 모르는 원작 내 위기를 스킵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아카데미 파견이 확정되자마자 바로 정보부장에게 달려가 정보 공유를 부탁했다. 다행히 내 진심어린 부탁에 정보부장도 감동하여 순순히 받아줬고.
“저번 일은 제가 적당히 묻을 테니, 이거만 어떻게 좀 해주십쇼.”
“흐으음…”
물론 진심에는 작은 성의도 끼어 있었다. 맨입으로 부탁하는 건 정이 없지.
그렇게 해서 내 손에 들어온 것이 이 ‘아카데미 부수기 예정자’ 명단. 생각보다 많아서 불쾌하다. 이것들과 아카데미에서 디펜스게임을 찍었을 거라 생각하니 절로 아찔해지네. 그나마 명단이라도 미리 확보해서 다행이지.
일단 6인방 사이에서 사고가 터지기 전에 동아리실로 돌아가야 하니, 빠르게 주연 여섯과 조금이나마 엮인 반사회적 집단을 확인했다.
‘루이제와 에리히 관련은 없고.’
루이제는 인축무해한 아이니 원한을 사서 공격 당할 여지가 없다. 이제 막 아카데미에 입학한 에리히도 누군가에게 공격 당할 원한이 있다면, 그건 에리히 개인이 아닌 크라시우스 가문에 대한 원한일 것이다. 그런 집단은 나나 가주가 진즉에 담갔으니 문제 없다.
‘아인테르도 신경 쓸 건 없고.’
현재 아인테르에게 있어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오히려 나겠지. 하지만 내가 나서서 아인테르를 처리할 생각은 없고, 황태자가 현장에 있는 나를 무시하고 다른 킬러를 보낼 일도 없다. 아인테르도 안전.
‘문제는 나머지 셋인데.’
하필 신분도 휘황찬란한 왕족, 성자 후보다 보니 이것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본인들 국가에서 테러 당하면 상관 없는데, 아카데미 학생이라 테러가 발생하면 아카데미와 제국도 개판이 난다.
우선 류티스 스토리와 연관되었을 집단은’제5제국’
아르메인 왕국이 크펠로펜 제국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제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성 매파 집단이다. 제5제국이라는 이름도 대륙 역사상 4번째 제국인 크펠로펜의 뒤를 이어 새로운 제국이 되기를 원해서 지었다나.
물론 현실성 없는 주장을 지껄이는 놈들이기에 아르메인 정계에서도 외면 받지만, 원래 외면 받는 미친 것들이 상상도 못한 미친 짓을 저지르는 법.
류티스가 머무르는 아카데미에 테러를 일으켜서 제국에 혼란을 유도하고, 자국 왕자의 죽음을 명분으로 제국과의 전쟁을 부르짖을 가능성이 있다. 어차피 왕위를 계승할 왕자는 류티스가 아니니까.
아무리 그래도 자국 왕자를 희생시키고, 들키면 오히려 자국이 위기에 몰릴 무모한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 적어도 아르메인 왕자가 아득바득 우기며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할 가능성보다 낮지는 않겠지. 시발.
다음으로 라테르 스토리와 연관되었을 집단은’다섯 기둥’
유벤 연합왕국이 단순한 다섯 왕국의 연합에서 벗어나, 라테르의 조국을 중심으로 단일화되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집단이다. 나름 전통을 지키자는 입장이라 제5제국에 비하면 덩치가 큰 편. 내 기억으로는 제국에서도 은밀히 지원하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익명으로.
이것들은 제국과 싸워보기 위해 라테르를 처리하기 보다는, 라테르의 조국에게 충격을 주기 위하여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 왕실 기사단과 근위병에 둘러싸인 다른 왕실 인사보다는 라테르가 타깃으로 노리기 더 쉬울 테니.
제국 아카데미를 습격하면 제국과의 불화가 필연적인데, 그럼에도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 다시 말하지만 아득바득 우기며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할 가능성보다 낮지는 않다. 빌어먹을.
마지막으로 타니안 스토리와 연관되었을 집단은’황혼 교단’
신성교국을 비롯한 대륙 전체에서 유일신으로 섬기는 에넨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이교 집단이다. 에넨을 섬기는 여명 교단에 대항하여 자신들이 새로운 주류 종교가 되기를 원하는 광신도 집단.
이미 제국에서도 거하게 한탕했던 광신도의 표본이자 미친 새끼들이다. 3년 전, 제국이 북방에 시선이 쏠렸을 때 제국을 담당하는 추기경을 살해했고, 덕분에 제국은 치를 떨며 제국에 잠입한 황혼 교단을 박살내려 했다. 그리고 황혼 교단은 성공적으로 탈출해서 지금까지 살아있다.
이것들은 여명 교단의 차기 성자인 타니안을 노릴 거다. 신의 아들이라는 의미에서 에네스라는 성을 받은 타니안을 죽일 수 있다면, 여명 교단과 신성교국의 위상이 땅에 처박히니까.
그 과정에서 같이 위신이 땅에 처박힐 제국의 분노? 그런 걸 고려하면 광신도가 아니다. 애초에 이미 제국 영토에서 추기경도 보내버린 놈들이니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 외에도 주연 하나하나와 엮인 것이 아닌 아카데미 자체를 노릴 것 같은 집단도 존재했다. 공화주의 테러집단인’붉은 파도’와 다시 부활한 아펠스 부흥군인’세번째 영광’이다.
‘이 새끼들 다시 부활했다고?’
아펠스 부흥군이 다시 생긴 것은 나도 지금 알았다. 제국이 그렇게 집요하게 추적하며 씨를 말려버린 것이 아펠스 부흥세력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부활? 이건 너무 노골적으로 원작의 위기를 위해 만들어진 집단 아니냐.
정보부장도 이 예토전생에 어이가 없었는지, 세번째 영광을 다룬 문단 맨 아래에 감정이 듬뿍 실린 평가를 내렸다. 다 썩은 시체가 다시 세상을 배회하기 시작했다고. 적절한 평가다.
아무튼 원작에서 위기를 조성할 것 같은 단체들은 이렇게 다섯이다. 이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종합하여 나에게 보내준 정보부장의 능력에 다시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이 다섯을 막아야 하는 내 팔자에도 감탄이 나온다.
…
‘시발.’
난이도 조졌네. 이거 난이도 조절 누가 했냐? 적당한 난이도여야 깨는 보람이라도 있지, 이건 너무 개판이잖아.
절로 치가 떨렸다. 악역 집단이 두세 개여도 골치 아픈데, 아카데미에 우르르 몰려올 것 같은 것들이 벌써 다섯 개다. 원작 작가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카데미 부수기에 진심이라는 건 알 것 같다. 대학 시절에 교수님한테 씨뿌리기를 많이 당했나…?
통신구를 조용히 품 속에 집어넣고 등을 벽에 기댔다. 최소 5 웨이브의 디펜스라니, 이런 건 현장에서 뛰어다닐 때도 경험한 적이 드물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정말 원하지 않은 서프라이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가 아카데미에 머무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니까. 물론 상부에서도 이 정도로 아카데미를 노리는 것들이 많을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사실 나도 빙의자라서 추리한 거지, 상식적으로 누가 저 다섯 단체들이 한가롭게 아카데미 부수기나 할 거라고 생각하겠냐고. 어디 음지에 암약해서 체제 전복을 노릴 거라 생각하지.
‘진작 은퇴했으면 이런 꼴은 피했을텐데.’
은퇴하지 못한 나의 업이 깊고도 깊었다.
처량하게 한숨만 내쉬어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이렇게 자리를 비운 사이, 동아리실에서 사고가 났을 확률만 증가하고 있다.
‘제대로 해야지.’
만약 조금이라도 삐끗하여 주요 인사가 다치거나 죽게 되면, 그 일을 명목으로 제국과 내가 무슨 꼴을 당할지 장담할 수 없다. 일단 멀리 갈 것 없이 내 커리어는 개같이 꼬이겠지. 난 원활한 은퇴를 원하는 거지 불명예스러운 몰락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내 목표는 간단하다. 아카데미에 머무는 동안, 아카데미를 위협하는 대내외적 요소를 사전에 감지하고 차단한다. 그럼으로써 원작 인사들의 안전한 졸업까지 버틴다.
겸사겸사 루이제의 짝도 그 사이에 정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만약 졸업까지 루이제의 짝이 정해지지 않으면, 사랑에 눈이 먼 미친 것들이 졸업 이후에도 국경을 넘을지 모른다. 아카데미가 1부라면 졸업 이후의 2부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 꼴은 절대 못 보지.
…생각해보면 정식으로 나이어드 남작가에 혼인을 요청하는 것이 제일 편한 방법 아닐까? 나이어드 남작가가 제국 백작가인 크라시우스의 혼인 요청을 거부하기는 힘들겠고, 에리히도 사랑을 이뤄서 좋고. 가주도 가문을 이을 손자만 생기면 누구랑 결혼해도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닌데.
순간 스쳐 지나간 유혹을 고개를 저으며 털어냈다. 아무리 그래도 강압적인 수단은 좋지 않지. 심지어 루이제의 의향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방법이니까.
머리가 복잡해서 그런지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이거 루이제한테 미안할 정도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동서남북에서 하나씩 몰려와도 대기하는 하나가 생겨버리는 어마어마한 물량의 악역들… 물론 도원결의를 한 것처럼 한날 한시에 몰려오지는 않습니다.
원작에서는 (짝)사랑과 우정과 열정과 단결의 힘으로 사악한 악당들을 물리치는 주연들! 여기서는 어떻게 될 지 의문이군요… 칼은 열심히 잘할 거야…
여담으로 오늘까지는 오전에 올렸습니다만, 아마 내일부터는 오후에 올라올 확률이 높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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