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41)
아니, 굳이 환불 얘기를 덧붙인 걸 보니 아직 정신이 나간 것 같지만. 연인에게 주기 위한 선물인데 환불 얘기를 덧붙이다니. 깨질 거라는 저주 아니냐고.
물론 그걸 트집 잡지는 않았다. 주인장의 상식으로는 반지 일괄 구매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 이해한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으니까.’
세상에 나 같은 놈도 없을 거다.
판매자와 구매자, 둘 다 미묘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던 거래.
그래도 자괴감을 이기고 휘황찬란한 반지(x4)를 구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마르게타 때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커플링으로.
덤으로 케이스를 서로 다른 색의 리본으로 장식하며 구분도 확실히 했다. 만약 루이제에게 주려고 했던 반지를 마종공에게 주면 나이에 맞지 않는 디자인을 주는 꼴 아닌가.
‘헷갈릴 일은 없겠네.’
우연인지 운명인지, 마침 반지를 줄 네 명도 제각기 다른 색을 지니고 있었다.
하양, 분홍, 노랑, 빨강. 마지막만 머리가 아닌 눈 색깔이지만 아무렴 어때. 중복이 없으면 그만이지.
‘일단 하양부터.’
그리고 네 케이스 중 하얀 리본으로 장식된 케이스를 다른 주머니에 넣었다.
원래는 반지만 사고 바로 복귀하려고 했지만, 막상 반지가 손에 들어오니 생각이 바뀌었다. 상대에게 줄 선물이 있는데 뜸을 들이는 건 못할 짓이다.
“신년하례식이 있으니, 그날을 기다려야겠구나.”
게다가 예전에 마종공이 했던 말이 떠오르니 더욱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번에 마종공을 용서하기는 했지만, 정작 정식으로 고백에 답변을 주지는 않았다. 아마 마종공의 심적 마지노선은 신년하례식이겠지. 내가 답변을 주는 건 신년하례식 기간으로 생각할 거다.
물론 그럴 생각은 없다. 상대의 예상을 깨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으니까.
‘찔러야 주도권을 가진다.’
현명공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비록 공성추로 명치를 찍었다는 평을 받았지만, 효과가 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공작에게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던 내가 주도권을 잡으려면 그만한 충격을 줘야 한다.
지난 번에는 본명을 부르며 정신을 흔들었다. 이번에는 생각도 못한 타이밍에 생각도 못한 답변과 선물로 뒤흔든다.
이렇게 말하니 상대의 감정을 조종하는 인성 터진 놈이 된 것 같지만, 마종공도 좋아할 테니 윈-윈이다.
아무튼 그렇다.
***
며칠 전부터 업무에 손이 가지 않았다.
시선은 서류가 아닌 달력으로 갔고, 손은 펜이 아닌 아가가 준 빗을 잡았다.
‘이제 곧.’
아가가 올 테니까.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카데미 일정 정도는 알고 있다. 며칠 전에 종업식을 했으니 아가도 제도에 왔을 터.
설령 일이 있어서 늦게 온다고 해도, 신년하례식 때는 반드시 얼굴을 보일 것이다. 그러면 아가를 볼 수 있다.
“다음에 또 봐, 베아트릭스.”
“흐으으읏…!”
간질간질하고도 부끄러운, 동시에 설레는 감정에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수백 번, 수천 번을 상상한 목소리. 무심코 그 목소리를 다시 떠올리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름을 불리는 게 그렇게 행복한 일인지 처음 알았다. 공식 석상에 참석하면 불리는 베아트릭스 카토반 오브 세르베트, 같은 딱딱한 이름이 아니다. 가까운 사람끼리 애정을 담아 부르는 이름이었다. 분명 그랬다.
“다음에 또 봐, 베아트릭스.”
다시 아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귀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파닥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은 섭섭했다. 거기서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반말까지 했으면 더 다가올 수 있는 거 아닌가? 내가 도망치더라도 손목을 잡고, 그대로 끌어 안─
‘아니야.’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망상을 털어냈다. 이미 충분히 행복했으면서 거기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다.
급할 건 없다. 아가에게 이름을 불릴 날도, 애정을 나눌 날도 수십 년이 남았다.
“이거, 효과를 보려면 40년은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아직 시간은 많군요. 그때까지 같이 고민합시다.”
그때 아가가 한 말은 분명 나와 함께 해준다는 말이었으니까.
아직 아가가 정식으로 고백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승낙한 거나 마찬가─
– 똑똑
행복한 상상을 방해하는 소음에 무심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탑주님. 감찰부장이 왔습니다.”
비서의 보고에 금방 풀어졌지만.
마침 아가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가가 오다니. 아가와 나는 무언가 통하는 게 아닐까?
“드, 들어오라고 하렴.”
기쁜 마음에 말을 더듬고 말았다.
부끄럽다. 아가가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안되는데.
문 너머에서 묘하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만하지.’
회심의 본명 공격으로 마종공이 도망친 이후, 만나기는커녕 연락도 한 적이 없다. 당연히 패닉 상태가 유지되고 있겠지. 지금 문 너머에 있는 사람은 마종공이 아닌 베아트릭스라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고작 말을 더듬은 정도로 물고 늘어지기에는 마종공을 뒤흔들 수 있는 수단이 너무 많다. 그리고 행복하게 뒤흔들어야지, 부끄러운 걸로 트집 잡는 건 도리가 아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마종공의 입장 허락이 돌아오자 탑주실까지 안내해줬던 비서가 뒤로 물러났다.
솔직히 탑주실에 한두 번도 온 것도 아니라 비서가 붙을 필요는 없었지만, 마법사들의 눈빛이 너무 따가워서 혼자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마 마탑에 블랙리스트가 있다면 가장 위에는 내가 적혔겠지. 사유는 탑주를 울린 개새끼로.
“각하. 들어가겠습니다.”
아무튼 비서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예고한 건 덤이었다.
“어, 어, 어서 오렴.”
유감스럽게도 별 효과 없는 예고였지만.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와 파르르 진동하는 귀. 얼굴은 묘하게 붉은 것이 전혀 진정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다른 마법사들이 이 모습을 보지는 않아서.
“해가 지나기 전에 인사라도 드리고자 왔습니다. 혹시 바쁘신데 방해한 겁니까?”
“아, 가를 볼 시간은 많으니 언제든 와도 된단다.”
일단 가볍게 인사를 건네자 마종공도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와.’
그 모습에 무심코 웃음이 터질 뻔했다.
진동 상태였던 마종공의 귀가 어느새 내려갔다.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눈은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기에 바빴다. 마치 자기가 원하는 걸 직접 말하기는 부끄러우니, 먼저 알아달라는 것처럼.
나보다 한참이나 연상인 사람에게 느끼기에는 조금 실례인 감정이지만, 솔직히 귀엽다. 왜 저렇게 우물쭈물하는지 짐작이 가니까.
“고마워, 베아트릭스.”
그래서 원하는 대로 해줬다.
“흐그윽…!”
효과는 발군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붉었던 마종공의 얼굴은 토마토로 진화했다.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다는 건 저걸 보고 하는 말이겠지.
게다가 귀도 본 적 없던 bpm으로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부끄러워도 좋기는 좋다는 뜻.
“앞으로 부담 없이 와야겠네. 정말 언제든 와도 되는 거 맞지?”
그렇게 말하며 마종공 쪽으로 걸어가자 마종공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어, 어, 언제드으은….”
“말하고 행동이 반대인데.”
그 말에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던 마종공의 몸이 흠칫 굳고 말았다. 아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발이 움직인 모양이다.
그리고 내 지적에 마종공은 다시 뒤로 물러나기도 부끄럽고, 가만히 있기에도 부끄러운 딜레마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자 가슴 깊숙한 곳에서 장난기가 솟구치고 말았다. 평소라면 장난을 치기는커녕 바짝 엎드려야 하는 공작. 그런 공작을 일방적으로 놀리고 있다는 사실에 없던 용기까지 생겼다.
“이번에는 도망갈 곳도 없네?”
작게 미소를 짓고 슬쩍 손을 뻗었다.
그래, 지금의 나는 없던 용기도 생긴 상태다. 지금의 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파닥이지도 못하고 꼿꼿하게 서있는 귀를 만졌다. 솔직히 이거 옛날부터 궁금했어. 엘프의 귀는 무슨 촉감일까.
“…….”
의외로 귀를 잡힌 마종공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못했다.
“베아트릭스?”
마종공의 상태를 확인하고 슬며시 귀에서 손을 뗐다.
간헐적으로 파르르 떨리던 몸이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게다가 눈마저 빛을 잃고 흐릿해졌다.
‘…이런.’
선 채로 죽었다.
다행히 마종공의 정신은 금방 돌아왔다. 아무래도 기절했다기보다는 과도한 충격으로 인해 잠시 머리가 새하얘진 거니까.
그래도 본인이 놀림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정신을 차린 마종공은 최대한 냉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가. 나는 공작이고 탑주란다. 아무리 아가라도 최소한의 존중을─”
“싫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