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42)
“…….”
물론 별 효과는 없었다. 싫어서 정신을 놓은 게 아니라 행복해서 놓았으니 할 말이 없겠지.
침묵 상태에 빠진 마종공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흘렸다가 입을 열었다.
“각하께서 싫으시다면 예전처럼 말하겠습니다.”
“시, 싫다고는 안 했단다…”
“그럼 조금씩 익숙해져야지.”
그 말에 마종공도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이 패턴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건 본인이 가장 잘 알 테니.
하지만 그 끄덕임에서 시무룩한 감정이 느껴졌다. 마치 이름을 불리고 스킨십을 하는 게 기쁘지만,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것에 대한 한탄. 굳이 따지자면 자신의 취약한 방어력을 원망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마종공의 방어력이 심각하기는 하다. 방어력이 바닥을 기던 시절의 마르게타보다 더한 것 같아.
‘지금 줘도 괜찮나?’
품 속에 있는 케이스의 감촉이 느껴질수록 고민도 커졌다. 고작 이름으로도 이런데, 반지까지 주면 정말 기절하지 않을까.
그래도 고민은 짧았다.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며 미뤘다가는 영원히 주지 못할 미래가 뻔하니.
“베아트릭스.”
반지 2호기, 간다.
***
이런 감정은 처음이다. 기쁘면서도 슬프고, 아쉬우면서도 충족감이 느껴진다.
아가는 언제나 내 처음을 가져갔다. 사랑도 처음, 포옹도 처음, 자존심을 내려놓은 것도 처음. 전부 아가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걸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이런 감정까지 느끼게 하다니.
‘나는 이 모양인데.’
서글프다. 나에게 무수한 처음을 주는 아가와 달리 나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
아가는 거리낌 없이 감정을 보였다. 나를 이름으로 불러주고, 반말을 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당연히 싫은 건 아니다. 너무나 좋다. 행복해서 하루 종일 이름만 듣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정작 나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아가가 이름을 부르면 부끄러워 입을 열지 못하고, 나에게 다가오면 뒷걸음질이나 했다.
‘이러면 안되는데.’
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어찌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도 아가를 애정을 담아 부르고, 아가의 접근에 기꺼이 응해야 한다. 일방이 아니라 쌍방으로 주고 받는 것이 사랑 아닌가.
그러니 더욱 노력해야 한다. 일단 아가처럼 이전과 다른 호칭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아가가 아니라 낭군님이라거나… 서, 서방님 이라거나.
“시간은 많으니 느긋하게 생각하도록 하죠.”
순간 낭군님이라는 말을 듣고 모른 척한 아가가 떠올랐지만, 애써 기억 저편으로 밀어냈다.
아무튼 애정 표현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 방금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지.
‘만약 버텼다면.’
부끄럽고도 간질간질한 생각이 들고 말았다. 만약, 만약 아가가 귀를 잡았을 때 정신을 놓지 않았다면 그 다음까지 가지 않았을까?
포옹도 하고,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어쩌면 입맞─
“베아트릭스.”
행복한 상상을 하는 사이, 아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몸이 흠칫 떨렸다. 혹시 내 생각이 들킨 건가 싶어서.
“사실 그냥 인사만 하러 온 건 아니야.”
그 말에 눈을 깜빡이고 말았다.
그게 중요한가? 인사든 뭐든 아가가 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설령 아가가 나에게 돈을 빌리러 왔다고 하더라도 웃으며 맞이할 자신이 있다.
“이제 답을 줄 때가 됐지.”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를 꺼내는 아가의 모습에 다시 몸이 굳고 말았다.
‘…답을 줄 때가 됐어?’
머리가 평소와 달리 느리게 돌아갔다. 무슨 답을 말하는 거지?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본능은 그게 맞다고 외치지만, 이성은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외쳤다. 혼자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만큼 추한 건 없으니.
하지만 아가가 꺼낸 것이 작은 케이스일 때. 그 케이스를 묶은 하얀 리본이 풀어질 때. 그 속에서 반지 하나를 꺼낼 때. 불안감은 사라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 가슴에 자리 잡았다.
“그동안 받은 거에 비하면 소소한 거지만, 그래도 내가 줄 수 있는 게 이런 거밖에 없네.”
머쓱한 듯 웃는 아가를 향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아가의 말이라도 그것만큼은 동의할 수 없었다.
소소하다니. 소소하다는 건 내가 아가에게 준 것들을 말하는 거다. 아가가 주려는 반지는 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물건이지 않나.
“저, 저기 아가.”
그리고 반지를 보자 애써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그것도…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지는 반지니?”
아가의 손가락에 끼어진 반지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나에게는 과분한 물건이라 생각해서 욕심을 내지 않았지만, 사실 미치도록 가지고 싶은 물건이었으니까.
아가가 독특한 반지를 마르게타 공녀에게 줬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아카데미에 파견된 마법사를 통해 들었고, 아가의 손가락을 보며 직접 확인할 수도 있었으니.
일반적인 커플링이 아닌 하나의 반지를 두 개로 나누어 쓰는 색다르고도 아름다운 반지. 어찌 탐이 나지 않을까.
“…물론이지.”
내 물음에 잠시 입을 다물었던 아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소를 짓더니 들고 있던 반지를 손톱으로 긁었다.
그러자 완벽하게 반으로 갈라지는 반지. 그 반지를 보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제야 답을 줘서 미안해. 무슨 말로 답해야 좋아할지 고민이 많았거든.”
아가는 내 왼손을 잡으며 세상의 절반이 담긴 반지를 끼워줬다.
“백 마디 말보다 행동 하나가 더 좋았을 텐데. 너무 늦었지?”
“아니.”
아가의 말에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내 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고, 아가에게 시선을 돌리고, 다시 반지를 봤다. 이 작은 물건이 어찌나 무겁게 느껴지는지.
“…늦지, 않았단다.”
그렇기에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내 생에 답을 들었다면, 늦지 않은 거니까.
***
두 번째 (반)지를 끼고 기뻐하는 마종공을 보다가 씁쓸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케이스에 홀로 담긴 반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미안하다.’
무생물에게 사과를 하는 건 우스운 일이지만 이건 사과를 할 일이 맞다. 정말 미안하다.
누군가에 손가락에 끼워지고, 누군가의 행복이 되어야 했을 물건. 그 물건은 영원히 세상 빛을 보지 못하고 잠들게 되었다.
아니, 설마 마종공도 반/지를 원할 줄은 몰랐지.
‘하필 첫 단추를 이상하게 꿰서.’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반지로 차별 대우를 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는 없지 않나.
그리고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두 번째 (반)지가 탄생한 순간,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의 탄생은 막을 수 없다고. 앞으로도 나는 반지를 쪼개는 팔자라고.
착잡한 심정에 눈을 감았다가 도로 떴다. 너무나도 쓸쓸해 보이는 반지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언젠간 쓸 일이 있겠지.’
그런데 환청인가.
반지가 시발 새끼야, 라고 욕하는 것 같은데.
커플링(커플 잃음)을 조용히 품 속에 넣으며 헤실거리는 마종공을 바라봤다. 평소 보이던 잔잔하고 고고한 미소와 달리, 정말 어린 아이처럼 웃는 모습을 보니 뿌듯함이 몰려왔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줄 걸. 앞으로 선물은 아낌없이 줘야겠다.
‘…이게 맞나.’
하지만 반쪽 반지를 끼고 좋아하는 걸 보니 미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마치 커플링 살 돈도 없는 빈곤한 남편이 스스로를 자책할까봐 좋아하는 척 하는 아내를 보는 것 같아서.
아니, 뭐. 당사자가 좋아하면 그만이기는 하지. 어차피 잠깐 낄 반지니 너무 연연하지는 말자.
“평생의 보물…”
몽롱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마종공에게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저 흉악한 물건은 절대 평생 반지가 아니다.
“그건 안 돼. 결혼 반지를 낄 자리는 있어야지.”
그래. 내 목적은 반쪽이 아닌 정상적인 결혼 반지로 신부들의 손가락을 채우는 거다.
솔직히 지금 꼬라지를 보면 결혼 반지도 반쪽이 날 것 같지만, 아무리 그래도 결혼 반지를 쪼개는 건 좀 이상하잖아. 그때가 되면 최선을 다해 말려야지.
“결혼 반지…”
다행히 결혼이라는 말은 발군의 효과를 보였다. 멍했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으니.
“저기, 아가?”
“응?”
대신 다른 쪽으로 생각이 뻗었는지, 반지를 매만지던 마종공이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결혼… 은, 언제로 생각 중이니?”
부끄럽다는 듯, 하지만 눈은 반짝이며 묻는 마종공의 모습에 웃고 말았다.
내가 고백 승락, 거기에 결혼 언급까지 했으니 이미 마종공의 머리 속에는 찬란한 결혼식, 정원에서 노는 쪼끄만한 쿼터 엘프들이 나타났을 거다.
이해한다. 내가 수명 연장 포션 때문에 잠시 화를 냈고, 그것 때문에 바닥까지 떨어졌던 마종공이다. 잠시나마 바닥을 느꼈던 마종공으로서는 결혼을 운운하는 상황이 행복하겠지.
“글쎄. 빨라도 내년 아닐까. 일단 마르가 졸업해야지.”
그 말에 마종공의 몸이 굳었다.
뭐지. 설마 내년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건가?
그래도 학생 상태인 마르게타하고 결혼하는 건 곤란한데.
***
아가의 말에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행복에 눈이 멀어서 눈치채지 못했던─ 아니, 사실 알면서도 외면했던 문제가 다가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