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44)
그리고 보물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이르러, 너무 뜬금없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보통 보물고 안쪽에는 주인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시조가 남긴 물건, 혹은 가보 같은 것들.
‘뭐지?’
하지만 눈 앞에 보이는 물건들은 너무나 평범했다.
일단 진열대는 깨끗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반면 그 위에 놓인 것은 검, 지팡이, 창, 경전, 교차되어 놓인 두 자루의 검, 단검, 활.
도저히 알 수 없는 조합의 물건들이다. 게다가 딱히 명품 같지도 않고. 차라리 유물 느낌이라도 나면 칼이 골동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겠구나─ 할 텐데.
“주인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물건입니다.”
멍하니 그 물건들을 보니 집사가 나지막히 말했다. 혹시 잘못 배치한 건가 싶었지만, 정말 칼이 아끼는 보물이구나.
…왜?
“저것들은 제가 아닌 주인님께 설명을 들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게 더 의미가 깊겠군요.”
그런 속내를 읽었는지, 집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아, 저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사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만만치 않게 특이한 물건이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다.
대검과 대낫. 이번에도 이해하기 힘든 조합이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관리가 조금 소홀하네요?”
“저건 주인님께서 대충 두라고 하셨습니다.”
더 어지러웠다.
저택으로 복귀하자마자 집사가 반겨줬다. 언제 돌아온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기다리고 있던 거지.
“사용인들이 돌아가면서 주인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제 차례에 주인님이 오셨군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예상 외로 투박하고 확실한 방법에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확실히 언제 올지 모른다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너무나 당연한 방법을 잊었었다.
그런 집사의 어깨를 토닥이며 내 방으로 향하자, 집사가 뒤따라 걸으며 짧은 보고를 했다.
“손님들께는 예전에 사용하시던 방으로 안내해드렸습니다.”
“잘했어. 조금이라도 익숙한 곳이 좋겠지.”
“그리고 마르게타 공녀께는 저택의 시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그 말에 슬쩍 집사를 돌아봤다. 단순히 방 안내를 넘어 저택의 시설을 소개한다는 건, 그 사람을 손님이 아닌 저택의 일원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니.
“너무 이른 거 아니야?”
“오히려 늦었습니다. 만약 공녀님이 졸업하시고도 몇 년 정도 결혼을 미루신다면 괜찮습니다만.”
단호한 집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무리지. 이미 자퇴의 욕망과도 싸우는 중인 마르게타에게 ‘결혼은 몇 년 후에.’ 같은 말을 하면 기절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철혈공의 분노가 덮칠 테고.
“그리고 다른 분들에게도 소개해드리려고 했지만, 순서를 알 수 없어서 보류했습니다.”
이어지는 보고도 제법 납득이 가는 말이다. 마르게타는 누가 봐도 첫 부인이지만, 루이제와 이리나 중 누가 먼저인지 알 수 없어 멈췄다는 말.
예전 광기에 취해 공동 결혼 운운했을 때라면 몰라, 이제는 확실히 결혼 순서, 부인 순서를 따라야 한다. 그러니 집사 입장에서는 부인 순서대로 안내하고 싶겠지.
“두 번째는 그중에 없어.”
하지만 집사가 착각하는 게 있다. 루이제와 이리나는 두 번째, 세 번째가 아니다.
“아,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미리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지난 번에 봤잖아. 마종공이다.”
뒤따라오던 집사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고 말았다.
“…그렇군요. 제가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금방 아무렇지도 않게 걸었지만.
“하하, 정신 없는 날이기는 했지.”
“잊을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누구라도 그날의 마종공을 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거다.
신발도 벗겨진 채로 주저 앉고,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하고, 이리저리 찢어지고 넘어진 상처. 나도 그 참담한 모습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해야지. 앞으로도 그런 일이 생기면 폭력가장이라는 소문이 돌 수도 있다.
“아, 루이제는 방에 있나?”
끔찍한 미래를 떠올리던 중, 다시 집사에게 시선을 돌렸다. (반)지 2호를 성공적으로 양도했으니 이제 3호가 출격할 차례니까.
게다가 집사의 반응을 보니 루이제도 마님 취급하는 것 같은데, 그럴수록 루이제의 속만 타들어 갈 거다. 사용인들에게 마님 취급을 받으면 기쁘겠지만, 정작 내 답변은 듣지 못했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서글프겠지.
“주방에 계십니다. 사용인들이 먹을 간식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그리 말하는 집사의 표정은 은근히 온화했다. 하늘 같은 마님이 아랫것들을 위해 무언가 만든다는 것이 기꺼운 모양.
“입맛에 안 맞아도 열심히 먹어.”
“제가 먹을 게 남아있다면 그러겠습니다.”
그 말에 나도 집사도 웃음을 터트렸다.
만드는 사람은 혼자지만 입은 여럿. 특히 유리스나 소피아 같은 간식 킬러도 있으니 집사 할당량은 극히 미미할 거다.
***
오라버니의 저택에 오자마자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공녀님 덕분에 울켄 공작령 관광도 즐겁게 했지만, 갑자기 울켄에 간 이유는 오라버니와 공녀님의 약혼을 위한 것이어서 어느 정도는 자제해야 했다.
아무리 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걸 좋아해도, 공녀님의 운명이 걸린 시기에 시끄럽게 굴 정도는 아니니까.
그렇게 본의 아닌 자숙 기간을 가지다가 오라버니의 저택으로 가니 어찌나 편하던지.
“마님이 되실 레이디들을 모시려니, 조금 긴장되는군요.”
게다가 집사님의 말은 편함과 더불어 기쁨도 주었다.
공녀님을 안주인으로 여기는 건 당연하다. 이미 오라버니와 공녀님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발표만 하지 않았을 뿐, 암암리에 퍼지고 있는 사실. 심지어 공녀님의 손가락에는 반지도 있다.
그에 비해 나는 반지는커녕 오라버니에게서 답변도 듣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오라버니의 사용인들에게 마님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쁠 수밖에.
…그리고 오라버니의 사용인들이 나를 마님으로 취급한다면, 이미 오라버니에게 언질을 받은 것이 아닐까?
‘가능성 있어.’
그래, 뭔가 아는 게 있으니 나를 마님처럼 대하는 걸 거야. 설마 사용인들이 주인인 오라버니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고 엄한 사람을 마님 취급하지는 않을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자 일말의 불안감은 급속도로 가라 앉았다. 애초에 오라버니의 저택에 공녀님만이 아니라 나와 이리나까지 초대받은 것도 긍정적인 징조.
사용인들 덕분에 마음이 평온해졌다.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해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다.
“저기, 집사님.”
“예. 편히 말씀하십시오.”
미소를 띤 얼굴로 답하는 집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주방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부끄러울 정도로 작은 보답이다. 나는 아직 작위도 영지도 물려받지 못한 일개 영애에 불과하니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래도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보다, 1이라도 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
다행히 주방 사용을 허락받았다. 아니, 남한테 물을 거 없이 마음껏 사용하라는 말을 들어서 허락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아무튼 주방은 넓었다. 저번 여름 때도 몇 번 봤지만, 다시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넓다. 오라버니는 이런 저택을 어떻게 구한 걸까.
“필요하신 도구나 재료가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아, 네. 감사합니다.”
“말씀을 낮춰주십시오. 귀하신 분께 존대를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호탕하게 웃는 주방장님에게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주방… 장?’
저번에도 본 분이지만 매번 볼 때마다 새롭다. 저 덩치로 주방장? 아무리 사람을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고 하지만, 이 분은 좀.
우락부락한 근육, 햇빛에 탄 피부, 2m에 이르는 키, 극한의 청결을 추구하여 스스로 밀어버린 머리와 수염. 아무리 봐도 주방장이 아니라 소설에 나오는 용병 같다.
‘와아…’
그리고 주방장님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팔근육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도대체 이 저택에서 주방장이란 뭘까. 고기 요리를 해야 하면 재료부터 직접 사냥하는 사람을 주방장이라고 하는 건가? 오라버니는 기준점이 높구나.
“제가 좀 험악하긴 하죠?”
“아,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씨익 웃으며 물어보는 주방장님에게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좀 험악한 게 아니라 많이 험악하다.
“하하,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래도 제 인상 정도는 저도 잘 압니다. 어린 녀석들이 저를 처음 보면 울기 바쁘죠.”
그 말에 바로 떠오르는 두 명이 있었다. 둘이 하나인 것처럼 착 붙어 다니는 갈색 머리의 하녀들.
저택의 사용인들도 그 아이들을 귀여워 하는 게 눈에 보였지. 본인들도 성실한데다 붙임성이 좋은 것 같았고.
그런 아이들이라도 주방장님 앞에서는 울었구나… 그렇구나…
“덕분에 케이크로 꼬드기느라 힘들었습니다.”
주방장님은 즐겁다는 듯 말했지만, 그 말에 움찔하고 말았다. 험악한 거한이 케이크로 겁먹은 여아들을 꼬시는 모습이 떠올랐으니까.
아니, 아니야, 이러지마. 겉모습만 험악하시지 속은 평범한 분이잖아. 이런 편견을 갖는 건 실례야.
“…집사님은 그걸 보고 경비대를 불러야겠다고 하셨지만요.”
“아하하…”
조금 풀이 죽은 것 같은 주방장님에게 그저 웃어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구나.
그래도 방금 대화로 주방장님을 향한 긴장이 조금 풀렸다. 정말 겉만 이상한 분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잡담이 길었군요. 아무튼 제가 이래저래 만든 것들이 많아서, 이 저택의 사용인들은 디저트에 익숙합니다. 딱히 단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 마음껏 만드셔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