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46)
“네.”
망설임 없는 대답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고개도 들고.”
“아, 네.”
맑은 대답과 달리 고개는 여전히 숙여져 있었으니까. 적어도 눈은 마주치고 얘기하자.
***
얘기를 들어달라던 오라버니는 한참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독촉하지는 않았다. 기다리면 말씀해주실 테니까. 지금은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뿐이겠지.
“4년 전… 대토벌 전쟁이라고 알지?”
“네. 알아요.”
생각보다 범상치 않은 시작에 조금 놀랐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괜히 동요하면 겨우 입을 연 오라버니가 다시 말을 아끼실 수도 있으니.
“그때 첫사랑 만났어.”
이번에는 티를 낼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첫사랑. 그 말을 듣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면 감정이 없는 여자일 거다.
그리고 하필 첫사랑을 만난 때가 전쟁 중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오라버니의 첫사랑, 하지만 본 적 없는 첫사랑.
‘설마.’
순간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단어가 있지만 애써 털어냈다.
“내가 부족해서 먼저 가버렸지만.”
하지만 오라버니가 먼저 입에 담고 말았다. 입에는 옅은 미소가 지어졌지만,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슬픔을 담은 채로.
오라버니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으셨다.
감찰부의 팀원으로 시작한 관료 생활, 갑작스러운 팀장 승진, 갑작스러운 참전, 거기서부터 시작된 고생과 인연.
“진짜 어디서 그런 것들만 모였는지.”
특히 교과서에 6검이라 기록된 다른 팀장 분들 얘기를 할 때는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기를 회상하는 것처럼.
“그 사이에서 연애를 한 나도 정상은 아니지만.”
물론 그 6검 중에서도 헤카테라는 분에 대해 말할 때는 미소 수준을 넘어 활짝 웃으셨다.
그 모습을 보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카테라는 분은 정말 사랑받았구나. 오라버니가 너무나도 사랑한 사람이었구나. 동시에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사랑한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오라버니를 동정하는 건, 오라버니에게 큰 실례니.
“…아, 중요한 걸 얘기 안 했네.”
추억에 빠져 즐거워하던 오라버니는 뒤늦게 무언가 생각난 듯 주제를 돌렸다.
“아까 말한 것처럼 전쟁이 끝나고 아카데미에 오기 전까지 쿠키를 먹지 않았어.”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갑자기 무언가를 입에 대지 않는다면 그만한 사건이 있었다는 의미. 그리고 나는 본의든 아니든, 그런 오라버니에게 쿠키를 권했다.
“전쟁 중에도 디저트는 공급됐어. 사기 목적 때문에라도 단 음식은 먹어야 했지.”
딱딱한 빵만 씹으면 힘이 안 나잖아?
그렇게 덧붙인 오라버니에게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오라버니도 딱히 답을 원한 말은 아닌지 바로 다른 말을 했지만.
“그중에는 쿠키도 있었는데, 쿠키라고 하기도 부끄럽지. 밀가루 반죽에 설탕 붓고 굽는 정도였으니.”
본능적으로 오라버니가 말한 쿠키를 상상하고 말았다. 아무 재료도 없이 반죽에 설탕만 추가한 덩어리.
그걸… 쿠키라고 해도 되는 건가?
“그래도 달기는 하니 먹어야지 어쩌겠냐. 그마저도 부족해서 아껴 먹어야 했고.”
큭큭 웃음을 흘리는 오라버니. 비록 입으로는 불평하는 것 같지만, 표정만 보면 즐거운 것 같았다.
“그걸 헤카테가 좋아했어. 그걸 아니까 다른 녀석들도 헤카테에게 양보했고, 걔는 그걸 또 나한테 나눠줬고.”
“…귀중한 쿠키네요.”
“그래. 무엇보다 귀했지.”
이제 알겠다. 그런 말까지 들으면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다.
오라버니 입장에서 쿠키는 단순한 과자가 아니다. 추억이 담긴, 첫사랑과의 사랑이 투영되는 음식. 그리고 그 첫사랑을 떠나보낸 오라버니 입장에서는 차마 손을 댈 수 없는 저주스러운 음식.
‘멍청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눈시울도 눈가가 뜨거워졌지만 꾹 참았다.
오라버니에게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무지라는 방패에 숨어서 오라버니의 가슴을 찢어발겼다. 오라버니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쭈욱.
그런 내가 오라버니 앞에서 울 수는 없다. 울어야 할 피해자 앞에서 가해자가 울다니, 너무 비겁하잖아.
“죄송─”
“하지 마.”
너무 늦어버린 사과는 오라버니의 손가락에 막혀 나오지 못했다.
입술을 가볍게 누른 검지 손가락. 여전히 미소를 띤 오라버니.
“그 뒤로는 줄 사람이 없어서 안 먹은 거야. 다른 이유는 없어.”
“그, 그래도 제가 괜히…”
“오히려 오랜만에 먹어서 좋았어. 누가 나한테 쿠키 같은 거 챙겨주겠냐?”
웃음을 터뜨리는 오라버니의 모습에 참았던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이러면 안되는데. 비겁하게 우는 걸로 도망치면 안되는데. 이렇게 사과해야 할 일을 얼렁뚱땅 넘어가면 안되는데…
“고마워, 루이제.”
게다가 이런 말까지 들으면 더 안된다고…
하지만 오라버니는 내 손을 잡고, 눈물로 젖은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빈말 아니야. 정말 고마워하고 있어.”
난 그런 오라버니의 눈을 볼 수 없었다.
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난 그냥 오라버니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오라버니를 위한다는 착각에 빠져 매일매일 쿠키를 먹였다. 그게 독이나 마찬가지인데도.
“끊긴 추억이 이어졌어. 과거를 덮고 지금을 볼 수 있었지.”
그러나 내 턱을 잡아 조심스레 올리는 손길에 다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평생 과거에 갇혔을지 모를 나를 도와준 거야.”
따뜻한 미소를 지은 오라버니는 품 속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너는 우연이라고, 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한테는 분명 도움이었어.”
그리고 케이스에 묶인 분홍색 리본을 푸는 손.
“그러니 이제는 내가 답례를 줘야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오라버니가 케이스에서 꺼낸 물건을 보니 도저히 진정할 수 없었다.
반지. 분명 반지다. 반쪽으로 쪼개진 기묘한 모양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기껍다.
저건 공녀님이 낀 형태의 반지니까. 둘이 낀 반지가 모여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반지니까.
“받아줄래?”
부끄럽지만 펑펑 울고 말았다.
***
울음도 잠시, 결국 3호기를 끼고 좋아하는 루이제를 보니 절로 뿌듯해졌다.
그리고 참고 참았던 말을 꺼낼 타이밍이 지금이라는 걸 직감했다. 이 타이밍에 말하면 완벽하다.
“루이제.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네! 말씀하세요!”
“…이제 쿠키에 이상한 재료 안 넣어도 돼.”
“아…”
반지를 매만지던 루이제가 조금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나 사실 얼마 전부터 맛이 조금 느껴지기 시작해서. 부원들이 왜 못 먹었는지 알 것 같더라.
미안해…
루이제에게 (반)지 3호기를 준 이후로 잠시 숨을 골랐다.
사실 기세를 몰아서 이리나에게도 갈까 했는데, 고백 답변을 너무 원 플러스 원처럼 처리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이리나를 떨이 취급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마종공과 루이제를 같은 날에 만나고 할 말은 아니지만 루이제는 특이 상황이었으니까. 그때 루이제를 다음으로 미뤘으면 달갑지 않은 오해가 쌓였겠지.
‘가문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리나의 뒤에 있는 요룬 백작가다.
이리나가 나를 좋아하더라도, 요룬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다. 3과장의 화려한 업보로 인해 나와 요룬은 어색한 관계가 되었으니.
그러니 이리나에게 답변을 주는 건 신중해야 한다. 괜히 빠르게 답변했다가 뒤늦게 요룬이 반대하면 이리나만 난처해진다. 혹은 요룬이 ‘내가 그쪽 따님과 좋은 관계 좀 맺고 싶은데, 불만 있습니까?’ 라고 통보하는 걸로 생각할 수도 있고.
‘얼굴은 봐야겠지.’
다행히 이리나의 부친은 신년하례식에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작위 귀족. 어차피 신년하례식 때 보니 그때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진심을 담아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면 허락해주지 않을까.
단지 이리나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마르게타도, 루이제도 손가락에 전리품을 끼고 있는 상황에서 홀로 답변을 받지 못하면 속이 탈 테니.
“이리나한테 잘 말해줘. 이미 반지도 준비하고 있는데, 좋은 시기를 찾느라 고민 중이라고.”
“네! 맡겨주세요!”
그래서 루이제에게 슬쩍 흘려달라고 부탁했다. 좋은 결과가 나올 건 확정이라고. 단지 그 시기가 조금 늦을 뿐이라고.
그러면 이리나도 안심할 수 있을 거다. 오래 끄는 건 무리지만, 신년하례식까지는 가능할 터. 루이제도 친구를 위한 의욕이 불타오르니 잘 해결될 거다.
“오빠. 혹시 시간 있으세요?”
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 괜찮아.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