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47)
문가에서 조심스레 물어보는 이리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 흥분과 불안이 뒤섞인 표정을 보니 무슨 용건으로 왔는지 알 것 같으니까.
‘실패했구나.’
애석하게도 루이제의 의욕도 이리나를 이기지 못했다. 하긴. 눈 앞에 반지가 아른거리는데 어떻게 참겠어.
이리나를 위해서 신년하례식까지 미루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 결정이 이리나를 슬프게 하면 본말전도 아니겠나. 차라리 지금 마무리하고 요룬 백작가 설득에 총력을 다하는 게 맞다.
“일단 앉고. 아, 차라도 마실래?”
“아, 네!”
쭈뼛거리는 이리나의 어깨를 눌러서 자리에 앉히고 선반으로 향했다.
마침 다기도 (반)지 4호기도 선반에 둔 상태다.
차를 홀짝이는 이리나를 보며 나도 찻잔을 들었다.
‘바로 주는 게 낫겠지.’
이미 마음은 정했다. 루이제의 은근한 설득에도 먼저 찾아올 정도면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 이 이상 미루는 건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심지어 이 대륙에는 남자가 레이디에게 고백하는 것이 보편적인 절차다. 설령 그것이 정략혼이라도, 아니 오히려 정략이기에 그 절차를 중히 여긴다. 그럼에도 먼저 고백하는 용기를 보인 이리나인데, 그런 이리나에게 먼저 반지를 요구하는 수치심까지 줄 수는 없다. 여자로서 자존심이 바닥을 기지 않겠나.
우선 이리나가 진정하면 말하자. 급하게 달려오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 중이라 그런지 호흡이 거칠다. 빨리 말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단도직입적이면 곤─
“저 가문에 말했어요.”
란한데…
“…응?”
찻잔에 입을 떼자마자 훅 치고 들어오는 이리나.
예상하지 못한 문장에 대답이 늦고 말았다. 머리 회전까지 덤으로 느려진 것 같다.
“제가 오빠 좋아하는 거. 가문에 말했어요.”
하지만 이리나는 기다려주지 않고 후속타를 날렸다.
“가문에?”
“네. 제가 고백한 것까지도요.”
다부진 얼굴로 말하는 걸 보니 농담은 아닌 것 같다. 애초에 이런 걸로 농담을 할 사람은 없겠지만, 아무튼 진심으로 가득한 선전포고다.
“그러니 오빠가 걱정하실 건 없어요.”
내가 대답을 미루는 이유를 알고 그 이유를 없애버렸으니까.
‘진짜 가족끼리는 닮는 건가.’
화끈하고 속전속결인 행보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확실히 이리나도 요룬이라는 성을 가진 게 맞구나, 싶어서.
요룬 백작가가 감찰부에 일방적으로 얻어 맞기는 했지만, 다르게 말하면 감찰부가 작정하고 내려쳤음에도 죽지 않고 버틴 명문가라는 거다.
심지어 얻어 맞으니 황금공이 친히 움직일 정도로 황금공 파벌의 유력 가문. 백작가 중에서도 상위권에 위치한─ 과장을 보태면 후작가에 준한다고 할 수 있는 가문.
그런 요룬의 일원이라 그런지 이리나도 보통이 아니다.
“사실 저 오라버니하고 이어지는 거 포기할 뻔했어요. 이리나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정말 그랬을걸요?”
그리고 루이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름 방학 때 나와 마르게타가 가까워지는 걸 보고 마음을 놓으려고 했던 루이제. 그런 루이제에게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준 이리나.
그 일로 인해 루이제는 이리나를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이리나를 달래 달라고 하자 기꺼이 따른 거고.
…이걸 또 다르게 생각하면 이리나는 애초부터 첫 부인이 아닌 그 뒤를 노린 전략가라는 의미다.
‘이게 요룬 평균인가.’
두렵다. 오빠가 있어서, 심지어 성인도 아니라 교육을 덜 받았을 이리나도 이런 상황 판단이 가능하다.
요룬이란 대체 무엇일까.
***
손에 땀이 나는 것 같았다. 최대한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나온 결론이지만, 혹시 헛다리를 짚은 거면 나도 오빠도 민망한 상황.
하지만 잠시 당황하던 오빠는 이윽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네. 이미 말했다면 나도 마음이 편하지.”
그 말에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가고 말았다.
예상이 맞았다. 오빠는 우리 가문을 생각해서 답을 미룬 거다.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나와 가족을 배려하여 시간을 가진 거다.
‘다행이다…’
혹시, 혹시 오빠가 다른 이유로 미루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아니면 거절하고 싶은데 내가 상처를 받을까 망설이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행히 무엇도 아니었다. 오빠는 상냥하고 친절하기에 대답을 미룬 거다. 흉악하고 무자비한 감찰부와는 거리가 먼 신사기에 가만히 있던 거다.
그러니 내가 오빠에게 반한 거겠지. 무슨 짓을 해도 누구도 탓하지 않는 위치. 그런 위치에 있음에도 부서의 잘못에 사과하고, 진심으로 미안해 하는 성품이니까.
‘아버지도 그걸 알았고.’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감찰부. 그렇기에 감찰부는 실수를 해도 그것이 실수가 아닌 옳은 행동으로 취급한다. 역대 감찰부장들의 행보는 분명 그랬다.
그래서 아버지도 감찰부장─ 오빠의 사과 서신을 받고 놀랐다고 했다. 황금공이 움직였으니 배상은 예상했지만, 설마 사과도 받을 줄은 몰랐다면서.
확실한 사과, 배상, 가문을 모함한 적대 세력 징벌. 이 모든 것이 갖춰지자 아버지도 만족하셨다. 그야말로 받을 수 있는 모든 걸 받은 것이니.
– 누구, 라고?
물론 그런 아버지도 딸이 감찰부장과 만나는 것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예전, 루이제에게 자극 받아 오빠에게 고백한 날. 그날 아버지와 긴 대화를 나눴다.
“칼 크라시우스요. 아버지도 아시는 감찰부장이요.”
단호한 대답에 아버지가 미간을 짚으셨다. 솔직히 어떤 심정인지 모르는 건 아니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빠가 아카데미 감찰관으로 파견을 왔다는 소식에도 어쩔 줄 몰라하던 아버지다. 아무리 감찰부에게 이것저것 받았다고 해도 감정이 남지 않았을까?
그런데 딸이 감찰부장과 접촉하는 수준을 넘어 반했다고 한다. 동요할 수밖에 없을 거다.
– 안 된다. 위험한 사람이야.
“죄송해요, 가문에 해를 끼친 사람인 건 알아요. 그치만─”
– 그런 뜻이 아니야. 이미 철혈공이 노리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감찰부와의 사건은 진작에 잊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대답.
그런 내 모습에 아버지는 한결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으셨다.
– 이리나. 우리 가문은 귀족이기 이전에 상인이란다. 은원이 철저하게 이루어졌다면 더 이상 연연할 필요가 없어. 그러니 감찰부장에 대한 감정은 이미 사라졌단다.
잠시 잊고 있었다. 아버지는 악인도 아니고, 냉혈한도 아니지만 계산에는 철저한 사람이라는 걸.
심지어 돈보다 우선 순위에 두는 가족 중에서도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원한을 남겨둘 필요도 없다는 걸.
“저기, 그… 그래도 가문이 위험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내가 말하고도 좀 묘했다. 나는 아버지를 설득해야 하는 입장인데 오히려 오빠의 단점을 말했으니.
– 위기를 능가하는 혜택을 받았다. 위기로 가문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혜택으로는 더욱 높은 곳으로 도약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셨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것처럼.
– 아무튼 감찰부장의 부인은 바렌티의 공녀가 유력하단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잖니.
“알아요. 각오하고 있어요.”
그 말에 아버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백작가 영애가 공녀를 누르고 첫 부인이 될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어쩌면 그 이후의 부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 아버지는 딸이 사랑하는 사람을 독점하는 게 아니라 공유해야 하는 상황을 안타까워 하시는 거다.
그 마음을 알기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가 나를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는 걸 느껴서.
– …후회하지 않겠니?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의 부인 중 하나가 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다. 난 아버지와 달리 오빠에게 감정이 남아 있었다. 밉고, 무섭고,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을 때. 오빠를 편견 없는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을 때. 미운 감정은 호감이 되고, 피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 마음으로 변했다.
단순히 괴물로부터 나를 구해줘서, 친절해서 그런 건 아니다. 어차피 백작가의 일원으로서 사랑이 아닌 정략으로 결혼하는 걸 각오했다. 하지만 오빠는 맺어지기만 한다면 어지간한 정략혼을 능가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정략혼과 다름 없는 효과를 발휘한다면 오빠와 이어지고 싶다. 멋지고, 상냥하고, 보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남자와. 무뚝뚝하고 사랑 없는 남자가 아닌 내 마음이 택한 남자와.
…게다가 오빠를 한 번 마음에 품고 나니 도저히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올 것 같지도 않고.
–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그런 마음을 담아 말하니 아버지도 결국 수락하셨다.
요룬 백작가의 가주이자 플란벨 백작인 아버지의 허락. 그렇다면 더 이상 걸림돌이 될 것은 없다. 그저 오빠의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이어질 수 있다.
“많이 서운했지? 미안해. 진작에 줄 걸.”
바로 지금처럼.
오빠가 내게 반지를 끼워주는 지금처럼. 내가 너무나 부러워했던 반쪽 반지를 끼워주는 지금처럼.
“역시 이리나는 당차네. 나 같은 것도 용서해주고, 먼저 원하는 걸 당당하게 말하고.”
픽 웃음을 터뜨린 오빠는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난 겁쟁이라서 그러지 못했거든. 이리나를 보고 많이 배워야겠어.”
“평생 가르쳐 드릴게요.”
그 말에 나도 오빠도 웃었다.
***
허탈하다. 세상은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와아…’
공녀님은 각오했다. 그분은 당연히 반지를 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분홍 머리 언니, 금발 언니의 손가락에도 반지가 생겼다. 페넬리아 언니보다 주인님을 늦게 만난 사람들의 손에도 반지가 생겼다.
‘와아아아아…’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