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48)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페넬리아 언니는 소식이 닿지 않고, 금발 언니는 이미 반지까지 받았다.
“유리스… 괜찮아? 표정이 안 좋은데…?”
“울고 싶어.”
“어, 어디 아픈 거야?”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소피아에게 양팔을 펼치자 소피아가 따뜻하게 안아줬다.
진짜 울고 싶어.
‘어떻게 해야 하지?’
차라리 페넬리아 언니하고 연락이 닿는다면 언니가 주인님을 좋아한다고 폭로했을 거다. 그러면 주인님은 언니를 찾아가서 만날 테고, 언니도 속마음을 실토하겠지.
‘안 닿아.’
그런데 안 닿는다. 아직도 안 닿는다.
언니…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남들 달릴 때 출발선에도 없으면 어떡해…
그래도 연말이니 돌아오는 거지? 그치? 언니 아무리 바빠도 연말에는 제도에 있었잖아.
제발.
아카데미 파견 업무가 끝나면 무엇을 하는가. 바로 감찰부 출근이 시작된다.
애석하게도 공무원에게는 방학이 없다. 여름에도 없던 방학이 겨울이라고 생길 일은 없지. 그렇다고 딱히 출근이 싫은 건 아니다. 싫은 건 아닌데…
‘이걸 벌써 꺼내네.’
재무성 청사 앞에 서서 멍하니 건물을 올려다봤다. 한 손에는 붉은 리본으로 묶인 케이스를 들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케이스가 세상 빛을 보는 건 1, 2주 정도 지난 뒤다. 순서상 1과장이 이리나보다 뒤고, 이리나에게 답변을 주는 건 신년하례식이 끝난 이후로 생각했으니.
하지만 계획을 짜면 처참하게 박살나는 게 내 팔자라는 걸 잠시 잊고 말았다.
‘하필 하나만 남아서.’
골치가 아프다. 차라리 남은 반지가 둘이나 셋이면 이렇게 고민하지는 않았을 거다. 아직 답변을 받지 못한 사람이 여럿이라는 거니까. 나름 주류 세력이라고 우길 수 있다.
그러나 남은 반지가 하나다. 답변을 주지 못한 사람이 단 한 사람만 남은 거다. 1과장만 따돌린다는 오해를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
물론 1과장이 루이제나 이리나에 대한 소식은 모르겠지만, 내가 알지 않나. 전부 답을 줬으면서 1과장만 미루고 미루면 내 마음이 편치 않다.
‘반지의 연쇄.’
괜히 헛웃음이 나왔다. 고백을 받았을 때도 마종공이 스타트를 끊으니 줄줄이 이어졌는데, 나도 그 과정을 반복하고 말았다.
그래도 어쩌겠나. 답을 정했으면서 고의로 미루는 건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 같은데. 내가 다리가 여러 개일지언정 어장을 운영할 생각은 없다.
설득력 없는 설득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러니까 제발, 한 번만,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심지어 1과장이 절절하게 애원하는 모습을 봐서 그런지 도저히 1과장만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만약, 만약 양심의 가책을 누르고 1과장을 패싱했다가, 자신만 답을 듣지 못했다는 걸 알면 무슨 생각이 들까. 결국 자기는 기회를 받지 못했다 생각하고 무너지겠지.
‘내 팔자야.’
결국 한숨을 내쉬고 청사로 들어갔다.
배부른 소리지만 어차피 받았을 고백, 대충 두 달 정도 주기로 했으면 안됐을까. 그럼 이렇게 타이밍 문제로 고민하지는 않았을 텐데.
집무실 문을 열자 빵을 씹고 있는 과장들이 보였다. 얘네 밥도 안 먹고 출근한 건가.
“오, 부장님. 오셨습니까?”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2과장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출근하자마자 인사를 나눈 사람이 2과장이라니. 일단 오늘의 운세는 최악이군.
“어, 왔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빠르게 집무실 내부를 훑었다. 입에 빵을 한가득 욱여넣고 고개를 꾸벅이는 3과장, 입에 있던 빵을 삼키고 허리를 숙이는 5과장.
차장은 차장실에서 서류에 치이는 중일 테니 넘어가고.
“아, 부장님!”
마지막으로 해맑게 웃으며 쪼르르 달려오는 1과장이 보였다.
내 앞에 서서 꾸벅 고개를 숙이는 정상적인 인사. 초롱초롱한 눈빛. 온화한 미소. 평소 보이던 광기와는 거리가 먼 정상적인 모습.
낯설다. 내가 아는 1과장은 이렇게 정상적인 애가 아닌데.
“오랜만이다, 에르제베트.”
그래도 얘가 어떤 심정으로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는지 아니까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어깨를 토닥이며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잊지 않았고.
효과는 좋았다. 이름을 불린 1과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2년 전부터 부를걸.
“뭡니까. 이제 저희도 이름 찾는 겁니까?”
잠시 그 모습을 보던 2과장이 히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니 당황하는 것이 보였지만, 금방 놀리는 걸 보면 얘가 분위기 파악이 빠르기는 하다. 영 좋지 않은 방향으로 빨라서 문제지.
“아니. 넌 라파예트보다 2과장이 어울려.”
“너무하십니다. 부모님이 주신 이름을 버리게 하네.”
말은 그렇게 해도 딱히 서운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긴. 남자가 남자한테 이름으로 불린다고 설렐 일은 없을 테니.
오히려 라파예트라고 부르면 손발이 오그라들며 무슨 일이냐고 발작할 놈이다.
“부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예요. 오늘부터 2과장 바론으로 사세요.”
“환장하겠네.”
그리고 충신으로 진화한 1과장의 말에 2과장은 낄낄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 곤란하지. 명함 새로 만들어야 하잖아.”
“그럼 어쩔 수 없죠…”
아무튼 1과장의 머리를 토닥이며 말하자 1과장은 노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낯설다. 그 1과장이 이렇게 순하고 충성스러운 부하가 되다니. 내가 고통 속에서 울부짖던 2년은 대체 뭐였을까.
그 심정은 다른 간부들도 마찬가지였는지, 3과장은 고개를 저었고 5과장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자신이 본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자의 반응이었다.
“에르제베트.”
그 처절한 반응을 보니 1과장을 밖으로 빼낼 필요를 느꼈다.
애초에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반지를 주는 것이 민망하기는 하지만, 보는 과장들 입장에서도 코즈믹 호러가 아니겠나. 부하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상사는 직장 내 괴롭힘이나 다름없는 퍼포먼스다.
“잠깐 바람이나 쐴까?”
“넹!”
내 권유에 1과장은 싱글벙글 웃으며 옆에 착 달라붙었다.
“…나는 왜 기어 다닌 거지.”
집무실을 나가기 직전, 굉장히 우울한 듯한 5과장의 중얼거림이 들렸지만 넘어갔다.
5과장이 한탄할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없는 사이에 터진 일은 어떻게 도와주거나 위로하기 어렵다.
힘내라, 5과장.
***
재무성 청사에 딸려있는 작은 정원. 업무 중에 피곤하면 숨이라도 고르라고 만든 곳이지만, 정작 인적은 극히 드문 곳이다. 정원에 방문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관료는 극히 드무니까. 어딜 일할 시간에 바람을 쐬러 나와?
물론 부장님은 예외다. 재무성에서 부장님한테 뭐라고 할 수 있는 건 장관님 정도지.
“바람이 차다. 더 붙어.”
그리고 정원으로 나오자 부장님은 내 팔을 잡아끌고 팔짱을 꼈다.
훅 치고 들어오는 부장님의 애정 표현. 급격히 차오르는 만족감에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참자.’
하고 싶은 말은 많다. 부장님에게 이 누나가 그렇게 보고 싶었냐는 말이나, 이렇게 스킨십을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참았냐는 말.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뱉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부장님한테 까불지 않겠다고, 말 잘 듣겠다고 약속했잖아. 한 말은 지켜야 돼. 내가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편하게 행동해.”
“네?”
“평소처럼 행동하라고. 괜히 자제하지 말고.”
그리고 내 마음을 읽었는지 픽 웃는 부장님의 말에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왜…? 조신하게 있는 게 맞는 거 아니야? 괜히 부장님 놀리지 말고, 정말 다소곳한 숙녀를 연기하는 게 좋은 거 아냐? 아리아 선배는 그랬는데?
“난 에르제베트하고 함께 하고 싶은 거지, 눈치 보는 인형이 좋은 게 아냐.”
시큰둥하게 말하는 부장님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치사하다. 연하인 주제에 이렇게 달콤한 말이나 하고. 있는 그대로인 내가 좋다는 말을 저렇게 투박하게 하고.
“히히, 역시 누나가 재밌게 놀아주는 게 좋죠?”
애써 설레는 마음을 누르며 말했다. 지금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부장님한테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것 같아서.
“잘 우는 누나라 달래주는 거지.”
그 말에 입을 꾹 닫고 말았다.
비겁하다… 저 말을 꺼내면 난 할 말이 없는데…
“너무 잘 울어서 평생 달래줘야겠어.”
그래도 머리를 토닥이는 부장님의 손길에 금방 마음이 풀리고 말았다.
내가 쉬운 여자는 아닌데, 특별히 부장님이라 봐주는 거야. 다른 남자였으면 감히 손도 못 댔다고.
“그럼 매일 울어야겠네요. 매일 달래주는 거 맞죠?”
“괜히 말했네 이거.”
별거 아닌 대화지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행복하다. 부장님과 단순히 상사-부하가 아니라, 남녀로서 함께하는 것 같아서. 2년이나 부장님과 함께했지만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다.
사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부장님에게 반한 건 아니다. 그저 부장님의 듬직한 모습에, 꿋꿋한 모습에, 단호한 모습에, 책임을 지고 나아가는 모습에 흥미를 느끼고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