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49)
솔직히 젊고 잘생긴 연하가 하는 행동도 멋진데 어떻게 관심이 가지 않겠나.
‘나만 반해서 문제지.’
…유감스럽게도 일방적인 감정이라 한 번도 표현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부장님이 어떤 상태인 줄도 아는데 어떻게 들이대겠어. 난 헤카테 님을 대체할 자신이 없었는걸.
‘그래도 지금은 행복하니까.’
그래, 지금은 행복하다. 마르게타 공녀 덕에 부장님을 덮은 그림자가 옅어지고, 그제서야 내 진심을 보일 수 있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부장님은 내 진심을 좋게 생각해주셨고.
아직 고백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사실상 확정 아냐? 부장님은 밀어낼 여자랑 이렇게 데이트를 할 정도로 쓰레기가 아니야. 부장님이 2과장도 아니잖아.
“곧 이오네스 후작 각하도 뵙겠네.”
그렇게 오붓하게 팔짱을 끼며 걷는 사이, 부장님이 아버지를 언급했다.
“볼 때마다 네 걱정을 얼마나 하시던지.”
“다 큰 숙녀인데 간섭이 너무 심하세요.”
부장님의 말에 입이 삐죽 나오고 말았다.
아버지도 너무하시지. 스물도 넘은 레이디가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다 컸으니 그러시는 거잖아. 스물 다섯인 애가 결혼 생각도 없고.”
“스물 다섯까지 순애보를 지켰다고 해주실래요?”
“너 나 만나기 전에도 스물 넘지 않았냐?”
비겁하게 사실로 반격하다니.
더욱 서운한 마음에 슬쩍 시선을 내리자 부장님이 큭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쁜 동생. 언젠가는 누나로서 위엄을 보여야 하는데.
“자. 이걸 보면 각하도 아무 말씀 없으실 거야.”
그 말에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없다는 것 자체로도 기꺼운 말이기는 하지만, 혼사로 독촉하는 아버지가 아무 말이 없다면 그 이유는 뻔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들자 부장님 손에 들린 작은 케이스가 보였다.
“사실 온갖 고백 문구로 주려고 했는데… 너 그런 거 필요 없지?”
“네.”
단호하게 대답했다. 고백 문구? 그런 게 뭐가 중요하지? 당장 내 손에 반지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데.
이미 나는 그날 밤, 부장님 앞에서 울며 불며 통곡한 이후로 모든 걸 내려놨다. 이제 와서 로맨스니 분위기니 찾아봤자 의미 없지. 오직 효율만 추구할 뿐.
“그럴 줄 알았다.”
다시 미소를 지은 부장님은 케이스에 묶인 붉은 리본을 풀었다. 리본부터 마음에 든다. 역시 빨강이 제일 예쁜 색이야.
사르륵 풀리는 리본, 조심스레 열리는 케이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오는 반지.
기쁘다. 너무 기쁘다. 정말 기쁘기는 한데, 정말 행복한데…
“저기, 부장님.”
“왜?”
“…왜 반쪽이에요?”
근원적인 의문은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마르게타 공녀도 저 반쪽 반지를 받았다는 건 들었다. 시작을 그렇게 했으니 나도 반쪽을 받을 거라 예상했고.
그런데 예상과 이해는 다르다. 왜 멀쩡한 반지를 반으로…?
‘둘이서 하나가 되는 반지?’
명분은 그럴듯하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면 낭만적이라고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하지만 내가 부장님을 하루 이틀 보나. 부장님은 스스로, 자기의 의지로 그런 낭만을 추구할 사람이 아니다. 동네 가까운 상점에서 아무거나 살 사람인데.
“특이하지?”
그런데 기분 탓인가. 왜 반쪽이냐는 지적에 부장님은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왜…?
***
아직 에넨이 언니를 버리지 않았다.
주인님께서도 언니를 버리지 않았다!
– 유리스. 잘 지냈니?
“언니!”
주인님이 출근하시고 한창 일하던 중, 집사님이 부르셨다. 나를 찾는 연락이 왔다고.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짐작했다. 외부에서 나를 찾는 사람이면 한 사람밖에 없다. 오직 페넬리아 언니.
“왜 이제 연락했어!”
통신구를 통해 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서러움과 울분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언니보다 늦은 사람이 치고 나가는 걸 볼 때마다 속이 터졌는데! 혹시 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 미안해. 도저히 시간이 없었어.
단호하지만 어딘가 기운 없는 목소리에 언니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진짜네?’
언니는 언제나처럼 무표정이었지만, 눈은 감정을 보여주는 창문이다.
그런 눈에는 피로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 강철 같은 언니가 피곤함을 눈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출근 당시만 해도 북적거렸던 집무실에는 나와 2과장밖에 남지 않았다.
다들 각자 업무도 있고, 연말이라 각 팀장들이 올리는 서류도 종합해야 하니 한 곳에 있기에 곤란하지. 애초에 자기 과 집무실 놔두고 부장 집무실에 모이는 게 이상한 거다.
“넌 왜 여기 있냐?”
그렇기에 가장 이상한 새끼는 2과장이라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저야 뭐, 해야 할 일부터 처리하고 쉬는 편이잖습니까.”
“아니, 그래서 왜 여기서 쉬냐고.”
이 새끼는 여기가 휴게실인 줄 알아.
하지만 내 투박에도 2과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낄낄거리며 수통을 입에 댈 뿐. 그 와중에 희미한 알코올 향이 나는 것이 수통 안에 술이라도 채운 것 같다.
그래, 그냥 마시다 뻗어라. 괜히 깨어있어서 귀찮게 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이번에도 1과장 울렸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생각이 끝나자마자 귀찮게 하기에 조용히 왼손을 들어올렸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고기에.
“이야.”
내 왼손을 보자마자 탄성을 내뱉는 2과장.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 왼손 전부에 반쪽 반지가 끼어진 모습이니까.
“멋지지?”
“멋진데 따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개새끼가.”
2과장의 반응에 픽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좋아서 이런 건 아니니 남이 꺼려해도 어쩔 수 없다.
차라리 반지가 짝수면 왼손, 오른손에 나눠 끼기라도 할 텐데, 노린 것처럼 5개라 이런 참사가 터졌다. 홀수면 어느 손에 더 많이 낄지 고민되잖아.
“그런데 생각보다 빠르십니다? 전 내년으로 넘어갈 줄 알았는데요.”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2과장에게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2과장은 내 공동 결혼 망언, 반지 일괄 구매 드립을 들은 당사자다. 당연히 나한테 고백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확실하게 파악했고.
그런데 설마 그 인원들한테 해가 지나기도 전에 답변을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우리 예측이 언제 맞는 거 봤냐.”
“그건 그렇네요.”
물론 나도 몰랐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행복하면 그만 아닙니까.”
다시 술을 들이킨 2과장은 아까의 낄낄거림과는 다른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급작스럽게 이루어진 감이 있기는 하지만, 부장님도 마음이 있으니 결정한 일이겠죠. 설령 정이 부족하더라도 앞으로 쌓아가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세상 따뜻해지는 축하와 조언의 말에 나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날짜 잡혔냐?”
“…예.”
급격히 내리 깔리는 시선에 비웃음을 날려줬다.
방금 발언은 다분히 계산적인 발언이었다. 이제 자신의 결혼이 임박했으니 급하게 날린 정전 요청. 이제 서로의 약점을 때리지 말고 조용히 지내자는 애원.
뻔하다. 이 새끼가 순수한 의도로 따뜻할 말을 할 새끼가 아니다. 2년이나 투닥였는데 그 정도도 모를까.
“그래, 축하한다.”
속은 뻔하지만 받아들였다. 싸움이 길어지면 다섯 번이나 결혼해야 하는 내가 손해니까. 차라리 여기서 마무리하는 게 낫다.
그리고 집무실에는 잠시 기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결혼은 인생의 무덤.’
곧 무덤에 들어갈 사람과 다섯 번 들어갈 사람이 모인 장소.
조용할만하네.
오늘 퇴근길은 조금 길었다. 같이 퇴근하자고 버둥거리는 1과장 때문에 마살로 가문 저택까지 가야 했으니.
그래도 가는 길이라 다행이지, 만약 저택이 정반대 방향이었다면 얼마나 걸렸을까. 제도는 제법 넓어서 도보로 돌아다니기에는 무리가 많다.
“내일은 출근도 같이 하는 거죠?”
“하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