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5)
제 25화
빙의자(원작 모름)의 생존법 – 2
발걸음을 옮길수록 희미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제과 동아리실은 멀쩡히 지나가다 황족이나 왕족을 마주칠 가여운 학생이 탄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외딴 곳에 위치했기에, 이 복도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면 제과 동아리에서 일이 터졌다는 것.
자리 비운지 얼마나 지났다고 일이 생겨. 오븐이 터져서 불이라도 났냐.
황급히 동아리실로 달려가 문을 열자, 다행히 화재 같은 참사가 반기지는 않았다. 단지 입에 불이라도 날 것처럼 치열한 논검을 벌이는 두 왕자가 보였다.
“시대를 뒤흔든 영웅들은 대부분이 기사였지. 검 한 자루로 대륙을 요동시킨 영웅담 정도는 들어봤을 텐데?”
“육체는 유한하지만 정신은 무한한 법. 그렇기에 정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마법이야 말로 진리다.”
저 새끼들 뭐하는 거지?
류티스와 라테르의 난데없는 아가리 파이팅을 확인하고, 다른 부원들을 빠르게 훑어봤다. 눈만 깜빡이는 루이제, 조용히 둘을 쳐다보는 에리히, 가만히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인테르, 쿠키를 굽고 있는 오븐만 쳐다보는 타니안.
흠, 아무래도 설명은 에리히한테 들어야겠네.
“에리히.”
슬쩍 에리히의 등 뒤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손이 어깨에 올려지고 나서야 내 접근을 알았는지, 움찔한 에리히가 나를 돌아봤다. 나름 무예도 익힌 녀석이 다른 사람 인기척에 이렇게 둔해서 쓰나.
“아, 형.”
“무슨 일이야?
“저거?”
저거라는 말과 함께 다시 둘을 바라보는 에리히의 시선에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넘쳐흘렀다. 그 감정의 이름이 한심함이라는 게 유감스러울 뿐이다. 진짜 쓸모없는 이유로 논검 중이겠구나.
이어진 에리히의 짧은 설명은 이러했다. 지금도 오븐을 보고 있는 타니안이 가볍게 던진 한마디, ‘마도구는 편리하군요.’ 라는 말이 시발점이 되었다.
성자 후보의 마법 우호적 발언에 마도강국인 유벤 연합왕국의 라테르는 흡족해했고, 기사왕국인 아르메인 왕국의 류티스가 언짢아했다. 그 이후가 지금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검 vs 마법 논란.
‘머저리들이.’
어차피 검이나 마법이나, 제대로 맞으면 죽는 건 매한가지다. 내가 방금 전까지 저런 것들을 지키려고 머리를 싸맨 것을 생각하니 억울해졌다. 너희는 여유가 남아 돌아서 그런 걸로 싸우는 거지…?
그 와중에 불을 지펴놓고 관심도 주지 않는 타니안이 원망스러웠다. 본인은 귀족 힐러라 천민 딜러들의 말싸움에는 관심도 없는 모양. 아니, 기사는 탱커라고 봐야하나? 아무튼 사악하기 짝이 없다. 불을 지르고 혼자만 몸을 빼다니.
어쨌든 하찮기 그지없는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적당히 말려야 할 차례다. 아르메인과 유벤의 관계는 썩 좋은 편이 아니고, 그 이유 중 하나가 기사 특화, 마법 특화로 갈린 국가 성향이니까. 지금은 논검이어도 방치하면 멱살잡이로 갈지도 모른다. 물론 왕족이라는 것들이 그 정도로 생각이 없을까 싶지만.
…그 정도 생각은 있지? 이 고문은 너희를 믿는다.
옆에 있는 책상을 두드려 시선을 집중시키려는 찰나, 가만히 둘의 논쟁을 보던 루이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검보다는 마법이 좋지 않을까?”
그 말에 류티스는 딱딱하게 굳고, 라테르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이없이 시작한 싸움은 허무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나저나 루이제는 마법파였구나. 처음 알았네.
짧은 시간 안에 ‘난 루이제 쿠키 맛없음’, ‘난 루이제와 달리 기사파임’을 화려하게 인증해버린 류티스의 말수는 급격히 줄었다. 솔직히 자업자득인 감이 없잖아 있지만, 저렇게 꼬였으면 측은할 정도다. 쿠키는 몰라도 루이제가 마법을 더 선호하는 건 나도 처음 알았거든.
위로라도 해줄까 하다가, 어차피 다음날이면 웃으면서 플래그 꽂을 놈이기에 무시했다. 난 너무 정이 많아서 탈이다. 불쌍한 모습 좀 봤다고 그동안 나를 고생시킨 것을 잠시 잊었지 않았는가.
“사람이 마음이 여리면 많이 피곤한 것 같습니다.”
– 술이라도 마신 거요?
내 푸념에 통신구 너머의 상대는 심드렁히 받아쳤다. 너무하네, 조금은 진심이었는데.
동아리 시간이 끝나고 숙소로 복귀하자마자 정보부장에게 연락을 걸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정보를 보내준 거에 감사도 표하고, 겸사겸사 정보부장의 첨언을 듣거나 추가 요청을 할 게 있었으니.
부장급 인사 중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과로에 시달리는 사람이라 큰 기대를 하고 연락한 것은 아니었다. 연락을 못 받으니 문자로 남겼다, 라는 명분을 위해 건 거였으니. 그런데 의외로 한번에 받았다. 마침 쉬는 시간이었나.
– 아무튼, 현재까지 파악한 정보는 감찰부장에게 보냈소. 추가적인 정보가 들어오면 바로 보내도록 할 테니 염려마시오.
“감사합니다. 이거 신세를 많이 지는 군요.”
– 무얼, 받은 만큼 돌려주는 거요. 계산은 철저히 해야지.
원활한 정보 공급을 위해 정보부장의 편의를 봐주기는 했다. 정보부장의 가문에서 무언가 구린 것이 보였는데, 적당히 묻어주기로 한 것. 어차피 황제도 별로 신경 쓰지 않더라고. 정보부장의 부패로 인한 피해보다 능력으로 인한 이득을 높게 평가했나 보지.
심지어 정보부장 당사자가 아닌 정보부장의 위세를 등에 업은 가문원들 작품이니 더욱 그랬고. 정보부장은 퇴근을 못해서 무언가 해 먹을 시간도 없다.
피곤한 듯 목을 좌우로 꺾는 정보부장. 우득거리는 소리가 통신구 너머로 들릴 정도였다. 정보부는 오늘도 갈려 나가는구나.
“이번에도 철야십니까?”
– 늘 있는 일이지. 새삼스럽지도 않소.
“안타까운 말이군요.”
– 아카데미에 있는 그대보다는 낫겠지.
갑자기 이렇게 공격한다고?
울컥하다가도 초췌한 정보부장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는 걸 보니 절로 측은해졌다. 얼굴은 창백하고 눈은 통신구로 봐도 충혈된 것이 보였다. 그래, 날 놀려서라도 정보부장의 스트레스가 풀리면 제국의 홍복이겠지.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지만, 사실 나도 감찰부장으로 지내면서 정말 미칠 것 같을 때마다 슬쩍 정보부장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낫지, 라는 심정으로.
물론 정보부장이 알면 격노할 일이니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은 소중한 비밀이다.
– 그러고보니 그 다섯 단체 말이오.
“아, 예.”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뒤로 젖히던 정보부장의 시선이 정면으로 향했다.
– 그중 썩어 빠진 시체들을 주의하시오. 놈들의 흔적이 점점 아카데미 방향으로 발견되고 있으니.
“예상을 벗어나지를 않는군요.”
– 그 정도로 우매한 것들이니 아직도 아펠스 부흥을 운운하는 거 아니겠소?
정보부장이 말하는 썩어 빠진 시체들은 아펠스 부흥군인 세번째 영광을 말하는 것이다. 아카데미가 위치한 곳은 과거 아펠스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니, 놈들이 아득바득 들러붙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어떻게 이리 예상한 수준으로 움직이는지 신기할 정도다.
‘시작은 그것들인가.’
다섯 단체 중 누가 영광스러운 선봉을 맡을지는 이걸로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다. 언제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누구인지 알게 된 것으로도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지.
– 놈들이 아카데미에 근접하면 토벌 병력이 파견될 예정이오.
“그렇습니까? 그거 안심이군요.”
믿고 있었다. 역시 제국은 혼자 단체를 막으라는 몰상식한 행위를 강요하는 미친 나라가 아니다.
지금이야 워낙 신출귀몰하게 움직여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게 전부지만, 아카데미가 목적지인 것을 확인했으니 덫을 설치하고 기다리면 그만. 그리고 이건 세번째 영광을 제외한 다른 악역 단체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제국 내 영토를 가로지르며 아카데미로 향한다면, 그건 제국의 병력이 개입하여 두들겨 팰 명분으로 충분하다. 아카데미에 제국 병력이 줄었다고 했지, 제국 전역에 상주하는 병력은 충분하니까. 제국이 미치지 않고서야 정말 아카데미 방위를 허술하게 하겠는가. 그냥 삼국 체면으로 적당히 빼준 거지.
나는 뭐, 토벌 병력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혹시라도 발생할 사단에 대비하고, 토벌 병력이 도착할 경우 현장 파악을 위해 토벌에 참가하면 그만이다. 애초에 그러라고 여기 있는 거니까.
– 토벌 병력은 감찰부장을 생각하여, 특별히 엄선해 보내겠다고 하셨소.
“…특무성 장관 각하께서 말씀하신 겁니까?”
– 그럼 누구겠소?
낮게 웃음을 흘리는 정보부장. 그 말을 끝으로 정보부장과의 연락을 종료했다.
특무성 장관이 엄선해서 나에게 보내는 병력이라… 대충 짐작이 간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만나겠네.
다행히 정보부장과의 정보 공유가 끝나자마자 세번째 영광이 아카데미 부수기에 돌입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칼 같은 복선 회수라도 숨 고를 시간은 주는 법이니까. 이런 당연한 것에도 안도해야 하는 나 자신이 조금은 원망스럽다.
아마 세번째 영광은 꼴에 추적에 혼동을 주겠다며 이리저리 꼬아서 이동할 것이다. 어차피 목적지가 어디인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놈들이 삽질을 할 수록 아카데미에 도달하는 시간은 길어지니 나쁜 소식은 아니다.
나는 가만히 아카데미에 대기하며 정보부장의 추가 정보를 전달 받고, 특무성이 파견한 병력이 올 때 마중만 나가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디펜스 난이도가 지옥불에서 하드나 노말 정도로는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평소보다는 조금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근길에 올랐고─
“루이제 영애. 제 말을 이해했나요?”
인적 드문 곳에서 루이제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니,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말로 얻어 맞는 것 같지만.
사소한 문제라면 루이제를 말로 패는 여학생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허리까지 기른 붉은색 머리와 한 손에 쥔 부채. 얼굴은 보이지 않아 긴가민가 하지만, 애초에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는 알 수 있으니까.
둘을 향해 걸어가자 루이제가 나를 발견했는지 활짝 웃었다. 붉은 머리의 여학생도 그런 루이제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봤다.
“어머, 칼 영식.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1년 만인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싱글벙글 제국 행정부의 일상]정보부장: 내가 쟤보다는 낫지.
칼: 내가 쟤보다는 낫지.
‘????: 아마 내일부터는 오후에 올라올 확률이 높습니다.’ – 어제 후기 中
그러나 높은 확률이 아닌 낮은 확률이 터져서 오전에 올라왔습니다. 역시 확률은 단 1%라도 방심할 수가 없군요.
의도한 건 아닙니다만, 어쩌다보니 오늘도 오전에 올라왔습니다… 상습적 후기 사기범이 된 것 같아 민망하네요.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