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51)
나에게 한 번 차인 마르게타도, 신분과 종족의 차이가 있는 마종공도, 만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루이제와 이리나도, 심지어 업무적으로 뭉친 1과장도 나를 좋아하지 않나.
‘4과장한테 잘해주기는 했지.’
마음을 비우고 객관적인 시야에서 판단했다. 4과장은 나를 좋아할 이유가 다섯보다 많으면 많았지, 절대 적지 않다.
전쟁 때문에 가족도 터전도 모든 걸 잃은 4과장을 수거해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줬다. 딱히 학대를 한 기억도 없다. 4과장이 일깨우지 못하고 방치하던 무에 대한 재능도 각성시켰다.
게다가 4과 부활을 위해 이래저래 밀어줘서 결국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지 않았나. 아직 작위 귀족이 아닌 일개 기사지만, 언젠가 작위를 받는 게 사실상 확정된 인재다.
‘좋아할만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잘해줬다. 흔한 구원 클리셰를 그대로 답습한 거 아닌가.
“적당히 잘났어야 했는데.”
이 죄 많은 남자. 한 명의 여인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홀렸구나. 내 죄가 깊고도 깊다.
“주인님. 저희는 상관없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 하시면 안돼요.”
“미안하다.”
소름 돋을 정도로 객관적인 판단.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 입장에서는 소름 돋는 나르시스트.
다행히 유리스는 나와 4과장의 관계를 알기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지만, 유리스 말처럼 다른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확실해?”
그래도 머리를 쓰다듬으며 되물었다. 유리스가 나에게 다이렉트로 말할 정도면 확신과 근거가 있는 거겠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유리스 또래면 딱 연애에 관심이 많을 때다. 그냥 친한 남녀가 붙어있기만 해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고. 단순히 상사-부하로서 친밀한 관계를 남녀 관계로 오해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저택에서는 주인님 빼고 다 알아요.”
“…그래.”
단호한 대답을 들으니 만약이라는 가능성조차 사라졌다.
그렇구나… 나만 몰랐구나… 내 눈치가 쓰레기였구나…
“다들 말은 안 했지만 불안했을 걸요? 주인님 손에 반지는 늘어나는데, 정작 페넬리아 언니는 보이지도 않고…”
한숨을 내쉬며 말하는 유리스. 마치 4과장이 한심하다는 듯한 말이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건 숨길 수 없었다.
무뚝뚝한 4과장이지만 4과 인원들, 저택 고용인들에게는 부드러웠다. 4과장 입장에서 그 사람들은 전쟁으로 잃었던 가족을 대신한 새로운 가족이니까.
유리스도 그런 4과장을 친언니처럼 따랐다. 그렇기에 유리스는 자기 언니가 짝사랑으로 마음 고생하는 걸, 심지어 그 짝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걸 염려했겠지.
“저기, 그러니까, 주인님… 페넬리아 언니도 좋은 사람이니…”
“알았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기에 유리스의 말을 끊었다. 아무리 내가 고용인들을 탈탈 터는 타입이 아니라지만, 주인에게 이런 말을 하려면 얼마나 용기를 냈겠나.
그리고 유리스가 4과장을 각별히 생각하는 만큼, 나도 4과장을 각별하게 생각한다. 내 첫 제자나 다름 없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4과를 다시 이끈 것이 4과장이다.
애초에 고아인 애를 하나부터 열까지 관리하고 키웠는데 어찌 정이 들지 않겠나.
키웠다고 하기에는 나보다 연상이지만.
“4과장의 고백이라면 언제든 진지하게 생각할게. 그게 오늘이든, 내일이든, 내년이든.”
그래, 그런 4과장의 고백이라면 나도 가볍게 여길 생각이 없다. 어떤 부하보다도 믿음직하고, 온갖 정이 든 사람. 싫어할 이유도, 밀어낼 이유도 딱히 없는 사람이다.
만약 내가 누구의 고백도 받지 않았다면, 하다못해 한 사람의 고백만 받았다면 모를까, 이미 다섯이나 되는 반지를 끼지 않았나.
여섯으로 늘어도 고작 황금공의 절반─
“…저, 주인님?”
“응?”
“언니라면 먼저 고백할 것 같지 않아요…”
부정적인 말이지만 마땅한 반박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언제나 엄격 근엄 진지하고 조용한 4과장. 그런 4과장이 먼저 고백하는 모습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결혼하는 모습도 상상하기 조금 힘들다.
그리고 먼저 고백할 정도의 용기가 있었으면 진작에 했겠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조금 풀이 죽은 것 같은 유리스의 머리를 토닥이며 달래줬다.
상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움직여야겠지. 몰랐다면 넘어갔겠지만, 4과장의 마음을 알았으니 모른 척할 수 없다.
***
급하게 주인님의 저택으로 향했다. 막 제도에 복귀한 상황이라 처리해야 할 일이 많지만, 주인님의 부름보다 우선이 될 수는 없다.
– 오랜만이야. 붉은 파도 이후로 처음인가?
“예, 부장님. 먼저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 괜찮아. 일 때문에 바쁘면 어쩔 수 없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는 주인님의 모습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주인님은 구금이라는 수모를 당하셨다. 주인님의 종으로서 면회도 가지 못하다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럼에도 주인님은 탓하지 않으셨다. 주인님은 내가 파견을 나갈 때면 먼저 연락을 하지 않으시니까. 혹시 중요한 순간에 통신구가 울리면 그만한 봉변도 없지 않나.
– 시간 있을 때 저택으로 와줄래?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봐야지.
“바로 가겠습니다.”
– 아니, 막 복귀했을 텐데 무리할 필요는 없어.
“바로 가겠습니다.”
– …그래.
그렇기에 주인님이 초대하자마자 바로 달려갔다.
처리할 일은 부대장에게 맡겼다. 부대장도 주인님의 초대라고 하니 빨리 가라고 등을 밀 정도였으니 믿고 맡길 수 있다.
“오, 빨리 왔네?”
그리고 황송하게도 주인님은 정문까지 나와 기다리고 계셨다.
경비병으로 근무 중인 테오와 한스가 인사를 건넸지만 솔직히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저 둘도 이해해줄 거라 믿는다. 주인님이 친히 반겨주는데 어찌 두근거리지 않겠나.
“들어가자. 유리스가 많이 보고 싶어했어. 아, 소피아도.”
“예, 부장님.”
주인님이 유리스를 언급하자 살짝 쓴웃음이 나왔다. 내가 연락을 받지 못하는 동안 애가 탔을 그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못하다.
“한 번도 연락을 못할 정도면 많이 바빴나 봐?”
“예. 친제국 부족이 급격히 줄어 보급이 수월하지 못했습니다. 겨울이 가까워지면서 활동도 편치 못했고요.”
“어쩔 수 없지. 북방의 겨울은 지독하니까.”
혀를 차는 주인님을 보니 죄를 지은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아니, 죄가 맞다. 주인님의 종으로서 주인님의 걱정을 해결해드려야 하는데, 아직도 북방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고 발목이 잡히고 있다.
“마음에 담아두지는 말고. 북방 전역을 뒤지는 건 제국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잖아.”
그런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주인님은 친히 내 어깨를 토닥이시며 위로해주셨다.
“감사합니다.”
그 자비로움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해 고개를 숙였지만, 내년에는 주인님 앞에 당당해지기 위해 노력하자.
이번에는 아까와 다른 의미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페넬리아. 혹시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
아무도 없는 응접실에 들어가자마자 주인님은 심장이 버틸 수 없는 말을 꺼내셨다.
‘페넬리아.’
손이 저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시다니, 예고도 없이 이러시면 나는 어쩌라고.
정말 어떤 예고도, 조짐도 없이 벌어진 일이다. 주인님이 누군가를 이름으로 부르는 건 정말 격렬히 화가 나셨을 때였는데.
하지만 지금의 주인님은 화는커녕 즐거운 듯 미소를 짓고 계셨다. 정문부터 응접실까지 계속.
– 부장님이 에르제베트라고 부를 때 얼마나 행복하던지.
문득 주인님과 연락하기 전, 에르제베트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정말이었다. 정말 주인님이 우리를 이름으로 부르시기 시작했다. 드디어 주인님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기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지금 부장님한테 고백한 사람이 몇인 줄 알아? 내가 다섯 번째야. 내 앞에 넷이나 있다고.
답답하다는 듯 말하던 에르제베트의 압박. 거기에 유리스의 애타던 연락.
하루 사이에 그런 일을 당하고도 눈치 채지 못한다면 지능의 문제다. 다행히 나는 지능적 문제는 없다.
심지어 내가 말을 꺼내지 않자 주인님이 직접 운을 띄우셨다. 부드럽게 이름을 속삭이며, 하고 싶은 말 없냐고 친히 물으셨다.
‘주인님…’
그 관대함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 얼마나 자비로운 분이신가.
그렇기에 꽁꽁 숨겨두었던 말, 평생 안고 가려고 했던 말을 꺼내야 한다. 주인님이 이렇게까지 배려해주시는데 아무 말도 없다면 그만한 불충이 없고, 무례일 수 없다.
“사실 예전부터 드리고 싶던 말이 있습니다.”
뜨거워지는 눈가를 애써 진정시키며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는 주인님이 보였다.
“감히 부장님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을 은혜를 내려주신 부장님께 감히 가져서는 안 될 감정을 가졌습니다.”
부끄럽다. 평생 숨겨야 할, 에르제베트에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비밀을 내 입으로 말하고 말았다.
추악한 비밀이다. 모든 걸 받은 자가, 더 이상 바라면 욕심인 자가 감히 은혜를 내린 분을 사모하다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과욕이지 않나.
그럼에도 주인님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셨다. 어떤 실망도 분노도 보이지 않으셨다.
“하지만 걱정은 말아주십시오.”
그런 주인님에게 빠르게 덧붙였다.
“저는 감히 부장님의 곁을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부장님의 곁에서 부장님을 지키겠습니다.”
설령 주인님을 마음에 품었더라도, 그 너머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감히 주제도 모르고 주인님의 부인이 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당연한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