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53)
애석하게도 마르게타의 입에서도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애초에 쉬웠으면 마르게타하고 상의하지도 않았겠지만.
“미안해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아닙니다. 저야말로 이런 상담을 해서 미안하죠.”
시무룩한 마르게타의 모습에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이건 마르게타에게 숨기는 거 없이 지내겠다는 다짐 때문에 말하는 거지, 해결 방안을 원해서 말한 게 아니니까.
애초에 연인한테 다른 여자 상담을 하는 것부터 미친 짓이다. 다행히 내 의중이 상담보다는 정보 공유라는 걸 알기에 마르게타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지만.
“그건 그렇고 당연히 고백받을 줄 알았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럽군요.”
“칼. 어디 가서 그렇게 말하면 오해 받아요.”
조금 막막한 심정에 투덜거리자 마르게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내가 말하고도 어감이 많이 이상하기는 했다. 당연히 고백받을 줄 알았다니, 미친 나르시스트 새끼.
“아, 칼하고 같은 방법도 나쁘지 않겠네요.”
“저처럼 말입니까?’
그 말에 빠르게 기억을 되짚었다.
광기에 먹혀 공동 결혼식 운운했던 치욕의 시기. 그 절망의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에리히의 팩트 폭력 덕분이었다.
그렇군. 역시 단도직입적인 말이 최고인─
“대신 조금 다르게 해야죠. 당사자인 칼이 페넬리아라는 분에게 다가가면 오히려 무서워할 테니까요.”
‘아.’
굉장히 그럴 듯한 말이라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하긴. 팩트 폭력도 얼굴을 봐야 할 수 있는 거지. 지금 4과장은 내가 지나가기만 해도 숨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내가 화를 낸다고 생각해서 사과만 할 수도 있고.
“평범하게 주변 사람들을 동원해요. 여러 사람이 근처에서 올바른 사랑, 칼에 대한 진심을 속삭이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요?”
“흐으으음…”
“자기 생각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면 되돌아보게 되거든요.”
마르게타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자기 생각이 남들과 다르면 남들을 두들겨 패고 직진하는 미치광이를 너무 많이 봤다.
내가 아니라 세상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미친 자기애. 심지어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신이 내린 능력.
“조언 고맙습니다, 마르.”
“후후, 별거 아니에요.”
그래도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 문제로 상담하는 걸 상냥하게 들어준 마르게타다. 그런 마르게타에게 ‘그거 별 효과 없을 듯.’ 이라고 하는 사람은 짐승의 두뇌를 가진 사람일 터.
게다가 마땅한 방법도 없으니 마르게타가 말한 대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제발 4과장이 세상과 싸우는 개척자만 아니기를.
4과장과 가장 가까운 주변인에게 연락을 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얘만한 애가 없다. 4과장이 파견 때문에 이리저리 움직이더라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영혼의 듀오.
– 묵광대 부대장, 주세페 디고가 감찰부장님께 인사드립니다.
전 4과 수석 팀장, 현 묵광대 부대장. 4과장과 떨어져 지내면 그게 더 이상한 녀석.
“어, 그래.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 부장님께서 염려해주신 덕에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네.”
여전히 깍듯한 모습이기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막 파견을 끝내고 돌아왔을 텐데 옛날 상관이 연락이나 하고.
그러니 빠르게 용건만 말하고 끝내자. 이미 연락을 건 순간 민폐지만, 대화를 오래 끌면 더더욱 민폐니까.
“부대장.”
– 예, 감찰부장님.
“4과장이 조금 아픈 것 같은데.”
그 말에 부대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게─”
그리고 빠르게 이어지는 상황 설명. 4과장의 명예를 생각해 진동 끝 방전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희가 좀 도와줬으면 해서.”
– 맡겨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믿음직하네.”
사명감으로 불타는 대답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흡족하다. 역시 이름이 변했어도 4과는 4과다. 여전히 끈끈한 우정을 가지고 있지 않나.
– 꼭 대장님이 부장님께 고백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얘도 방향이 뭔가 이상하지만, 딱히 나쁜 방향은 아니기에 말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고백하게 만들겠다니. 대체 어쩌려고.
4과장한테 상소문이라도 쓰려고?
부대장에게 비밀 지령을 내린 지도 며칠이 지났다. 물론 즉각적인 결과를 원하고 내린 지령은 아니기에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최소 년 단위로 뒤틀렸을 4과장의 애정을 고작 며칠 사이에 고치는 건 신만이 가능하지 않겠나. 그저 옆에서 조금씩 조금씩, 가랑비에 옷 젖듯이 변화를 주면 되는 거다.
그래도 이왕이면 3월 전까지는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만약 3월 개학식을 넘어가 버리면 여름 방학이 돼서야 4과장을 볼 수 있으니.
“그러니 너도 4과장 보면 따뜻하게 대해주고.”
“전 원래 따뜻했어요.”
섭섭하다는 듯 흥흥거리는 1과장의 모습에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1과장과 4과장이 친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1과장이 따뜻했냐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솔직히 다른 사람이 보면 조용한 4과장을 괴롭히고 귀찮게 하는 걸로 보여서.
‘얘를 믿어도 되나.’
걱정된다. 오히려 4과장의 상태만 악화시키는 게 아닐까.
“아무튼 걱정 마세요! 페넬리아가 부장님하고 이어져야 막내 탈출이잖아요!”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도리어 믿음이 생기고 말았다. 그래, 1과장의 따뜻함이 아니라 욕심을 믿자.
“막내 같은 거 없어.”
물론 작은 오해는 수정하고. 부인 사이에 언니, 막내가 어디 있어. 그냥 들어온 순서 차이인 거지.
그런 마음을 담아 못된 말실수를 한 입술을 잡아당기니 1과장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의를 줬으니 두 번 실수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 부장님. 아까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해.”
입술을 놓자마자 몇 걸음 물러난 1과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금 장관님 평가 쓰시는 거 맞죠?”
“응.”
당연한 질문이기에 당연한 대답으로 돌려줬다.
“내가 평가할 사람이 장관 각하밖에 더 있냐.”
연말마다 이루어지는 인사 평가. 직속 부하가 직속 상관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이 연말 인사 평가는 내무성의 인사부로 향하고, 평가를 종합한 인사부는 최종적으로 황제에게 올린다. 현장에서 절절하게 구르는 공무원들의 의견이 황제에게 꽂히는 몇 안되는 기회.
“아무리 봐도 장관님 평가가 아닌데요.”
뚱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1과장은 한창 평가를 끄적이던 종이를 낚아챘다.
아니, 요즘은 부하가 상사 물건을 약탈하네. 말세다 말세.
“현 재무성 장관 데베르 브리아드 오브 블로첸은 공명정대하며 언제나 솔선수범하고, 아무리 직위가 낮은 부하의 말이라도 경청하여 효율적인 방안을 결정한다…”
내가 작성한 평가를 읽던 1과장은 시선을 도로 나에게 돌렸다.
“이거 누구예요? 이런 장관 있으면 같이 모셔요.”
“지금 장관실에 있잖아.”
약탈당한 평가지를 도로 회수하며 말했다.
나도 안다. 내가 쓴 평가는 동화 속에나 존재할 환상의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그래도 어쩌겠나. 내 진심을 담아 장관을 평가하면 온갖 욕만 난무할 텐데.
“사실대로 썼다가 장관이 잘리면 어떡해.”
그럼 시발. 그 자리를 내가 채울 미래가 뻔하잖아.
그렇지 않아도 나를 승진 시킬 기회를 노리는 황태자고, 어떻게든 은퇴할 각을 잡는 게 장관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장관을 욕하는 평가를 올리면 놓치지 않고 기회를 낚아채겠지.
물론 장관은 은퇴가 아니라 인사 이동으로 끝나겠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장관 업무보다는 그게 행복할 거다.
“허위 평가하는 건 괜찮고요?”
“이렇게 허위 보고 올리면 언젠가는 잘리지 않을까?”
그 말에 1과장이 굉장히 딱하다는 눈빛으로 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꿈꾸는 건 자유잖아.
***
연말에 노는 부서가 어디 있겠냐만, 인사부는 1년 중에 연말이 가장 바쁜 부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연말은 각 부서 및 관료들의 실적과 평가가 모이고, 혹여 자신에게 부정적인 평가가 붙지 않았나 알아보기 위한 청탁, 황제 폐하께 최종적으로 올린 보고서에 긍정적인 첨언 하나를 붙이기 위한 로비가 난무하는 시기니.
비록 인사부가 관료들의 인사 명령을 주도하는 건 아니지만, 합법적으로 황제 폐하의 결정에 조언을 할 수 있는 부서니까. 전장에서도 현장의 지휘관보다 중앙의 참모 발언권이 더 강한 법 아닌가.
‘지옥이 있다면 여기인가.’
하지만 권한과 업무 강도가 비례하는 것이 제국 행정부. 가끔은 권한을 뺏어도 좋으니 업무 좀 줄여줬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장관까지 승진할 욕심은 없으니 제발.
그리고 행정부 관료들의 평가를 보다 보면 내가 인간 세상에 사는 건지, 짐승 새끼들이 모이는 사육장에서 지내는 건지 헷갈린다.
조금이라도 상사의 흠이 보이면 온갖 수식어를 붙이며 부풀린다. 그럴수록 상사가 물러나고 자신이 승진할 기회가 생기기에. 물론 모든 관료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위를 향한 욕심이 있는 관료는 소수여도 시끄러운 법이다.
추악한 인간의 면모를 여과 없이 볼 수 있는 자리.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씁쓸하기 그지 없다.
“부장님. 감찰부에서 보낸 자료입니다.”
“아, 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