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56)
“4과장입니다.”
“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느슨한 연말에 충족감을 채워주는 소식이다.
4과장이 스스로 찾아오다니. 묵광대의 분투가 성과를 이루어냈구나.
***
4과의 단결을 이렇게 알고 싶지는 않았다. 한 명이 사라지면 한 명이 나타나고, 아침이 되면 어제와는 다른 인물이 찾아온다.
“오, 대장님. 일어나셨습니까?”
방을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인사하는 2조장.
“좋은 아침입니다. 이야, 마침 날씨도 좋군요.”
분명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중임에도 좋은 날씨 운운하고 있다.
어지럽다. 부대장이 자칭 총의를 제출한 이후로는 만나는 대원마다 족족 이러고 있다. 단순한 안부 인사를 하는 건 같은 가족끼리 당연한 행동이지만─
“요즘은 새하얀 눈을 맞으며 거리를 걷는 오붓한 데이트가 유행한다고 합니다.”
안부 인사로 끝나지 않고 이상하게 잇는 것이 문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침 인사가 데이트까지 이어지는 건가. 문장의 연결성을 생각하지 않고 냅다 지르기만 하면 이런 끔찍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건가 싶다.
“…특이한 유행이로군.”
“하하, 원래 유행이 그렇지요. 평범하지 않기에 유행이라고 부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싱글벙글 웃는 2조장의 모습에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건 2조장 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니 2조장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것도 없다.
“그렇지. 대장님도 유행을 즐겨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마침 좋은 상대도 있는데.”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2조장은 과장되게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
“아아-니! 기껏 조언도 드렸는데!”
물론 뻔한 수작이기에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무시했다. 뒤에서 2조장이 시끄럽게 소리치는 것이 들렸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너무 노골적이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름의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설득했으면서, 이제는 눈만 마주치면 억지를 부리고 있다.
“날씨가 춥군요. 누가 연애라도 하는 걸 보면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스튜가 짭니다. 이럴 때 달콤한 모습을 보면 혀가 대리 만족이라도 하지 않을까요?”
“요즘 월급을 쓰지 못해서 쌓이기만 합니다. 누가 결혼하면 축의금이라도 낼 텐데.”
“전부 연애 못하는 것들만 모였잖아! 나 묵광대 안 해!”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보답을 위한 보답은 안된다고, 보답은 자기 만족이 아닌 상대를 위해서 해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건가.
반박할 수 없는 말로 목을 조이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억지를 부리는 괴물들만 남아버렸다. 남들이 보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할 괴물들만.
사실 왜 저러는지는 안다. 내가 아직도 움직이지 않고 버티니 답답해서 저러는 거겠지. 이성이 통하지 않으니 감정, 혹은 광기에 호소하는 거다.
‘…나라고 이러고 싶은 건 아닌데.’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대장이 부하들이 미쳐가는 이유를 알면서도 버티겠나. 어떤 사람이 가족의 염원을 알고 모른 척하겠나.
단지 내가 겁을 먹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거다. 대원들의 무자비한 공세로 머리로는 길을 찾았지만, 차마 발을 내밀 수가 없어 우물쭈물하는 거다.
‘이제 와서 무슨 염치로.’
이미 나는 기회를 차버렸다. 주인님이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하셨을 때, 부드럽게 껴안아 주셨을 때. 그때 모든 걸 말했어야 했다.
홀로 간직한 뒤틀린 숭배가 아니라 지금 생각하는 올바른 보답과 충정을 말해야 했다. 주인님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다고, 그저 멀리 떨어져서 지키는 단계가 아니라 주인님의 시선과 손길을 받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속였다. 감히 주인님과 나 사이에 선을 그었다. 주인님의 뜻대로 따라야 할 내가, 사실은 에르제베트처럼 주인님에게 애정을 표현하고 싶은 내가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러니 나는 자격이 없다. 아무리 대원들이 등을 밀어도 나아갈 수 없다. 염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감히 그럴 수 없다.
…라고 생각했다.
– 사랑에 염치나 체면은 쓸모 없는 거야.
“그게 무슨.”
에르제베트가 폭탄 선언을 하기 전까지는.
안부 인사라며 에르제베트가 연락을 걸었을 때,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이미 부장님과 인연을 맺은 에르제베트라면 도움이 되는 조언을 줄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슬쩍 물었다. 나는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맞겠냐고.
– 나 진짜 부장님한테 울며 불며 매달렸어. 염치 같은 거 따졌으면 그런 거 못했지.
그러자 어딘가 해탈한 눈빛으로 말하는 에르제베트의 모습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그 에르제베트가 울면서 매달리다니. 대체 북방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페넬리아. 잘 들어. 수치는 잠깐이지만 사랑은 영원한 거야.
그래도 그 해탈 속에서 굳은 신념이 보였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굳건한 신념이.
– 그러니 후회하지 말고 들이박아. 잠깐 부끄럽고 말래, 평생 후회하면서 살래?
“그렇지만, 내가 무슨 자격으로─”
– 아니, 그러니까 그 자격이니 뭐니를 신경 쓰지 말라고. 내 말 들은 거 맞아?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가 높아지자 조용히 시선을 내리 깔았다.
– …그래도 부끄러운 건 짧은 게 최고지.
그런 내 모습에 화가 누그러들었는지, 조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에르제베트의 조언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 그러면 부끄러움은 잠깐이고, 나머지는 부장님이 알아서 해주실 거야.
“에, 에르제베트!”
절로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았다. 확실히 효과가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하지 않나.
아니, 자칫 잘못하면 효과도 못 보고 주인님에게 이상한 녀석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상상만 해도 죽고 싶어지는 상황.
– 싫으면 혼자 다 하든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나보다 앞서 나간 에르제베트가 주는 조언이니까.
잠깐의 수치… 평생의 사랑… 한 번만 부끄러우면 나머지는 주인님이…
좋아. 하자.
***
차장에게 4과장을 부장실로 보내달라고 했다.
4과장은 내 마음 속에서 여전히 감찰부의 일원. 정 없이 응접실에서 만나는 것보다는 부장실에서 보는 게 마음이 편하다.
“어서 와, 페넬리아.”
“그, 예, 부, 부장님을 뵙습니다.”
그리고 허둥거리는 4과장의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볼까 봐 부른 것도 있다.
직접 찾아온 것을 보면 저번처럼 도망가지는 않겠다만, 진동 모드처럼 떠는 건 억누를 수 없겠지. 그건 마종공도 못한 위업이다.
“밖은 꽤 춥지? 차라도 마실래?”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목도리를 하고 들어온 4과장에게 권유하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의외다. 4과장은 평소에 더위나 추위에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런 4과장이 목도리 같은 아기자기한 방한 용품을 착용할 줄은 몰랐는데.
색다른 모습에 픽 웃음을 흘리며 선반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면 얼마 전까지 북방의 저세상 추위를 맛보고 오지 않았나. 그 여파가 아직도 이어지는 걸 수도 있다.
“유리스가 언제 오냐고 성화던데.”
등을 돌린 상태에서 슬쩍 입을 열었다.
분명 4과장이 내 품에서 탈출할 때는 유리스의 이름을 팔았다. 그런데 정작 유리스는 4과장을 보지 못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죄, 죄송합니다. 급한 일, 이… 생겨서…”
“급한 것 같긴 하더라.”
그렇게 말하자 더듬거리면서도 말을 잇던 4과장이 꾹 입을 다물었다.
아쉽다. 지금 4과장을 보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봤을 텐데. 앞으로 다기는 선반이 아니라 그냥 탁자에 둘까.
“뭐, 다음에 보… 면…”
다기를 챙기고 몸을 돌리자, 이번에는 내 입이 다물어지고 말았다.
‘뭐지.’
내 눈을 의심했다. 눈 앞의 광경을 인식하는데 딜레이가 생기고 말았다.
어느새 목도리를 푼 4과장. 하지만 목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걸려있다. 검은색 가죽으로 된 무언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초커 같기도 한 괴물체.
그러나 초커가 아니다. 초커에는 줄 같은 게 달려있지 않다.
‘…목줄?’
시발 뭐지. 꿈인가?
아니면 절대 연인이 되지 않겠다는 시위인가?
“주, 주인님.”
그런 와중에 4과장이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목줄의 손잡이를 건넸다.
뭐.
뭔데.
아니, 그걸 왜 나한테 주는데.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4과장을 보니, 4과장은 심호흡을 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모든 걸 주인님에게 맡기겠습니다.”
갑자기 진지하게 말하지 말라고.
왜 이 타이밍에 그러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