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58)
다행히 안색도 밝은 것이 무리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많이 호전되었다고 하던데, 진짜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네.
“안녕, 세라. 잘 지냈어?”
“네. 기사님도 잘 지내셨나요?”
키득거리는 세라의 말에 머쓱하게 웃고 말았다. 창피하게 8년 전 일을 아직까지.
“기사는 무슨. 아직 갈 길이 먼 학생인데.”
“그래? 이상하네. 어머니 말씀은 다르던데?”
그 말에 다시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유모가 세라에게 이상한 말을 한 것 같으니.
영지에 돌아온 이후로 가문의 기사들과 몇 번 대련을 한 적이 있다. 대련에서 연승을 하기는 했지만 기사들 입장에서 도련님을 상대로 전력을 낼 수 있겠나. 당연히 접대 대련이겠지.
하지만 유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지 대단하다고 어찌나 칭찬을 해주던지. 내가 다 민망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얘기를 세라한테도 한 모양이고.
“유모가 나를 좋게 봐주잖아. 조금 과장해서 말했나 보지.”
“기사님이 그렇게 말하면 믿어야지.”
“제발.”
“후후, 알았어.”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는 세라를 향해 마주 미소를 보였다.
조금, 아주 조금 민망하기는 하지만 세라가 즐겁다면 괜찮다. 저택, 그것도 자기 방에 갇혀서 쓸쓸하게 지내는 세라니까. 이렇게라도 웃어야지.
“그런데 뭘 그리 많이 가져왔어?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상자에 눈이 간 세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정말 빈손으로 왔으면 토라질 미래가 뻔한데.
“곧 생일이잖아. 이것저것 준비했지.”
상자를 하나 둘 열기 시작하자 세라의 눈이 반짝였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세라지만, 이렇게 옷이나 보석을 모으는 걸로 대리 만족을 하는 편이니.
마지막으로 케이크까지 보이자 다시 키득거렸다.
“나 단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알지. 그래서 최대한 덜 달게 만들었어.”
그 말에 상자를 톡톡 건드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만들었다고?”
“응. 제과 동아리라서 이런 기술만 늘었어.”
잠시 말이 없던 세라는 손가락으로 케이크 위에 얹어진 크림을 쿡 찔렀다.
“…응. 그러네. 맛있다.”
그리고 크림을 맛 본 세라는 밝게 웃었다.
다행히 입맛에 맞는 것 같다.
케이크를 담은 상자에 포크도 동봉하는 것. 판매자 입장에서는 자그마한 수고지만, 구매자 입장에서는 마음 편해지는 배려나 다름없다. 박람회 때도 포크, 나이프, 휴지 같은 걸 챙겨줬더니 폭발적인 반응이 있지 않았나.
사실 파는 사람이 황족에 왕족이면 쓰레기를 팔아도 폭발적이었을 것 같지만.
“맛있었어. 한 번에 먹기는 아깝다.”
포크로 조금씩 케이크를 잘라 먹던 세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까울 건 없는데. 케이크 정도야 제과 동아리에서는 일상적으로 만들던 거다. 세라가 마음에 들어한다면 몇 번이고 만들 수 있다.
“영지에 있는 동안에는 계속 만들어줄게.”
“후후, 그래? 그러다 살 찌면 곤란한데.”
여전히 미소를 지은 세라는 케이크를 슬쩍 옆으로 치웠다.
그리고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세라는 입이 짧으니까. 안타깝게도 병 때문에 고생하면서 그런지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한다.
지금도 얼마 먹지 못하고 포크를 내려 놓고, 계속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좋다는 대답을 피하지 않나.
‘아직 여파는 있구나.’
살짝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병마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하긴. 세라를 평생 괴롭힌 병인데 아무런 흔적도 없는 건 욕심이겠지. 그나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으로도 어딘가.
“전 괜찮아요, 기사님. 설마 레이디를 살 찌우고 싶은 건 아니죠?”
그런 속내를 읽었는지 세라가 내 손을 잡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이상하게 옛날부터 세라 앞에서는 숨길 수 있는 게 없었다. 혹시 상대의 생각을 읽는 마법을 배웠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부끄럽다. 위로를 받아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세라인데, 아픈 친구한테서 위로나 듣는 입장이라니. 크라시우스의 이름이 울겠어.
“너는 좀 쪄야 돼.”
애써 웃으며 입을 열자 세라는 충격을 받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에리히는 그런 취향? 날 찌워서 잡아 먹으려고?”
과장스럽게 가슴께를 가리며 몸을 웅크리는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게 사람을 순식간에 식인종으로 만들어 버리네.
“들켰네. 앞으로 세 배는 찌울 생각이었는데.”
“기사님이 아니라 못된 악마였어.”
그 말을 끝으로 나도 세라도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씁쓸했던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
세라는 온갖 악조건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평생을 저택에서 지낸 영애. 그나마 바깥 소식을 알 수 있는 방법은 타인을 통해 듣는 것뿐. 그러나 귀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저택에 있는 사용인들과는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 상황. 어린 나이부터 세라는 세상과 단절되기에 충분한 조건 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찾아오면 붙잡고 놔주지를 않는다. 가족을 제외하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는 나밖에 없으니.
“아카데미는 어지간한 도시보다 크다고 하던데. 진짜야?”
“아카데미가 도시보다 큰 건 아니고, 그냥 아카데미 중심으로 도시 하나가 만들어졌어.”
“그렇구나.”
물론 그게 싫은 건 아니다. 친구의 쓸쓸함을 외면할 정도로 내 인성이 바닥을 기는 것도 아니고, 세라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애초에 세라를 만나러 갈 때는 오래 붙잡힐 걸 감안하고 가는 거니 뭐.
“물론 아카데미 자체도 크긴 하지. 제국 최고의 교육 기관이잖아.”
그 말에 세라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롭겠지. 어릴 때부터 아카데미에 관심이 많았으니까.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걸 좋아하는 세라 입장에서 아카데미는 이상향이나 다름없을 터.
단지 귀족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을 이상향이라 여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형한테도 이상향이었지만 그건 경우가 좀 다르고.
“아, 맞다. 이번 입학생들은 독특하다고 들었어.”
뒤늦게 생각이 났는지 앞뒤 맥락을 끊고 튀어나온 말.
그리고 그 독특한 입학생들이 누군지 잠시 고민하고 말았다. 누가 들어도 그 녀석들을 말하는 건데, 너무 붙어 다녀서 그런지 가끔은 걔네 신분도 까먹어서.
“독특하지. 타국 왕자에다가 차기 성자도 있으니까. 앞으로도 그런 입학생들은 보기 힘들 거야.”
“신기하네. 타국 학생이 있다고는 들었지만 왕족도 오는구나.”
“정신 나간 것들이라 그래.”
뇌를 거치지 않은 본능적인 대답에 세라가 당황한 듯 눈만 깜빡였다.
이런, 적당히 포장이라도 해야 하는데 너무 있는 그대로 얘기해버렸네. 괜히 세라가 놀라면 곤란한데.
“친해서 그래. 같은 동아리거든.”
뭔가 변명하는 것 같은 말이지만 사실이다. 같은 동아리에서 지내다 보니 이제는 높으신 분이 아니라 왜 높은 곳에 있는지 모를 또라이로만 보인다.
“그럼 에리히, 인맥으로 왕자님이 생긴 거야?”
“그걸 인맥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렇지.”
“대단한 기사님이네. 멋져.”
자꾸 잊을만하면 훅 치고 들어오는 기사님 공격에 정신이 아찔하다. 빙긋 웃으며 박수까지 치는 게 확실히 놀리는 거니까.
8년 전의 내가 원망스럽다. 왜 그런 말을 해서 평생의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버린 건지. 아니, 애초에 9살이 그런 사리분별이 가능하겠냐만.
“그런데 에리히의 친구면─ 나도 좀 보고 싶은데.”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며 말하는 세라의 모습에 지금쯤 고국에 있을 세 명의 얼굴이 떠올랐다.
걔네가 권위적인 애들은 아니니 세라와 만나도 문제가 없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만날 방법이 없다. 어이가 없네. 제국에 없어도 될 때는 남더니, 세라가 보고 싶어할 때에 국경 너머로 튀어버렸다. 이 도움 안 되는 것들.
“내년 여름 방학 때, 기회가 되면 데려올게. 다들 신기한 애들이라 재밌을 거야.”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적절한 답을 내뱉었다. 이미 귀국한 놈들을 부를 수는 없으니 내년을 노려야지.
“됐어. 갑자기 그런 분들이 손님으로 오면 사용인들이 놀래.”
그리고 지극히 상식적인 거절에 반성하고 말았다.
내가 미쳤었다. 하도 그것들과 한 묶음으로 다니다 보니 정신이 나갔었다. 하마터면 아직 안정이 필요한 세라에게 정신적 타격을 줄 뻔했어.
“어차피 직접 볼 수 있을 테니까.”
?
순간 머리가 멈추고 말았다. 직접 보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로 했어.”
???
“…아카데미?”
“응.”
해맑은 대답에 입이 닫히고 말았다. 갑자기 아카데미 입학이라니. 그건 단순한 외출 수준이 아니다. 병세가 그 정도로 호전됐다고?
‘유모가 무작정 보낼 사람은 아닌데.’
순간 말려야 하나 싶었지만, 세라를 끔찍이 아끼는 유모다. 내가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았을 리 없고 위험하다면 진작에 뜯어말렸을 터.
아니,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 맞나? 괜히 낯선 곳에서 생활했다가 도로 악화되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