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60)
마르게타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슬쩍 주변을 살폈다.
평범한 식사 자리,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대기 중인 사용인들. 그러나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같이 식사를 해야 할 루이제와 이리나가 없다는 것. 늘 있던 사람이 없으니까 확실히 어색하기는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루이제의 부친인 아티니 남작, 이리나의 부친인 플란벨 백작이 제도에 올라왔으니까. 아비 입장에서 근처에 있는 딸이 인사도 오지 않으면 얼마나 섭섭하겠나. 애초에 그 둘이 근처에 있는 가족을 무시할 정도로 냉혈한도 아니고.
“벌써 쓸쓸한 건가요?”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마르게타도 작게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조금 민망하네.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었나.
“아무래도 그렇죠. 쓰던 물건 하나만 사라져도 낯선데,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물론 딱히 부정할 일은 아니니 솔직하게 말했다. 심지어 그 사람도 그냥저냥 아는 지인이 아니라 반/지를 공유한 연인이지 않나. 아니라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 말, 신년하례식 때 꼭 하세요. 둘 다 좋아할 거예요.”
“제가 잊으면 마르가 대신 해주십쇼.”
재미없는 농담이지만 그럼에도 마르게타는 웃어줬다. 역시 농담은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신년하례식이라.’
그런 마르게타를 보다가 신년하례식 쪽으로 생각이 빠졌다. 가족의 품으로 간 루이제와 이리나는 인사만 하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신년하례식에 참가하기로 했다.
‘재미있는 행사는 아닌데.’
신년하례식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말리고 싶었다. 모든 작위 귀족이 모이고 황제가 등장하는 자리이니 웅장하고 화려하기는 하지만, 꽃다운 영애들이 즐기기에는 영. 오죽하면 작위 귀족을 따라 제도에 상경한 자제들은 따로 모여서 연회를 하겠나. 연회를 즐기고 싶다면 거기로 가는 걸 추천하고 싶었다.
마르게타가 신년하례식 참가를 강력히 주장해서 실패했지만.
“저와 마종공 각하가 칼과 이어지는 건 가만히 둬도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어요. 관료인 두 분도 마찬가지고요. 그 분들은 제도에서 활동하니까요.”
“하지만 루이제 영애와 이리나 영애는 아카데미에 있는지라 소문에 제한이 있어요. 물론 학생들이 가문에 알린다면 그 가문들을 통해 퍼지긴 하겠지만, 직접 보이는 것에 비하면 덜하죠.”
“그러니 지금이 기회예요. 작위 귀족들 앞에서 당당히 과시할 수 있는 기회.”
며칠 전, 식사 자리에서 마르게타가 진지하게 주장했던 참석의 필요성. 그 설득력 넘치는 말에 루이제도 이리나도 홀린 듯이 경청했었다.
정말 틀린 말은 아니다. 게다가 냉정히 말하면 평범한 남작가인 나이어드, 중앙 정계보다는 상계에 집중하는 요룬은 사교계를 주도하는 힘을 갖추지 못했다. 가만히 아카데미에만 있다면 둘이 나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는 걸 효과적으로 알릴 수 없다.
“사실 완벽하게 하려면 신년하례식은 물론, 자제들이 개최하는 연회에도 참석하는 게 좋은데…”
“…그건 고려해보겠습니다. 우선 신년하례식부터 끝내죠”
게다가 그런 말까지 들으니 무슨 변론을 하겠나. ‘저 둘이 신년하례식에 오지 않으면 네가 무조건 애들 모임에 가야 한다.’ 라는 압박이었는데.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칼보다는 못하지만 저도 참석한 경험은 있으니까요. 제가 열심히 도울게요.”
마지막으로 마르게타도 참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니 도저히 말릴 명분이 없었다.
정말 즐거운 신년하례식이 될 것 같다…
루이제와 이리나는 상경한 부친 곁으로 갔다. 마르게타도 철혈공이 제도로 오자마자 그쪽으로 갔다. 쓸쓸하지만 신년하례식에 참석하려면 혈연으로 얽힌 작위 귀족과 동행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분산이다. 내가 셋과 사실상 약혼 관계기는 하지만, 아직 공식적인 가족이 된 것은 아니니까.
그렇기에 나는 단기필마로 신년하례식에 참석해야 한다. 이상하다. 손가락은 기이할 정도로 풍족한데 정작 내 옆에는 아무도 없네…
‘빼버릴까.’
한 손에 반(지) 3개, 도합 6개의 찬란한 컬렉션. 가슴이 따가울 정도로 반짝이는 컬렉션을 보자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반지는 꾸역꾸역 낀 주제에 파트너 없이 입장한다면 사람들이 얼마나 미친놈처럼 보겠나. 여자들을 어망으로 끌어모으면서 누구 하나 고르지 않는 또라이로 생각하겠지. 아니, 솔직히 이미 미친놈으로 이름 날리는 중이겠지만, 내가 모르는 곳에서 속삭이는 것과 직접 시선을 받는 건 다르지 않나.
물론 어디까지나 스쳐 지나간 생각이다. 시선이 거슬린다고 반지를 빼면 미친놈이 아니라 개새끼니까.
‘언제는 파트너가 있었나.’
싱숭생숭하던 마음을 진정시키며 외투를 걸쳤다. 그래,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혼자 입장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배부른 고민이냐.
어차피 내년부터면 파트너가 하나 둘 늘어날 테고, 최종적으로는 여섯 명과 함께 입장해야 한다.
‘…여섯.’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열두 명 전설인 황금공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이미 수십 년을 열두 명과 함께 입장한 사람이 있어서 여섯 정도는 애교지. 앞으로 하루에 세 번씩 황금공 방향으로 절이라도 해야겠다.
평소라면 황제의 부름을 받은 신하나 공무원 중에서도 꽤 고위직에 위치한 자들만이 입장할 수 있는 황궁. 그런 황궁도 신년하례식 기간 동안에는 북적거리는 연회장으로 변모한다.
황실의 안전을 위해 황궁의 모든 구역이 개방되는 건 아니지만, 일부만 개방해도 충분할 정도로 드넓은 영역을 자랑하는 것이 황궁이다. 황궁의 규모가 곧 천명과 황권의 건재를 상징하니 당연한 일이지만.
“고생이 많으십니다.”
“별 말씀을. 이럴 때가 아니면 저희가 언제 움직이겠습니까.”
아무튼 평소에 비해 출입 인원이 급격히 상승한다는 건, 평소 출입자 명단을 관리하던 사람이 죽어나간다는 것.
마침 황궁 경비를 담당하는 황실 기사단장이 보이기에 안부 인사를 건네자 기사단장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겨줬다. 안타깝게도 긍정적으로 말하는 입과 달리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그래도 기사단장 말처럼 이럴 때가 아니면 황실 기사단이 활약할 일이 없다. 황제를 지키는 최후의 방패로서 황궁에 박혀있는 기사단. 강제로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기사단 입장에서 귀족들 앞에 나타나 권한을 과시하지 않으면 사교계에서 완전히 잊히게 된다. 사람은… 잊혀졌을 때 죽는다…
“자, 어서 들어가시지요.”
대충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본 기사단장이 슬쩍 몸을 비키며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옆을 돌아보고 말았다. 황실 기사단에게 잡혀 하나하나 검문을 받고 있는 귀족들의 행렬. 바로 옆에 긴 줄이 있는데 프리패스로 들어가기에는 조금 눈치가 보인다. 난 그냥 인사 먼저 하려고 온 건데.
“평소에도 입장 권한이 있는 분들과 예외적으로 입장하는 분들의 절차가 같을 수는 없죠. 오히려 저 분들 입장에서도 검문을 받는 사람이 적은 게 좋을 겁니다.”
내 시선을 따라 행렬을 보던 기사단장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사람 많으니 간략하게 해도 상관없는 사람은 미련 없이 통과시키겠다는 말.
볼 때마다 신기하다. 기사단장이면 피도 눈물도 없는 원칙주의자 이미지가 강한데, 정작 제국 기사들의 정점인 황실 기사단장은 유도리 넘치는 가라 단장이다. 도대체 어떻게 저 자리까지 오른 거지? 오히려 유도리 있는 면이 고평가 받아서 단장이 된 건가?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물론 귀찮은 절차가 생략되는데 사양할 필요는 없다. 기쁜 마음으로 들어가야지.
그렇게 기사단장에게 목례를 하며 검문소를 통과하자 다소 소란스럽던 밖과 달리 아직은 한산한 내부가 보였다. 너무 빨리 왔나. 아직 입장한 사람 자체가 적네.
“오, 너도 왔냐.”
그런데 그 적은 사람 중에 장관이 있을 줄은 몰랐다. 장관 겸 백작이나 되는 사람이 왜 벌써 와있는 거야. 늙어서 잠이 줄어든 건가?
“아니, 왜 벌써 오셨습니까?”
“사람 많을 때 오면 주목이나 받는다. 이미 결정된 예산 가지고 귀찮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진절머리 난다는 듯 말하는 장관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12월부터 1월은 장관에게 있어 고난의 시기다. 온갖 부서와 기관들의 청탁, 애원, 원망을 듣는 시기니까. 괜히 늦게 와서 어그로를 끄느니 일찌감치 와서 어디 숨어 있는 게 좋다고 판단한 모양이지.
“너는?”
“저도 시선 몰릴 것 같아서 미리 왔습니다.”
너도 다를 거 없으면서 왜 물어봤냐는 눈빛이 꽂혔지만, 나는 장관과 다른 이유로 시선이 모인다. 장관은 권한 때문에 주목을 받지만, 나는 여섯 개의 반(지) 때문.
내가 머쓱하게 손을 매만지자 장관도 눈치챘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분명 여름 방학 때만 해도 마르게타를 밀어내니 뭐니로 난리를 부리던 놈이 이제는 리틀 황금공이 되어가고 있으니까.
“혼자 온 걸 보니 합동 결혼식은 아직이냐?”
비웃음 가득한 놀림에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도 합동 결혼식은 평생 놀릴 수 있는 발언이지 않나.
과거의 나 개새끼. 미칠 거면 곱게라도 미쳤어야지.
“그러는 각하는 왜 혼자십니까?”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놀림에 입만 다물고 있다가 조심스레 화제를 돌렸다. 어색한 화제 전환이지만 이상하기는 하다. 작위 귀족이 신년하례식에 참가하면 보통 부인이나 부군을 파트너 삼아 오는데, 이 양반은 왜 혼자지? 가정에 불화가 생겼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다행히 정말 가정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는지, 장관이 손가락으로 슬쩍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
그리고 굉장히 낯익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모였다.
다 아는 얼굴이다. 장관의 부인은 물론, 재무성 소속 부장들과 그 부인들이 모여 있는 상황. 가장 어린 녀석이 가장 마지막에 오는 패기를 보이고 말았다.
“다들 시달리는 건 매한가지라 일찍 오기로 했다. 너도 지금 올 줄은 몰랐지만, 갈 곳 없으면 같이 있어.”
“예, 뭐. 알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장관과 함께 재무성 패밀리 쪽으로 이동했다.
감찰부장 혼자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몰려들지만, 재무성 고위 간부들이 모여 있으면 오히려 접근하지 않는다. 그냥 평범히 대화만 나누고 있어도 중요한 논의 중이라 지레 짐작하고 오지 않더라고.
역시 사람은 명함이 중요하다.
***
이른 시간이지만 신년하례식 참가를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모든 작위 귀족들이 모이는 자리라는 건, 불특정 다수의 예비 거래 상대들이 모인다는 의미.
새로운 거래를 체결하기 위해서는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 나는 당신과의 거래를 위해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라는 인식을 줄 수 있으니까. 사소한 인식이지만 그 사소함의 차이로 거래의 규모, 성사 여부가 결정되니 어찌 가만히 있겠나.
“이리나. 피곤하지는 않니?”
단지 그 사소함을 위한 여정에 소중한 딸이 함께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 그 마음은 부인도 마찬가지였는지 이리나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그나마 부인은 이런 활동에 익숙하지만 이리나는 아니다. 딱히 상행이나 상단의 업무에 관여한 적도 없고, 평범하게 자란 가녀린 아이에 불과하다.
“괜찮아요. 제가 원해서 온 건데요.”
부인의 걱정에 이리나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저 어미를 달래기 위한 답일 수도 있지만 이리나가 워낙 체력이 좋은 걸 생각하면 진심 같기도 하고.
…그래, 좋게 생각하자. 만약 이리나가 억지로 신년하례식에 왔다면 모를까, 이리나의 말처럼 원해서 온 것이지 않나. 다소 지루하거나 피곤한 일이 생기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낼 것이다.
‘사랑인가.’
문득 그런 생각까지 들자 쓴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이리나가 신년하례식에 참가하고 싶다고 할 때, 손에 조금 독특한 반지를 끼고 나타났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이제 이리나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의 힘으로 이전에는 하지 못한 일들을, 생각도 않던 일들을 해결하며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심지어 사랑의 대상이 감찰부장이라면 더더욱.
‘생각하지 말자.’
하지만 이미 이리나의 의지에 맡기기로 했다. 딸이 각오하고 원하는 길을 방해하는 건 도리가 아니지 않나. 갑자기 말을 바꾸는 건 아비로서도, 귀족으로서도, 상인으로서도 실격이다.
그저 딸을 위해 응원하고 지켜보자. 내 역할은 그걸로 충분하다.
얼마 후, 황실 기사단의 검문을 마치고 황궁에 진입할 수 있었다.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셔도 됩니다.”
그나마 지금 기사단장은 유한 사람이라 다행이다. 전대 단장은 정말 깐깐하고 철저한 사람이라 검문을 할 때마다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지. 이리나는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런.’
그리고 검문소를 통과하고 주변을 살피자마자 몸이 굳고 말았다. 일부러 빠르게 움직인 만큼 인적은 드물었지만, 하필 몇 없는 선객이 하나하나 거물이었다.
구석에 있는 여섯 남성. 하지만 나는 물론, 다른 귀족들의 시선은 그 구석에 쏠려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재무성.’
확실하다. 외알안경을 낀 거구의 중년과 젊은 청년이라는 조합은 쉽게 볼 수 없는 조합. 심지어 다른 넷도 상단을 운영하며 가끔 교류를 나누던 인물 아닌가.
재무성 장관, 감찰부장, 징수부장, 조달부장, 통계부장, 심의부장. 재무성의 고위 간부이자 말 한마디로 수천, 수만의 금화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무슨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