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61)
예상 외의 거물 회합에 도저히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부장 중 둘만 모여도 제국 경제가 움찔거릴 일이 생길 텐데 전원이 모였다. 그것도 다른 귀족들의 시선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인지 일찍부터.
…아무래도 이번 신년하례식은 시끄러울 것 같다.
***
어르신들만 모인 곳에서 혼자 젊으면 피곤하다.
“요즘은 눈이 와도 무릎이 쑤시더군요. 허허, 참. 늙으면 죽어야지.”
“저런. 벌써부터 그러시면 어떡합니까. 10년은 더 제국에 봉사하셔야지요.”
“허허허. 제가 10년이면 통계부장은 20년입니까?”
웃는 얼굴로 서로 저주를 날리는 인간들을 보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예정된 참사다. 더 이상 승진 욕심이 없고 퇴직 욕구만 가득한 고인물들이 나눌 대화는 뻔하다. 그냥 근황 얘기, 자식 얘기, 손주 재롱 얘기, 건강 얘기. 높은 비율로 건강을 핑계로 한 퇴직 얘기.
너무 뻔하고 재미 없는 이야기라 이미 부인들은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나는 이 사람들과 같은 항렬인 부장이라는 죄로 고인물의 푸념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고. 망할, 나도 도망가게 해줘.
‘아.’
지루함과 착잡함에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자 마침 검문소를 통과한 이리나를 발견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한 기분이다. 이리나 핑계를 대면 이 고인물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당황한 듯한 이리나의 시선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리나는 나를 어둠에서 구원했지만, 그 은혜를 원수로 갚고 말았다.
“오호, 이 아이가 감찰부장의 연인이군요.”
“곱기도 하지. 스물이 넘도록 짝이 없어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고인물 지옥에서는 탈출했지만 정작 악마들도 같이 나와버렸다. 이걸 탈출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사실 나는 주변을 지옥으로 만드는 패시브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서글픈 일이다. 난 그냥 지인이 와서 인사를 하러 간다고 말했을 뿐인데, 어느새 장관을 포함한 부장들도 내 뒤를 줄줄이 따라오더라. 그 표정에서 ‘할 일도 없는데 잘 됐네.’ 라는 감정을 읽은 건 결코 기분 탓이 아니리라.
“그래, 아가씨. 아가씨는 올해로 몇 살인고?”
그리고 말투 하나하나에서 감출 수 없는 연륜이 느껴지는 심의부장의 말에 플란벨 백작이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보였다.
심의부장은 재무성 간부 중 최고령이자 은퇴 후 재복귀라는 기적의 타이틀을 단 재무성의 원로. 상계의 거물 중 하나인 플란벨 백작 입장에서는 꽤 부담스러운 인물일 수밖에 없다. 사실 제국 예산을 최종적으로 심사하는 심의부장을 만만히 볼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아무튼 재무성 최고 고인물의 말에 이리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 이제 열여덟입니다…”
“아이구, 젊구만. 이 도둑놈이 귀한 아가씨를 약탈했어.”
“감찰부장이 도둑이면 누가 감찰하나.”
심의부장의 농담에 통계부장이 은근슬쩍 지원 사격을 날렸다.
이 인간들, 아까 웃는 얼굴로 저주를 날리던 때와 달리 얼굴에서 진실된 웃음이 넘쳐난다. 남의 연애 얘기가 즐거운 건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건가.
“아니, 네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 뭔 도둑입니까.”
그래도 두 부장의 화려한 연계에 소소한 반항을 했다. 내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나이 차이가 열을 넘어가면 인정하겠는데, 고작 넷으로 도둑이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20대가 10대를 채가면 도둑놈 맞다.”
그러나 묵묵히 구경하던 장관의 말에 소소한 반항은 정말 소소하게 끝났다.
망할 인간들.
적당히 몇 번 놀리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는 간부들. 다행히 간부들도 장난기가 많은 거지,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눈치가 없는 사람은 저 자리까지 오르지 못했겠지만.
“죄송합니다, 백작 각하. 괜한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간부들이 멀어지는 걸 확인하고 빠르게 플란벨 백작에게 사과했다. 저 짐 덩어리 같은 양반들 때문에 졸지에 백작을 압박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으니까. 재무성 간부들이 단체로 귀족, 그것도 상계에서 활동하는 귀족을 압박하는 건 재앙 아닌가.
환장하겠다. 좋은 모습만 보여도 모자란 판국인데 시작부터 꼬였네. 아니, 사실 꼬인 건 3과장의 맹활약으로 진작에 꼬였지.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분들의 색다른 면모를 보니 유쾌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백작은 미소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정말 괜찮은 건지, 여기서 불만을 표해도 이득이 없어서 괜찮은 척을 하는 건지.
“편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장인께 존대를 듣는 사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모습에 직설적으로 나가기로 했다. 백작이 나에게 정중함을 유지하는 건 마음에 어느 정도 벽이 있다는 의미.
3과장이 쏘아 올린 존나 큰 공 때문에 벽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평생 가면 곤란한 벽이다. 이리나도 남편과 아버지가 어색한 사이면 슬프지 않겠나. 아무리 사위가 백년손님이라고 하지만 이건 손님 수준이 아니라 미운 손님이다.
그리고 내 말에 백작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내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리 직설적으로, 확실하게 숙이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는 듯이.
“그건 그렇군요. 비록 제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게 힘들지만, 결혼식 때는 편히 말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상인이 적응 속도가 느리다는 말은 처음 듣지만, 천천히 변하겠다는 백작을 독촉할 수는 없는 노릇.
게다가 결혼식이라는 마지노선을 명확하게 정하지 않았나. 적어도 나와 이리나의 사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니 다행일 따름이다.
“부인께도 사과드리겠습니다. 짓궂은 면모가 있는 분들이라 처음 대화를 나누면 놀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백작 옆에 있던 부인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그나마 백작은 업무상 부장들과 접할 기회가 있었을 거고, 이리나는 나에게 의지할 수 있지만 부인은 아니지 않나.
가문의 안주인이 고위 관료들을 볼 일이 얼마나 있겠나. 그 고위 관료들이 사랑하는 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몹시 부담이었을 거다. 어쩌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실제로 겉으로나마 평온함을 유지하는 백작과 달리, 부인은 아직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는지 동공이 미약하게 떨렸다.
“신경 쓰지 마세요. 감찰부장의 말대로 조금 짓궂으실 뿐이지요.”
그래도 말로는 괜찮다고 해줘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망할 인간들.’
다시 구석으로 돌아가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을 양반들을 떠올렸다.
제발 본인들이 가진 힘을 생각하고 움직이면 안 될까. 재무성의 부장이 말만 걸어도 뒤집어질 사람은 많고도 많다.
***
감찰부장과 함께 다른 재무성 간부들도 올 때는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간 기분이었다. 다행히 간부들이 관료로서 온 것이 아니라 감찰부장의 지인으로서 다가왔기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아무튼 평범한 지인의 입장으로 다가온 간부들은 마치 동네 아이에게 간식을 주는 노인처럼 이리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와는 간단한 안부 인사만 나눴을 정도로.
‘얼굴을 본 걸로 만족해야겠지.’
그렇다면 나쁘지 않다. 결론적으로 아무 피해가 없었다면 이번 만남은 썩 괜찮은 만남이다. 재무성 고위직과는 최대한 교류를 하는 것이 좋은데, 간부 전원과 동시에 만나지 않았나. 길이냐 흉이냐를 따지면 길이다.
게다가 감찰부장도 갑작스러운 만남에 몇 번이나 사과를 했으니 더는 문제 삼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간부들과 만남을 주선해줬다고 생각하면 감사할 일.
그래, 감사할 일인데…
‘정말 반쪽.’
부인과 대화를 나누는 감찰부장. 정확히는 감찰부장의 손으로 시선이 갔다.
이미 이리나를 통해 보고 들었으니 알고 있었지만, 정말 반쪽 반지를 낄 줄이야. 기존의 상식을 파괴하는 물건을 보니 헛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괜찮은 것 같은데.’
동시에 상인의 본능이 울부짖었다. 감찰부장은 물론 그 연인들이 끼는 반지. 지금까지 누구도 본 적이 없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반지. 심지어 담긴 의미도 괜찮다. 둘이 모여 하나가 되는 건 제법 낭만 있지 않나.
이건 팔린다. 무조건 팔린다. 단순히 감찰부장만 끼고 다녔어도 유행이 생겼을 텐데, 철혈공의 딸은 물론 마종공도 저 반지를 꼈다고 한다. 거기다 모든 작위 귀족이 모이는 신년하례식 기간도 겹쳤다. 이건 유행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상황.
마침 가문과 계약한 장인들도 제법 있지. 오늘 일정이 끝나면 연락 좀 해봐야겠다.
***
플란벨 백작의 은근한 시선을 뒤로 하며 자리를 떠났다. 아까부터 시선이 반(지)에 박히던데, 아무래도 소중한 딸이 여섯 부인 중 하나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내가 죄인이지, 내가 죄인이야…
“이왕이면 딸이 사랑을 독점하기를 바라는 게 아비의 마음이지.”
“아니까 제발 닥치십시오.”
애석하게도 장관도 내 심정을 아는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도발을 날렸다.
그걸 누가 모르냐고. 아무리 일부다처가 자연스러운 사회여도 마음은 당연히 별개다. 자식이 더 좋은 위치이기를 바라는 건 법이나 관습으로도 막을 수 없는 본능이니.
“그래도 생각보다 무난하지 않았냐. 나였으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허락 안 했다.”
‘시발.’
제발 닥쳐달라는 내 말에도 아랑곳 않은 장관은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팩트로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솔직히 내가 플란벨 백작이었어도 그랬을 거다. 아무리 실수고 사과까지 했다지만 가문을 개박살 낸 원흉, 그런 주제에 소중한 딸을 약탈한 개새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의 포지션 아닌가.
미래의 내 딸은 나 같은 놈 만나지 말았으면…
“장관, 너무 그러지 마시지요. 플란벨 백작은 악감정은 다 털어낸 것 같은데, 타인인 저희가 관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도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장관의 가혹한 팩트, 역지사지에 돌입하니 도저히 할 말이 없는 나. 그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한 것은 심의부장이었다.
허허 웃는 심의부장의 말에 장관도 빠르게 손을 털고 물러났다. 그럴만하지. 다른 사람이면 모를까, 장관은 심의부장을 막대할 수 없다. 은퇴하고 해피라이프를 즐기는 심의부장에게 찾아가 제발 다시 재무성을 위해 일해달라고 삼고초려 한 것이 장관 아닌가.
…생각할수록 끔찍하네. 기껏 은퇴를 했는데 다시 잡혀가다니. 공무원으로서 최악의 인생 아닌가?
‘괜히 즐겜러가 아니구나.’
나도 모르게 측은한 눈길로 심의부장을 보고 말았다. 아까 이리나에게 갔을 때, 다른 간부들을 부추기며 같이 가자고 선동한 것은 심의부장이었다.
그때는 조금 미웠지만, 그 선동이 어떻게든 인생에서 즐거움을 찾기 위한 발버둥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
‘난 저런 말년 보내지 말아야지.’
은퇴하면 재취직도 불가능하게 국경을 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적했던 황궁 내부도 점점 북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북적임과 별개로 우리 근처는 여전히 고요했다.
진짜 명함이 좋긴 좋아. 현실은 은퇴만 바라보고 사는 노인들의 넋두리 시간인데, 남들은 중요 정책 얘기라 생각하고 접근을 하지 않는다. 다들 업무 외 시간에는 일 얘기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라 그런 거 없는데.
“야.”
“예?”
멍하니 다른 부장들의 ‘슬슬 작위를 물려주고 싶은데 자식놈이 받을 생각을 안 한다.’ 라는 푸념을 듣는 사이, 장관이 어깨를 툭 건드렸다.
“축하한다. 네가 찾아다닐 필요는 없겠어.”
뜬금없는 말에 본능적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리고 그런 반응에 장관은 직접 보라는 듯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아.’
손가락을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