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65)
“좋습니다. 저도 인사를 드리고 싶군요.”
다행히 마종공도 별 불만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차라리 처가 사이에 있자. 괜히 귀족들 사이에서 어그로 끄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낫다는 건 어디까지나 최악을 피했다는 뜻. 절대 최선의 방안이라고 할 수 없다. 기껏해야 차악 정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 뵙는 분들이 많군요. 이렇게 뵈니 반갑습니다.”
그렇기에 사교계의 깡패, 생태계 교란종의 등장에 나름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던 처가(3개임)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신년하례식 정도가 아니면 마탑에서 나오지 않는 마종공이다. 심지어 신년하례식도 하루 정도만 얼굴을 보이고 바로 사라진다. 그렇기에 마종공과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얼굴조차 못 본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 희귀종 공작을 코앞에서 본 걸로도 심장 떨리는데, 존대로 먼저 인사를 한다? 눈물을 흘리며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다.
“각하. 부디 말씀을 편히 해주십시오.”
그렇기에 먼저 정신을 차린 플란벨 백작이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을 했으나─
“이제 다리 건너 가족이나 다름없는 분들께 어찌 그러겠습니까.”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답하는 마종공의 모습에 더욱 혼란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물 뿐이었다.
아니, 넓은 의미로 보면 가족이라고 할 수 있기는 한데, 그 가족 중에서도 나이가 압도적으로 많지 않나? 그러면 반말로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물론 마종공에게 당신이 최연장자라 괜찮다고 말할 용기는 누구에게도 없었다.
“네가 루이제구나.”
어색한 침묵을 깬 건 마종공이었다. 공작의 등장에 잔뜩 주눅이 들어있던 루이제에게 다가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거는 마종공.
“네, 네! 나이어드 남작가의 루이제 나이어드라고 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작이 따뜻하게 군다고 편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비록 루이제가 황족, 왕족, 차기 성자와도 편히 지내지만 그건 걔네가 이상한 거고.
아무튼 기합이 잔뜩 들어간 대답에 마종공은 루이제의 뺨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예쁘게 자랐구나. 예전에 봤을 때는 기운이 없어 보여 걱정했는데.”
그 말에 다시금 주변이 술렁거렸다. 당연히 초면이어야 할 둘의 관계. 그러나 마종공의 발언은 구면, 그것도 꽤 옛날에 만난 것 같은 느낌을 풍겼으니까.
특히 루이제의 부모님이 더욱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하나만 남은 소중한 딸이 공작과 구면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아찔하겠지.
“저기, 각하. 실례지만 제가 각하를 뵌 적이 있었나요…?”
그렇다고 당사자인 루이제가 멀쩡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마 필사적으로 기억을 되짚으며 마종공을 멀리서나마 본 적이 있나 생각 중이겠지.
안타깝게도 의미 없는 일이다. 루이제가 마종공과 구면인 건 맞지만, 진짜 모습을 본 건 아니다.
“그럼, 봤지. 이 모습으로는 처음이지만.”
그 말과 함께 바닥에 끌릴 정도로 길었던 마종공의 머리카락이 점점 짧아졌다. 깨끗한 백발은 청발로 변하고, 엘프의 피를 상징하는 뾰족한 귀마저 평범한 사람처럼 변하는 경이로운 광경.
그리고 그 모습에 루이제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서, 선생님…?”
“후후, 그래. 9년 만에 보는 제자라 그런지 반갑구나.”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루이제의 머리를 쓰다듬은 마종공은 나에게 슬쩍 눈웃음을 지었다.
‘저럴 필요는 없는데.’
갑작스러운 사제 관계 공개. 하지만 무슨 이유로 밝혔는지 알 것 같아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솔직히 나와 반지를 나눈 사람 중 가장 신분으로 밀리는 게 루이제다. 공작가인 마르게타와 마종공은 말할 것 없고, 1과장은 후작가다. 이리나조차 황금공 파벌의 거물 중 하나인 요룬 백작가의 영애며, 기사작을 지닌 4과장은 특무성의 주요 전력. 감히 함부로 대할 존재가 아니다.
반면 루이제는 남작가 영애에 불과하다. 비록 작위를 계승한다고 하지만, 권력과 상당히 거리가 먼 지방의 영주. 그런데 그 평범한 지방 귀족의 딸이 알고 보니 마종공의 유일한 제자? 갑자기 라노벨 향기 물씬 풍기는 상황이지만 현실이다.
“스승과 제자가 같은 남자에게 반하다니, 재밌는 운명이구나.”
예고 없이 날아온 비수에 조용히 시선을 내리고 말았다.
그렇게 들으니 내가 미친 난봉꾼 같잖아.
***
피곤하다. 부황께서는 연말에 기습적으로 작위 일부를 넘기셨고, 지금은 신년하례식 자리를 지키라 명하셨다. 일을 넘기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제발 예고라도 하고 주셨으면 좋겠다.
그래도 버틸 수 있다. 보기만 해도 흥겨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으니까.
“조만간 제국에 큰 경사가 있을 것 같군.”
그 말에 제국백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가 쳐다보는 곳으로 향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감찰부장의 짝이 저리도 많으니, 정말 경사스러운 일이군요.”
“하하, 설마 황금공의 전설이 다시 펼쳐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파악한 제국백들이 웃으며 한마디씩 보탰다. 사소한 보탬이지만 더욱 흡족스러웠다.
예전이었다면 이렇게 즐겁지 못했을 거다. 감찰부장이 공동 결혼식, 모두가 첫 부인 운운할 때는 정말 미친 줄 알았으니까. 다행히 스스로 제정신을 차렸고, 그때의 발언을 부끄럽게 여긴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 재무성 장관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역시 재무성 장관은 충신이다.
“백작. 백작도 가보는 게 좋지 않겠나?”
가슴 따뜻해지는 충심을 떠올리다가 타일글레헨 백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부황께서 자리를 비우시자 나에게 다가온 제국백들. 당연히 제국백 중 하나인 타일글레헨 백작도 내 곁에 있었다.
“괜찮습니다, 전하. 신년하례식은 길지 않습니까.”
내 권유에 타일글레헨 백작은 덤덤히 고개를 저으며 사양했다. 어차피 만날 기회는 많으니 다음에 만나겠다는 타당한 이유로.
하지만 기분 탓일까. 백작의 무표정 속에서 절대 저 곳으로 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내 사직서를 걸고 다짐했다. 이번 신년하례식 기간 동안 처가 식구들을 둘러싼 울타리가 되기로. 처가를 집결시키는 살아있는 인간 토템이 되기로.
절대 처가 외의 다른 귀족들과 접촉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처가 사람들이 다른 귀족들과 접촉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내 안녕과 평화를 희미하게나마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래야 한다.
‘따갑다.’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하면 지금처럼 뒤통수에 시선이 꽂히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테니. 아마 온갖 질문 공세에 시달려서 고막이 찢어지지 않을까.
뒤를 돌아보는 게 조금 무섭다. 나도 맷집이 어느 정도 있는 놈이라 몇 대 맞는 것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만, 짧은 시간 안에 명치를 수십 번 처맞는 건 맷집과 별개의 문제지 않나.
지금 상황이 그렇다. 사교계 대표 솔로였던 내가 연인을 만든 후 처음으로 참석한 공식 행사, 그런데 연인이 여섯, 그 연인 중 공작가가 둘, 심지어 공작 본인이 하나. 세상사에 무관심한 현자라도 기립 박수를 칠 일이다. 시선의 폭행을 미친 듯이 당하기에 충분하지.
그래도 거기서 멈춘다면 버틸 수는 있다. 이런저런 소란이 있지만 귀족의 혼례는 당연한 일이다. 귀족들도 그 마종공이 새파랗게 어린 나와 결혼하는 것에 놀라는 거지, 결혼 자체에 놀란 것은 아니니까. 관심을 많이 받을 일일지언정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각하의 제자라고? 저 영애가?”
“놀랍군. 각하께서는 가끔 조언을 주시는 정도지, 정식으로 제자를 들이신 적은 없었는데.”
“그렇지. 역대 부탑주들도 가르침을 받지 못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했겠나.”
그러나 마종공의 제자가 나타난 건 결혼과 다른 문제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에 속하는 사건. 마종공의 말을 들은 귀족들의 열렬한 반응이 그 증거다.
수많은 대마법사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제자로 들인 적이 없는 마종공. 그런 마종공에게 제자가 있었다? 이건 마법사라면 제국뿐만 아니라 타국의 인물도 기함을 할 사건이다.
덕분에 은근히 거리를 두고 근처를 배회하던 귀족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마종공의 제자라는 칭호가 정계에 줄 여파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 심지어 그냥 제자도 아니고 유일 제자다. 더 강력하네.
“그동안은 만날 일이 없었지만, 이제는 한 가족이구나.”
“아, 그, 저…”
“시간이 나면 마탑으로 오렴. 스승으로서 제대로 가르쳐 줄 테니.”
그 와중에도 마종공은 루이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저 가벼운 한마디가 실시간으로 귀족들을 혼란 상태로 밀어 넣는 것이 인상적이기는 하다.
물론 말리지는 않았다. 루이제가 ‘마종공의 유일 제자’ 라는 기적의 칭호를 얻으며 귀족들의 과한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루이제의 본래 입지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다른 연인들보다 못한 연인이라는 인식보다는 차라리 이게 낫지 않겠나.
“축하해, 루이제. 차세대 대마법사가 눈 앞에 있었네.”
일단 어쩔 줄 몰라하는 루이제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보다 당혹스러울 사람은 루이제다. 그러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도는 알려줘야지.
“가, 감사합니다!”
내 말에 정신을 붙잡은 루이제는 마종공에게 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이걸로 마종공과 루이제는 9년 전의 야매 관계에서 공식적인 사제 관계가 됐다.
정말 기쁜 일이야…
─라는 일을 뒤늦게 합류한 1과장에게 설명했다.
“그래서 저도 여기에 있는 거예요?”
“응. 어차피 갈 곳도 없잖아.”
“그렇기는 하죠.”
고개를 끄덕이는 1과장에게 슬쩍 덧붙였다.
“싫으면 따로 돌아다녀도 괜찮고. 대신 세 걸음마다 한 번씩 붙잡힐걸.”
“으, 또 그러는 건 싫은데.”
끔찍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떠는 1과장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철혈공에게 설명을 듣고 있던 이오네스 후작도 난감한 미소를 짓는 걸 보니, 정말 치가 떨리게 시달린 모양이다.
진작 뭉친 처가들과 달리 마살로 후작가는 다른 후작가들과 논의할 일이 있어 홀로 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와 떨어져 있었다는 죄로 마살로 후작가는 온갖 귀족들에게 시달렸고, 그 이유를 우리와 합류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시달린 후작과 1과장 입장에서는 눈물이 나올 지경이겠지.
“그냥 딱 붙어 있어. 어디 이상한 곳으로 새지 말고.”
억울하게 시달렸을 1과장의 어깨를 토닥이자 1과장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통신구도 있는데 미리 알려주지 그랬어요…”
“미안해. 깜빡했어.”
그렇게 말하며 1과장의 허리를 끌어안자 삐죽 나왔던 입술이 들어가고 헤헤 웃음을 흘렸다.
사실 미리 알려줬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이왕이면 알고 맞는 게 좋지 않나. 이건 미리 알리지 못한 내 실수가 맞다.
“뭐, 그러면 제가 특별히 용서해드려야죠! 감사한 줄 아세요!”
“고맙다. 역시 우리 에르제베트가 마음이 넓어.”
다행히 내 진심 어린 사과에 1과장도 마음이 풀린 것 같다.
역시 진심이 최고야. 약간의 스킨십이 곁들여지면 최강이고.
***
제국백 가문끼리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황제 폐하의 직속 봉신으로서 일반적인 귀족과는 성격이 다른 제국백. 그 유래부터가 황권을 지키기 위한 방패이자 검으로서 귀족들을 짓누르는 수단이었다.
다소 살벌한 유래로 인해 제국백 가문은 지금까지도 다른 가문과 마음 편히 교류하기 어려운 입장이고, 덕분에 제국백 가문끼리의 관계가 더욱 중요시 여겨졌다. 제국백끼리도 사이가 좋지 못하면 제국백은 외톨이에 불과하니까.
그렇기에 제국백 가문의 가주들이 황태자 전하와 함께하는 지금, 가문의 안주인들이 따로 모인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늘 부인이 부러워요. 제 아들이 감찰부장의 반이라도 닮는다면 소원이 없을 거예요.”
“과찬이세요, 부인.”
“과찬이라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