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71)
그리고 어릴 때부터 인상이 다소 험악한 나를 무서워하지 않고 반겨준 아이다. 아이라스 백작령에 인사 겸 들를 때마다 그 아이를 어깨에 태우고 영지를 한 바퀴 돌기도 했지.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하면 부끄러워하는 숙녀로 자랐지만, 어릴 때부터 쌓은 친밀감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단순한 처조카가 아닌 딸처럼 느낄 정도로.
‘세월이 빠르기는 하군.’
그 딸 같은 아이, 앞니가 빠진 모습으로 히히 웃던 아이가 이제는 결혼을 앞둔 신부가 되었다. 지금처럼 세월의 흐름이 명확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세월이 흐른 결과가 이렇다는 게 많이 유감이기는 하지만.
‘…처조카 사위.’
은근히 눈을 내리 깔며 눈치를 살피고 있는 감찰부 2과장, 이제는 처조카 사위인 놈에게 시선을 돌렸다.
크리스티나가 선택한 짝은 정말 상상도 못한 인물이었다. 공적으로는 같은 재무성 소속이라 익숙하지만, 설마 사적인 관계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솔직히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처음에는 반대하고 싶었다. 저놈의 이성 관계가 얼마나 화려하고 다채로운지는 잘 알고 있지 않나. 내 처조카가 그 이성 관계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될 것 같아 불안했다.
– 이모부. 라파예트 씨가 이모부 부하라고 하던데, 맞나요?
특히 크리스티나가 통신구로 연락을 걸었을 때, 혼신을 다하여 갈라지는 걸 종용하려고 했다.
물론 그 뒤는 2과장을 박살내려고 했다. 업무 목적으로 파견을 간 놈이 엄한 처자를 꼬시고, 심지어 가명도 아닌 본명을 떠들어? 제정신이 아닌 거지. 미친 상사 아래에는 미친 부하만 있다더니 감찰부가 딱 그 꼴이다.
그러나 실패했다. 갈라지기는커녕 더욱 굳건한 관계, 공인하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친부모는 아니지만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있던 게 패인이었다. 어릴 때의 활발함을 빼면 다소곳하고 자기 욕심이 없던 아이가 그렇게 간절한 얼굴로 사정하니 어찌 반대하겠나.
백작가의 일원, 재무성 장관의 처조카면서 보조 교사라는 고행길을 자처한 아이가 처음으로 마음을 품은 상대. 그런 상대와 억지로 갈라지라고 하면 상처를 입고 다시는 마음을 열지 못하겠지.
다시 생각해도 미치겠다. 왜 많고 많은 남자 중에 하필 2과장.
“자, 받으렴. 부탁한 물건이란다.”
그래도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밀어내고 품 속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이미 일어난 일에 후회해봤자 저 아이만 눈치를 보겠지. 어차피 허락한 일이니 기꺼이 받아들이자.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반지 케이스를 받고 눈을 반짝이는 크리스티나를 보니 미미하게 남아있던 찝찝함도 빠르게 녹아내렸다.
그래, 나도 혼인 전에는 썩 괜찮은 남편감이 아니지 않았나. 그런 내가 부인을 만나 변한 것처럼 저 처조카 사위 놈도 변할 수 있다.
아무튼 상기된 얼굴로 케이스를 연 크리스티나는 반으로 갈라진 반지를 보자 이보다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밝게 미소를 지었다.
‘저게 그리 좋을까.’
요즘 애들 취향은 모르겠다. 욕심이 없던 아이가 직접 부탁을 할 정도니 들어주기는 했지만, 저 반쪽 반지가 뭐 그리 좋다고 해맑게 웃을까.
물론 내 이해와 별개로 저 기괴한 반지는 유행을 선도할 거다. 누구와 결혼을 하나 은근히 주목 받던 그 놈이 낀 반지. 거기다 황태자, 황태자비, 공작, 공녀도 낀 반지. 이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이 흐름에 올라타지 않으면 유행에 뒤처진 귀족이 된다.
– 커플링을 산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급하게 쪼개니 좋아하기는 하던데…
“이혼당하기 싫으면 평생 숨기고 살아라.”
그리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차라리 그 반지가 탄생한 비화를 몰랐다면 ‘요즘은 저런 게 유행이군.’ 정도로 넘어갔을 텐데.
하여간 어린 새끼가 벌써부터 치매 조짐이 보여가지고. 세상 어느 남자가 연인과 낄 커플링을 깜빡하는 거냐.
“라파예트 씨, 이거 보세요. 예쁘지 않나요?”
“…예, 정말 예쁘군요. 평생 간직할 보물입니다.”
싱글벙글 웃는 크리스티나가 처조카 사위에게 반지를 보여주자, 처조카 사위는 잠깐 머뭇거린 끝에 대답할 수 있었다.
이해한다. 저 녀석도 저 반지의 비밀에 대해 아는 놈이니. 본인이 한껏 비웃었던 반지가 돌고 돌아 자기 손에 끼워지는 상황이 착잡할 터.
심지어 저 반지, 내가 아니라 원조가 만든 거다. 마침 신년하례식 때 만나는 상황이라 직접 부탁했지.
“쪼개라.”
“아니, 제 손으로 이 흉악한 걸 더 만들라고요?”
슬쩍 반지를 건네자 치를 떨며 거부했지만─
“네가 찢은 논문의 주인이 낄 반지다.”
“백년해로 기원하겠습니다.”
그 한마디에 바로 쪼갰다.
비록 논문이 엎어지자마자 다른 주제를 잡아서 성공적으로 제출했다고 하지만, 논문이 한 번 날아간 것은 사실이지 않나. 양심이라는 것이 살아있다면 결코 거절할 수 없었을 거다.
“제가 직접 끼워드리겠습니다.”
“고, 고마워요.”
그 양심의 결과물이 크리스티나와 처조카 사위 손에 끼어지는 걸 보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과정이 묘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소중한 처조카가 행복하다면 됐다.
***
공무원들이 합법적으로 쉴 수 있는 신년하례식. 다르게 말하면 신년하례식이 끝난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해야 한다는 것.
화려한 연회장에서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고, 피곤하면 적당히 별실을 빌려 눈을 붙일 수 있던 나날을 보내다가 칙칙한 직장으로 가야 한다. 이 얼마나 끔찍한 추락인가.
“…뭐하냐?”
하지만 출근하자마자 느꼈다.
오늘은 끔찍한 추락이 아니라 행복한 승천이 있을 거라고. 절망의 골짜기가 아니라 대유쾌 마운틴을 오를 거라고.
“2과장 결혼 축하 파티요!”
멍한 내 목소리에 1과장이 해맑게 대답했다. 그리고 1과장의 손에는 휘황찬란한 플래카드가 들려있었다.
[ 경 ☆ 축 ! 2과장 총각 탈출! ]‘오.’
본능적으로 작년의 일이 떠올랐다. 아카데미 파견이 확정되자마자 당했던 화려한 티배깅. 내 마음을 찢은 플래카드를 갈기갈기 찢었던 추억.
그 추억이 1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강림했다. 이제는 주동자에서 당사자로 전락한 2과장을 축하하기 위해.
“누구 아이디어야?”
“저요!”
“잘했어.”
굿 걸.
진심을 담아 1과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잘했다. 직장 동료가 결혼한다는데 그냥 넘어가는 건 도리가 아니지. 유일한 총각이 결혼을 한다고 하면 없던 휴가를 만들어서라도 축하해야 하지 않겠나.
흡족한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이미 다른 간부들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차장에게 술을 따라주며 껄껄거리는 3과장, 입맛에 맞는 술을 찾는 중인지 상자를 뒤적이는 5과장.
‘화목하네.’
동료의 결혼을 축하할 준비가 되어있는 간부들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늘만큼 근무 중 음주가 가능하다는 것이 기쁜 적이 없었다.
“오, 부장님! 부장님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나와 1과장의 대화 소리를 들은 차장이 꾸벅 고개를 숙이자, 차장에게 술을 따라주던 3과장이 병을 흔들며 말했다.
“난 됐어. 너희끼리 마셔.”
물론 사양했다. 이 기쁨과 쾌락을 온전한 정신으로 즐기고 싶으니까.
만약 내가 즐길 쾌감을 알코올 따위가 빼앗는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감정은 오직 나만의 것이야…
“뭐, 그러시다면야.”
3과장은 쾌감을 알코올과 공동 소유하기로 했는지, 내가 거절하자마자 병째로 들이마셨다.
그래, 마셔라 마셔. 오늘은 먹고 뒤져도 무죄인 날이다.
“2과장은 아직 안 온 거지?”
나에게 목례를 하는 5과장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1과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축하 파티를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당사자가 없으면 흥이 돋지 않는다. 2과장 없는 2과장 결혼 축하 파티는 좀 끔찍하지 않나.
물론 이 새끼들은 나 없는 곳에서 나를 위한 축하 파티를 한 것들이니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아마 최대한 늦게 올걸요? 눈치 챈 것 같더라고요.”
1과장의 말에 픽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고, 어디를 맞으면 아픈지는 때리는 놈이 잘 아는 법.
이미 나를 상대로 무수한 도발 경력이 있는 2과장이다. 그 업보가 태극권처럼 날아올 거라는 건 짐작했을 테고, 그 업보 청산의 날이 오늘이라는 것도 알겠지.
“눈치 채도 지가 어쩌겠어.”
“그건 그렇죠.”
그러나 2과장 입장에서는 애석하게도, 알아봤자 딱히 달라지는 건 없다.
출근 거부? 그러면 우리가 잡으러 간다. 출장 신청? 내가 거부하면 그만이다. 2과장을 향해 굴러가는 수레바퀴는 절대 멈출 수 없다.
두근거린다. 새해 첫 출근부터 이런 이벤트를 겪다니, 올해 운수는 최고다.
출근 시간이 끝나감에도 2과장은 소식이 없다.
“탈주한 건가요?”
“잡으러 가는 김에 점심은 밖에서 먹을까?”
수군거리는 과장들은 무시하며 턱을 매만졌다.
뭐지, 이 새끼가 지각을 할 놈은 아닌데. 그렇다고 무단 결근을 할 정도로 막 나가는 타입도 아니고. 차라리 당당하게 조퇴를 했으면 했지.
그리고 그 의문은 얼마 가지 않아 풀렸다.
– 네 부하 데려가라. 장관실에 있다.
“예?”
갑자기 장관에게 걸려온 연락, 뜬금없이 밝혀지는 2과장의 거주지.
‘미친.’
상식을 벗어나는 말이라 머리가 굳고 말았다. 그 새끼가 왜 장관실에 있어. 그거 대대장이 군단장실에서 발견되는 꼴이잖아.
“…금방 가겠습니다.”
이 새끼, 설마 티배깅을 피하려고 장관실로 튄 건가?
과장을 잡으러 장관실로 가는 부장. 듣기만 해도 정신력이 깎일 것 같은 문장이다. 이 새끼가 이제 장관하고 다리 건너 인척이라 그런지 막 나가는 건가.
그렇다면 흉악하기 짝이 없는 놈이다. 결혼하기 전부터 인맥을 써? 네가 인맥으로 버티면 나도 인맥 카드를 꺼내는 수밖에 없는데.
“저 왔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