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72)
“어, 왔냐.”
복잡미묘한 마음을 억누르며 빠른 노크, 빠른 입장을 했다. 인맥 멸망전이고 뭐고 일단 이 미친 부하부터 수거하고 생각하자.
그렇게 장관실에 입장하자마자 빠르게 내부를 훑었고, 소파를 침대처럼 사용 중인 2과장을 볼 수 있었다.
‘미친.’
이 새끼 자네. 그것도 까마득한 상관 집무실에서.
빡침이 담긴 눈으로 멍하니 2과장(이라고 불렸던 개)를 쳐다보자, 장관이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좀 많이 마시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젊은 놈이 나보다 주량이 약하니 원.”
그리고 그 목소리에서 미약한 머쓱함이 느껴졌다.
‘…이걸 참는다고?’
장관의 말에 뒤늦게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혈육이 자기 덕을 보는 걸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장관이다. 게다가 장관이 처조카를 아낀다지만 그건 처조카를 향한 감정이지, 처조카를 약탈한 처조카 사위에게 통하는 감정은 아니지 않나.
그런데 그 약탈자가 자기 집무실에서 태평하게 잔다? 절대 용납할 사람이 아니다. 나한테 연락을 할 시간에 2과장의 척추를 고이 접어 부장실로 던졌겠지.
“얘 왜 여기 있습니까?”
그렇기에 근원적인 질문을 했다. 출근을 감찰부가 아닌 장관실로 한 이유, 심지어 장관실에 뻗어서 자는 이유.
“어제 같이 한잔했다.”
“한잔이요?”
“한궤짝했다.”
그 말을 듣고 다시 2과장을 봤다. 아직도 붉은 얼굴과 간헐적으로 부들거리는 몸.
그러네. 이 새끼 제대로 취했네.
“결혼 전 마지막 휴일이지 않냐. 그래서 적당히 마셨는데,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약한 녀석, 이라고 덧붙였지만 차마 공감할 수 없었다. 2과장 주량은 제법 강한 편인데 그런 2과장이 빈사상태에 빠질 정도면 얼마나 마신 거야.
장관 입으로도 궤짝이라 언급했으니 일단 2과장 몸 속에 있던 수분보다도 많이 마셨을 거다. 바늘로 찌르면 피 대신 술이 나올 정도로.
‘출근당했구나.’
전후 사정을 파악하니 꿈틀거리는 2과장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2과장은 장관실로 튄 것이 아니다. 장관과 강제로 알코올 배틀을 붙었다가 패배했고,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해 짐처럼 끌려와 장관실에 내던져진 것. 자기 의지로 출근한 게 아니라 타의로…
“왔으면 빨리 데려가라. 술 냄새 난다.”
“아니, 이게 누구 때문인데요.”
가해자의 냉혹한 발언에 치가 떨렸지만, 그래도 순순히 뻗어있는 2과장을 부축했다.
아침부터 이 모양인 건 안타까워도 축하 파티는 진행되어야 한다. 정신을 잃었다면 잃은 상태로도 축하하는 것이 도리. 어떠한 이유도 우리의 축하를 막을 수는 없다.
“그륵…”
그렇게 2과장을 수거하여 부장실로 복귀하는 사이, 옆에서 골골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깼냐?”
“으예에…”
기괴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2과장. 그래도 정신은 차린 것 같으니 다행이다.
“장관실에서 잔 놈은 네가 처음일 거다. 부장실로 가는 중이니 조금만 참고.”
“예에에에…”
아까보다 조금 더 명확하게 들리는 대답. 이 자식도 낯선 장관실이 아닌 집이나 다름없는 부장실로 간다고 하니 기쁜 모양이다.
물론 다음 말을 들으면 더 기뻐할 거라 믿는다.
“네 결혼 축하 파티 준비했다. 해장술 마시러 가야지.”
“…….”
역시 기뻐할 줄 알았다. 얼마나 기쁘면 입이 열리지도 않을 정도로 감동하겠나.
이게 감찰부의 정이라고 하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특별히 2과장을 부장 자리에 앉힌 상태에서 광란의 축하 파티를 보내고 이틀 후, 드디어 제도의 카사노바가 인생의 무덤, 아니 인생의 짝과 맺어지는 날이 됐다.
너무 감동적인 날이다. 우리 제수씨, 이 카사노바 새끼 절대 방생하지 마시고 백년해로하십쇼. 제수씨가 수많은 영애들을 구원한 겁니다…
“축의금만 보내고 몸은 안 와도 된다고 했는데. 할 일 없냐?”
그 와중에 기껏 찾아온 하객에게 막말을 날리는 장관을 보니 있던 감동도 순식간에 사라질 것 같았다.
“부하 결혼에 얼굴도 안 비치면 욕 먹습니다.”
“그럼 너는 나 여섯 번 볼 거다.”
이 시발. 그건 몰랐네.
미처 생각지 못한 재앙에 잠시 몸이 굳었다. 맞는 말이다. 결혼식이 여섯 번이면 나를 아는 하객도 여섯 번 전부 참석할 수 있다는 거잖아.
순간 장관은 물론 황태자도 올-참석하는 미래를 상상했다.
‘와.’
바로 상상을 끝냈다. 세상에는 감히 상상으로도 하면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잠시 잊고 말았다.
“…넉넉하게 담았습니다.”
살짝 울적해진 마음을 진정시키며 축의금을 담은 주머니를 장관에게 건넸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넉넉하게 담았다. 나는 신랑인 2과장과도 알고, 신부인 크리스티나하고도 아는 사이 아닌가. 어디 한쪽에만 내는 건 애매해서 적정치의 두 배 정도로 넣었다.
“묵직하구나.”
다행히 장관 기준으로도 만족스러운 무게였는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축의금함에 넣었다.
그래, 당연히 만족해야지. 돈 관련으로 고민이 되면 그것은 액수가 부족한 거라는 황금공의 조언을 따른 거니까. 역시 사회 생활은 황금공처럼 하면 절반은 간다.
“…그런데 사모님은 어디 계십니까?”
뒤늦게 주변을 살피다가 위화감을 느꼈다. 왜 하객을 맞이하는 자리에 장관만 덩그러니 있는 거지?
아니, 애초에 아이라스 가문은 어디 가고 이모부가 하객을 맞아. 차라리 장관의 부인도 있었다면 부부가 같이 일하는구나─ 싶었을 텐데.
“친척끼리 오랜만에 모이는 걸 텐데, 얘기라도 하고 오라고 보냈다. 어차피 누가 지키든 상관 없잖냐.”
장관의 말에 상식이 무너진 것 같았다. 아니, 존나게 상관 있지 않나…? 다른 행사도 아니고 결혼식인데.
하지만 이미 보낸 사람을 다시 오라고 할 수는 없으니 고개만 끄덕였다. 게다가 하객 맞이를 현직 재무성 장관이 하면 더 인상적이기는 하겠지. 하객들도 대접받는 기분이라 좋을 테고.
“저도 그럼 신랑한테 가보겠습니다.”
“길 막지 말고 빨리 가라.”
심드렁하게 손짓을 하는 장관을 뒤로 하고 신랑이 있을 곳으로 향했다.
벌써부터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큰일이네 이거. 결혼 예복을 입은 2과장 보면 웃음을 못 참을 것 같은데.
***
대기실에 앉아 미소를 유지했다. 드디어 개새끼에서 사람이 됐다고 좋아하는 아버지, 그나마 서른 전에라도 결혼을 해서 다행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대기실에 울려 퍼졌지만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복잡한 기분이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결혼이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냥 이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미묘하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뭔가 지금까지의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변하는 순간 같다. 이전까지 살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발을 딛는 것 같다. 아니, 너무 과한 표현인가? 그래도 이것보다 적당한 표현은 생각이 나지 않고…
“표정이 왜 그러냐. 잠은 제대로 잤냐?”
그렇게 혼란스러운 심정을 정리하는 사이, 입구 쪽에서 부장님이 다가왔다. 얼굴에는 도저히 숨길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
“감찰부장님.”
“아, 오랜만에 뵙습니다. 좋은 일로 다시 뵙게 되는군요.”
부장님을 발견한 아버지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부장님도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청했다.
다 감찰부장님 덕이라며 웃는 아버지를 보니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결혼하는데 부장님이 무슨 역할을 했다고 부장님 덕인가. 차라리 장관님이 맹활약을 했지.
‘…덕을 보기는 했나.’
하지만 크리스티나 양을 만난 계기를 생각하니 썩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부장님이 아카데미에 있지 않았다면, 내가 부장님을 지원하러 아카데미에 가지 않았다면 크리스티나 양과 만날 일도 없었을 테니까. 어떻게 보면 모든 일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아무튼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와도 인사를 마친 부장님이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축하한다. 솔직히 평생 혼자 살 줄 알았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가 억장이 무너지는 표정을 지으셨지만, 그래도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정말 미혼인 상태에서 말했으면 불효였겠지만.
부장님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픽 웃음을 흘리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이제 바론 가문을 이을 자식도 낳아야지. 신혼 휴가는 건드릴 생각 없으니 잘 쉬고 와라.”
“상사가 그런 압박까지 줘도 됩니까?”
아버지가 해야 할 후사 압박을 상사가 하고 있는 상황. 그것도 나보다 어리며 미혼인 사람이 하니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꼬우면 승진해야지.”
그러나 만능의 문장이 나오자 반박도 하지 못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다른 사람도 아닌 감찰부장의 발언이 너무 투박해서 놀란 것 같지만, 부장님은 원래 이런 사람이다. 귀족 중의 귀족이면서 정작 그 속은 평민 같은 사람.
‘그래서 이렇게 지내는 거지만.’
딱딱하고 권위주의적인 상사를 만나면 피곤하다. 당장 전대 감찰부장만 해도 정말 귀찮고 짜증나는 사람 아니었나.
하지만 부장님은 다르다. 부장님도 전대 감찰부장처럼 순혈 귀족이지만,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달랐다. 이미 6검분들과 같이 지낸 적이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사람이 원래 그런 건지.
그러니 내가 준비한 작은 선물도 기꺼이 받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축하받은 만큼 축하해줘야지.’
안주머니에 소중히 담아둔 꽃 한 송이. 크리스티나 양을 위해 준비된 부케에서 빼온 꽃.
‘신부가 던진 부케를 잡는 하객이 다음에 결혼할 사람.’
관례와 미신 사이에서 걸쳐져 있는 문화를 떠올리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물론 신부가 하객들에게 주는 선물을 뺏을 생각은 없다. 그저 큰 선물 뒤에 작은 선물을 준비했을 뿐.
식이 끝나면 부장님에게 다가가 이 꽃을 주리라. 한때 부케의 일부였던 것을 곧 결혼할 사람에게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