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73)
그러면 분명 부장님도 기뻐할 거다.
세상에 이런 부하 없지. 아암.
***
이 꽃 같은 새끼가.
“부케에 있던 꽃입니다. 곧 결혼하실 분이니 한 송이 정도는 받으셔야죠.”
결혼식이 끝나니 나에게 다가오는 2과장. 그리고 개소리를 하며 내미는 꽃.
순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머리를 스쳐 지났지만, 오늘만큼은 누군가를 꽃으로 팰 수 있을 것 같다.
신년하례식과 부하의 결혼이라는 대형 이벤트가 끝나고 나니 썩 평온한 방학을 보낼 수 있었다. 여름 방학 때는 짐 덩어리 같은 놈들을 관리하느라 미칠 것 같았는데, 지금은 신경 쓸 것도 없으니 어찌나 편안하던지.
심지어 높은 확률로 겨울 방학 이벤트였을 제5제국마저 내가 손쓸 새도 없이 모가지가 날아갔다. 앞으로도 이렇게 날로 먹는 인생을 살았으면.
“여기요.”
멍하니 시계를 보며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사이, 1과장이 슬쩍 종이 하나를 내밀었다.
가장 위쪽에 적힌 휴가신청서라는 글자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서명란에 이름을 적었다. 무슨 이유로 휴가를 쓰는 건지도 아는데 내용까지 볼 필요는 없지.
“휴가를 상사하고 같이 보내는 건 처음이에요.”
“나도 부하하고 보내는 건 처음이다.”
얘가 휴가를 쓰면서 가려는 곳이 내가 가는 곳이다. 가주와 어머니가 버티고 있는 타일글레헨 백작령.
예전에 신년하례식이 끝나면 영지에 방문하겠다고 어머니와 약속을 하지 않았나. 당연히 홀몸으로 갈 수는 없으니 예비 며느리들도 끌고 가게 됐고, 덕분에 1과장도 급히 휴가를 쓰게 됐다.
다행히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아, 어머님한테 드릴 선물도 샀어요.”
“기특하네.”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1과장에게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줬다. 얘가 그래도 시어머니라고 이렇게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이오네스 후작이 보면 감동의 눈물을 흘릴 거다. 올해는 후작이 성불해도 이상하지 않겠어.
“이거, 어머님도 좋아하시겠죠?”
그리고 1과장의 품 속에서 튀어나오는 새빨간 루비 목걸이.
흐으으으음.
“…그래, 좋아하시겠어.”
“그쵸? 열심히 고른 거예요!”
눈을 반짝이며 기뻐하는 1과장을 보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지만, 말을 번복하지는 않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하얀 거짓말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나.
내 기억상 어머니는 붉은 옷은 물론, 붉은 장신구도 애용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너무 화려한 색보다는 부드럽고 따뜻한 색을 좋아하셨지.
그렇지만 기껏 선물을 준비한 예비 며느리에게 어찌 잔혹한 진실을 말해주겠나. 게다가 어머니도 예비 며느리가 준비한 선물이라고 하면 좋아하실 거라 믿는다.
‘하나 정도야 뭐.’
어차피 선물은 1과장만 준비한 게 아니다. 시부모님을 빈손으로 찾아갈 수 없던 며느리들 전원이 선물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시부모님의 취향을 묻는 며느리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렸었고, 어머니가 다른 건 몰라도 목걸이는 꼭 끼고 다닌다고 말하니 다들 목걸이를 준비하더라. 가주 취향은 솔직히 모르겠어서 말도 못 했고. 그건 알아서들 샀겠지.
그렇게 어머니가 받을 목걸이만 여섯 개. 그렇다면 빨간 거 하나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오히려 밋밋한 색 중에서 혼자 튀는 것이 있다면 더 시선이 갈 것 같다.
‘요일마다 하나씩 쓰시겠네.’
실없는 생각이 떠오르자 픽 웃음이 터졌다. 하필 아들이라는 놈이 입을 잘못 놀리는 바람에 어머니는 매일 다른 목걸이를 끼게 될 위기에 처했다. 목걸이가 아니라 장신구면 다 좋아한다고 할걸 그랬어.
“아버님한테 드릴 선물도 샀고, 부장님 것도 준비했어요!”
“아니, 그걸 왜 내 앞에서 말해.”
당당하게 외치는 1과장의 모습에 소소한 문화 충격을 받았다. 이건 또 신박하네. 받을 사람 앞에서 선물 예고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말 안 했어도 아시잖아요. 생일에 선물은 당연히 받는 거죠.”
그리고 굉장히 설득력 넘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자기 생일에 선물 받는 것 정도는 누가 예고하지 않아도 알지.
‘생일이라.’
반쯤 잊고 지낸 단어라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빙의 이후로 매년 겪는 생일이지만 매년 까먹고 있다. 솔직히 내 생일도 아니지 않나.
– 괜찮다면 1월 말에 올 수 있겠니?
“예, 괜찮습니다만… 그때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 네 생일이잖니.
“아.”
그러나 육체의 생일을 잊은 업보는 화려하게 돌아왔다. 내 멍한 대답을 듣자마자 ‘넌 도대체 무슨 생활을 하길래 자기 생일도 잊었냐.’는 듯한 어머니의 눈빛. 미세하게 떨리던 그 눈빛은 내 마음 속 삼각형을 움직였다.
만약 그 타이밍에 아무 말도 안 했다면 가엽고 안쓰러운 동물을 보는 눈빛만 받다가 연락이 끝났을 터. 그 정도는 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갈 때는 저번에 못 본 여섯 번째 며느리도 데려가겠다는 말을 급하게 꺼냈고, 그제서야 어머니의 촉촉한 눈빛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뭔가 4과장을 제물로 도망친 기분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지.
“그런데 페넬리아도 갈 수 있대요? 특무성은 휴가 인원 제한 빡빡한 걸로 아는데.”
마침 1과장도 4과장 쪽으로 생각이 뻗었는지 지극히 합당한 의문을 제기했다.
확실히 특무성은 다른 부서들에 비해 휴가를 신청하는 절차가 복잡하다고 들었다. 한 번에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인원도 다른 부서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 들었고.
“묵광대 애들이 휴가 반납했대.”
“와…”
하지만 인원 제한이 있다면 다른 인원들이 안 나가면 그만. 묵광대 전원이 휴가를 반납하면 4과장 하나 정도는 가뿐하게 나올 수 있다.
…상사를 위해 휴가를 포기하는 부하들의 광기가 무섭지만, 그만큼 4과장의 인망이 좋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공무원들이 서로 휴가를 맞추고, 마탑주는 부탑주에게 짬을 때리는 조정 기간을 거친 후.
“오랜만에 오는구나. 다시 와도 반가운 곳이야.”
대륙 제일의 마법사 덕분에 편한 이동을 할 수 있었다. 텔레포트를 쓰니 바로 성 앞으로 떨어지던데, 불편한 일이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하지.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왔습니다.”
내 인사에 마종공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마치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물론 마종공의 능력을 생각하면 정말 별거 아니기는 하지만, 타인의 배려를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사소한 것이라도 감사를 표하는 것이 도리.
“고마워, 베아트릭스.”
그래서 조용히 귓속말을 하니, 마종공의 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효과 확실하구만.
***
두근거린다. 오늘은 난생 처음으로 저택을 나가는 날이다. 단순히 내 방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려 저택에서 나가는 날.
“세라, 괜찮겠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니, 그냥 여기에 있자. 차라리 그게─”
“괜찮아. 이미 검사도 다 끝난 거잖아?”
옆에서 나보다 더 긴장한 것 같은 에리히를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이건 꼭 거쳐야 하는 단계다. 에리히와 같이 아카데미에 다니기 위해서는 결국 바깥을 돌아다녀야 한다.
그것을 입증해야 한다. 내가 아카데미에 다니는 것이, 외출을 하는 것이 문제가 없다는 걸 보여야 한다. 그래야 에리히와 함께 할 수 있다.
“다들 이상 없다고 했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여전히 불안해하는 에리히의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대며 웃었다.
치료를 맡아준 마법사도, 사제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아카데미 생활도 문제 없을 거라 했으니 이론적으로는 완벽하다. 지금은 그 이론을 토대로 실전을 쌓는 과정일 뿐.
“…그래, 알았어.”
결국 에리히도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대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쉬는 거다?”
그 와중에 조건을 붙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나를 걱정하는 거라 생각하니 오히려 기뻤다.
“후후, 이상하면 기사님한테 의지해야지.”
“계속 붙어 다녀야겠네.”
그 말에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 놀리기 위해 한 말인데 아무렇지도 않게 반격이 들어오니 괜히 가슴이 떨렸다.
‘계속…’
그래도 그 떨림은 기쁨의 떨림이었다. 에리히의 말을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으니까.
내 곁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에리히, 멋진 기사님처럼 나를 에스코트하는 에리히.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하지만 꿈이 아닌 현실이다.
“응, 부탁할게.”
배시시 웃으며 에리히와 팔짱을 꼈다. 그러자 에리히의 몸이 빳빳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귀여워. 얼굴도 빨개졌잖아. 고작 이 정도로 수줍어하다니, 얼마나 순수한 거야.
“자, 가자. 늦으면 안되잖아.”
“어, 응. 그, 그래.”
말까지 더듬거리는 에리히를 보며 당당한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내 얼굴도 만만치 않게 빨간 건, 방을 나가다 거울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성에 도착하자 어머니와 부인께서 맞이해주셨다. 오면서 불편한 건 없었냐, 몸은 괜찮냐, 춥지는 않냐 같은 온갖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 질문이 애정과 걱정이 담긴 것이라 생각하니 전혀 귀찮지 않았다.
“네,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매정하구나.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겠니.”
내 뺨을 매만지며 걱정스레 말하는 부인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머니의 소꿉친구이자 에리히의 어머니. 그 관계로 인해 사석에서는 이모라고 부르라고 하실 정도로 나를 아껴주시는 분.
“정말 괜찮아요. 이모가 좋은 치료사들을 보내주셨잖아요.”
그 말에 희미한 미소를 지은 부인은 어머니를 향해 시선을 돌리셨다.
“생긴 건 딱 어릴 때 너인데, 성격은 어쩜 이리 다를까.”
난데없는 공격에 어머니의 눈썹이 꿈틀거린 게 보였지만, 첫 외출을 한 내 눈치를 보며 참는 게 보였다.
대신 눈으로 욕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은 눈빛을 부인께 보내셨지만.
“그러고 보니 칼은 오랜만에 보는 거겠구나.”
“네. 몇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