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75)
“썬더볼트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라네. 이걸 호수에 던지면─”
“미친 소리 말고 집어 넣게. 오늘만 낚시하고 다시는 안 올 건가?”
그 말에 발터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차고는 도로 품 속에 아티팩트를 넣었다.
“못 본 사이에 더 미쳤군. 역시 의회는 오래 있을 곳이 아니야.”
그 꼴을 보던 전대 호르펠트 백작, 게오르크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 웃음에 짙은 비웃음과 우월감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 아니리라.
“한창 때에 뒷방으로 밀린 게 부끄럽지도 않나?”
“이제 스물이 된 딸에게 짐을 지우다니. 말종도 이런 말종이 없어.”
발터도 그 거슬리는 감정을 느꼈는지 나와 함께 맹렬히 공격했지만─
“부끄럽지 않은 말종으로 살 거니 자네들이나 잘 하게.”
승리자의 한 마디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직도 놀랍다. 한창인 나이였던 놈이 당시 열아홉이던 딸에게 작위를 물려주고 은퇴할 줄은 몰랐으니까. 갑작스러운 동료의 은퇴에 의회도 발칵 뒤집어졌지만, 이놈의 은퇴가 황제 폐하의 뜻이었으니 어쩌겠나.
“부러운가?”
“닥치게. 의사봉으로 내려 찍기 전에.”
“아이구, 무서워라.”
게오르크의 도발에 치를 떨던 발터는 다시 썬더볼트 아티팩트를 꺼냈다.
그래, 호수에 쓰는 것보다는 저놈에게 쓰는 게 낫겠지.
“헌데 빌헬름. 자네 여기 있어도 되는 건가?”
그 모습에 게오르크는 황급히 주제를 돌렸다. 뻔히 보이는 수작이지만, 전기에 지져진 친구를 챙겨서 돌아가는 것도 귀찮은 일이기에 어울려줬다.
“왔을 때 맞이하지 못한 건 마음에 걸리지만, 그런 걸로 섭섭해 할 아이는 아닐세.”
“누구와는 다르군. 나이를 반대로 처먹었어.”
나와 게오르크의 시선이 발터에게 향하자 발터는 제발이 저린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아들이 오는 줄 알았으면 당연히 다음에 만났지!”
“말로는 누구나 그리 말하지.”
게오르크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자 발터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 와중에 부정은 안 하는 걸 보니 본인도 그리 생각하는 것 같고.
“아무튼 축하하네. 나도 그 녀석이 영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설마 뒤에서 여섯이나 모으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나.”
그렇게 한참이나 웃던 게오르크는 표정을 가다듬더니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 이제 에리히도 짝을 찾아야지.”
“그건 그 아이에게 맡길 일일세.”
단호한 대답에에 게오르크가 불만스럽다는 듯 침음성을 냈다.
이 녀석도 질긴 녀석이다. 짝이야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생길 터. 부모가 억지로 이어주려고 해봤자 역효과만 나지 않겠나.
‘한창 바쁠 아이를.’
심지어 이 녀석이 에리히와 이어주려고 하는 아이는 자기 딸이다. 열아홉이라는 나이에 제국백 겸 제국의회 의원이 되어 바쁠 아이.
물론 그 아이와 에리히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기는 하지만, 그 친분을 이유로 부부까지 잇는 건 너무 성급한 생각이다. 단순히 친구로 끝날 인연을 억지로 부부로 만들면 그 업보를 어찌 감당하려고.
“아니, 제노비아도 에리히면 좋다고 했는데…”
“그러면 둘이 알아서 만나겠지. 괜히 간섭하지 말게.”
“하여간 깐깐하기는.”
그렇게 에리히에 대한 대화는 자연스레 끝났고, 참다못한 발터가 아티팩트를 호수에 던지기 직전이 돼서야 낚시를 끝낼 수 있었다.
영지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침대에 등도 붙이고, 저녁이 되어가니 돌아온 가주를 맞이하고 난 후.
“입에 맞는지 모르겠구나.”
다 같이 모인 저녁 자리에서 어머니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딱 맞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식사는 처음입니다.”
그 말에 불침번 서듯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4과장이 칼같이 대답했고, 어머니도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는지 흡족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 음식의 산을 보면 도저히 별로라는 말이 나올 수 없다. 마치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라는 말을 실현한 것 같은 모습 아닌가. 오늘 주방 쪽으로 간 적은 없었지만, 지금쯤 주방장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거라는 건 알겠다. 이거 전부 먹을 수는 있으려나.
“부족하면 편하게 말하렴. 더 준비할 테니.”
“예, 어머님. 감사합니다.”
하루 종일 먹어도 부족할 것 같지 않지만, 4과장은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 모습에서 선임의 식고문에 순응하는 후임의 모습이 보였다면 기분 탓일까. 4과장이라면 정말 억지로 욱여넣고 더 달라고 할 것 같아 무섭다.
“부인. 지금은 이 아이들이 알아서 먹게 두시오. 먹을 때는 편히 있는 게 좋지 않겠소.”
그리고 상석에서 조용히 식사를 하던 가주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혹시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며느리들을 배려한 따뜻한 말. 그러나 가주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웃음이 터질 것 같아 애써 반응하지 않았다.
‘보물 고블린.’
이러면 안 되는데 아까부터 그 단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온갖 선물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가주의 모습은 평소와는 너무 달랐으니까.
목걸이로 통일된 어머니 선물과 달리 가주의 선물은 다양했다. 브로치, 행커치프, 목도리, 팔찌 등등. 정말 통일성 없는 물건들이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가주에게 몰렸고, 가주는 아무 저항 없이 그 선물들을 착용했다.
이게 귀족으로서 다른 가문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마음인 건지, 아니면 며느리들의 선물 공세에 흐뭇한 시아버지의 마음인 건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조금 기괴한 모습이기는 하다만.
‘어머니보다는 낫나.’
물론 목걸이를 받자마자 기쁘게 착용한 어머니보다는 정상적인 모습이다.
설마 그 자리에서 여섯 개 전부를 착용할 줄은 몰랐지. 오히려 선물을 준 사람들이 당황하더라.
“전부 소중한 선물인데 어떻게 순서를 정하겠니. 적어도 오늘은 전부 메고 싶구나.”
그 말에 오히려 감동한 듯 물러났지만. 그래도 이왕 설득하는 거 더 길게 설득하는 건 어땠을까 싶다. 하필 목걸이에 달린 보석도 전부 달라서 무지개를 메고 있는 것 같잖아.
“아니에요, 아버님. 오히려 어머님이 신경 써주시니 기뻐요.”
아무튼 가주의 말에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던 어머니는 마르게타의 말에 다시 미소를 지으셨다. 거기다 다른 며느리들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안색이 더욱 밝아지셨고.
너무 사소한 걸로 일희일비하는 것 같지만, 왜 저러는지 알기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영지에 도착한 직후, 슬쩍 다가온 시녀장에게 따로 들은 것이 있었으니까.
“부인께서는 시부모님과 화목한 관계를 맺지 못하셨습니다. 전대 마님들께서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고, 전대 가주께서는 부인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셨죠. 그러니 당신께서 겪지 못한 화목한 관계를 며느리들을 통해 누리고 싶으실 겁니다.”
시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자신만큼은 며느리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싶다는 마음. 자신은 누리지 못한 화목한 고부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
그런 말을 들으니 어머니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였다.
‘정에 고픈 사람.’
상상도 못했다. 그냥 정숙하고 감정 표현이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설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어쩌면 자식들이 한창 자랄 때 관심을 주지 않은 것도, 자신부터가 크라시우스 가문에서 제대로 된 정을 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생각해 보면 작년부터 나나 에리히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나. 어머니는 매정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미숙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부부 관계는 좋으니 다행이지.’
애써 쳐다보지 않고 있던 보물 고블, 아니 가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려하게 말아먹은 고부관계, 자식들에게 온전히 정을 보이지 못한 미숙한 마음. 악조건을 주렁주렁 달고 있음에도 어머니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가주 덕분일 거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별로여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남편이 있다면 괜찮지 않겠나.
‘…왜 좋은 거지?’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미숙한 어머니가 믿고 의지한 사람이면 어느 정도 코드가 통한다는 건데, 무뚝뚝하고 기계적인 가주가… 코드가 맞을 수 있나…? 저 둘의 관계가 좋을 이유가 있어?
조금 혼란스럽다. 혹시 가주도 어머니처럼 미숙한 거였나? 둘이 거기서 거기라 사이가 좋은 거고? 사실 가주가 날 감찰부에 팔아먹은 걸 빼면 딱히 엿을 먹인 적도 없었는데. 자식한테 무관심한 건 어머니하고 다를 것도 없고.
‘모르겠다.’
밥을 먹으며 생각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문제다.
그래도 급한 문제도 아니니 느긋하게 생각해야지…
한 번 물꼬를 튼 의문은 댐문이 열린 것처럼 쏟아졌다. 가주가 내 인식과는 달리 엄격 근엄 진지한 기계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품고 말았으니까.
“소가주님. 죄송하지만 결재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상관은 없다만, 가주께서 계시지 않나?”
그 근원적 의문은 다음날 아침, 머쓱하게 찾아온 집사장 덕분에 품고 말았다.
“그, 각하께서 마님과 중요한 대화 중이라…”
“대화?”
“그것이…”
잠시 뜸을 들이던 집사장의 말은 많이 충격적이었다.
“각하께서 어제 업무 문제로 늦는다고 하셨는데, 어제 신고 계시던 신발을 보니 마른풀과 진흙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게 왜.”
“보통 낚시를 다녀오시면 그런 흔적이 남습니다.”
그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요약하면 업무 핑계로 놀러 갔던 남편이 아내에게 들켜서 바가지 긁히는 중이라는 거 아닌가.
혼란스럽다. 내가 알던 가주하고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심지어 집사장의 반응도 단순히 머쓱해할 뿐, 딱히 당황한 기색은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사건이 예전부터 종종 있었다는 듯이.
“각하께서 업무 문제로 모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홀로 낚시를 가신 것이 아니라, 바르돈 백작과 전대 호르펠트 백작이 함께 갔다고 했습니다.”
입을 열지 못하는 내 모습이 ‘며느리를 데려왔는데 놀러 간 아버지를 보고 충격받은 아들’ 처럼 보였는지, 집사장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충격을 받은 건 맞지만 집사장이 생각하는 이유로 받은 건 아니다. 나름 고위 공무원으로 구르는 입장이라, 사적인 시간을 누군가와 같이 보내는 것도 업무의 일환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나도 아카데미 파견 전에는 황태자한테 붙잡혀서 사냥을 나간 적이 있지 않았나.
지금의 충격은 그냥, 그냥 의외의 사람이 의외의 모습을 보여서 받은 충격에 불과하다.
‘대화 중…’
순간 눈을 감을 뻔했다. 말이 좋아 대화 중이라는 거지, 사실상 어머니에게 일방적으로 구박당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는 의미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집사장이 나한테 와서 결재를 부탁할 필요가 없다. 정말 대화 중이라면 슬쩍 끼어들어서 서명 받고 나갔겠지.
그 와중에 신발을 보고 눈치챘다는 게 웃기네. 상습범이 아닌 이상 고작 그런 단서로 결론을 내기는 힘들 텐데.
아, 그럼 상습범이겠구나.
‘대단하네.’
몰랐던 가문의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이다.
딱히 기쁘지는 않다.
***
가시방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