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78)
“얼마나 다녀갔습니까?”
“구휼성, 해양성, 문화성, 형무성.”
“오.”
오, 는 무슨. 이 새끼가 남 일이라는 듯이 반응해.
“다음은 군부 차─”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뚝심 있는 새끼.’
장관, 그것도 장관 서열 2위인 재무성 장관의 문을 무단으로 열어젖히는 패기. 대충 누구의 소행인지 알 것 같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상에는 노크라는 기품 있고 정중한 문화가 있는 법인데, 저 반 야만인은 아직도 배우지 못했다. 어디 가서 지인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나 왔다. 혹시 늦은 건 아니지?”
사실 늦는 게 아니라 그냥 안 왔으면 했다.
***
아무런 조짐도 없이 문이 열렸다. 뭐지, 노크 소리도 안 들렸는데?
상상도 못한 상황인지라 순간 황태자가 왔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장관보다 서열이 높은 궁내성 장관도 이렇게 막 나가지는 못하는데, 대체 누가 이런 패기 넘치는 짓을.
‘아.’
그리고 얼굴을 보자마자 납득하고 말았다. 저 사람이면 그럴만하지.
“나 왔다. 혹시 늦은 건 아니지?”
“제시간에 왔다.”
퉁명스러운 장관의 대답에 낄낄거린 여인은 나를 발견하더니 격하게 손을 흔들었다.
“오, 꼬맹이도 있었네. 잘 지냈냐?”
“예, 뭐. 그럭저럭.”
그 대답에 여인, 중부 방면군 사령관이 내 옆에 앉더니 자연스레 어깨동무를 하며 웃었다.
“크으, 1년 만에 보네. 그 사이에 많이 컸어. 성장기라서 그런가?”
“스물도 넘은 놈이 뭔 성장기.”
장관의 타당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중부 방면군 사령관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면서 퍽퍽 어깨를 내려치는 것이 정말 꼬맹이 취급하는 것 같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사람 입장에서 나는 꼬맹이가 맞다. 장관과 동급인 사람이니 부하인 나는 애송이로 보이겠지.
이 사람에 비하면 나이, 경력 등 모든 것이 밀린다. 심지어 카간을 죽였다는 업적도 큰 의미가 없다.
감찰부 4과의 팀장들이 카간 토벌을 시도할 수 있었던 계기, 카간이 중상을 입었던 전투에서 장관과 함께 활약했던 사람이 이 사람이니까.
“그러고 보니 곧 결혼한다고 들었는데. 축하한다! 자식은 얼마나 낳을 생각이냐?”
“천천히 생각하려고요…”
“그래? 뭐, 부인 한 명당 자식 셋이면 충분하지!”
FC 크라시우스의 탄생에 조용히 눈을 감고 말았다. 장관도 기인이지만 이 사람도 만만치 않게 기인이다.
아니, 사실 카간한테 중상을 입힐 사람들이면 정상이 아니기는 한데, 진짜 하나같이 어딘가 미친 사람들이라 나도 미칠 것 같아.
장관 서열 2위인 재무성 장관, 군부 인사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중부 방면군 사령관. 이 환상적인 라인업 사이에 낀 일개 부장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차라도 타면서 비서 노릇 하는 거지. 차가 없으면 공중제비 돌면서 재롱 잔치 부리는 거고.
‘나도 어디 가면 대접 받는 입장인데.’
서럽다. 아무리 직책이 부장급이면 뭐하나. 툭하면 장관급하고 만나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데. 내 아래에 몇 명이 있든, 결국 내 위도 수두룩하면 의미 없는 상황 아닌가.
“입에는 좀 맞으십니까?”
“음, 괜찮은데? 예전에는 맹물 마시는 기분이었는데, 많이 늘었어.”
예의상 물어본 말에 진심 가득한 평가가 돌아왔다. 미칠 것 같다. 분명 칭찬인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북방에서 한창 구르던 시절, 장관과 이 사람한테 인정 받는 것이 목표였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인간은 장관과 달리 무슨 활약을 하든, 심지어 영혼의 맞다이 끝에 팔준마 중 하나인 사레이 도브라 탈라를 죽였어도 칭찬 하나 없는 양반이었다. 그냥 수고했다는 위로가 전부였지.
그런데 겨우 차를 잘 탄다고 칭찬을 듣네…
‘인생.’
탈라 이 새끼야, 지옥에서 보고 있냐? 내가 너 죽이겠다고 사지가 부러지고 눈 하나도 터졌었는데, 구석에서 차나 타는 게 더 좋았어.
아마 지옥에 있는 탈라도 이 광경을 보면 땅을 치며 통곡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가치가 겨우 이 정도냐고.
“내 질주가 끝난 것은 아쉽지만, 동시에 만족스럽다! 그 끝을 정한 것이 새로운 영웅이니까! 그래, 크라시우스 칼. 그대가 보기에 나는 초원의 늑대였나?”
갑자기 그놈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음 생이 있다면 늑대가 아니라 티백으로 태어나렴.
“군부에는 다른 부서보다 넉넉하게 주는 편인데, 얼마나 더 뜯어 먹으려고 직접 온 거냐?”
“아이, 섭섭하게. 친구 사이에 얼굴 좀 보자고 온 거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 사이에 장관과 사령관이 옥신각신 대화를 나누기에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대토벌 전쟁 이후로 군부에는 최대한 많은 예산을 배정했다. 만약 액수가 부족해서 항의하고 싶다면 적당히 총사령부의 참모를 보내면 그만. 그런데 사령관급 인사가 직접 와? 그것도 장관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공중 요새라도 만들 생각인가.’
아펠스가 실현했던 남자의 로망이 떠올랐지만 금방 털어냈다. 그거 가동하니 금방 지면으로 추락한 애물단지였지.
“말 좀 사려고.”
결국 한참이나 실랑이를 하던 사령관이 먼저 본론을 꺼냈다.
“파는 곳은 있고?”
“그러니 액수를 세게 불러야지.”
그 말에 장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찼다. 하필 명분이 말이면 장관도 어쩔 수 없다.
말, 당연스럽게도 기병을 육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 솔직히 병사가 부족하면 징병이라는 방법으로 어떻게 커버가 가능하지만, 말이 없다면 답이 보이지 않는다. 말이 뭐 닭이나 돼지처럼 쉽게 기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대토벌 전쟁에서 카간의 맹활약으로 제국의 기병 전력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심지어 북방의 친제국 부족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으면서, 제국이 원활히 말을 수급할 수 있는 루트도 사라진 상황.
이 수급 루트를 복구하려면 몇 년은 걸릴 텐데, 그때까지 기병 육성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그걸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남는 장사지.’
물론 말은 대륙 전체에서 전략 물자에 준하는 취급을 받으며 수출이 엄격히 통제된다. 자기 나라에서 쓸 것도 부족한 말을 타국에 판다? 역적 취급 받아도 무죄 아니겠나.
하지만 어딜 가나 돈이 충성심과 애국심을 이기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사령관급 인사가 자신 있게 찾아올 정도면 이미 준비는 끝났을 터. 임시 수급처를 찾기 위해 처절히 노력했을 군부를 생각하면 눈물이 절로 나온다.
“이거 거래만 무사히 끝나면 숨 좀 트인다니까? 완벽히 복구하는 건 무리지만, 70%까지는 가능해.”
압도적 명분을 쥔 사령관의 말에 장관은 침음성을 냈다. 군부가 2년, 아니 3년 동안 달고 지낸 기병 문제를 7할까지 복구할 수 있다면 없는 예산도 만들어서 줘야 하는 게 맞으니까.
“잘 생각해봐. 북쪽에 도르곤, 그 새끼가 아직도 개지랄 떨고 있잖아. 그 새끼가 부족 몇 개 포섭하면 오늘 일 생각날걸? 아, 그때 내 저금통이라도 깨서 줬어야─”
“알았으니 그만.”
제국 공무원의 발작 버튼까지 눌리자 장관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북방에서 다시 소란이 일어나는 건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 재앙. 심지어 그 재앙이 현실성이 있는 재앙이면 더욱 그렇다. 도르곤이라는 역천자의 잔재가 북방에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무슨 일이 터질 것이 당연하니.
“줘.”
조금 기운이 빠진 것 같은 장관의 목소리에 사령관이 기다렸다는 듯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대충 훑어보고는 바로 직인을 찍는 장관.
대단하네. 다른 부서들은 서류로 탑을 쌓아야 직인이 찍힐까 말까인데.
“크으, 장관 각하의 위대한 결단에 제국의 충용무쌍한 병사들도 기뻐할 겁니다.”
사령관도 쿨거래에 만족했는지 과장스러운 어조로 박수를 쳤다. 그래봤자 외팔이라 무릎을 치며 박수 소리를 냈지만.
정작 직인 한 번에 예산이 후드득 빠져나간 장관의 표정은 초췌해 보였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만약 돈을 안 주고 버티다가 진짜 북쪽에서 소란이 생기면 그 여파는 감당할 수 없을 텐데. 애초에 만일에 대비해서 돈을 먹는 집단이 군대기도 하고.
“그럼 다음에 보자고.”
“다신 오지 마라.”
“좋으면서 튕기기는.”
아무튼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사령관은 올 때 그런 것처럼 갈 때도 바람처럼 사라졌다.
장관을 일방적으로 두드려 패는 모습… 나도 언젠가는 저런 사람이 됐으면…
군부, 정확히는 사령관에게 쪽쪽 빨린 장관은 한참이나 미간을 짚으며 말이 없었다.
그렇게 돈을 뜯긴 게 억울할까. 어차피 줘야 할 돈이면 그냥 빨리 주는 편이─
“야.”
“예?”
“장관이 전쟁에 나가면 어떨 것 같냐?”
그 정신 나간 소리를 듣고 나서야 장관의 고민을 깨달았다. 화려하게 털린 예산 때문에 말이 없던 것이 아니라, 도르곤이라는 암세포 때문에 말이 없던 것.
물론 장관도 도르곤이 북방 어딘가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군부 주요 인사에게 직접 ‘도르곤이 개지랄하는 거에 대비해야 됨 ㅎ’ 이라는 말을 듣는 건 별개의 기분이지 않겠나. 막연하게 느껴지던 위협, 과거의 악몽이 코앞으로 임박한 기분일 거다. 카간과 충돌한 전적이 있던 장관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겠지.
“되겠습니까?”
그래도 내가 돌려줄 답이 변하지는 않는다. 재무성의 수장이 전쟁에? 그게 되겠냐고. 이 양반이 아직도 자기가 감찰부인 줄 아나.
“역천자가 부활해도 그건 안 될 겁니다.”
“망할, 그건 그렇지.”
혀를 찬 장관은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정말 카간이 지옥에서 기어 올라오더라도 장관이 전쟁에 참여할 일은 없다. 위신에 미친 듯이 신경 쓰는 제국이 정규군이나 특수 전력이 아닌 재무성 장관을 출전시킨다? 제국이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그래도 전승공 각하도 계시고, 특무성도 있지 않습니까. 여차하면 저도 있고요.”
일단 기묘한 걱정을 하는 장관에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국이 전쟁 전에 비해 약해진 건 맞지만, 그건 북방도 마찬가지 아닌가.
카간은 물론 팔준마도 도르곤을 제외하면 전부 죽었다. 반면 제국에는 전승공도 건재하고, 4과를 이은 묵광대도 있고, 현역에서 뛰던 나도 아직 감찰부고─
“네가 있어서 더 걱정이다.”
“아니, 뭔.”
기껏 달래주는 사람한테 무슨 말이야 그게.
***
모든 부서의 시선이 재무성에 쏠린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이 여유가 1년에 몇 안 되는 휴식기라고 생각하니 썩 달갑지는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