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8)
제 28화
악역? 영애 – 2
순간 오늘이 주말이거나, 아니면 벌써 동아리 시간인가 싶었다. 이상하다, 분명 수업 시간이 맞는데. 왜 학생이 여기 있는 거지? 부회장이 수업 탈주하고 그래도 돼?
의문과 현실 부정을 담은 눈으로 마르게타를 쳐다보자 마르게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칼 영식. 손님을 계속 세워두실 건가요? 못 본 사이에 많이 거칠어지셨네요.”
힐난하는 어투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웃음기는 숨기지 못했다. 과장되게 갸우뚱거리는 고개와 어투 속에서 마르게타의 눈은 초승달처럼 휘어있었다. 갑작스러운 방문과 장난에 헛웃음이 흘러나올 뻔했지만, 아무튼 손님이기는 하지.
“그럴 리가요. 자, 여기 앉으십시오. 차라도 가져오겠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금방 돌아갈 거라서요.”
“그렇습니까?”
그건 다행인 소식이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마르게타의 맞은편에 앉았다. 다행히 금방 돌아갈 거라고 하니 딱 용건만 말하려는 듯 보인다. 마르게타가 굳이 이 시간에 찾아온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내가 찾아갈 예정이었다. 당황스럽지만 나쁠 건 없지.
마르게타를 바라보자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지은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아니, 일단 손님으로 왔으면 먼저 용건을 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 시간에 마르를 볼 줄은 몰랐습니다. 급한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저희 사이에 꼭 급할 때만 봐야 하나요?”
“1년 만에 본 사이가 그리 돈독한 사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혼담 얘기까지 오갔으면 보통 사이는 아니죠.”
갑작스러운 공격에 몸을 흠칫 떨자 마르게타는 농담이라며 작게 웃었다. 공녀는 무심코 던진 돌이겠지만, 가여운 공무원은 그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제발 눈 앞의 공녀님이 그걸 알아주셨으면 하는데.
작게 한숨을 쉬자 쿡쿡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봤을 때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장난도 걸며 놀리더라. 철혈공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공녀의 장난이라 외면하거나 반격할 수도 없었고.
그렇게 시달리던 내가 철혈공이 제안한 혼담을 어떤 심정으로 거절했는지 마르게타는 모를 거다. 웃고 있는 마르게타가 갑자기 돌변해서 ‘감히 너 따위가 거절을 해!’ 라며 목을 조르지는 않을까 무서웠다.
분노한 철혈공의 손으로 공작성 앞에 효수되는 꿈도 가끔 꿨었고. 끔찍했지. 다행히 지금까지도 별일 없었지만.
“사실 칼 영식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서 왔어요.”
“경청하겠습니다.”
“곧 동아리 박람회가 열리는 건 알고 있죠?”
알고 있다. 아무리 명함만 단 수준이지만, 명색이 동아리 고문이라 그 정도 일정은 파악하고 있다.
애초에 며칠 전부터, 박람회 때 이것저것 만들어서 선보이겠다는 루이제의 당찬 포부를 귀 따갑게 들은지라 모를 수가 없기도 하고.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은 루이제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마르게타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동아리 박람회는 단순한 아카데미 내부 행사가 아니에요. 동아리를 매개로, 이미 졸업한 귀족들이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귀족들과 접촉하는 사교장이나 마찬가지죠.”
저는 이해할 수 없지만요.
그렇게 덧붙이며 어깨를 으쓱이는 마르게타의 말에는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수십년을 사교계에서 부딪히며 지낼 텐데, 굳이 동아리까지 기어올 필요가 있나? 파벌을 견고하게 하고, 인재를 조기 발굴하겠다는 심정은 알겠다만.
“그래서 매년 동아리 박람회를 준비하느라 학생회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운용하는 예산이 적지 않은데, 저희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그러니 칼 영식이 도와주면 정말 든든하겠는데.”
“예?”
당당히 말하는 마르게타의 요청에 절로 얼빠진 소리가 새어나왔다. 도와달라고? 나보고?
“제가 말입니까?”
“네. 작년에 해보니까, 예산이 맞게 분배됐는지 확인하는 게 제일 오래 걸렸거든요. 칼 영식이 있다면 금방 끝날 것 같아서요.”
“저는 학생회와 연관이 없는데요.”
“하지만 아카데미 감찰관이시죠?”
마르게타의 말을 들을 수록 점점 어이가 가출하는 기분이었다. 나보고 예산이 제대로 움직였는지 확인해달라고? 아카데미 감찰관이니까?
“감찰 받기를 자청하는 건 처음 겪는군요.”
상상도 못한 요청이었다. 이건, 진짜 신박하긴 하네. 다들 어떻게든 피하려고 드는 게 감찰인데, 오히려 먼저 와서 요청할 줄은 몰랐다. 떨떠름하게 바라보는 내 시선에도 마르게타는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희가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니니 두려울 게 있나요? 전문가의 눈으로 예산이 제대로 움직였는지 확인 받고 싶은 거예요. 가능할까요, 감찰부장님?”
기대 어린 눈으로 보는 마르게타에게는 유감스럽지만, 난 마르게타가 원하는 능력으로 부장 자리에 오른 게 아니다. 나나 장관은 많이 특이한 방식으로 승진한 케이스라, 일반적인 재무성 장관, 감찰부장하고는 거리가 좀 있다.
그거 때문에 감찰부장 단 직후에는 밖으로는 2황자파, 안으로는 재무성 기존 주류 세력에게 칼질하느라 정신 없었지. 그 때 일은 다시 생각해도 눈 앞이 깜깜하다.
…아니, 그런데 이거는 마르게타도 알 텐데? 당시 재무성이 개판이었던 건 워낙 유명해서 공작가 일원이면 듣기 싫어도 듣게 되는 소식이다. 그걸 알면서도 내 도움을 받겠다고?
내 시선에 부정적인 감정이 듬뿍 담겼는지, 마르게타는 곤란하다는 듯 손에 쥔 부채를 자신의 볼에 대며 고개를 기울였다.
“무리한 부탁이었을까요?”
“학생회의 업적에 괜히 제 이름이 끼면 의미가 퇴색될 겁니다.”
“아쉽네요.”
내 거절에 살포시 한숨을 내쉬는 모습이 순순히 포기하려는 것 같았다. 이건 의외다. 이 시간에 직접 오기에 작정한 줄 알았는데. 하기야, 이미 작년에도 했다고 하니 꼭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겠지.
“하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저도 이번 일에 얼마나 몰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마르라면 잘 해낼 겁니다. 작년에도 해내셨지 않습니까.”
“그래도 저희끼리 하면 골치가 아프거든요. 학생회 중에 바람을 쐰다며 나가더니 한참이나 돌아다니는 경우도 있었어요. 칼 영식이 있다면 가만히 일에만 몰두할 수 있을 텐데.”
“…….”
노골적인 마르게타의 말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걸 거래 조건으로 올려 버리네.’
겉으로는 ‘일하기 힘드니 도와주세요 힝힝’ 거리는 것 같지만, 한 껍질만 벗겨도 바로 그 속내가 보인다.
= 내가 루이제 찾아가는 거 꺼려질 텐데, 나 도와주면 가만히 있을게.
순순히 협조하면 아카데미 어딘가에 있을 루이제를 찾아가 저격하지 않고, 얌전히 학생회실에서 업무나 보겠다는 의미다. 세상에, 이렇게 투박한 거래라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만큼 효과적이고.’
아무래도 어제 마르게타가 루이제를 저격한 건 지금을 위한 빌드업이 아니었나 싶다. 자신이 루이제와 동아리를 위협하는 모습을 보여서, 그 위협을 없애고 싶다면 자신의 말을 들어 달라고 하기 위해.
속이 빤히 보이는 수법이지만, 여기서 거절하면 단순한 빌드업이었던 저격은 보다 화려하게 변모하여 루이제를 덮칠 것이다. 그건 곤란하지.
생각을 정리한 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눈을 떴다.
“마르가 힘들다는 말을 들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군요. 저로도 괜찮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칼 영식. 믿고 있었어요.”
“하하하.”
난 처음부터 결과가 정해진 싸움을 시작한 거였다.
도와주겠다고 하긴 했지만, 설마 바로 잡아갈 줄은 몰랐다. 아무리 공녀여도 지금은 학생이니 교실로 돌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학생회는 박람회 준비로 학생회실에 있거든요. 저는 칼 영식을 데려가려고 잠시 나왔지만요.”
그렇구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가끔은 수업보다 중요한 것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팔려가는 노예의 심정으로 마르게타의 뒤를 따라 학생회실로 이동했다. 그래, 차라리 빨리 끝내는 게 낫겠지. 어차피 동아리 시간이 아니면 동아리실에만 머무를 이유도 없고.
어느새 학생회실에 도착한 마르게타는 예의상 문을 몇 번 두드리더니, 대답이 들려오기 전에 벌컥 열어버렸다. 그럴 거면 노크하는 의미가 있나?
아무튼 슬쩍 학생회실 안을 들여다보니 이미 여섯이 모여있었다. 학생회는 마르게타까지 일곱이구나. 연이 없어서 관심도 두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전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거 많이 어색하네.
“부회장. 밖에 계신 분은?”
가장 상석에 앉은 남학생, 아마 회장인 것 같은 학생이 본인도 어색한 듯이 내가 있는 쪽을 쳐다봤다. 뭐야, 도움 요청한 쪽에서 그러면 어떡해. 나 데리러 간 마르게타가 돌아왔으면 당연히 나하고 온 거겠지.
“제과 동아리 고문으로 계시는 칼 크라시우스 감찰관님이에요. 이번 박람회 예산 관련으로 조언을 구하기 위해 모셔왔어요.”
그 말과 동시에 막 학생회실로 들어간 나와 상석에 앉아있던 회장의 눈이 마주쳤다. 그제서야 내 얼굴을 봤는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는 눈동자. 주변을 보니 다른 다섯의 반응도 비슷했다.
야, 설마.
“마르. 제 조언을 듣는 것, 학생회가 합의한 사항 아니었습니까?”
“아니에요.”
그 아니에요, 라는 말에는 ‘내가 결정한 일에 합의가 왜 필요하지?’ 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아, 이런 사람이었지. 바렌티 공작가의 마이웨이 성향을 잠깐 잊고 있었다.
정말 왜 그런 걸 물어보는지 궁금하다는 듯 쳐다보는 마르게타의 시선에 나는 조용히 시선을 상석의 회장 쪽으로 돌렸다.
창백하게 질린 안색과 딱딱하게 굳은 몸. 회장 입장에서는 난데없는 봉변이겠지. 그렇지 않아도 공녀라 대하기 힘들 부회장이 갑자기 감찰관을 데려왔다. ‘네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끌어내리려고 데려왔다’, 라고 해석해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오해다. 나는 지금까지 내 존재가 학생들에게 위협이 될 것 같아 동아리실에만 처박혀 있었다. 부원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만나지 않는 은둔 생활을 보냈다. 이게 마르게타의 독단인 줄 알았으면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오지는 않았지…
미안한 마음에 살짝 고개를 끄덕여주자 회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너 무슨 생각 하냐. 그거 아니야.
한숨을 내쉴 뻔하다가 겨우 참았다. 이 상황에 한숨까지 내쉬다가는 바로 회장이 대가리를 박을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후기를 통해 후원 감사 인사를 드린 분의 닉네임에 파파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거기까지는 별일 아니지만, 하필 어제 제가 후기에 아버지도 언급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기막힌 우연으로 인해 일부 독자님들이 작은 오해를 품으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아들을 두게 생긴 그 분의 명예를 위해 말씀드리자면, 그 분은 정말 지나가시던 선량한 독자님이십니다… 아니, 저도 독자님들 입장이라면 ‘혹시?’ 싶을 우연이기는 한데, 진짜 아닙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렌지주스님!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