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81)
둘도 없을 은혜를 받은 내가 보답할 방법은 그게 유일할 테니.
“아카데미와 달리 이번에는 막내로군. 열심히 하도록.”
“예! 명심하겠습니다!”
지금은 감찰부장님의 손을 잡고 허리를 숙였다.
미래에는 반드시 저 분의 뒤에서 당당히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
첫 인사 뒤로도 신입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덕담을 건넸다. 데미안을 비롯한 간부들을 볼 때는 조금 반가웠지만, 과하게 친한 척을 하면 질투를 받을 수도 있으니 적당히 넘어갔다. 말단이 수장과 친하다는 소문이 퍼지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질 테니.
‘얘네도 언젠가는 과장이 되겠지.’
끔찍한 미래에 눈을 감을 뻔했다. 너네 그냥 평생 팀원으로 지내면 안 될까.
신입들이 들으면 입에 거품을 물 생각이지만, 솔직히 진심이다. 그나마 팀장들은 정상인데 과장들은 승진하면서 개념을 팔아먹었는지 광기만 보여주니까.
제발 너희라도 순수한 막내로 남아줘…
폭탄은 갑작스레 터졌다.
아니, 이걸 겨우 폭탄이라고 취급해도 되는 건지도 의문이지만, 아무튼 갑작스러운 건 매한가지다.
[ 1378년 3월부터 파견 근무자에 대한 복지 제도 시행. 궁내성, 재무성, 외무성부터 시범적으로 운영하며 1380년 6월까지 제국 모든 부서 및 기관에 적용되는 것을 목표로 할 예정. ]마종공의 생일이 임박해서 무슨 선물이 좋을까 고민하는 사이, 통신구를 통해 일괄 전파된 궁내성의 공지. 궁내성이 황실의 비서이자 입이라는 걸 생각하면 사실상 황실, 정확히는 황태자가 내린 명령.
‘뭔데.’
문제는 너무 뜬금없고 의도를 모르겠을 명령이라는 거다. 파견 근무자에 대한 복지? 궁내성과 재무성, 외무성부터 적용?
뭐, 복지라는 이름이 붙었으니 나쁜 건 아니겠지. 마침 재무성도 적용이라고 하면 나도 포함이고.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면 좋은 쪽에 가까운 소식이다.
‘왜?’
하지만 방금 생각한 것처럼 의도를 모르겠다는 것이 문제다. 공무원이 갈리고 갈려야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다는 것이 크펠로펜 제국의 국시다. 이건 초대 황제인 에이만카 대제부터 내려온 저은-통이라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심지어 현 황제와 황태자는 에이만카 대제의 환생이라도 되는지, 스스로를 제국의 부품인 것처럼 갈아버리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고.
그런데 그런 황실이 아랫것들의 숨통이 트이는 복지 제도를 만든다? 누구의 청원이나 애원 없이 스스로?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럴 리가.’
절대 그럴 리 없다. 결코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 집단이 황실이다. 무언가 선심 쓰듯이 하사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가져가는 무자비한 것들 아닌가.
반대로 아무 포상 없는 노동을 시키지도 않지만, 그렇게 철저한 황실이니 더욱 믿을 수 없다. 내가 보고 겪은 황실은 의도가 순수한 것들이 아니니까.
그래, 무슨 속셈이 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 파견 기간 3주당 2일의 휴가를 지급. 해당 휴가는 파견 복귀 당일부터 사용 가능하며 최우선적으로 접수되는 휴가로 취급. ]…그런데 이 정도면 속셈이 있어도 상관 없을 것 같긴 해.
‘3주당 2일.’
자세한 복지 내용을 확인하니 감격에 손이 떨렸다. 이걸 내 아카데미 파견에 적용하면 못해도 한 학기에 열흘이 넘는 휴가가 생기는 격이다.
와, 열흘? 그것도 최우선적으로 접수돼서 밀릴 걱정도 없는 휴가가 열흘? 최고 아니냐? 그동안의 경험은 독이 든 성배라고 경고했지만, 알게 뭔가. 어차피 독이라면 성배라도 잘 챙겨야지.
그냥 가만히 입만 닫고 있으면 확정 휴가가 한 학기에 열흘이 생기는 거다. 2학년 1학기부터 3학년 2학기까지 버틴다고 생각하면 최소 40일의 휴가가 생기는 거고.
“좋네.”
너무 좋다. 오늘만큼은 황태자 십일장생 기원 기도를 멈춰도 될 것 같다.
***
결국 고민 끝에 마종공의 청원을 받아들였다. 고작 이런 청원을 황실의 이름으로 처리하는 것에 자괴감이 들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마종공과의 사이가 어색해질 수는 없는 노릇.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 제도로 관료들의 사기가 오른다면 장기적으로는 이득이다. 인재를 짧은 시간에 혹사시키면 오래 쓰지 못하는 법. 감찰부장한테도 적당히 기름칠을 해야 오래 갈 것이다.
애초에 감찰부장이 파견을 나갈 일이 이번 아카데미 사건을 제외하면 뭐가 있겠나. 딱 2년, 2년만 포기하면 충분한 제도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사랑받는 남편이군.’
뒷목을 주무르다가 픽 웃음이 터졌다. 부황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제국의 거물, 정계의 영향력이나 인간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마탑에서만 지내는 은자.
그런 마종공이 사랑에 빠지자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기이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말 감찰부장이 무겁고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허나 동시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마종공이 혼혈이라지만 장수종의 피가 흐르거늘, 필연적으로 감찰부장이 먼저 떠날 운명 아닌가. 마종공의 모친도 전대 세르베트 공작이 사망하자 그 뒤를 따르듯 죽었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의 사랑이 훗날의 독으로 변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그건 곤란하지.’
100년이나 제국을 지탱했고, 앞으로도 수백 년을 더 지탱해야 할 마종공이다. 수명이 다해서 에넨의 품으로 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시름시름 앓다가 요절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러니 감찰부장이 장수하게 온갖 비약을 챙겨주는 것이 제국을 위한 길이지 않겠나. 마종공처럼 사는 건 바라지도 않고, 한 150까지만 살았으면 바랄 게 없다.
아니, 애초에 내가 하는 걱정을 마종공이 모를 리는 없다. 어쩌면 이미 무슨 수를 쓰고 있을 수도 있지. 그럼 150이 아니라 300도 가능하지 않을까?
‘300이라.’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제국 역사가 300년인데 앞으로의 300년을 감찰부장이 책임진다라.
듣기만 해도 웃긴─ 아니 기쁜 소식 아닌가. 내 아들, 손자, 증손, 고손까지 감찰부장의 충성을 받는다면 제국의 앞날은 실로 밝을 것이다. 물론 과대망상이나 다름없는 생각이지만.
…300, 아무래도 현실로 이루어질 것 같다. 마종공의 사랑은 과대망상을 현실로 만들 정도로 무거웠다.
“부황 폐하, 이것은─”
“태자가 본 그대로다.”
부황의 호출을 받아 급히 달려간 집무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받은 한 장의 서류.
그러나 그 서류에 담긴 내용은 고작 한 장의 가치를 가지지 않았다.
“마종공이 아카데미에 간다고 하는군.”
부황은 덤덤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지만, 그 표정이나 자세에서는 혼란과 착잡함이 느껴졌다. 부황께서 이렇게 감정을 보이신 적은 드문데.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누구라도 이 서류를 본다면 같은 반응을 보일 거라 확신한다.
‘아카데미.’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아카데미라니, 그 마종공이 아카데미에 간다니. 부황의 앞만 아니었다면 머리를 부여 잡고 쓰러졌을 거다.
마탑에서 1년 주기로 아카데미 학생들을 가르칠 마법사를 보낸다는 건 알고 있다. 그 파견 자체가 황실의 권유로 시작된 것이니 어찌 모르겠나. 마탑의 우수한 마법사들이 제국을 이끌어 갈 미래들을 가르친다면 제국의 복이요, 황실의 복이니.
그래도 이건 아니다. 황실이 원한 건 미래를 가르칠 선생이지, 미래의 동량들을 위협하고 두렵게 할 괴물이 아니다. 당장 아카데미 교장보다 상전인 사람이 강사로 가는 꼴 아닌가.
“마종공이 제자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 같다. 10년 내로 뛰어난 마법사가 등장하겠지.”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아 침묵을 지키니, 부황께서 나지막히 덧붙이셨다.
‘제자?’
동감할 수 없는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종공이 아카데미에 가는 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다. 예를 들면 크라시우스 가문의 후계자라거나, 감찰부의 부장이라거나, 아카데미 감찰관이라거나.
“또한 마종공이 아카데미에 머문다면 삼국의 귀빈들은 둘도 없을 경험을 할 터. 주인으로서 기쁜 일이로군.”
“예, 실로 그러하옵니다.”
그렇지만 부황의 말을 들으니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부황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그게 맞는 거다.
이미 부황의 손까지 서류가 올라왔다면 마종공의 파견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다. 황실이 제동을 건다면 막을 수 있지만, 마종공이 원하는 행동을 황실이 나서서 막으면 공작과의 불화가 생기는 꼴밖에 더 되겠나. 이번 일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막아야 하는 일은 아니다.
게다가 부황께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삼국에 더 큰 압박을 가하시려는 것 같다. 감찰부장에 이어 마종공마저 아카데미에 머문다면 삼국에게 큰 부담이 되겠지. 삼국의 귀빈들이 무슨 이유로 입학을 했든, 가볍게 움직이지는 못할 터.
심지어 마종공이 아카데미에 가는 건 어디까지나 가르침을 위해서다. 아무리 명목상이라도 스승이 제자를 위해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일. 삼국에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항의하더라도 무마하기 간단한 상황이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겠지.’
착잡하다. 부황께서는 상식을 초월하는 사고가 터지자 애써 긍정적으로, 행복한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셨다.
마종공의 행보로 생길 여파, 정계의 술렁임, 외교적 문제를 머리에서 지우고 장점, 활용할 수 있는 점만 언급하고 계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차마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기에.
‘이게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일인가.’
생각해 보면 부황의 재위기간은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했다. 즉위부터 제국 최초의 방계 황제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으니 어찌 파란만장하지 않겠나.
방계 황제가 물려받은 제국은 부패와 기아, 은근히 고개를 드는 신권에 찌들어 있었다. 심지어 공작 중 하나인 황금공은 부인을 열둘이나 들이며 처가를 늘렸고, 국경에서는 왕국들과의 국지전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그 고난을 이겨내며 제국을 정상 궤도에 올렸다 생각하니 대토벌 전쟁이 터지고, 황위 계승 분쟁마저 길게 이어졌었지.
‘끔찍하군.’
그렇게 악재가 연이어 터졌으면 이제 잠잠해질만한데, 요즘은 감찰부장이 폭풍의 중심에 서서 온갖 소란을 일으키고 있다. 부황의 정신력이 바닥에 떨어졌어도 이해할 수 있다.
“마종공이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니, 태자도 준비하고 있으라.”
“예, 부황 폐하.”
안타까운 일이다.
***
귀가 따갑다.
“나도 데려가요! 나도 데려가아아아아!”
적당히 무시하고 싶지만 너무 서럽게 버둥거려서 시선을 돌릴 수도 없다.
“넷이나 아카데미에 있는 건 너무하잖아요! 나랑 페넬리아만 따돌리고오오오!”
게다가 명분도 그럴 듯해서 차마 매정하게 대할 수도 없다.
“너무해! 진짜 너무해!”
“아니, 나도 몰랐어…”
“몰랐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상당히 논리적인 말에 다시 입이 닫히고 말았다. 왜 이럴 때만 맞는 말을 하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베아트릭스 언니하고 아카데미에 갈 거면, 나랑 페넬리아도 데려가요!”
그 와중에 4과장을 잊지 않고 챙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확실히 너희가 친구기는 하구나.
……
‘망할.’
어지럽다. 마종공이 아카데미 파견 강사로 가는 건 진짜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서럽다는 듯 항의 중인 1과장에게는 유감이지만, 내 앞에서 땡깡을 부려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나도 마종공이 아카데미에 간다는 건 모르고 있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나도 모르는 걸 어떻게 먼저 알았지? 혹시 마종공하고 연락하고 지내냐?
“아까 언니가 자랑했단 말이에요! 파견 안건이 최종 통과돼서 아카데미에 간다고!”
진짜 연락하나 보네. 친화력 뭔데.
아무튼 1과장의 항의는 정당했지만 정작 대상이 잘못됐다. 억울하고 원통하다면 나한테 이러는 게 아니라 마종공에게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진상 부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나.
그렇다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