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84)
마종공의 유일한 제자가 아카데미에 재학 중이라는 것과 마종공 본인이 마법을 가르치기 위해 아카데미에 온다는 것.
– 허허, 상상도 못했지. 설마 그런 일이 터질 거라고 누가 알았겠나. 작년의 나한테 말한다면 헛소리를 한다고 구박을 들었을 걸세.
흐릿한 눈동자로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물론 마종공의 아카데미 행차가 마법사들에게 영향을 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종공의 기습은 매우 은밀했고, 1과장을 통해 들었을 때는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 마종공과 가까운 나도 뒤늦게 알았으니 대륙에 흩어진 마법사들은 오죽하겠나. 당연히 마종공을 보기 위해 입학생이 모여도 내년부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구나.’
마탑의 네트워크와 마법사들의 광기를 과소평가했다. 내가 마법사였다면 이 사태를 짐작했을까?
– 그래도 다행이었지. 입학신청서를 낸 대부분이 나이 제한에 걸려서 거절하기는 편했다네. 아카데미에 만학도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야.
진심이 가득 담긴 안도에 본능적으로 손이 떨렸다. 마법사들의 정신세계가 비범한 건 알고 있었는데, 나이를 무시할 정도로 신청서가 몰렸다고? 그럼 단순히 20대, 30대 마법사 수준이 아니라 수염까지 하얗게 센 원로가 등판했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리고 내 동요를 읽었는지 외무성 장관은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 에르네스토 아카데미의 교장도 신청서를 냈다네. 그분의 명예를 위해 바로 기밀 문서로 돌렸으니 자네만 알고 있게나.
에르네스토, 유벤 연합왕국 창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대마법사. 그 대마법사의 이름을 딴 유벤 최고의 교육기관이 에르네스토 아카데미.
‘미친.’
마법사들이 눈이 뒤집히면 이렇게 되는구나…
왕족, 차기 성자와의 관계를 위해 몰려온 삼국 출신 입학생들, 마종공이라는 전설에 홀려 대륙 각지에서 몰려온 마법사 입학생들, 마침 삼국 출신인데 마법사이기도 한 행복사 직전인 입학생들.
“와, 타국인 비율이 30%가 넘었네요?”
다 합하면 올해 입학생의 3할이 넘는 수치. 역대 최다 규모라는 말에 부끄럽지 않은 수치다.
“신기하다. 평소에는 3%만 돼도 많은 건데.”
외무성에서 보낸 서류를 보며 재잘거리는 1과장의 입술을 잡아당기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나지 않는다. 그냥 멍하니 천장 무늬를 바라보며 정신을 가다듬을 뿐.
하늘이 원망스럽다. 제과 동아리 하나 관리하는 걸로도 고통스러웠는데, 이제는 국적 별로 파벌이 갈릴 가능성이 농후한 타국 입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단순히 파벌로만 끝나면 내 알 바가 아니지만, 그 파벌이 류티스나 라테르 같은 부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 뻔하지 않나. 그럼 그것도 내 관할이 된다.
마종공을 보고 온 마법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외무성 장관이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마종공이 아카데미에 온 건 나를 보러 온 것이지 않나. 만약 과도한 마법사 집중 현상으로 일이 터지면 도의적으로 내가 수습해야 한다.
‘말려야 했나.’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국 입학생은 부원들을 퇴학시키는 게 아닌 이상 막을 방법이 없지만, 마종공의 아카데미 파견은 어떻게든 물려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많이 부러웠단다. 그 아이들은 아가와 함께 지낼 수 있는데, 나는 아가가 제도에 있을 때도 자주 만나지 못했잖니.”
하지만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듯 말하던 마종공을 떠올리니 금방 사그라들었다.
그래, 차라리 내가 좀 힘든 게 낫다. 그렇게 기뻐하던 마종공이 시무룩하게 울상을 짓는다면 죄책감에 미칠 테니까.
‘마법사들은 관리하기 쉽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아무리 마법사들이 비범하다지만 경외의 대상인 마종공 앞에서 소란을 피울 리도 없고, 그 마종공의 예비 남편인 나를 무시할 리도 없다. 만약 무시하면 체면 불구하고 바로 마종공에게 이를 거다.
“저기저기, 부장님.”
“왜?”
그렇게 치사한 각오를 다지는 사이, 1과장이 어깨를 톡톡 치는 것이 느껴졌다.
“관리할 학생이 늘어나면 감찰관도 늘어나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1과장의 입술을 낚아챘다. 다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할지 뻔하다.
“감찰관은 학생이 많든 적든 무조건 한 명이었어.”
아카데미의 상황이 급변했으니 자기도 감찰관이라는 명목으로 가면 안 되겠냐고 조르려 했을 터.
당연히 안된다. 내가 감찰관인 것도 약간의 무리를 한 결과물인데, 갑자기 감찰관이 증식을 한다? 그건 명분도 없고 전례도 없는 일이다. 적어도 감찰의 스페셜리스트인 감찰부장이 감찰관으로 오는 건 납득할 수 있지만, 한 명이던 감찰관이 늘어나는 건 누가 봐도 저격이잖아.
사실 나도 손이 늘어나면 좋기는 한데, 전례를 어기면 그걸 수습하느라 더 바빠진다. 분명 사람이 추가됐는데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는 기적.
‘있는 사람들끼리 열심히 해야지.’
버둥거리는 1과장을 무릎에 앉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추가가 불가능하면 기존 인원들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일해야 한다. 나, 교장, 교감─
‘빌라르 경까지.’
그리고 빌라르 경을 떠올리자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넷 중에 덜 힘들거나 더 힘든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빌라르 경은 그 처지가 너무 딱하다.
분명 기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갔을 텐데, 정작 아카데미에 올 때는 류티스뿐만 아니라 다른 귀족들도 주렁주렁 달고 올 상황에 처했다. 아마 혀를 깨물고 싶지 않을까. 심지어 빌라르 경은 아르메인만 책임지면 끝나는 사람이 아니라 삼국 전체의 대표다. 즉 고난도 세 배, 고통도 세 배.
‘…선물이라도 준비하자.’
최대한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 수 있는 건강식품 위주로. 이 사태를 수습할 사람이 고작 넷밖에 없는데 하나라도 쓰러지면 파국 아니겠나. 누구 하나라도 쓰러지면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탈주할 자신이 있다.
‘망할.’
어디 아무 문제 없이 부릴 수 있는 인력 하나 안 생기나. 진짜 잘해줄 자신 있는데.
2월 말, 슬슬 아카데미로 복귀하여 개학식 겸 입학식을 준비해야 할 때. 처음에는 마종공과 같이 움직이려고 했지만, 탑주가 장기간 자리를 비운 적은 처음이라 준비할 것이 많다고 하더라. 입학식 당일은 돼야 텔레포트로 온다고 하니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나도 데려가면 안 될까? 우리 동생들하고 떨어지기 싫어.”
그리고 아카데미로 가기 직전, 배웅을 위해 나온 1과장이 루이제에게 착 달라붙어 칭얼거렸다. 얘가 동생한테 좋은 모습만 보여야지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저도 언니하고 같이 있고 싶어요.”
그런 1과장이 귀찮을 법도 하지만, 루이제는 촉촉한 눈망울로 1과장을 꼭 끌어안았다. 아마 자신을 향해 동생 동생 거리는 1과장의 모습에서 죽은 언니를 겹쳐 보는 게 아닐까. 서로 장난을 치고 스킨십을 하는 사이 좋은 자매, 루이제가 간절히 바라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이지 않나. 그 소망을 이렇게라도 이루었으니 기쁘겠지.
물론 기쁘든 슬프든 1과장을 데려가는 건 불가능하다. 그걸 알기에 루이제도 같이 있고 싶다는 말만 할 뿐, 같이 가자는 말은 차마 못 하고 있다.
“이제 떨어져. 애 귀찮게 하지 말고.”
그렇기에 1과장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떼어냈다. 제도에 남는 조건으로 그렇게 어르고 달래줬는데 뒤늦게 이러네.
“페넬리아는 가만히 있는데, 너는 왜 그래?”
“그치만 페넬리아는 선물도 받았잖아요!”
그 말에 옆에 있던 4과장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러면서도 품에 안고 있는 검을 절대 놓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지만.
“이거 차별이에요! 저한테는 안 줬으면서!”
땅바닥에 누울 기세로 빼액 소리치는 1과장의 모습에 4과장이 난처한 듯 눈치를 살폈다. 혹시 자신이 받은 선물 때문에 1과장이 상처를 입은 건 아닐까 걱정하는 것처럼.
물론 괜한 걱정이다. 얘는 진짜 서러웠거나 상처를 받았으면 말이 아닌 행동이 먼저 튀어나올 애다. 아마 내 창고를 털어서 셀프로 선물을 챙기거나 하지 않았을까.
“저건 어쩔 수 없잖아.”
게다가 나는 떳떳하다. 정말 차별이라면 할 말이 없었겠지만, 저건 피치 못한 증정이었다.
지금까지 제도에 남는 1과장과 4과장이 소외감을 느낄까 봐, 그리고 둘 사이에서도 누구는 총애하고 누구는 싫어한다는 느낌을 줄까 봐 최대한 공평하게 시간을 할애했다. 1과장과 식사를 하면 4과장과도 만남을 가지고, 4과장에게 무언가 주면 1과장의 선물도 챙기는 식으로.
빙의 전 세상에 있던 어떤 종교에서는 아내가 여럿이면 공평하게 대하라는 가르침이 있었을 정도니 공평한 사랑은 중요하지 않겠나. 내 사직서를 걸고 정말 공평하게 대했다고 자부한다.
“다시 파견으로 고생할 애한테 저런 거라도 챙겨줘야지.”
단지 제도에 상주하는 1과장과 달리, 4과장은 다시 북방으로 갈 것이 뻔하기에 몸 조심하라고 챙겨준 거다. 이건 차별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애초에 뭐 귀한 걸 준 것도 아니고, 개인 창고에 잠들어 있던 무기 중 적당한 거 하나 준 건데.
“씨잉…”
그 타당한 이유에 1과장도 할 말이 없는지 투덜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얘도 서운해서 투정을 부렸다기보다는 헤어지기 전에 아무 말이나 더 하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 떨어져 지내는 사이에 조금씩 잊혀질까 봐.
“싫어! 잊혀지는 건 싫어! 엔딩쯤에 그런 애도 있었지, 로 남는 건 싫어어어!”
얼마 전에 들었던 가슴 절절해지는 외침이 다시 떠올랐다. 솔직히 1과장은 잊으려고 해도 잊히는 인물상이 아닌데.
“파견 중이 아니면 매일 연락할게. 북방은 봄에도 추운 편이니 몸 조심하고.”
“예, 부장님. 명심하겠습니다.”
아무튼 입을 다문 1과장을 뒤로 하고 4과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4과장 먹여 살리는 것쯤이야 내 재산으로도 충분하니 공을 세우는 건 바라지도 않고, 어디 다치는 곳 없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진짜 4과장이 여전히 감찰부였다면 이런 걱정도 안 했을 텐데. 하필 팔려간 곳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특무성이니 원.
“몸이 최우선이니까 위험한 것 같으면 도망쳐. 죽어서 임무 하나 성공하는 것보다, 살아서 여러 개 성공하는 게 더 이득인 거 알지?”
내가 키웠지만 내 품을 떠난 4과. 미묘한 씁쓸함과 죄책감에 4과장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4과가 특무성으로 팔려갈 때 이 악물고 반대할 걸 그랬나.
“무, 무, 물론입니다. 부장님, 께서, 주신 몸─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오겠습니다.”
내 포옹으로 진동 상태에 돌입한 4과장이 더듬거리며 의지를 다잡았다.
그런데 어감이 이상하지 않냐. 내가 준 몸이라니, 누가 들으면 내가 부모인 줄 알겠어.
“그래. 몸 관리 잘 하고, 힘든 일 있으면 숨기지 말고.”
참으면 병 된다. 경험자가 하는 말이니 명심했으면 좋겠다.
“부장님. 왜 저한테는 그런 말 안 하세요…?”
“넌 알아서 잘 말하잖아.”
마지막으로 1과장과 4과장에게 진심 포옹을 하고 나서야 마차에 탈 수 있었다.
“여름 방학까지 기다리게 하는 건 너무하겠죠?”
“예. 방학 전에도 얼굴은 몇 번 비추려고 합니다.”
마차에 올라탄 나에게 마르게타가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마르게타도 아카데미에 오지 못한 과장 듀오가 마음에 걸리는 모양.
텔레포트면 제도 왕복도 금방이니 여유가 되면 마종공한테 부탁 좀 해야겠다.
아무 사건 없이 평온했던 마차 이동. 그 평온은 지금을 위한 준비 기간에 지나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교장.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이 늙은이야 몸만 멀쩡하면 무탈한 것이지요.”
아카데미에 도착하자마자 본관의 교장실로 향했다. 교장도 이번 입학 대란으로 인해 피눈물을 흘렸을 인물 중 한 명이니 논의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사실 이미 사건은 터졌고, 왕족이나 마종공을 내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논의보다는 한탄에 가깝겠지만.
“요즘 들어 웃음이 멈추지를 않습니다. 대륙 각지에서 배움을 청하기 위해 모여드니, 교장으로서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하듯 교장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해탈과 착잡함이 절절하게 담긴 웃음은 내 귓가를 맴돌며 동정심과 죄책감을 자극했다.
“게다가 죽을 날만 기다리던 이 늙은이가 말년에 귀한 가르침을 받게 되었지요. 기쁜 일입니다.”
귀한 가르침. 누가 봐도 마종공을 가리키는 말.
미치겠다. 하필 에르네스토 아카데미 교장도 입학신청서를 냈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가, 저 말이 해탈에서 오는 농담인지 마법사의 광기로 가득한 진담인지 모르겠다. 상식적으로는 전자겠지만, 마법사들은 상식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
이거 마종공의 수업 시간에는 교장도 뒷자리에 앉아서 참관하는 거 아닐까? 솔직히 교장이 떠맡은 짬을 생각하면 참관이 아니라 1:1 트레이닝을 받아도 마땅하기는 한데.
“혈기 넘치는 입학생들이 넘칠 텐데, 교장을 귀찮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입니다.”
결국 몇 번 머리를 굴리다가 적당한 대답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