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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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 동아리 가입을 원하는 분들은 새로운 제과 동아리로 안내하는 게 어떻습니까?”
“…새로운 제과 동아리?”
기껏 맑아진 정신이 다시 흐려지는 기분이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러나 내 반응에도 아랑곳 않은 타니안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과를 모르는 분들이 제과 동아리에 가입하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닙니까. 그러니 정식으로 가입하기 전에, 연습을 하고 오라는 의미로 만든 작은 동아리지요.”
아니, 제과 모르고 제과 동아리에 가입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었나.
“중복 동아리는 만들지 못할 텐데…?”
그래도 일단 근본적인 질문부터 꺼냈다. 이미 제과 동아리가 있는 이상, 새로운 제과 동아리는─
“아, 공식적으로는 구약과 신약을 비교하며 당시 시대상에 대해 토론하는 동아리입니다.”
“토론 동아리?”
“예, 단지 토론 사이에 간단히 곁들일 디저트를 만들 뿐이지요.”
그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막는 게 불가능하니 그냥 다른 곳으로 밀어 넣기.’
…상상도 못한 방식이다.
동아리 신청 기간. 말 그대로 신입생들이 3년 동안 활동할 동아리를 선택하고 입부를 신청하는 기간으로, 작년 동아리 신청 기간은 제과 동아리 고문을 찾기 위한 루이제의 고군분투가 빛나던 시기였다. 나도 왕자 둘, 차기 성자 하나의 신청서를 받아야 했던 시기라 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그때의 충격을 되새기며 올해 동아리 신청 기간을 대비하고 있었다. 왕족들과의 인연을 위해 입학한 타국 학생들은 빌라르, 마종공을 보고 몰린 마법사들은 라테르에게 맡겼지만, 세상에는 독보적인 행동력과 광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 아무리 그 둘이 통제하더라도 통제를 뚫는 학생은 반드시 나온다.
─라고 생각했다.
‘왜 없지?’
없다. 벌써 동아리 신청 기간 3일째지만 신청서를 제출한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다. 정확히는 딱 한 명 있는데, 그마저도 개학 전부터 입부 확정이던 세라다. 사실상 아무도 신청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다섯이 모이면 반드시 하나는 쓰레기인 법인데, 신입생 중에 미친 놈이 하나도 없다고? 말도 안 된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고 만만할 리가 없어.
그런데 이 기괴한 현상을 부정하기에는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뭐지 이거.’
혼란스럽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제과 동아리가 하나 더 생겼나?
“아, 동아리 입부를 원하는 분들은 토론 동아리로 안내했습니다. 토론과 함께 제과도 배울 수 있는 기회지요.”
진짜 생겼네.
홀로 고심하다가 동아리 시간에 라테르에게 물어 보니, 옆에 있던 타니안이 대신 입을 열었다. 정말 생각도 못한 발언이라 멍하니 타니안만 보게 되더라.
“형제님이 골치 아프실 것 같아 제가 따로 처리했습니다. 정작 형제님께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했군요.”
내 눈빛에 타니안이 민망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웃음 덕분에 정신이 더욱 멍해졌다.
토론 동아리, 풀네임은 ‘구약과 신약의 비교를 통한 당대 시대상에 대한 논의와 고찰 동아리’ 라는 종교색 가득한 동아리. 아무리 생각해도 왕족과의 인맥을 원하는 학생들이나 마법에 눈 먼 것들이 가입할 이유는 전무한 동아리다.
하지만 타니안은 제과 동아리 입부를 원하는 학생들을 그 토론 동아리에 밀어 넣었다. ‘제과도 못하는 학생들이 제과 동아리에 가입하는 건 이상하다.’ 라는 이유로.
‘…승강제?’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 아침에 2부 리그인 토론 동아리가 생기며 제과 동아리는 1부 리그로 등극했다. 그것도 2부에서 경험을 쌓지 못하면 절대 올라올 수 없는, 아마 내 파견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올라올 수 없을 예정인 하늘 위의 1부 리그가 된 거다.
‘와.’
경이롭다. 난 신입 부원들을 막을 생각으로만 급급했는데, 타니안은 막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으로 유도를 했다. 어차피 100% 막는 것은 불가능하니 제과 동아리를 지킨다는 목적에 집중한 것.
이게… 차기 성자? 대륙 주류 종교의 상징이 되려면 이 정도 두뇌 플레이는 가능해야 하는 건가?
“저는 확률에 거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단번에 거금을 얻을 수 있다는 잠깐의 희망, 게임을 진행할 때의 두근거림을 즐기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뿐이지요.”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게 카지노에서 두근거림 운운하던 타니안이 맞나? 할 때는 이렇게 제대로 하는 놈이 평소에는 왜.
아니, 아니다. 일을 해야 할 때는 제대로 하니까 놀 때도 제대로 노는 거겠지. 생각해 보면 황혼 교단 토벌 때도 제대로 활약하지 않았나. 얘가 루이제한테 홀렸을 때는 좀 속 터지기는 했지만, 지능과 성품에 문제가 있는 놈은 아니었다.
“혹시 괜한 참견이었습니까?”
문화 충격과 편견 극복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고 있자, 타니안이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아니다. 잘했어.”
그 말도 안 되는 질문에 황급히 대답했다. 괜한 참견이라니, 이런 참견이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솔직히 감동했다. 라테르가 3호로 자진 지원한 걸로도 기뻤는데, 타니안이 나 모르는 곳에서 4호를 자처하고 있었다니.
‘뿌린 대로 거두는구나.’
작년에 이것들 뒷바라지한다고 얼마나 굴렀던가. 그 수난과 고통의 세월이 이렇게 보답받았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나올 것 같다.
우리 개새끼들, 그래도 은혜는 아는 개새끼들이었구나… 앞으로는 강아지라고 부를게…
“그거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 와중에 감동을 깨는 듯한 류티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임시방편이기는 하지.’
타니안의 신의 한 수로 수용소를 만들었으나, 그 수용소는 1부 리그로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수용소다. 만약 아무리 토론 동아리에 있어도 자신들이 원하는 걸 이룰 조짐이 보이지 않으면 다시 광기에 빠져 움직일 터.
그래도 임시방편인 걸로도 어디냐. 적어도 시간은 벌었으니 그 사이에 완벽한 방안을─
“거기 아르메인 출신도 있지? 그럼 간간이 얼굴이라도 비출까.”
찾으면…?
“그래주시겠습니까? 먼저 부탁하기 죄송했는데, 저야 감사할 따름이죠.”
“나 보겠다고 제국까지 온 애들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타니안의 말에 언제나처럼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류티스. 하지만 이상하게 류티스의 뒤에서 후광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훌륭한 배려구나. 그래, 먼 길을 마다하지 않은 신하들을 돌보는 것도 윗사람의 덕목이지.”
“하하, 과찬이십니다.”
루이제가 쿠키를 굽는 걸 구경하던 마종공도 류티스의 의외의 행보에 감탄했는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구나.”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게 무엇을 암시하는지 정도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류티스가 왕족과의 인맥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토론 동아리에 얼굴을 비추는 것처럼, 마종공도 가르침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간간이 행차하겠다는 선언.
“그게 아가를 위해서 좋을 테니.”
나를 향해 미소를 짓는 마종공을 보니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작년의 나, 보고 있니? 간손미조차 없이 아카데미에서 구르던 내가 이제는 오호대장군과 와룡, 봉추까지 끼고 있는 기분이야.
그래, 이게 옳게 된 파견이지. 이게 진정한 업무지.
“감사합니다. 학생들도 기뻐할 겁니다.”
그렇기에 진심을 담아 감사를 표했다. 마종공이 1주에 1회, 혹은 격주에 1회라도 토론 동아리에 나타난다면 마법사들은 만족할 거다.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위해 승강제 시스템에 순응하고, 1부 리그 승격을 위해 노력하겠지.
물론 누구도 1부가 되지 못하겠지만.
“너도 고맙다. 타국 생활을 하는 학생들 입장에서 왕족의 존재는 안정감을 주겠지.”
“별거 아닙니다. 타국 생활 힘든 건 선배가 알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호탄을 날린 류티스에게도 감사 인사를 하자 지극히 정상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이쯤 되면 77년도 시즌 류티스와 78년도 시즌 류티스는 별개의 존재가 아닐까. 빙의 전 축구 게임에서도 시즌이 다르면 능력치가 다르던데.
마침 제5제국을 조진 것도 78년도 시즌 류티스네. 진짜 별개의 존재가 맞는 것 같다.
결국 동아리 신청 기간 동안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은 세라뿐이었다. 제과 동아리 부원들이 일치단결한 결과, 우리의 소중한 동아리를 지켜낼 수 있었다.
“제과 동아리는 신입 부원 1명…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 승전보에 교감도 기뻐했다.
제과 동아리에 또 이상한 부원이 늘어나지는 않을까, 기존 부원들과 결합하여 아카데미를 혼란스럽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교감이다. 근래 들어 나날이 안색이 창백해져갔으니,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제출한 부원 명단을 보고 급격히 안색이 밝아졌다. 신입 부원은 단 한 명. 그마저도 나와 에리히의 지인이기에 넣은 평범하고 평범한 귀족 영애. 최악을 가정하던 교감 입장에서는 기적과도 같은 결과겠지.
“전원 2학년인 동아리라. 지금 부원들이 졸업하면 폐부 될 수도 있겠군요.”
온화한 눈빛으로 부원 명단을 보던 교감이 다소 홀가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부원 전원이 2학년인 동아리면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 까놓고 말하면 뉴비 유입이 끊긴 고인물 집단이 됐다는 것 아닌가. 정확히는 끊긴 게 아니라 끊어버린 거지만.
아무튼 교감의 말처럼 지금의 추세를 유지하면 제과 동아리는 폐부 루트를 밟을 것이다. 아마 교감도 은근히 폐부를 바라겠지. 교감의 스트레스 대부분을 담당하던 것이 제과 동아리인데, 그 끔찍한 트라우마가 스스로 사라진다고 하면 얼마나 기쁘겠나.
“루이제는 조금 아쉬워하더군요. 내년에는 부원을 받을까 고려 중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제과 동아리가 순순히 폐부 될 확률은 적다. 동아리 창립자인 루이제가 동아리의 존속을 원했으니까.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학생들의 추억이 담긴 동아리가 사라지면 안타까운 일이니까요.”
내 말에 교감은 순식간에 태도를 돌변했다.
사실 지금 부원들이 졸업하면 제과 동아리가 남든 말든 교감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다. 비록 트라우마는 자극하겠지만, 황족도 왕족도 떠난 제과 동아리는 그저 많고 많은 동아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뭐, 부원들이 졸업한 이후에 다시 황족, 왕족이 입학하면 모르겠지만, 그럴 확률은 낮다. 게다가 그것들이 제과 동아리에 입부 할 확률은 더더욱 낮고.
“예, 안 그래도 부원들이 동아리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졸업 이후에도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릴 테니, 동아리는 그대로 남아 있어야죠.”
“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동아리에 대한 애착, 학창 시절의 추억. 직설적이면서도 노골적인 언급에 교감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카데미에 좋은 추억을 가진 높으신 분, 심지어 본인이 학창 시절에 다니던 동아리가 멀쩡히 버티면 무슨 생각이 들겠나. 자기의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기부금 좀 빵빵하게 주겠지.
재학 중에는 미웠던 왕족이 졸업하고 나서 기부금을 주는 상황. 아카데미 입장에서는 굉장히 기꺼운 일 아닐까?
‘돈에는 죄가 없으니까.’
그저 사람이 문제일 뿐.
***
칼 오빠의 배려 덕분에 제과 동아리에 가입한 지도 며칠이나 지났다.
낯선 공간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에리히가 옆에 있고 다른 부원들도 친절하니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다. 부장인 루이제도 정말 상냥했고.
단지 딱 하나,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제과 동아리?’
아무리 봐도 제과 동아리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