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89)
멍하니 체스를 두는 류티스 저하와 라테르 저하를 바라봤다. 루이제가 반죽을 하든 말든 아랑곳 않고 체스를 두는 모습. 하지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광경이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이라 혼란스럽다.
“자, 이것도 비숍으로 전환.”
“…4 비숍?”
“그래. 어때, 신박하지?”
그 말에 라테르 저하가 욕설을 중얼거린 것 같은 기분이지만, 잘못 들은 걸 거다.
“이번에도 라테르가 지겠네.”
심드렁한 목소리에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아.’
그리고 에리히마저 저 광경에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고 깨달았다. 여기서는 이게 정상이구나.
…그럼 나도 적응해야지.
에리히가 선물로 준 라꾸라꾸에 걸터앉아 동아리실을 둘러봤다. 이제는 부원 일곱, 고문 하나, 명예 부원 하나가 상주 중이라 그런지 작년에 비해 북적거리는 감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오븐을 확인하며 쿠키를 굽는 루이제, 그 옆에서 제과에 흥미를 보이는 마종공과 재료 운반 정도를 돕고 있는 세라가 보였다. 아직 광기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부원들이라 어찌나 보기 좋은지.
‘사이 좋네.’
특히 루이제와 세라가 그럭저럭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세라 입장에서는 부원 호소인인 마종공을 제외하면 루이제가 유일한 여성 부원이자 부장인데, 어색한 사이면 난감하지 않겠나.
게다가 동아리 관계를 떠나서 아카데미를 졸업하면 형님이 될 사람이기도 하고. 미리미리 친해져서 나쁠 건 없지.
‘이게 제과 동아리지.’
아무튼 분홍, 하양, 금색이라는 다채로운 머리 색의 여인들이 모여서 제과를 하니 정말 제과 동아리라는 느낌이 났다. 저 셋 중에 제과 능력 보유자는 루이제뿐이지만, 근처에서 구경이라도 하는 게 어디냐.
‘저것들은 대체.’
조용히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자 광기 그 자체인 다섯 놈이 보였다. 저것들은 이제 구경조차도 포기했다. 분명 쟤네도 제과 동아리 가입을 자청했던 때가 있었는데.
“정말 기괴한 전술만 들고 오는군요.”
“하하, 칭찬 고맙다.”
라테르에 이어 4 비숍 전술의 피해자가 된 아인테르는 웃는 얼굴로 ‘게임 줘까치 하네.’를 시전했다. 물론 류티스 입장에서는 극찬이기에 웃어넘길 뿐이고.
제과 동아리실, 심지어 한쪽에서는 실시간 제과 중인 동아리실에서 체스가 벌어지는 난장판. 분명 상식적으로는 누군가 이의를 제기해야 하지만, 남성 부원들은 말릴 기색 없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구경 중이었다.
“다음은 제가 하겠습니다.”
“오, 비숍으로 차기 성자님을 이기는 건 각별한 기분이겠군!”
아니, 구경을 떠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것보다 조기 티배깅 뭔데. 적어도 이기고 나서 도발하는 게 도리 아니냐.
‘저게 제과 동아리.’
차마 끝까지 볼 자신이 없어 눈을 감고 말았다. 작년에도 저 꼬라지를 보기는 했지만, 그때는 루이제에게 단체로 차였다는 변명거리가 있으니 인정했다. 한창때의 남자들이 사랑하던 여자에게 차이면 방황 좀 할 수도 있지. 그래서 제과 동아리가 체스 동아리, 포커 동아리, 족구 동아리로 암흑 진화하는 걸 방관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겨울 방학 동안 마음을 추스를 시간도 있었고, 새로운 학년도 시작하지 않았나. 이제 방황을 마치고 새로운 마음으로 동아리에 임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사실 제과 동아리를 다목적 엔터테이먼트 동아리로 바꾸는 것도 새로운 마음 같기는 하지만.
‘미친놈들.’
내 실수다. 저것들이 개새끼에서 노동력으로 진화하고, 의외의 두뇌 플레이를 보여줘서 잠시 잊고 말았다. 저것들의 본질은 광인이라는 걸.
“하기 전에 먹고 해. 다 만들었어.”
그 와중에 쿠키 완성을 알리는 루이제의 목소리 덕에 타니안의 패배가 뒤로 미뤄졌다. 솔직히 류티스가 체스로 지는 모습은 그려지지가 않아.
“체스는 먹으면서 할 수도─”
“그러면 다 흘리고 먹잖아.”
먹을 때는 먹는 것에 집중하라는 단호한 선언에 류티스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고 나도 이 기묘한 대화 때문에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먹기만 하면 체스를 하든 말든 상관 없는 거냐고.
‘타협했구나.’
이미 광기 그 자체인 남성 부원만이 아니라 부장인 루이제도 이 상황에 타협하고 말았다. 동아리실에서 체스를 하든, 밖에 나가서 족구를 하든 그러려니 하는 모양. 그냥 자기가 만드는 과자나 빵을 먹어주고, 이렇게 모여서 대화라도 나누면 만족하는 것 같다.
물론 아카데미 동아리의 진짜 목적은 친목이니 이상할 건 없지만, 그래도 창립 목적을 지키는 시늉 정도는 하는데…
‘미안하다.’
쿠키를 베어 물며 살포시 웃고 있는 세라가 눈에 들어오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부장이 타협한 상태니 신규 합류자인 마종공과 세라는 말할 것도 없었다. 마종공은 요즘 애들은 자유분방하다고 생각하며 신기해했고, 세라는 이 미친 상황이 당연한 줄 아는 잘못된 상식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끔찍한 일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회 활동을 하는 세라에게 전혀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으니. 시녀장이 알면 통곡하지 않을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가장 끔찍한 점은 이 기괴한 현상을 저지할 수 없다는 거다.
저것들이 제과 동아리가 아닌 다목적 엔터테이먼트 동아리처럼 행동하고는 있지만, 솔직히 그게 나한테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다. 그저 닉값을 못하는 동아리 상태에 참담함을 느낄 뿐이지.
내가 감시하기 쉽게 꼬박꼬박 동아리에 모여주고, 자기들 하고 싶은 오락을 즐기며 조용하게 지내는 것. 관리자 입장에서는 최선의 상황 아닌가. 괜히 말렸다가 ‘그럼 다른 곳에서 놀고 오겠습니다.’ 라고 하면 제발 가지 말아 달라고 대가리를 박아야 한다.
‘…행복하면 된 거지.’
애써 행복 회로를 가동했다. 부장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모든 부원이 행복하다면 그만 아닐까? 부원들의 행복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고문이라면 이 상황을 기껍게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래, 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다행히 동아리 외부의 제3자는 객관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조만간 동아리 이름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 푸념을 들은 마르게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식 부원 일곱 중 제과를 하는 사람이 하나뿐이면 그건 제과 동아리가 아니라 제과향 0.03% 첨가 아니냐고.
인지 부조화가 올 것 같다. 유일한 신입 부원은 열정은 있는 것 같지만 제과 기능이 없고, 기존 부원들은 기능이 있지만 열정이 없다. 밸런스 미쳤나, 누가 이따위로 조정했어.
“그래도 동아리 자체에 대한 애정은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나마 위안거리인 말에 마르게타도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제과 동아리는 대외적 기능보다 실질적 기능이 더욱 중요한 동아리다. 부원들이 제과를 좋아해도 류티스나 라테르 같은 부원들을 잡아둘 수 없다면 의미가 없는 거고, 지금처럼 제과 동아리(제과 안 함) 상태여도 부원들을 제대로 붙들고 있다면 충분하다.
‘계속 이래야 할 텐데.’
하지만 조금은 걱정이다. 이미 동아리의 대외적 기능도 무시하고 자유롭게 지내는 놈들이 아닌가. 그것들이 언젠가는 동아리라는 틀 자체도 무시하지 않을까─ 라는 우려가 없다면 거짓말일 거다.
그러니 제발, 제발 졸업까지는 이 상태로 유지하자. 그러면 제과 동아리든 족구 동아리든 상관 없어. 동아리실을 카지노로 만들어도 넘어갈 테니까.
“그런데 칼. 저도 이 타이밍에 이런 말을 꺼내고 싶지는 않았는데요.”
충격받을 루이제는 내가 어떻게든 달래겠다는 다짐을 하는 사이, 마르게타가 살짝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불안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운을 띄우는 거지.
“곧 있으면 박람회 신청 기간인 거… 기억 나죠?”
“아.”
“잊었었네요.”
뒤늦게 머리 한구석에 처박혔던 기억이 인양되었다. 그러네, 아카데미 1년 일정 중 첫 대형 이벤트가 박람회였지 참. 작년에는 세 번째 영광 때문에 1과장도 오고 4과장도 오고 난리 났었지.
“각 동아리 별로 어떤 부스를 운영할지 신청을 받아야 하는데, 제과 동아리는 어떤 부스를 운영할 건가요?”
“…….”
그 말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도저히 자신 있게 ‘올해도 제과 부스입니다!’ 라고 외칠 수 없었다.
지금 꼬라지를 보면 다른 부스를 운영하자는 말이 나올 것 같아.
불길한 예측은 틀린 적이 없다.
“2년 연속 같은 부스로 하는 건 식상하지 않습니까?”
언제나 그렇듯, 류티스가 악마의 주둥이를 놀리며 포문을 열었다.
상상도 못한 말에 이마를 짚을 뻔했다. 그럼 동아리 부스를 당연히 같은 주제로 이어서 하지, 동아리하고 연관 없는 주제를 하겠냐. 다른 동아리들이 그 말 들으면 울어.
아니, 멀리 갈 것도 없고 당장 루이제만 해도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이게 광인과 정상인의 차이인가.
“원래 부스는 같은 주제로 하는 거다.”
“아, 그렇습니까?”
그래 이 새끼야.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치솟았지만 참았다. 78년도 시즌 류티스는 77년도 시즌 류티스와 다른 놈이다… 아직까지는 과보다 공이 압도적으로 많은 놈이니 참아야 한다…
‘왜 이딴 대화를.’
동시에 회의감이 들었다. 박람회 부스 주제 선정, 이게 논의가 필요한 일인가? 당연히 작년처럼 제과 컨셉으로 가는 거 아냐?
“요즘은 동아리 주제와 다른 부스도 운영하니?”
“아니요…”
오죽하면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종공이 슬쩍 루이제에게 물었다. 혹시 100년 사이에 박람회 방식이 변했나 하고.
물론 루이제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목소리로 힘없이 대답했다. 그 대답에 마종공의 눈에도 짙은 의아함이 깃든 건 덤이었다.
‘망할.’
터져 나올 것 같은 한숨을 억누르며 멍하니 서있는 에리히를 바라봤다. 광인이 세상을 바꾸기 전에 최대한 많은 정상인을 포섭해야 한다.
다행히 내 시선을 눈치챈 에리히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당장 저 미친 빨갱이를 막지 않으면 아작을 내겠다는 눈빛을 보냈으니 효과는 확실할 거다.
“제과 부스를 운영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신입 부원들을 막은 명분이 제과를 못한다는 이유였는데, 정작 우리도 제과에서 손을 떼면 이상하잖아.”
“맞는 말이군. 명분이 힘을 잃으면 겨우 이룬 통제가 무너질 거다.”
지극히 타당한 에리히의 주장에 라테르도 힘을 실었다.
감동적이다. 노동력 2호, 3호가 내 뜻에 따라 움직이다니. 이게 부하를 다루는 보스의 심정인가.
‘…얘네 없었으면 어쩔 뻔했지.’
부하는커녕 부원 다섯을 혼자서 설득해야 했잖아.
끔찍하네 그거. 작년의 나, 용케 자살하지 않고 잘도 버텼어.
2호와 3호의 지극히 합리적인 주장 끝에 제과 동아리의 박람회 부스는 제과 컨셉으로 결정됐다. 동의어로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판다, 백반집에서 공깃밥을 제공한다 등이 있다. 생각할 가치도 없이 당연한 일이라는 뜻이다.
아직도 어이가 없네. 부스 컨셉을 정하고 세세한 내용을 토의하는 건 당연하지만, 컨셉 단계부터 의견이 분분한 동아리는 우리가 처음일 거다. 아카데미 동아리 역사에 부끄러운 한 획을 그어버렸어.
“그러고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