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9)
제 29화
악역? 영애 – 3
제국 아카데미의 현 학생회 회장, 데미안 코너는 흔하디 흔한 자작가 중 하나인 코너 가문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자작가 삼남이라는 애매한 신분으로 태어난 데미안은 어린 시절부터 관료 생활을 꿈꾸는 평범한 귀족 영식에 불과했다.
가문은 장남인 큰형이 이을 테니, 삼남인 그는 알아서 자신만의 길을 정해야 했다. 그렇기에 선택한 것이 관료의 길이고, 아카데미 학생회다.
사교장 역할을 수행하는 동아리와 달리 학생회는 관료를 노리는 학생들이 맡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 그렇기에 가문의 위세, 혹은 가문 내에서의 위세가 애매한 학생들이 학생회에 속하고는 했다. 덕분에 이래저래 일에 치이며 관료 생활을 미리 맛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데미안은 그것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본인이 선택한 길이었으며, 지금의 고난은 훗날 관료가 되고자 할 때 귀중한 경력 중 하나가 된다. 학생회 출신 졸업생이 자주 관료로 진출하다 보니, 제국 행정부에서도 학생회 출신이라고 하면 나름 가산점을 주는 편이었다.
그러나 데미안이 2학년이 되던 해인 작년부터 데미안의 학생회 생활에 적신호가 켜졌다.
“마르게타 바렌티에요. 잘 부탁드려요, 선배님들.”
귀족 사회에서도 그냥저냥 무색무취한 자들이 모인 학생회에 생태계 교란종이 등장해버렸다. 갑작스러운 공녀의 등장에 데미안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을 뻔하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서 두 다리로 버텼던 것은 1년 동안 단련된 정신력 덕분이었다.
그러나 데미안에게는 유감스럽게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부회장이 된 데미안은 새롭게 학생회로 들어온 1학년을 보살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데미안은 정말 주저 앉아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억울하고 원통한 심정에 당시 회장에게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언성을 높이기까지 했지만, 암울하게 가라앉은 눈을 한 회장은 단 한마디로 데미안을 침묵시켰다.
“그럼 나보고 공녀님이 들어오시겠다는데 반대하라고?”
데미안은 마음으로 울었다.
그 후로 데미안은 전장에 나서는 형벌부대원의 심정으로 매일 학생회로 향했다. 또한 제발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제발 공녀님이 학생회에 흥미를 잃고 스스로 나가게 해달라고 애타게 기도했지만, 애석하게도 공녀는 학생회에 꼬박꼬박 출근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학생회 회식 자리에서 1학년들에게 무슨 이유로 학생회에 들어왔는지 물어보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우발적으로 조성된 분위기였지만,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단 한 사람의 대답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행정부에 아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 사람을 보고 싶어서, 저도 관료가 될까 해서요.”
생글생글 웃으며 답하는 공녀의 모습에 데미안은 생각했다. 그거 굳이 관료가 되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을 소환하면 될 일 아닐까?
‘누군지는 몰라도 밉다…’
데미안은 그날, 누군지도 모르는 행정부의 한 관료를 진심으로 원망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지, 공녀는 학생회 생활을 무난히 보내고, 학생회 선배들을 나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선배들 입장에서는 후배가 공녀라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심한 폭력이었지만, 아무튼 무난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데미안은 학생회장이 되었다. 이제 졸업만 하면 공녀와도 안녕,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학생회와도 안녕이다. 졸업하여 제국 행정부에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데미안은 악착 같이 버텼다.
하지만 그 버팀의 시간도 오늘로 끝인 것 같다.
‘황제 폐하, 에넨이시여, 제발! 제발!’
데미안의 눈 앞에서 학생회가 제출한 자료를 훑어보는 사내, 갑작스럽게 공녀가 데리고 온 저승사자. 그를 바라보던 데미안은 다시 눈을 감고 말았다.
현재 감찰관으로서 아카데미에 상주 중인 재무성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 관료를 꿈꾸는 데미안이 그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황제의 사냥개, 황태자의 칼날, 재무성의 미친개. 위에서 짖으라면 짖고, 물라고 하면 물어 뜯는 황실의 충복. 그가 감찰부장이 되고 2년 동안 쌓아올린 명성과 악명은 기가 질릴 정도다.
특히 과거 2황자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이자 황후의 친가로서 위세를 떨치던 애실론 후작가. 황실과 다섯 공작가를 제외하면 감히 비교할 가문도 없다던 그 가문을 찢어발긴 것도 감찰부장이었다.
심지어 골수 귀족 입장에서는 멸문보다 치욕적인 작위 강등이라는 처분을 내리고,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은 애실론 후작가의 가주를 조롱하며 돌아갔다는 소문은 아직도 전설처럼 남아있다. 그 이후 가주는 수치심에 자살했다지.
…그리고 그 사람이 지금 자신의 업무를 감찰하고 있다.
“흐음.”
‘어머니…’
계속 자료를 살펴보는 감찰부장. 자신은 물론, 다른 학생회 임원들도 단두대 앞에 선 죄수의 심정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오직 공녀만이 그 사이에서 태연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나쁘지 않군.”
“예?”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나온 긍정적인 판결에 데미안은 절로 얼빠진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실수를 눈치 채고 바로 입을 다물었지만, 다행히 감찰부장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조금 어설픈 흔적이 있기는 하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지. 괜찮았다. 당장 실무를 봐도 지장이 없겠어.”
감찰부장의 무죄 선언에 분위기가 급격히 녹아내렸다. 특히 총무와 회계는 툭 건드리면 눈물을 터뜨릴 정도. 데미안도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데미안 코너, 라고 했나?”
“예, 예! 그렇습니다!”
한숨을 쉬기 무섭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다시 긴장감이 몰려왔지만, 감찰부장은 그런 데미안을 보지 않고 품에서 명함을 꺼내 뒷면에 무언가를 적었다.
“받아라.”
“아, 예.”
조심스럽게 감찰부장이 건네는 명함을 받는 데미안. 뒷면에는 자신의 이름과 감찰부장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졸업하면 관료 시험을 본다고 했나? 볼 필요 없다. 원하는 부서로 가서 그걸 제출하면 적당한 자리를 줄 거다.”
그 말에 데미안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학생회를 자청한 데미안이지만, 좋아서 자청한 것은 아니다. 자작가라는 애매한 위치, 마땅치 않은 인맥은 데미안에게 시험으로 관료가 되는 것을 강요했다. 학생회는 가산점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지금 황금 인맥이 눈 앞에 나타났다. 말로는 적당한 자리라고 했지만, 감찰부장의 추천이면 가능한 자리보다 불가능한 자리를 세는 것이 더 빠르다. 특히 재무성이라면 더더욱.
“감사합니다!”
데미안은 허리를 깊게 숙이며 감찰부장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허황된 악명에 귀가 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분이 그런 흉악한 분일 리가 없다.
“감사는 제국을 위한 헌신으로 보이면 충분하다.”
봐라, 이렇게 훌륭하신 분이다.
***
손을 덜덜 떨며 자료를 제출하는 회장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 빠르게 자료를 훑어봤다. 사실 횡령의 흔적만 없으면, 조금 허술하다고 해도 적당히 넘어가 주려고 했다. 회장 입장에서는 정말 마르게타의 농간으로 인해 날벼락을 맞은 것이니까.
‘오, 제법.’
하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내가 보편적인 감찰부장과 거리가 있다지만, 그래도 2년 동안 보고 들은 것이 많다. 보고를 위해 만든 자료를 파악하는 것 정도는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 그런데 보면 볼수록 제법 괜찮았다.
물론 어설픈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이건 공무원 생활로 조금 굴리다 보면 알아서 해결된다. 진짜 괜찮은데?
‘데미안 코너라고 했나?’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회장을 바라봤다. 이거 괜찮은 원석을 발견했다. 이런 녀석이 있으면 편한데, 마침 공무원 지망생이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추천장을 써줬다. 혹시 이 예비 노예, 아니 원석이 마음이 바뀌어서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면 안되니까. 내가 이렇게 추천장을 써주면 낙장불입이다. 추천장을 받고 써먹지 않으면 실례로 여겨지거든.
“감사합니다!”
회장도 감동했는지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뭘, 내가 더 고맙지. 저 녀석 같은 하위 계층 노예가 점점 쌓여야 내 은퇴가 조금이라도 가까워진다. 내 은퇴를 위해 명함 한 장을 추천장으로 바꾸는 건 일도 아니지.
와! 공무원! 명함보다 싸다!
그렇게 나와 회장, 둘 모두가 만족한 긴급 감찰이 끝났다.
깍듯한 회장의 배웅과 무언가 갈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다른 학생회의 시선을 뒤로 하며 학생회실을 나갔다. 다른 학생회의 시선은 대충 알 것 같다.
그래, 그 자료를 회장 혼자 작성한 건 아니겠지. 걱정 마, 너희도 때가 되면 추천장 써줄게. 받기 싫다고 해도 무조건 준다. 도망가면 내가 붙잡아서 재무성으로 데려 갈 거다.
“고마웠어요, 칼 영식. 내일도 잘 부탁해요.”
“예? 내일도 말입니까?”
“아직 박람회 준비가 다 끝난 건 아니니까요. 변경점이 있을 때마다 바로바로 확인해주면 고마울 것 같아요.”
학생회실에 남지 않고 나를 따라 나온 마르게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가볍지만 단호한 미소에 나는 떨떠름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겠나, 싫다고 했다가 마르게타가 루이제에게 달려가면 골치 아파지니.
“내일도 이 시간이면 되겠습니까?”
“동아리실에서 기다리면 제가 갈게요.”
“이거 참, 영광입니다.”
공녀의 픽업이라니, 과분할 정도네. 픽 웃음을 터뜨리자 마르게타도 쿡쿡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정규 수업 시간과 동아리 시간도 끝낸 그날 밤.
– 내 딸아이와 만났다던데.
“예, 예, 그렇습니다.”
저절로 꿇어지는 무릎. 조금씩 숙여지는 고개. 그 앞에는 빛을 뿜는 통신구를 통해 나타난 사내의 얼굴이 있었다.
–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말하더니, 신기한 일이로군.
“하하…”
철혈공의 갑작스런 연락이 화려하게 나를 감쌌다.
…자살은 목을 매는 것보다 독을 마시는 게 더 빠르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금 늦은 여담입니다만, 실제 역사에서는 작위와 권력이 정비례하지 않았습니다. 공작이어도 빌빌거리는 경우가 있고, 남작이어도 위세를 떨치는 경우가 있었죠. 변경에 처박힌 후작보다 중앙의 백작이 더 강할 때도 있고요. 물론 독자님들도 알고 계시겠지만요.
하지만 그런 변수를 모두 고려하다가는 로판 세계의 아름다움이 무너질 것 같기에, 이 작품에서 작위와 권력은 무조건 정비례합니다. 남작, 자작이 아무리 강성해도 백작이 등장하면 숨을 죽여야 하고, 백작과 후작이 강성해도 공작 미만 잡입니다.
이 세계의 오등작은 굳건합니다! 그러니 독자님들은 안심하고 봐주십시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