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90)
“그거 재밌겠군요. 동아리의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류티스와 타니안의 대화에 다시 정신이 나갈 뻔했다. 그게 뭐가 다양한 모습이야. 우리 동아리가 체스하고 무슨 상관인데.
체스든 뭐든 일부 부원들의 개인적 일탈일 뿐이지, 제과 동아리는 오직 제과만 추구하는 동아리다. 사적 오락을 공적 행사까지 들고 오지 마.
사실 일부라고 치기에는 대다수지만 아무튼 개인적 일탈이다.
“체스 말 모양?”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제과라는 틀 안에 속하기만 하면 루이제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색다른 과자를 만들고 싶다며 약초를 반죽에 넣는 루이제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모양이 아닌 일상 기물의 모양을 딴 제과는 고인물 부장의 도전 욕구를 자극하기에 딱이었다.
“좋은 생각이군. 원래 음식은 눈으로 한 번, 입으로 한 번 먹는 법이지.”
게다가 내 노동력 중에서도 이탈표가 생기고 말았다. 제 딴에는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부스 컨셉을 제과로 정한 걸로 나와의 의리는 지켰다고 생각했는지 라테르도 류티스에게 합류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터진 결정적인 배신. 역시 왕족이라 그런지 정치 솜씨가 예술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부장의 흥미에 부원 절반 가량의 지지. 그 덕분인지 체스 말 초콜릿 외에도 카드 모양 쿠키, 족구공 모양 사탕 같은 얘기도 나왔지만 애써 반응하지 않았다. 모양이 어떻든 제과만 하면 그만 아닌가.
그래, 라테르 말처럼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에도 좋은 법이다. 체스 말이나 카드가 식욕과 연관이 있는 외견인지는 둘째치고, 흥미는 제법 끌 수 있지 않겠는가.
‘도박 요소도 도입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류티스와 체스로 붙어서 이기면 무료, 지면 두 배 가격으로 구입하기. 꽤 재밌는 방식이다.
이왕 막 나갈 거면 애매하게 하는 것보다 화려하게 미치는 것이 좋다. 그래야 그 당당함에 사람들도 동화되는 법이니.
학생회에 동아리 부스 주제를 정식 제출한 이후로 동아리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부장 홀로 멱살 잡고 캐리하는 동아리에서 부원 전체가 함께하는 동아리로 진화했다.
“페스츄리로 하면 카드 정도의 두께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서너 겹 정도면 얼추 그 정도일 것 같기는 하군요.”
단지 진화의 이유가 뒤틀린 열정이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리 봐도 제과를 하는 게 아니라 굿즈를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데 기분 탓인가. 그냥 굿즈 재료가 우연히 밀가루라서 저러고 있는 것 같은데.
“루이제. 휘핑은 이 정도면 되겠니?”
“네! 그 정도면 충분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제과에 흥미를 보이던 마종공이 제대로 학습하고 있다는 것. 비록 실력은 최약체지만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최상위였다.
“그럼 하나 더 만들 테니 기다리렴.”
심지어 기존 부원들이란 놈들이 완벽한 카드의 두께, 이상적인 족구공 모양 같은 같잖은 주제로 토론을 하는 중이라 마종공의 의지는 더욱 부각되었다. 게다가 마종공은 정식 부원도 아니잖아. 이거 맞냐? 손님이 더 열심히 일하는 곳이 어디 있어.
“아, 스승님. 그쪽은 더럽─”
그런 손님 겸 스승을 온화한 눈빛으로 보던 루이제는 밀가루가 쏟아진 쪽으로 걸어가던 마종공을 만류했지만, 문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마종공의 머리카락이 바닥을 쓸자 밀가루는커녕 먼지 한 톨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로봇 청소기.’
본능적으로 터질 것 같은 웃음을 꾹 참았다. 마종공의 머리가 청소기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 그런데 저렇게 적나라하게 쓸어버린 건 처음 본다.
그래도 나는 일반인이라 웃음을 참는 걸로 끝났지, 마법사들이 봤다면 오열하지 않았을까. 육체에 24시간 내내 마법을 깃들게 하는 건 누구도 불가능한 기술이거늘, 정작 그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 청소기다. 이 무슨 능력 낭비냐며 통곡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
“…깨끗해졌네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루이제가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애석하게도 루이제도 마법사인지라 방금 마종공이 보인 퍼포먼스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잘 알 거다. 그걸 실시간으로 지켜봤으니 정신적 충격이 컸을 터.
그래도 기뻐하자. 다른 마법사들과 달리 루이제는 마종공의 유일한 제자 아닌가. 언젠가는 루이제도 저 단계에 도달할 거다.
“─헷츄우─”
루이제가 다소 씁쓸한 눈으로 마종공의 뒷모습을 보는 사이, 아주 희미한 재채기 소리가 들렸다.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인식도 못할 정도로 아주 작은 소리로.
“세라?”
하지만 그 미약하디 미약한 소리에 에리히가 반응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페스츄리에 초콜릿을 올려서 카드 문양을 표현하자!’ 같은 말이나 하던 놈이 저걸 어떻게 들은 거지?
“으, 으응?”
당사자인 세라도 귀신같은 반응에 놀랐는지, 양손으로 입을 막은 채 눈을 깜빡였다.
아마 부끄러울 거다. 짝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데, 구석에서 재채기를 하는 걸 들키고 말았으니. 물론 밀가루가 허공에 날아다니는 제과 동아리실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침한 거야?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그래도 평범한 재채기 소리에 짝사랑 상대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면 누구라도 숨기지 않을까. 일단 나는 숨길 것 같은데.
“괘, 괜찮아. 그냥 재채기였어.”
“예전에도 괜찮다면서 그날 밤에 쓰러졌잖아.”
살짝 붉어진 얼굴로 허둥거리는 세라였지만, 에리히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추궁했다. 왜 저리 과민반응하나 했는데 이미 전적이 있었구나. 괜찮다고 해놓고 쓰러졌다면 걱정할만하지.
“대체 언제 적 얘기를…”
그 추궁에 세라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은근히 기뻐했다. 마치 자신의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에 감동한 것처럼.
아무튼 그런 세라를 뒤로 하고 에리히는 세라의 안색을 살폈다.
“추운 건 아닌데─”
당연히 춥지 않다. 이제 봄바람이 부는 시기기도 하고, 애초에 높은 분들이 부원으로 포진하는 곳이라 냉난방도 완벽하다.
“꽃가루 알레르기인가?”
밀가루 때문이다. 알레르기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듣는 사람이 민망해질 정도로 진지하게 중얼거리던 에리히는 결국 세라의 손을 낚아챘다.
“형. 나 잠시 양호실 좀.”
“…그래.”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냥 보내줬다. 누가 봐도 호들갑이지만 지금의 에리히에게는 들리지 않을 테니.
그리고 에리히가 세라와 함께 동아리실을 나가자 류티스의 눈빛이 아련해졌다.
‘슬플만하지.’
이번만큼은 류티스의 마음을 이해했다. 루이제에게 전원 차인 이후로 솔로 생활을 보내던 다섯 부원들. 그중 같은 솔로 동지인 에리히가 솔로에서 커플로 나아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물론 둘이 공식적으로 사귀는 건 아니다만, 세라가 에리히에게 애정의 감정을 품었다는 건 동아리실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툭하면 손을 잡고 있고, 어지간하면 에리히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데 눈치를 못 채는 게 머저리 아니겠나. 나도 방학 때 영지에 가자마자 알았고, 부원들은 개학하자마자 알았다.
서글픈 사실은 그 ‘모두’에 에리히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 이 새끼, 로판 속 인물 아니랄까 봐 러브 라인에 엮기기 무섭게 눈치랑 지능을 말아먹었던 시절로 복귀했다. 이제야 겨우 사람처럼 살던 놈이었는데…
아무튼 홀로 커플로 나아갈 조짐을 보이는 에리히에게 류티스가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
“이제 누가 서브해 주나.”
…
‘시발.’
배신감은 개뿔. 족구 팀원 잃을까 봐 걱정한 거였네.
정체성을 잃어가는 동아리, 눈치와 지능이 원시 회귀한 동생, 친구가 연애를 하든 말든 이누공─ 아니 이누서를 시전하는 부원.
환장하겠다. 작년하고는 다른 의미로 미쳐 돌아가고 있다. 혹시 같은 시련으로 고생하면 재미가 없으니 다른 시련을 내린 건가? 그러면 에넨은 보통 개새끼가 아닌 건데.
– 원래 그 또래 때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법이다. 고귀한 분들이라도 나이는 속일 수 없지 않냐.
“이게 정상이라고요?”
– 학창 시절이 없는 놈은 모르는 게 당연하지.
장관의 숨 쉬듯 자연스러운 디스에 쌍욕이 마려웠지만 참았다. 여기서 본능에 굴복하면 정말 밑바닥까지 보이는 개싸움에 돌입할 것 같았으니까.
그래도 꼴 받기는 하네. 내가 미취학인데 뭐 보태준 거 있나.
‘인생.’
서글프다. 먼 곳으로 파견을 떠난 부하는 꼬박꼬박 정기 보고도 하며 열심히 일하는 중인데, 직속 상관이라는 양반은 위로는커녕 놀리기나 하고.
물론 장관이 위로를 하면 그건 그거대로 무서울 것 같다. 대체 얼마나 개판이 터져야 장관조차 위로의 말을 꺼내겠나.
– 뭐, 이제 파견이 끝나면 그만큼 휴가도 주니까. 받는 게 있으니 고생하는 건 감수해야지.
“아니, 그건 그렇기는 한데…”
그렇다고 기분 나쁘게 팩트로 패라는 의미도 아니었지만.
– 그러고 보니 말이다.
내 떨떠름한 반응에 한참을 낄낄거리던 장관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 박람회 기간 동안에는 외부인한테도 아카데미 개방되는 거 기억하냐?
“네, 뭐. 기억합니다.”
작년에 박람회 기간 동안 인사를 나눈 귀족이 몇 명이었는데 그걸 잊을까.
– 이번에는 타국에서도 제법 올 거다.
?
– 특히 에르네스토 아카데미에서 열을 내더군. 타국 교육 기관 체험이니 뭐니, 아주 제대로 눈이 뒤집혔어.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타국인? 에르네스토 아카데미?
‘아.’
– 에르네스토 아카데미의 교장도 신청서를 냈다네. 그분의 명예를 위해 바로 기밀 문서로 돌렸으니 자네만 알고 있게나.
개학 전, 외무성 장관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마종공이라는 불에 홀린 불나방 중에는 에르네스토 아카데미의 교장도 있었다고.
설마 입학을 못하니까 다른 방식으로 온 건가?
‘미친.’
소름 돋는 광기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마법사 중에는 정상인이 없나…?
제국 귀족 대다수는 아카데미에 재학하고 동아리 활동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동아리 박람회는 아카데미 행사를 넘어 제국의 행사라고 봐도 무방하다. 동아리 선배라는 명목으로 이미 졸업한 귀족들이 재학 중인 귀족들과 접촉하는 사교의 장. 그것이 동아리 박람회다.
그리고 그 동아리 박람회가 국내 행사라는 틀에서 벗어나 국제 행사로 진화했다.
“예, 맞습니다. 저도 어제 전달 받았습니다.”
“그렇, 군요.”
장관에게 타국에서도 손님들이 올 거라는 말을 들은 다음날, 바로 교장에게 찾아가니 덤덤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구나. 교장도 어제 들었구나.
아카데미 최고 책임자인 교장 귀에 들어간 소식이라면 단순한 가능성 수준이 아닌 확정이라는 소리다. 장관이 나한테 한 말은 ‘그런 일이 있다더라.’ 같은 찌라시로 끝날 수 있지만, 교장에게 전달됐다면 교육성이 공식적으로 ‘손님들 온다.’ 라고 말했다는 뜻이니.
어이가 없네. 학생들이 하는 박람회에서 뭐 볼 게 있다고 국경을 넘어서까지 오는 건지. 다들 시간이 남아 도나? 누구는 놀고 싶어도 못 노는데.
‘박람회가 아니었어도 왔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