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91)
물론 박람회 구경이 아닌 아카데미 방문 자체가 목적이라는 건 나도 알고 교장도 알고 지나가던 빌라르도 아는 사실이다. 어떻게든 아카데미에 갈 방법만 노리고 있었는데 박람회 때는 외부인에게도 아카데미를 개방한다? 공중제비를 돌며 입장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장관은 에르네스토 아카데미가 열을 냈다고 했지만, 에르네스토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대륙 각지에서 마법사들이 달려올 거다. 고위 마법사들은 텔레포트를 가뿐히 쓸 수 있으니 국경을 넘는 건 일도 아니겠지.
“손님들이 과하게 몰리지는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이거 교장께서 괜한 부담을 지시는 건 아닐는지.”
아카데미 입학에 실패한 자칭 만학도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꼴을 상상하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종공 때문에 생긴 소란, 마종공이 아카데미에 온 건 누가 봐도 나 때문.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교장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맞지 않아도 되는 짬을 화려하게 맞아버렸으니까.
“괜찮습니다, 박람회는 즐기는 것이 목적 아닙니까. 손님이 많다면 반길 일이지요.”
그러나 교장은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상하다. 표정이나 목소리를 보니 반어법은 아니고 해탈은 더더욱 아니다.
‘진짜 괜찮다고?’
아니, 왜? 교장 입장에서는 평소처럼 처리해도 될 일이 신경 써서 처리해야 할 일로 격상한 상황 아닌가? 나라면 내 업무 루틴을 꼬이게 한 놈을 죽이고 싶을 것 같은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교장의 연륜과 인내심이 빛을 발했다고 칠 수도 있지만, 공무원의 고통은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법이다. 오히려 나이를 먹었는데도 일이 많으면 더 비참하지. 과로사와 고려장 중 뭐가 좋을지 고민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내 의문을 눈치챘는지 교장은 더욱 짙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에르네스토 아카데미에서 제국 아카데미의 교육 시스템을 본받고 싶다고 하더군요. 손님이 아닌 학생의 입장으로 갈 테니, 가르침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교장이 평온한─ 자세히 보니 은근히 기뻐 보이는 표정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겼구나.’
두 아카데미의 기나긴 자존심 싸움에서 교장이 승리를 거뒀기에 평온한 거였다.
대륙 최강국의 최고 교육 기관이자 모든 분야를 가르치는 제국 아카데미, 마도강국에서 마법 위주로 가르치는 에르네스토 아카데미. 공교롭게 두 아카데미의 교장은 대륙에서도 알아주는 대마법사가 맡는 것이 관례여서 제국 아카데미와 에르네스토 아카데미는 은근한 기싸움을 벌이는 관계였다.
종합적인 시스템을 따지면 제국 아카데미의 승리지만, 교장들이 교육자이기 이전에 마법사인지라 기싸움은 마법 분야에서만 이루어졌다. 하필 유벤 연합왕국의 마법 실력은 제국도 무시할 수 없기에 연고전처럼 치열하게 지속됐고.
그러나 마종공이 제국 아카데미를 터전으로 삼으며 판이 깨졌다. 120년 산 아인슈타인이 한쪽 손을 들어주면 게임 끝난 거지.
“축하드립니다. 역시 유벤이라도 제국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지요. 교장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허허, 그게 어디 저 혼자만의 힘이겠습니까. 그동안 쌓아 올린 아카데미의 저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아무튼 연고전 대승리에 교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그런데 그럴만하기도 해. 연고전을 자기 학교의 승리로 종결시킨 총장이 있다면 학교 역사에 남을 총장이니까.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제국에는 마법의 끝에 이르신 분이 계시거늘, 어찌 다른 국가와 비할 수 있겠습니까.”
자부심 넘치는 말에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교장이 이렇게 격한 감정을 보이는 건 처음이지만, 마법사들은 보통 제정신이 아닌 걸 생각하면 양호한 감정 표출이다.
“그리고 제가 젊을 적에 유벤에 갔을 때 이야기입니다만─”
…양호하다고 믿는다.
***
재채기 한 번 잘못한 대가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저기, 에리히. 나 이제 들어가면─”
“안돼.”
단호한 대답에 겨우 열었던 입이 도로 닫혔다. 꽤 오래 밖에 있던 것 같았는데 에리히 기준으로는 아직 멀었구나.
‘이럴 필요는 없는데.’
민망하다. 재치기를 했다는 이유로 양호실에 끌려간 후, 에리히는 내가 동아리실에 들어가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깥을 떠돌고 있다.
정확히는 동아리실에서 제과를 시작할 때가 되면 나와 함께 자리를 비웠다.괜히 안에 있다가 또 재채기를 하면 곤란하다는 이유로.
“그냥 밀가루 때문에 그런 거야.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텐데, 이러면 오히려 적응을 못 하잖아.”
당연히 처음에는 거절했다. 아무리 에리히와 함께 있고 싶어서 가입한 동아리기는 하지만, 나도 나름 제과 동아리 소속이다. 그러면서 제과에 관여도 못하고, 제과를 시작하면 동아리실에서 나오는 부원? 아무리 내가 사회 경험이 적어도 이상한 상황이라는 건 안다.
“밀가루가 몸에 안 맞는 거면? 코를 간지럽혀서 재채기를 한 게 아니라 몸이 거부한 거면 어쩌려고?”
하지만 에리히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고개만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만약 내가 밀가루에 거부 반응이 있다면 진작에 알았겠지. 내가 먹은 쿠키나 빵이 몇 개인데.
“제과 전 밀가루하고 제과 후 밀가루는 다를 수도 있어.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나랑 밖에 있자.”
그래도 걱정 가득한 목소리를 들으니 차마 끝까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 다른 이유도 아니고 내가 걱정돼서 이러는 거잖아. 그러면 순순히 따르는 게 에리히를 위하는 일이겠지. 게다가 에리히 말처럼 밀가루가 몸에 안 맞는 걸 수도 있어. 양호실에서 정밀 검사도 받았으니 며칠 정도만 기다리면 되고.
‘단 둘이기도 하고.’
솔직히 민망하면서도 기쁘다. 에리히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단 둘이 산책을 하는 건 더 좋으니까.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우리만의 시간이잖아.
다행히 칼 오빠나 루이제, 다른 부원들도 이해해 줬다. 내가 남들이 보기에 밀가루로도 중태에 빠질 사람으로 보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에리히가 너무 유난을 부려서 내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잠시 앉았다 갈까?”
“아, 응.”
그 와중에 이제 들어가면 안 되냐는 질문을 피곤하다는 뜻으로 이해했는지, 에리히가 근처에 있던 벤치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물론 피곤하지는 않다. 건물 근처 산책로만 돌아다녔는데 피곤할 정도면 아카데미 입학도 못했겠지. 하지만 에리히가 착각을 한다면 기꺼이 피곤을 연기할 생각이 있다.
‘…어깨 정도는 괜찮겠지?’
그러니 어깨 정도는 빌려도 되지 않을까? 에리히도 피곤한 애가 기대면 밀어내지는 않을 테고. 마음 같아서는 무릎을 쓰고 싶지만 마차가 아닌 야외라 부끄러워.
좋아, 지금은 어깨로 만족하자. 봄바람을 맞으며 같이 있는 것도 낭만적이니까.
“음? 근처에 있었나?”
그렇게 행복한 상상을 하는 사이, 행복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류티스 저하가 공을 바닥에 튀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심지어 아인테르 전하, 라테르 저하, 타니안 님까지 전부.
이상하다. 분명 쿠키 모양이나 사탕 모양으로 토론하느라 바쁘셨는데? 다가가기 무서울 정도로 열중하는 중이셔서 며칠은 더 그러실 줄 알았다.
“뭐야, 왜 나왔어?”
에리히도 갑작스러운 부원들의 등장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 전까지는 에리히 역시 토론에 참여한 당사자니까. 나보다 토론의 열기를 더 생생하게 느꼈을 테니 더욱 의문일 거다.
“머리를 쓰다 보니 지겨워서 말이야. 몸도 머리만큼 써야 건강해지는 법이지.”
조금 이상한 논리 같지만 왕족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
딱히 생산성 없는 토론을 이어가던 부원들은 머리 좀 식히겠다며 우르르 나갔다.
‘왜 안 나가나 했다.’
딱히 놀랍지는 않다. 제과 동아리의 ㅈㄱ를 족구로 바꾼 놈들 아닌가. 이 세계의 봄은 딱히 미세먼지나 황사에 시달리는 계절이 아니라 나가서 놀기에 무리 없는 계절이다.
딱 하나 걱정이라면, 하필 저것들이 애용하는 경기장 근처에 세라가 있었다는 것. 이미 잘못된 상식을 주입하고 있는 세라한테 실시간 족구 현장을 보여줘도 괜찮을까.
그렇게 한참이나 창 밖을 내려다 보다가 몸을 돌렸다. 세라만 있는 게 아니라 에리히도 옆에 붙어 있으니 괜찮겠지. 이상한 오해를 하기 전에 알아서 조정할 거라 믿는다.
“이렇게 하는 거 맞니?”
“맞아요! 와, 금방 따라하시네요?”
“후후, 가르치는 사람이 좋으니 이렇게 되는구나.”
부원들이 단체 퇴장하며 동아리실에 덩그러니 남은 루이제와 마종공. 그 둘의 대화 소리를 들으니 언제나 그렇듯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모든 부원들이 탈주하는 판국에 정작 정식 부원도 아닌 마종공이 동아리실 지박령처럼 지내고… 올해 들어서는 어지간한 부원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연고전을 종식시킨 영웅이면서 관심도 없어 보이고…
‘…고문직 넘길까?’
솔직히 내가 만든 빵보다 마종공이 만든 빵이 더 많을 거다. 이미 나보다 더 제과 동아리 고문에 어울리는 상황.
뒤늦게 배운 취미가 무섭다더니, 마종공이 아니라 제과공이었네.
마법의 끝에 도달한 공작이 제과의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기묘한 상황. 괜히 나 때문에 멀쩡한 사람이, 대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마법사가 이상한 길로 빠진 것이 아닐까 우려스러웠다.
“괜찮지 않을까요? 평생 취미라고는 없이 살아오셨는데, 뒤늦게라도 하고 싶은 일을 찾으신 거잖아요.”
하지만 마르게타의 말은 굉장히 그럴 듯했다. 본래 공작의 사생활은 정보부도 함부로 취급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공작들도 사회 생활을 하는 인간이고 사교계에서 활동하는 귀족이다 보니 취미나 호불호 정도는 알음알음 퍼지게 된다. 공작들이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만 만나는 게 아닌 이상 당연한 일.
그러나 마종공은 100년이 넘게 공작으로 군림했음에도 알려진 정보가 극히 드물었다. 어릴 적에는 엘프 혼혈이라는 점에서 스스로 사람들의 눈을 피했고, 공작이 된 이후로는 마법에 인생을 바쳐서 인간관계도 적었으니 어쩔 수 없지. 그 적은 인간관계도 좀 친해지나─ 싶으면 수명이 다해서 죽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동안 얼마나 지루하셨겠어요. 가까운 가신들도 먼저 죽고, 같은 시대를 살아간 마법사들도 떠나가고, 그러니 마법에만 집중하셨겠죠.”
안타깝다는 듯한 목소리에 절로 가슴이 미어졌다.
맞는 말이다. 마종공은 극도로 좁은 인간관계, 남에게 정을 줄 수 없는 종족의 한계 때문에 오직 마탑에 박혀 마법에만 올인했다. 그 선택으로 인해 ‘마종’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변변한 취미도 없는 생을 살아왔다. 명예와 별개로 재미없는 삶을 보낸 것.
“제가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군요.”
제과공이니 뭐니 했던 과거가 부끄러웠다. 마법밖에 모르던 예비 아내가 새로운 취미에 재미를 들렸으면 축하한 일 아닌가. 그런데 축하는커녕 그걸 이상하게 바라보기나 했다.
마종공을 이름으로 부르고 반말까지 한 상황이라 마종공에 대한 편견을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도 편견이 가득한 놈이었다. 고-귀한 공작이자 기품 넘치는 최연장자니 제과 따위에 집중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단정 지은 거지.
“후후,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는 마세요. 언, 니도 칼이 미안해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을걸요?”
잠시 말이 없자 마르게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그 와중에 더듬거리면서도 언니라고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여기서 웃으면 기껏 언니까지 나아간 칭호가 마종공으로 역행할 것 같으니.
“그렇습니까?”
“네. 그러니 옆에서 응원도 해주고, 완성된 건 먹어주세요. 맛있다고 해주면 더 좋고요.”
“그건 당연히 그래야죠.”
열심히 만든 음식에 대고 맛없다고 할 사람은 없다. 애초에 내 입맛도 많이 저렴한 편이라 작정하고 이상한 재료를 넣는 게 아닌 이상 잘 먹─
‘…이상한 재료?’
그러고 보니 마종공에게 제과를 가르치는 선생이 루이제였다. 작정하고 이상한 재료를 넣는 사람, 그 원조가 루이제 아닌가. 사랑에 눈이 멀었던 77년도 시즌 부원들도 차마 먹지 못했던 기적의 재료들. 나도 미각이 맛이 간 상태여서 먹을 수 있던 결과물들.
아니, 물론 부원들이 제대로 제과를 배운 걸 생각하면 마종공도 정상적으로 배우겠지만, 마법 스승님에게 특수한 비법을 전수하겠다며 폭주할 가능성도 아예 없지는 않은데.
‘괜찮겠지.’
그래, 괜찮을 거다. 만약 맛이 이상하면 숨 좀 참고 씹지 뭐. 처음 취미를 시작한 사람한테는 구박과 지적이 아닌 격려와 응원이 필요하니까.
– 똑똑
“마르게타. 들어가도 돼?”
그렇게 각오를 다지는 사이, 노크와 함께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들어와.”
마르게타의 허락이 떨어지자 조심스레 열리는 문. 한 손에 들린 접시에는 과자가 가득한 것이 내가 오자마자 부랴부랴 준비한 것 같았다.
솔직히 과자는 동아리실에서도 자주 먹으니까 없어도 되지만, 손님이 대접을 사양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게다가 아멜리아는 귀족이 톡하고 건드리면 펑하고 터지는 평민 멘탈의 소유자니 취급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안녕하세요, 감찰부장님.”
“그래. 오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