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92)
그래도 작년에 비하면 양호해져서 다행이지. 그때는 내 앞에만 서면 마종공의 귀 수준으로 진동했었는데.
“총무라고 했나? 축하한다. 2학년 때 학생회에 합류했으면서 대단하군.”
“감사합니다. 다 감찰부장님 덕분이에요.”
의례적으로 건넨 가벼운 칭찬에 아멜리아의 허리가 90도로 숙여졌다.
하지만 대단하다는 건 진심이다. 보통 간부는 1학년 때부터 학생회 일을 한 학생이 맡는 법인데, 2학년 때 합류한 아멜리아가 당당히 간부 자리 중 하나를 차지했다. 흔히 말하는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버린 상황. 역시 평민이라는 신분으로 아카데미에 입학한 영재라 그런가, 능력이 좋아.
그러면서 뒷말조차 없는 걸 보면 정말 부정할 수 없는 능력을 보여준 것 같고.
“총무면 어디에 추천하든 잘 하겠지.”
“네!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추천장에 대한 복선을 깔자 아까와 달리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아멜리아의 진동이 작년보다 가라앉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작년 학생회 간부들이 내 추천장을 받고 비단길을 걷는 걸 봐서 그런지, 아멜리아의 눈빛도 희망과 야심에 불타올랐다. 그 어떤 학생보다 출세를 갈망할 평민 출신 학생. 그런 아멜리아 입장에서 나는 걸어 다니는 보물 고블린이나 마찬가지겠지.
물론 내 입장에서도 아멜리아는 파를 들고 다니는 오리나 다름없다. 저렇게 공무원으로 꽂아달라고 애원하는데 당연히 들어줘야지, 아무렴.
‘자매가 쌍으로 인재네.’
심지어 올리비아도 선도부의 차장. 내년에는 선도부장으로 진화했을 올리비아에게 군부로 가는 추천장을 써주면 된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역시 아카데미는 노다지가 맞아.
***
토론 동아리. 제과 동아리 가입을 노리던 학생들이 단체로 수용된 임시 수용소.
제과를 못하는 사람은 여기서 연습하고 오라는 명분으로 안내받은 동아리였지만, 조금만 눈치가 있는 학생이라면 이 동아리가 수용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저 차기 성자인 타니안 님이 주도한 일이라 다들 입을 다물었고, 정말 기존 제과 동아리 부원들이 제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따랐을 뿐.
다행히 나 같은 경우는 마종공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입학한 것이 아니라 라테르 저하를 모시기 위해 입학한 것이니 아쉬움이 적었다.
“마종공께서 토론 동아리실에 방문하실 거다. 매일은 무리지만, 주에 한 번은 가실 것 같더군.”
게다가 라테르 저하께서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셨으니 실망할 필요도 없었고.
사실 제과 동아리 가입에 실패했을 때는 저하께 살짝 섭섭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저하를 모시기 위해 왔다. 하루 이틀 아는 사이도 아니고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그런데도 다른 학생들과 한 덩어리로 묶여 취급됐을 때, 서운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저하께서는 나를 각별히 여기신 것이 맞다. 그게 아니라면 마종공에 대한 정보를 직접 알려주셨을 리 없으니.
“여기가 토론 동아리니?”
덕분에 마종공께서 토론 동아리에 처음 강림하셨을 당시, 모든 부원들이 열광하는 사이에서 홀로 품위를 지킬 수 있었다. 그 품위 유지 덕에 마종공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예상치 못한 성과였고.
“마법사는 언제 어디서나 이성적이고 품위를 지켜야 하지. 너는 이미 준비가 되어있구나.”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세상을 가진 것 같았다. 그 마종공에게, 마법의 끝에 이른 분께 준비가 되었다는 말을 듣다니. 세상에 둘도 없을 칭찬이잖아.
“이름이 어떻게 되니?”
“유벤 연합왕국의 레이첼 소르타입니다.”
“아, 네가 라테르 왕자가 말하던 아이구나.”
심지어 저하께서 마종공께 내 이름을 말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역시 저하도 나를 신경 써주셨어.
아무튼 그날 이후로 마종공께서는 1주에 한 번 얼굴을 비추셨다. 비록 동아리 시간 전체도 아닌 절반의 시간 동안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지만, 부원들은 감지덕지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카데미 밖의 마법사들은 1분도 가르침을 받지 못하니 불만이 있을 수가 없지.
“수업만 들으면 지겹겠지. 다들 먹고 하렴.”
그리고 어김없이 한 주의 마지막 날에 동아리에 오신 마종공께서 바구니 하나를 책상에 올리셨다.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만들어진 쿠키, 마종공께서 친히 준비해 주신 음식. 마법사들 입장에서는 실로 영광인 하사품이지만, 아무래도 쿠키를 먹을 시간에 한 문장이라도 더 가르침을 받는 것이─
“내가 만든 거란다.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구나.”
사오신 게 아니라 만드신 거면 먹어야지.
순식간에 태도가 돌변한 부원들은 우르르 책상으로 달려가 쿠키를 낚아챘다. 그 와중에 여러 개를 가져가지 않고 하나씩만 가져가는 건 마지막 남은 이성일 것이다.
‘마종공께서도 제과를 하시는구나.’
놀랍다. 마법이 아니면 거들떠도 보지 않으실 것 같은, 설령 제과를 하신다면 마법으로 만드실 것 같은 분이 직접 쿠키를 만드시다니.
사실 부원들 사이에서는 토론 동아리 설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작은 불만이 있었다. 지성의 상징인 마법사들이니 토론을 하는 것 자체는 싫지 않지만, 굳이 제과까지 배워야 하냐는 근원적 불만. 하지만 마종공께서도 직접 제과를 하신다는 것이 증명되었기에 오늘 이후로 사라질 불만이다.
‘응?’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쿠키를 조금씩 베어먹는 사이,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마나 순환이 빨라졌어?’
기분 탓이 아니다. 체내의 마나 순환 속도가 빨라졌다. 마치 막힌 곳이 뚫린 것 같은, 마나 자체가 더욱 매끄러워진 것 같은 기분.
이게 갑자기 왜 이러지?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평소랑 같았는데?
‘아.’
그리고 입 안에 있던 쿠키를 삼켰을 때,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거다. 이 쿠키 때문이다. 평소와 다른 요인이라면 쿠키밖에 없고, 딱 쿠키를 삼키자마자 효과가 나타났다.
황급히 주변을 살피자 다들 이 현상을 눈치챘는지 빠르게 쿠키를 먹거나 멍하니 마종공을 쳐다 보고 있었다. 고작 과자 따위로 마나에 간섭할 수 있다니, 우리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하늘 위의 영역이니까.
‘이 정도는 해야 제과 동아리인 건가?’
순간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마종공을 보니, 체내에서 열심히 돌고 있는 마나를 느끼니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
***
다들 잘 먹는 것 같아 다행이다. 맛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겠지.
‘아가에게 줘도 되겠어.’
살포시 미소가 지어졌다. 드디어 아가에게 내가 만든 쿠키를 줄 수 있다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아직 배움이 짧아 빵이나 마카롱, 케이크 같은 건 무리지만─ 괜히 욕심을 부리면 기초도 다지지 못한다. 지금은 쿠키로 만족해야지.
‘좋아하겠지?’
아가가 기쁘게 먹는 모습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는 모습을 상상하니 귀가 움찔거릴 것 같았다.
박람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대형 사건이 터져버렸다. 어지간한 사건에는 내성이 생긴 나, 교장, 빌라르조차 만장일치로 ‘이건 대형 폭탄이다.’ 라고 동의했을 정도의 사건.
“정말이군요. 마나 순환이 빨라졌습니다.”
넋이 나간 것 같은 교장의 목소리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마종공의 쿠키는 경지의 고저를 따지지 않고 적용된다는 것이 증명됐다.
“놀랍습니다. 고작 쿠키에 이런 효능이 있다니.”
떨리는 손으로 쿠키를 들어 올린 교장은 아직까지도 정신줄을 잡지 못한 것 같았다. 물론 그럴만한 사건이기에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비마법사인 나도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마법사인 교장은 오죽하겠나.
정말 예상도 못한 시점에서 상상도 못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설마 얌전히 제과에 집중하던 마종공이, 그것도 박람회 이후가 아닌 직전에 이런 서프라이즈를 펼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종공을 탓하기에는 마종공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우발적인 사건이라는 게 문제다.
어제, 토론 동아리에서 주간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쿠키 제작에 돌입했던 마종공. 강의를 마치고 돌아온 길이라 피곤할 법도 할 텐데, 평소보다 밝은 얼굴로 몰두하길래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걸 말릴 이유는 없으니.
그리고 마종공이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지으며, 루이제의 응원을 받으며 만든 쿠키는 내 앞에 놓였다.
“아가, 괜찮다면 먹고 평가해주지 않겠니?”
“당연히 해줘야지.”
그 말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개학 이후로 마종공은 수많은 쿠키를 만들었지만, 나에게 질 떨어지는 음식을 먹일 수는 없다며 혼자 처리했었다. 덕분에 마종공이 만든 쿠키가 내 앞에 놓인 건 처음 있는 일.
그렇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쿠키를 먹었다. 만약 맛이 없더라도 무조건 맛있다는 말을 할 각오까지 하고.
‘뭐야.’
하지만 먹자마자 이변이 느껴졌다. 몸 속의 마나 순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진 것.
불가능한 일이다. 마나를 막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사소한 자극이나 포션에도 영향을 받지만, 나처럼 온갖 물약과 마법으로 도핑을 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어지간히 독한 포션이 아닌 이상 효과가 없다. 그런데 고작 쿠키 한 입 먹었다고 속도가 빨라진다고? 그것도 평소의 배로?
처음에는 우연인가 싶었지만 한 입을 넘어서 쿠키 하나, 접시 하나를 전부 먹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원리는 모르겠지만 마종공이 만든 모든 쿠키에 고오-급 포션 효과가 깃들었다.
“어, 어떠니? 입맛에 맞니?”
그리고 조심스레 묻는 마종공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마종공의 표정은 서프라이즈 포션에 대한 반응을 기대하는 표정이 아닌, 순수히 맛에 대한 평가에 긴장하는 표정이었으니.
그런 마종공을 다독이기 위해 입으로는 맛있다고 대답했지만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었다. 마종공도 이 마나 도핑 효과를 모르고 있었다면, 토론 동아리실로 들고 갔던 쿠키에도 도핑 효과가 있었다면 이 기상천외한 소문은 빠르게 퍼질 터.
물론 불길한 추측은 언제나 맞기에 마종공 수제 마나 도핑 쿠키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확산되었다. 덕분에 주말임에도 교장과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있는 거고.
“하필 박람회 직전이라는 게 문제군요.”
잠시 말이 없던 교장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예, 동감입니다.”
실로 지당한 말이기에 나도 동의를 표했다. 일단 마종공이 직접 만든 쿠키라는 것 자체로도 상징성이 장난 아닌 음식이다. 아카데미의 마법사들, 더 나아가 외부인들도 눈에 불을 켜고 사려고 들 음식이었다. 아마 본인이 먹을 거 하나, 아카데미에 오지 못한 지인에게 자랑용으로 하나, 영구보존 마법을 걸 보관용으로 하나 사지 않았을까.
그런데 쿠키에 상징성만 있는 게 아니라 포션과 맞먹는 효과가 있다? 그것도 도핑 경험 다수인 칼잡이와 아카데미 교장까지 오른 대마법사도 영향을 받는 효과? 그건 못 참지. 경지가 높을수록 마나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진다. 아주 미약한 효과를 위해서라도 전 재산을 배팅 할 수 있는 것들이 마법사다.
‘무조건 뒤집어진다.’
와! 역시 마종공 각하! 완전 아카데미를 뒤집어 놓으셨다.
아니, 아카데미만 뒤집은 게 아니라 대륙 전체를 뒤집은 것 같지만.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푹푹 한숨을 내쉬는, 그러면서 끊임없이 쿠키를 섭취 중인 교장에게 슬쩍 물었다. 이 마법사들이 광분에 빠지기에 충분한 소식을 어떻게 통제하겠느냐고.
“입을 막는 건 무리입니다. 이미 하루가 지났으니 퍼질 만큼 퍼졌을 테고, 이제서야 학생들의 입을 막아봤자 손님들에게 확신만 주는 꼴이지요.”
돌아온 답은 이번에도 지당했다. 그래, 입을 막는 건 무리다. 그 광기와 행동력의 결집체인 마법사들이면 동아리 시간이 끝나자마자 확성기처럼 소문을 퍼트렸을 테고, 확성기의 효능은 아카데미를 넘어 제국, 대륙 전체에 퍼졌을 거다. 마법사의 네트워크는 무시할 수 없지.
그리고 시끄럽게 떠들던 아카데미 확성기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면 누가 봐도 통제잖아. 도핑 쿠키 소문에 긴가민가하던 외부인들마저 확신을 갖고 아카데미에 찾아올 거다.
미치겠네. 계속 떠들게 하는 건 곤란하지만, 입을 막아봤자 딱히 효과도 없고 학생 탄압 논란만 생긴다.
‘그냥 둬야 하나.’
분명 대형 사건이지만 가만히 있어야 하는 상황. 서글프기 짝이 없다.
“그래서 감찰부장에게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저에게 말입니까?”
그 와중에 의외인 말이 튀어나와 조금 놀랐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일이 있나? 감찰부장이라는 권한도 타국인들이 우르르 몰리면 별 효력이 없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려고 합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오히려 더 알리자고? 최대한 덜 오게 해도 모자란 판국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