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93)
‘미쳐버린 건가.’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아카데미에서 아기자기하게, 기껏해야 졸업생 출신 귀족들이 방문하는 소박한 박람회를 꿈꾸던 교장은 결국 미쳐버린 것 같다. 소박한 박람회가 아닌 국제 박람회로 진화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런 내 생각과 별개로 교장은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마종공 각하께서 만드신 쿠키를 모두가 노릴 건 뻔합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겠지요.”
“예, 아마 그럴 겁니다.”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는 소리다. 마종공의 몸은 하나인데 대륙 각지에서 몰려올 손님은 수백, 수천, 어쩌면 그 이상. 아무리 마종공이라도 그 미친 수요를 만족시키는 건 무리다.
“그러니 한정판이라고 합시다. 경매 형식 판매도 나쁘지 않겠군요.”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연륜에서 오는 순발력과 아이디어는 어린놈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였다. 역시 교장이라는 직함을 포커로 얻은 건 아니었나.
“어차피 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한정판으로 가는 게 낫습니다. 평범하게 팔면 매진에 불만을 표하겠지만, 경매로 붙이면 본인들의 자금력을 탓하겠지요.”
“아, 예.”
“하지만 각하께서 만드신 걸 임의로 경매에 올릴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감찰부장이 각하를 설득해줬으면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 정도는 해야죠.”
전율스러웠다. 평범하게 팔다가 매진이 되면 판매자의 준비 부족이지만, 경매에 올린 걸 못 사면 구매자의 지갑 책임. 황금공에게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미친 자본주의 논리였다.
그런데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우-려 마종공 특제 마나 도핑 쿠키인데 어딜 편하게 사려고. 많은 금화와 더 많은 금화 정도는 준비해야 그 성의를 봐서 하나 줄까 말까인데.
“나야 괜찮단다. 아가에게 줄 것도 부족한데 적게 팔아도 된다면 좋은 일이지.”
다행히 마종공도 ‘더 많은 사람에게 내 쿠키를 보여주고 싶단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 수월하게 설득할 수 있었다. 대신 원래라면 부스에서 팔았을 쿠키도 내가 먹어야 될 것 같다는 게 문제지만.
“고마워, 베아트릭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기에 마종공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다른 부원들은 수업 중이라 단둘이 있어서 가능한 일.
감사 인사로 귀를 만지는 모습이 기괴하지만, 의외로 머리를 쓰다듬는 것보다 귀를 만지는 걸 더 좋아하더라. 엘프만의 종족 특성 같은 건가?
“흐으읏…”
그 증거로 귀를 잡히자마자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마종공.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내가 다 기쁘다.
***
에르네스토 아카데미는 하나의 교육 기관을 넘어 유벤 연합왕국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서로 대립하던 유벤 지방의 다섯 왕국이 하나로 묶이는 것에 지대한 공헌을 한 대마법사. 다섯 왕국이 유벤 연합왕국이라 불린 이후로는 마법 발전에 일생을 바친 유벤의 스승. 그렇기에 존경과 숭배의 마음을 담아 멘토 에르네스토라고 불리는 위대한 존재.
그러한 에르네스토의 이름을 딴 아카데미는 그 존재 자체가 유벤의 존재 의의이며, 살아있는 역사다.
“크펠로펜이 천명을 쥔 제국이라면, 유벤은 마법의 헤게모니를 쥔 강국이다.”
그 자부심을 증명하듯 에르네스토 아카데미의 3대 교장은 그러한 말을 남겼다. 제국이 최강이고 유일한 것은 인정하지만, 설령 제국이라도 유벤의 마법을 능가하지는 못할 거라고.
유벤의 마법사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품고 다니는 가르침이다. 우리는 마법의 헤게모니를 쥐었다, 마법 관련이라면 제국에도 밀리지 않는다, 우리야말로 대륙 제일의 마도강국이다. 그 긍지를 우리는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에르네스토 아카데미는 제국 아카데미와도 길고 긴 시간 동안 경쟁하며 대립했다.
“준비는 끝났습니까?”
“예,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 경쟁이 나의 대에서 패배로 끝났다는 게 안타까울 뿐.
하지만 어쩌겠나. 마종공께서 제국 아카데미를 터전으로 삼으셨다면 방법이 없다. 멘토 에르네스토께서 부활하시는 정도가 되어야 마종공께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겠지.
패배는 뼈 아프지만, 열세를 인정하지 않고 자존심만 내세우는 건 마법사에게 있어 죽음보다 더한 실책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챙길 건 챙긴다. 그것이 합리적인 방법.
“갑시다. 학생들도 기대가 클 겁니다.”
게다가 마종공께 패한 것은 명예로운 패배다. 패배에 아쉬워 할 후손들도 상대가 마종공이라는 걸 알면 ‘어쩔 수 없지.’ 라는 반응을 보일 터.
‘진보를 위한 웅크림이다.’
그리고 마종공을 직접 뵙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암암리에 떠도는 마나 쿠키를 확보할 수 있다면 이런 패배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혹시 몰라 자금도 충분히 챙겼다. 어지간한 장원이나 성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챙겼으니 부족하지는 않을 거다.
작년 박람회 때는 손님 웨이브를 수차례나 받았다. 황족과 왕족, 차기 성자와 안면을 트기 위해, 사교계에서 보기 드문 감찰부장을 보기 위해, 겸사겸사 높으신 분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디저트들을 구입해서 ‘내가 왕족이 만든 과자를 먹었다.’ 같은 자랑을 하기 위해. 사실 오지 않을 이유보다 올 이유가 압도적으로 많긴 하다.
그리고 올해는 와야 할 이유가 더 늘고 말았다. 작년까지는 이름뿐인 황족이던 아인테르가 실권을 되찾았고, 마법사들의 전설이자 신앙인 마종공이 친히 강림했다. 게다가 마종공이 만든 쿠키를 먹으면 경지의 고저를 막론하고 포션을 복용한 효과가 생긴다?
‘많다.’
그 결과물이 이거다. 분명 제과 동아리 부스는 가장 한적하고 외딴곳에 마련했는데, 다른 부스들을 전부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달려왔는지 박람회가 시작되자마자 손님들이 몰려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카데미 방문객 중 절반은 귀족이라는 것. 후배들을 패싱 하는 건 민망하니 다른 곳부터 간 손님들도 있을 테고, 귀족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여유롭게 걸어오는 손님들도 있을 거다.
단지 나머지 절반은 후배도 품위도 없는 미친 마법사들이라는 게 문제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탑주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나름 고문이라 가까이서 손님들을 구경하니, 가장 선두에 있던 노인이 마종공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누구지? 가장 먼저 인사를 할 정도면 네임드 인사라는 건데 기억에 없다. 흐릿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이름도 직책도 긴가민가하다. 어디서 보거나 들은 사람인 것 같기는 한데…
“만프레드구나. 그래, 잘 지냈단다.”
‘아.’
이름을 듣고 나서야 생각났다. 무려 전대 마탑 부탑주라는 역사적 인물.
와, 저 양반 아직도 살아있었네. 은퇴한 이후로는 소식이 없어서 죽은 줄 알았는데, 그냥 어디 산골짜기에 박혀서 은거 생활 중이었나?
“그간 안부 인사조차 드리지 못했는데, 이리 뵙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네 나이 때면 아무 소식도 없는 게 낫단다. 가끔 네 또래 아이들한테 연락이 오면 거의 부고 소식이었지.”
그 와중에 마종공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왔다. 간달프처럼 생긴 노인한테 ‘죽지나 않아서 다행.’ 같은 말을 하다니, 그래도 되는 건가.
“허허, 그도 그렇겠군요.”
반응을 보니 그래도 되는 것 같았다. 하긴, 마탑의 부탑주까지 지낸 사람이라면 마종공하고 오래 알고 지낸 사이겠지. 종족과 수명 차이에서 오는 블랙 조크 정도는 익숙할 거다.
어쩌면 오랜만에 본 옛 상사가 반가워서 웃는 걸 수도 있고.
“자, 받으렴. 오랜만에 보는 건데 선물이라도 줘야지.”
“아이고, 빈손으로 온 손님에게는 너무 과분하군요.”
그런 전대 부탑주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은 마종공은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 한 손에 들어오는 사이즈에 평범한 포장지, 동네 상점에 들어가도 볼 수 있을 것 같은 비주얼.
“굳이 경매까지 참여하지 말고 편하게 있다 돌아가렴.”
그 말에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전대 부탑주의 눈이 크게 떠졌다. 경매라는 말까지 언급하며 줄 선물이라면 하나밖에 없으니.
“타, 탑주님. 이건─”
“쉬잇.”
하늘 같은 탑주님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전대 부탑주는 도로 입을 다물어야 했다. 물론 입만 다물었을 뿐, 얼굴에는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마종공의 쿠키가 마나 도핑 효과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쿠키를 부스 판매가 아닌 경매 방식으로 판매한다는 건 아카데미 정문에서 열심히 홍보 중이다. 그렇기에 전대 부탑주가 이렇게 동요하는 거겠지. 금화를 난사하고 나서야 겨우 하나 얻을 거라 생각한 물건이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굴러들어 왔으니까.
“어차피 내가 만드는 거 아니니. 오랜만에 본 아이한테 몇 개 쥐여주는 것 정도는 괜찮단다.”
옛 인연을 잊지 않고 챙겨줬다는 말에 전대 부탑주도 감동한 듯 촉촉한 눈망울로 마종공을 응시했다. 이 무심한 듯 배려 넘치는 상사라니, 마법사들의 존경을 받기에는 충분한 인품이 아니겠나.
‘아이…’
그러나 옆에서 구경하던 내 입장에서는 웃음을 참기 힘든 상황이었다. 말이나 행동은 손자에게 간식을 주는 할머니 같은데, 정작 외견은 할아버지와 손녀잖아.
하지만 참았다. 여기서 웃으면 마종공이 깊은 상처를 입을 거다. 그 정도는 지능이 원시 회귀한 에리히도 안다.
전대 부탑주가 마나 도핑 쿠키를 받은 걸 보지 못한 건지, 아니면 봤어도 마종공 앞에서 소란을 피울 용기가 없는 건지, 다른 마법사들은 무난하게 인사를 건네며 조용히 돌아갔다. 게다가 손님으로 와서 그런가 과자도 몇 개씩 사서 돌아가더라. 나름 최후의 양심은 챙기고 다니는 모양이다.
‘안 사도 된다고 할 걸 그랬나.’
조금 후회된다. 어차피 마종공 수제 쿠키가 아니면 관심도 없을 텐데, 꼭 살 필요 없다고 했으면 안 샀을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보다 배치 물량도 많았겠지.
슬쩍 시선을 돌리자 실시간으로 제과 중인 루이제, 위기감을 느꼈는지 오랜만에 제과에 합류한 부원들, 우르르 몰려오는 귀족 손님들을 응대하는 아인테르가 보였다.
‘많네.’
아까 마법사들도 바글바글했지만 지금 귀족들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오히려 대륙 곳곳에서 와야 하는 마법사들에 비해 귀족들은 제국 원주민이니 더 많겠지. 거기다 타국 귀족들도 은근히 섞여 있는 상태고.
진짜 마법사들한테는 팔지 말걸. 귀족들 물량 채우기도 버겁잖아.
“전하를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저야말로 백작을 다시 보니 반갑습니다. 영지에 작은 소란이 생긴 걸로 아는데, 그 일은 잘 풀렸습니까?”
“예, 전하께서 염려해주신 덕에 잘 해결되었습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한창 대화 중인 아인테르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얼굴이 미소를 지은 채로 굳어진 게 아닌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웃는 낯을 유지하는 아인테르. 보는 내가 안쓰럽고 딱하지만, 동시에 대견하다.
‘고맙다.’
이미 작년 박람회 때 본 감찰부장, 올해 신년하례식 때 깜짝 데뷔한 3황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후자에게 몰리는 법. 덕분에 작년과 달리 귀족 손님들은 나에게 오기 전에 아인테르와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3황자와 두근두근 1:1 미팅을 마치면 나에게 다가오지만, 이미 아인테르와의 대화에서 자기소개도 하고 중요한 용건도 말한 상태라 대하기 수월하다. 귀족과 인사하면서 ‘저 양반이 누구더라’ 라며 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지. 정말 고맙다, 아인테르.
‘1호의 품격.’
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역시 황태자가 친히 하사한 고급 인력이다. 아카데미 일을 돕는 2, 3호도 고맙지만, 귀족들을 상대하는 것만큼 귀찮은 건 없으니까.
그러니 아인테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부원이 온몸으로 탱킹을 해주는 덕분에 고문이 쉬고 있는 거니, 혹시 곤란한 일이 생기면 바로 도와야지. 그것이 사람의 도리 아니겠나.
─라고 생각하자마자 바로 도울 일이 생길 줄은 몰랐지만.
“3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아인테르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는 은발 포니테일에 적안을 지닌 여인. 앞서 인사한 귀족들보다 스무 살은 더 젊어 보이는 여인의 등장에 쉴 새 없이 입을 열던 아인테르도 잠시 말을 잃었다.
신년하례식이 사교계 데뷔나 다름없던 아인테르니 안면을 튼 귀족도 나이 지긋한 작위 귀족들이 대다수다. 눈 앞의 여인처럼 젊은 귀족은 당연히 본 적이 없을 터. 아마 어디 고위 가문의 영애가 아닌가, 하고 머리를 굴리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쩌나. 쟤 영애가 아니라 작위 귀족인데.
“호르펠트 백작.”
마침 내 앞에 있는 손님도 없어서 슬쩍 아인테르에게 다가갔다.
단둘이 인사를 나누는 상황에서 제3자가 끼어드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방치하기에는 아인테르에게 의미 없는 기억 되짚기를 시키는 꼴이 아닌가. 그냥 오랜만에 보는 지인이 반가워서 끼어들었다고 둘러대면 된다.
“아, 칼 오빠도 계셨군요.”
호르펠트 백작도 나를 보자마자 가볍게 목례를 하며 반겨줬다. 혹시 나만 기억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잊지 않았구나.
“호르펠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