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295)
“베들러 형제님이 형제님께 여쭙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나한테?”
의외인 말이라 고개를 기울이고 말았다. 공무원이나 귀족이면 모를까, 사제들과 딱히 연이 없다.
물론 연이 없어도 질문 정도는 할 수 있지. 그래도 사제들이 세속의 고위 관료에게 먼저 말을 경우는 드문데? 필연적으로 정치를 해야 하는 교구장 정도 되면 모를까.
“무슨 일이지?”
일단 선량한 손님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갔다. 그러자 빠르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는 베들러.
인사성 바른 모습에 기본적인 호감도는 충족됐다. 그래, 무슨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답할 수 있는 거면 말해주자.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어려운 거였다.
“혹시 이교와 접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말 그대로 훅 들어온 질문에 잠시 말을 잃고 말았다. 아니, 갑자기 무슨 이교야.
“…황혼 교단을 토벌한 적은 있다.”
“다른 이교는요?”
모르겠는데. 애초에 황혼 교단 말고 다른 이교는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내 대답에 베들러는 의아하다는 듯 턱을 매만지며 내 몸, 특히 상반신을 위주로 훑어봤다.
‘뭔데.’
무슨 일인데. 짚이는 게 있으면 말 좀 해줘.
베들러의 뜨거운 시선과 비례하여 나의 의문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다짜고짜 이교 얘기를 꺼내서 호기심을 유발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대로 입을 다무는 건 너무 사악한 방법 아니냐. 사람을 미치게 하는 두 가지 말하기 방식 중 하나가 말을 하다가 마는 거고 두 번째는─
“아, 죄송합니다.”
다행히 무례라는 걸 깨달았는지 침묵 상태에 빠졌던 베들러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래, 재촉하기 전에 먼저 말했으니 봐준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형제님에게서 이교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헌데 어느 신의 기운인지 영 감이 잡히지 않는군요.”
그러나 호기심을 유발하는 건 여전했기에 슬쩍 타니안을 바라봤다. 말하는 걸 보니 나도 모르는 이교의 기운이 있기는 한 모양인데, 오늘 처음 보는 사제가 바로 느낄 정도인 기운을 거의 1년 동안 같이 지낸 타니안이 몰랐다고?
만약 타니안이 견습 사제면 아직 미숙하구나, 하고 넘어갔겠지만 타니안은 차기 성자다. 오히려 이 베들러라는 사람이 못 느끼면 못 느꼈지, 타니안이 모를 리는 없다.
“저는 이교 탐색에 약합니다.”
그리고 내 시선을 느낀 타니안이 먼저 항변했다. 이건 자기 분야가 아니라고.
이상한 말이다. 분명 작년 여름 방학 때, 타니안의 추적 성법으로 황혼 교단을 일방적으로 쥐어 팰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것 같은 맵핵. 그런데 그런 타니안이 이교 탐색에 약하다? 네가 약한 거면 에넨 정도는 돼야 강하다는 거 아니냐.
“추적 성법이면 바로 알 수 있지 않나?”
“하하, 추적 성법으로 찾을 수 있는 건 신의 힘을 직접 받은 이교도입니다. 그저 흔적만 남은 건 별개의 문제지요.”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교도든 흔적이든, 결국 이교의 기운이 있다는 건 동일하니 마찬가지 아닌가.
“자세하게 설명드리자면 신학 얘기를 해야 하는데… 필요하십니까?”
“아니.”
TMI가 될 것 같은 조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알고 싶은 건 아니야.
“저 같은 이교 기록관들은 이교의 기운에 예민합니다. 적어도 이 분야만큼은 타니안 님보다 전문가죠.”
마침 베들러도 적절한 부연 설명을 했기에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애초에 성법이나 사제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내가 왈가불가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전문가들이 그렇다면 그냥 믿고 넘어가야지, 아무렴.
게다가 사제들끼리 전문 특화가 따로 있다는 말이기도 하니 더 설득력 넘쳤다. 기사나 마법사들도 스킬 트리가 갈리는데, 사제라고 다를 건 없을 터.
“형제님,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아무튼 여전히 흔적의 주인을 추리하지 못한 건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 베들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옷을 벗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당연하게도 영 좋지 않은 의미로 벗어달라는 부탁은 아니었다.
“느낌으로만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흔적을 직접 확인해야 감이 잡힐 것 같군요.”
굳이 비유하자면 목소리만 들어서는 알 수 없으니 가면을 벗고 정체를 공개해달라는 말. 확실히 옷 아래에서 느껴지는 기운에만 의지하기보다는 눈으로 보는 게 나을 거다.
“물론 제 개인적 호기심으로 드리는 부탁이니 거절하셔도 됩니다. 오히려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것 자체로도 죄송스럽습니다만…”
“괜찮다. 상의 정도야 벗을 수 있지.”
물론 정상적인 부탁은 아니기에 베들러도 한 발 뺐지만, 이미 호기심을 자극할 대로 자극한 뒤에 빠지는 건 죄악이다. 이제는 베들러가 관심을 꺼도 내가 궁금한 단계다.
그리고 옷을 벗어달라는 부탁을 듣고 나니 뒤늦게 짚이는 것이 있었다. 사실 상반신을 쳐다볼 때부터 눈치채야 했는데.
‘흉터.’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골반 부근까지 고속도로처럼 뚫린 흉터 자국. 카간이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빅엿.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 없다. 영원한 푸른 하늘이니 뭐니 운운하면서 베었으니 분명 그거일 거다.
“아, 이거군요.”
그렇기에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상처를 보여주자,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베들러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보니 진짜 별종이기는 하다. 장관도 이 상처 처음 볼 때는 흉하다고 인상 썼는데.
‘탐구욕이 앞서는 건가.’
북방 역사에 인생을 바치는 중인 게르하르트처럼 지식에 대한 열망이 최우선인 사람 같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없지.
“과연. 드넓지만 비좁고, 격동적이지만 온화한 기운입니다. 이렇게 복합적이니 파악이 힘들 수밖에요.”
“그렇군.”
그 와중에 이상한 표현이 쏟아졌지만 무시했다. 저게 전문가의 방식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지.
그렇게 한참이나 상처를 확인한 베들러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스에서 보인 의아함은 흔적도 없는 것을 보니, 누구의 흔적인지 확실히 파악한 것 같다.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의 90도 수준으로 허리를 숙이는 베들러에게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나도 궁금해서 협조한 일이고, 이교 전문가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도 있으니까.
“그래서, 이교의 정체는 알았나?”
“영원한 푸른 하늘입니다. 북방 유목민들이 숭배하는 신으로, 자연신이자 동물신이라는 독특한 신격이죠.”
예상이 맞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카간이 남긴 칼빵이라 그런지 영원한 뭐시기의 흔적이 맞았다. 하긴, 일반적인 주술이라면 베였다고 회복 불가 페널티가 붙을 리 없지.
독한 새끼, 설마설마했는데 신의 기운을 담아서 후려 팬 거였네. 그러면 평타가 신벌이야? 어쩐지 존나 세더라.
어쨌든 정체를 알았으면 됐다. 예상도 못 한 애꿎은 신이 튀어나온 것도 아니고, 에들러가 알고 있는 신이기도 하니 부탁하기도 편하겠지.
“나도 부탁이 하나 있는데.”
“아, 예. 편히 말씀하십시오. 제 능력이 닿는 범위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리겠습니다.”
다행히 사제라는 명함을 가지고 먹튀를 할 생각은 없었는지 베들러는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좋아, 저렇게까지 말했으니 부담 없이 말할 수 있겠어.
“그 이교의 기운이라는 거, 정화할 수도 있나?”
조금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교 탐색의 스페셜리스트면 이교의 기운을 없앨 수도 있지 않냐고.
정황상 이 상처가 굳건한 이유는 영원한 푸른 씹새끼 때문이다. 내 몸에 박혀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회복도 불가능한 거지. 이 미친 불법 세입자를 퇴출할 수 있다면 상처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제발. 나도 이런 거 평생 달고 싶지 않아. 막말로 밤 자리마다 이런 상처를 보여주면 부인들이 울 거 아냐. 심지어 루이제하고 이리나는 내가 이런 상처 달고 있는 줄도 몰라.
“아.”
하지만 베들러의 나지막한 반응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그거 안되는구나.
‘망할.’
그래, 아무리 이교 전문가라도 사제가 고칠 수 있는 상처였으면 진작에 고쳤겠지. 종전 직후에 내 상처 치료하겠다고 붙은 사제가 몇인데, 그중 이교의 기운을 느낀 사제가 하나도 없었겠나.
“괜한 말을 한 것 같군. 신경 쓰지 말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상처의 원인을 알았으니 치유까지 달리는 것도 은근히 기대했─
“옅게 하는 건 가능합니다.”
“뭣.”
다시 기대감이 차올랐다. 옅게? 이 불법 세입자를 약하게 할 수 있다고?
“신이 직접 내린 신벌이라면 억누르는 것도 무리지만, 형제님의 상처는 인간이 낸 상처 같군요. 인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깃든 기운이라면 억누를 수 있습니다.”
희망적인 말에 머리가 맹렬히 회전했다. 즉, 영원한 푸른 하늘이 아닌 카간 씹새끼한테 입은 상처라 아예 답이 없는 건 아니라고?
미안합니다, 영원한 푸른 하늘. 제가 잠시 카간의 죄를 당신에게 덮어 씌우고 말았습니다.
“물론 완전히 지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옅게 하는 수준으로도 건강이 많이 회복되실 테니 위안을 가지시는 건…”
“물론이다. 그걸로도 감지덕지지.”
“그리 생각해주시니 다행입니다.”
작게 웃음을 터뜨린 베들러는 기도문을 읊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커헉!”
“크윽─”
그리고 동시에 피를 토했다.
시발 이번엔 또 뭔데.
베들러와 나란히 땅바닥에 엎어져 꿈틀거렸다. 희망에 가득 찬 상태에서 상상도 못한 충격이 몰려오니 바로 엎어지게 되더라. 심장에 티타늄-창이 꽂히면 이런 기분일까.
같이 피를 토한 동지인 베들러도 충격이 이만저만한 게 아닌지 끙끙거리며 겨우 얼굴을 들어 올렸다. 순간 돌팔이 새끼라는 단어가 목 끝까지 치솟았지만, 베들러의 얼굴을 보니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이, 이상합니다. 신의 기운이, 신의 의지가 너무 강합니다.”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며 혼란스럽다는 듯 중얼거리는 베들러. 그건 누가 봐도 태만을 한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성실히 치료를 행하다가 봉변을 당한 모습이지.
“이건 신이 격노했을 때나 있을 일인데…? 고작 인간이 낸 상처에 이렇게 간섭한다고…?”
그렇게 쉴 새 없이 중얼거리던 베들러는 혹시나 하는 얼굴로 나를 말을 이었다.
“형제님.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혹시 영원한 푸른 하늘의 사도를 죽이거나, 신전을 훼손하거나, 신물을 모욕한 적이 있습니까?”
듣기만 해도 흉흉한 말인지라 절로 소름이 돋았다. 뭐야 그 미친 행동은. 인간을 사랑하는 신이라도 그런 짓을 당하면 악신으로 돌변하겠다.
그리고 짚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