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00)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애가 생긴 걸 숨겨?”
– 때가 되면 말하려고 했습니다. 임신 초기에는 사소한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하는데, 괜히 소란스러워지면 곤란하죠.
개소리 같으면서도 설득력 있는 말이라 마땅한 반박을 하지 못했다. 솔직히 애를 가진 경험이 없어서 2과장 말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니.
– 그리고 태교 때는 흉한 거 보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야 이 새끼.”
졸지에 흉한 것이 되고 말았다. 이 새끼가 상사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 왜 그러십니까? 막말로 3과장이 공중제비 돌거나 1과장이 이상한 걸 선물이랍시고 들고 오면 그거보다 흉한 게 있습니까?
이번에는 너무 완벽한 말이라 입을 열 수 없었다. 심지어 자연스럽게 머리에 그려지기까지 한다.
존재 그 자체로도 흉악한 3과장이 임신을 축하한다며 공중제비를 도는 모습, 꿈에 나올까 흉흉한 물건들을 선물이라며 가져오는 1과장의 모습. 크리스티나가 기함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내가 2과장 입장이어도 피하고 싶을 것 같기는 해.
그렇게 입을 다물고 있자 2과장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자신의 깊은 뜻을 알겠냐는 것처럼.
– 그러니 부장님도 당분간 함구해 주십쇼.
자신의 아내, 그리고 아내가 소중히 품고 있는 아이에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가장의 마음. 실로 아름답고 박수를 칠 모습이다.
“미안하다.”
– …예?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옛날이었다면 2과장 주니어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2과장에게 연락을 걸었을 거다. 그다음은 2과장의 부성과 책임감을 목격하고 입을 다물었겠지. 저 미친놈도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은 진심이구나, 하고.
그러나 (예비)가족이 생긴 건 나도 마찬가지다. 신기하거나 재미있는 말을 들으면 먼저 연락을 하는 사람이 생겼다.
“이미 에르제베트한테 말했다.”
– 아.
마치 단말마 같은 2과장의 탄식에 조용히 연락을 끊었다.
그런데 기분 탓인가. 연락을 끊기 직전, 2과장을 부르는 1과장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뭐, 상관없겠지. 축하는 여러 사람에게 받아야 기쁘니까.
그날 밤, 1과장이 먼저 연락을 걸었다.
– 너무해요 정말. 어떻게 애가 생긴 걸 숨겨요? 우리가 부끄럽나?
흥흥 콧방귀를 곁들인 1과장의 말에 차마 아니라고 답할 수 없었다. 나도 2과장이 어떤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는지 잘 알기에.
“처음 갖는 아이니 예민한 거겠지.”
그저 정론인 말만 내뱉으며 중립을 표방할 뿐. 다행히 1과장도 더 투덜거릴 생각은 없었는지 내 말에 태클을 걸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섭섭함을 2과장에게 다 털고 와서 홀가분한 걸 수도 있다.
미안하다, 2과장. 이건 내가 경솔했던 게 맞다. 네 이미지가 있어서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함구하는 줄 알았어.
– 선배한테도 오늘 들었는데, 요즘은 숨기는 게 유행인가 봐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려다 그대로 굳고 말았다. 얘가 선배라고 하는 사람이면 한 명밖에 없지 않나?
“…선배?”
– 넹. 임신은 작년 말에 했는데 혹시 몰라서 숨겼대요.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어서 조만간 발표한다고 하더라고요.
1과장은 ‘오늘 저녁으로 스테이크 먹었어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덤덤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동안 황태자와 황태자비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다. 즉 이번에 생긴 아이는 첫 황손이자, 이변이 생기지 않는 이상 차차기 제국을 이끌어 갈 적장자.
‘걔도 사람이기는 하구나.’
2과장 주니어 소식을 들었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하는 짓이 개새끼라 사람 새끼가 아닌 줄 알았는데, 자식이 생긴 걸 보면 생물학적 인간이 맞기는 하구나.
‘인사라도 해야겠네.’
첫 황손이 생긴 경사스러운 사건. 몰랐다면 넘어갔겠지만, 알았다면 무시할 수 없다.
비록 공식 발표 전이나 황태자비가 1과장에게 미리 임신 사실을 흘렸다는 건 내 귀에 들어가는 것까지 감안한 행동이다. 다른 귀족들이 소란스러워지기 전에 축하 인사라도 하는 게 맞지.
마침 내일이면 주말이니 가볍게 올라갈 시간도 된다. 올라가는 김에 1과장도 보고, 4과장도 봐야지.
‘아직 국내에 있어서 다행이다.’
4과장은 내가 아카데미에 가자마자 북방으로 파견 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국내에서 활동 중이더라. 덕분에 지금까지 매일매일 통신구로 연락할 수도 있었고. 북방으로 가기 전에 드래곤 피 뽑으러 간다고 했었나?
하여간 4과장도 고생이 많아. 드래곤 관련 임무면 제도 근처에서 수행 중일 테니 꼭 만나자.
날이 밝자마자 마종공에게 달려가 텔레포트를 부탁했다. 갑작스레 제도에 간다고 하니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는 했지만, 금방 끝내고 1과장과 4과장을 만날 예정이라고 하자 바로 들어줬다. 마종공이 연인들 중 맏언니라 그런지 다른 연인들이 엮인 문제면 급격히 관대해지더라. 좋은 현상이니 흐뭇할 뿐이다.
“아가, 정말 별일 아닌 거 맞니? 혹시 이번에도 징계 문제는 아니고?”
“그런 거 아니라니까. 징계를 받으려고 해도 받을 이유도 없어.”
대신 제도에 도착한 그 순간까지 마종공의 눈에는 걱정과 의심이 깃들었었다.
사람을 툭하면 징계 받으러 가는 불량 공무원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섭섭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딱히 틀린 생각은 아니다. 실제로 아카데미 파견 기간 동안 제도에 갈 일이 생기면 대부분 징계를 받기 위해서였으니까. 이번 제도행도 징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징계 받으러 가는 거면 부끄러워서 말도 못 했지. 빠르게 끝낼 일이니까 걱정 마.”
여전히 촉촉한 눈망울로 쳐다보던 마종공을 한 번 껴안으며 말했다. 솔직히 징계가 뭐 자랑이라고 연인한테 텔레포트까지 부탁하며 가겠나. 그냥 조용히 혼자 갔지.
애초에 황태자 그 새끼는 내가 징계를 받아야 하면 친히 텔레포트 마법사를 보내서 잡아가는 놈이다. 이렇게 말하니 노예 사냥꾼 같기는 하네.
“그래, 알겠단다. 그래도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말하렴.”
내가 포옹을 하자 마종공도 마주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당연한 말이다. 만약 징계가 아닌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나를 괴롭히는 놈이 나오면 바로 마종공 파워로 반격할 생각으로 가득하니까.
그건 그렇고 마종공도 스킨십에 내성이 생긴 것 같아 다행이다. 예전에는 조금만 접촉해도 미친 듯이 떨었는데.
“바로 말할 테니 저택에서 쉬고 있어. 집사가 저택 안내도 해줄 거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익숙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 안정적인 bpm, 내가 아는 마종공이 맞다.
‘아직 완전 내성은 아니구나.’
물론 저택을 안내한다는 건 안주인으로 맞이한다는 의미니 당연한 반응이기는 하다. 마르게타도 집사한테 저택 안내를 받았을 때는 좋아했다고 했지.
아무튼 마르게타에 마종공까지 안내했으니, 이번 여름 방학이 되면 루이제랑 이리나도 안내해야겠다.
황태자궁으로는 두 손 가볍게 갔다. 2세 임신 축하 인사를 하러 가는 주제에 빈손인 것은 이상하지만, 아직까지 황태자비가 임신한 것은 대외비인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감찰부장이 선물을 들고 황태자궁에 방문하는 건 너무 지독한 어그로 아니겠나.
게다가 황실의 격에 맞는 선물을 하루 만에 고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일단 몸부터 가고 선물은 나중에 보내는 게 맞다.
그런데 뭘 보내야 하지? 이런 선물을 주고받은 적이 있어야 적당한 선물을 고르든 말든 할 텐데.
‘하필 황태자비 선물이네.’
골치가 아프다. 황태자를 축하할 일이면 적당히 술이라도 몇 병 던져주는 걸로 충분하지만 임신을 한 당사자는 황태자비다. 황태자가 만족할지는 관심 없고, 황태자비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보내야 하는 상황.
무난하게 보석? 그런데 이건 너무 무난하다. 그리고 내가 구할 수 있는 보석이면 이미 황태자비도 가지고 있을 거다. 아니면 꼬까옷 만들 좋은 옷감?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너무 이른 선물 같기도 하고.
‘…다음에 생각하자.’
그렇게 몇 번 머리를 굴리다가 깔끔히 포기했다. 이건 전승공과 상의하거나 집사와 논의하는 게 마음 편하겠다.
아니면 마르게타한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르게타는 조카들도 많으니 괜찮은 선물도 잘 알겠지.
***
최근 들어 독특한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임신 4개월 차에 진입하며 서서히 배가 나오는 것이 보이는 비, 그러한 비의 배를 쓰다듬는 것이 하루의 낙이 되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버릇이지만 아비가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부인의 배에 내 자식이 있다니. 괜히 더 시선이 가고, 한 번이라도 더 만지고 싶은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비, 방금 배가 움직였소. 안에서 발길질이라도 한 게 아니오?”
그리고 비의 배를 만지고 있다 보면 이렇게 아이와 소통을 할 수도─
“제가 움직인 거예요, 전하.”
“아.”
착각이었다. 이상하다, 분명 우리 아이가 놀아달라고 발길질을 한 것 같았는데.
“조용하고 속 깊은 아이구려.”
하지만 어미가 힘들까 봐 본인이 지루한 것도 참으며 조용히 있다니, 이 얼마나 착하고 배려심 넘치는 아이란 말인가. 나는 모르겠지만 비를 닮은 아이일 것이 분명하다.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비의 배가 잠시 꿈틀거렸다.
“아, 방금 움직였어요.”
밝은 목소리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는 비. 이번에는 아이가 발길질을 한 것이 맞는 모양이다.
벌써부터 아비를 들었다 놨다 하다니, 총명한 아이구나. 제국의 미래는 정말 밝아.
‘너의 미래도 밝겠지.’
흐뭇한 마음에 다시 비의 배를 쓰다듬었다. 방계 출신이었던 부황, 서장자인 나에 비해 이 아이는 적장자다. 나와 부황이 태생적으로 달 수밖에 없었던 족쇄는 이 아이에게 없다. 이 아이가 내 뒤를 잇는다면 실로 오랜만에 정통성을 지닌 황제가 등극하는 것이다.
부황께서도 같은 마음이시기에 이 아이의 정통성에 힘을 실어주실 거다. 아마 양위 전에 황태손으로 임명하지 않을실까? 정말 완벽한 정통성이다.
– 똑똑
그렇기에 이 아이를 훌륭히 키우겠다는 다짐을 하는 사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하. 감찰부장입니다.”
문 밖에서 들리는 헨드릭 경의 목소리에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비가 임신 소식을 흘린 것이 어제였는데 하루 만에 오다니, 역시 행동이 빠르다.
“그래, 들어오라고 하게.”
어찌 보면 비와의 시간을 방해하는 손님이지만, 그 손님이 비의 임신을 축하해 주는 사람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축하는 여러 사람에게 받을수록 행복한 법이니.
심지어 축하를 위해 온 손님이 앞으로 수십 년은 제국을 지탱할 기둥이라면 어찌 기쁘지 않을까.
‘이제 스물둘.’
무심코 감찰부장의 나이를 떠올리고 말았다. 이제 스물이 겨우 넘은 청년, 건강 관리만 잘 하면 60년은 더 살 수 있을 거다. 아니, 마종공이 옆에 붙었으니 그 이상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반면 나는 60년은커녕 40년도 장담할 수 없다. 황제의 업무는 막중하니 감찰부장보다 먼저 죽거나 조기에 양위를 하겠지. 그러니 어느 쪽을 택하든 내 자식이 뒤를 이어 황제가 되고, 그때도 감찰부장은 현역이라는 게 중요하다.
‘3대를 섬긴 충신.’
마음이 평온하다. 감찰부장이 내 자식을 보필한다면 그만큼 든든한 것도 없다. 감찰부장의 성격상 자기보다 어린 자라고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고, 비의 아이니 매정하게 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아쉽다. 감찰부장이 60년이 아니라 120년 정도를 살아주면 정말 마음이 놓일 텐데.
***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흠칫하고 말았다. 의자에 앉아있는 황태자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황태자.
뭐지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