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04)
대신 사약을 마시는 심정으로 지목을 승낙했을 샤를에게 동정심을 가졌는지, 어딘가 씁쓸한 눈빛으로 교과서를 쳐다봤다. 동생이 남을 동정할 줄 아는 선인이라 기쁘다.
‘미안하다.’
나 역시 이 자리에 없을 샤를에게 애도와 사과를 표했다. 그저 지켜보는 입장인 에리히도 저런데 가담자인 나는 오죽하겠나. 아마 샤를이 지목을 승낙한 이유 중 내 추천장이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할 거다. 지옥으로 가는 길을 포장한 사람 중 하나가 나라는 말.
미안하지만 어쩌겠나. 처음 류티스가 샤를을 지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경악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만한 인선이 없다.
‘그런 녀석 찾기 힘들지.’
단순히 강한 학생이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장 에리히만 해도 샤를보다 강하고, 에리히를 빼도 대여섯 정도는 있을 거다.
그러나 상대의 역량과 자신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아무 피해 없는 접대 대련을 하는 건 강함을 넘어선 영역이다. 그건 진짜 걔밖에 못하는 예술이야. 베테랑 훈련교관 정도는 돼야 시도라도 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직 2학년인 샤를에게 추천장을 써줬다. 가진 능력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그 능력으로 출세는 보장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나.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정도밖에 없다.
“샤를이 아르메인의 귀족이라면 좋았을 텐데.”
그 와중에 아쉽다는 듯 중얼거리는 류티스의 목소리에 살며시 눈을 감고 말았다. 잔인한 새끼, 아르메인 국적이었다면 아카데미 졸업 후에도 찾아다녔겠네.
샤를이 제국 출신이라 정말 다행이다.
***
류티스가 대련 상대를 지목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딱히 관심이 가지 않았다. 왕족 전담 상대가 되어버린 샤를이 불쌍하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 나는 류티스와 달리 대련 상대를 지목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만약 내가 샤를과 같은 입장이 될 줄 알았다면 생각을 달리 했을지도 모른다.
“선생님.”
“아, 루이제.”
마법부 수석 교사님의 호출을 받아 찾아간 교무실. 사실 수석 교사님은 스승님을 존경하는 분이라 개학 이후부터 잦은 호출을 받았지만, 수석 교사님의 개인 연구실이 아닌 교무실로 호출 받은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수석 교사님 자리에 잔뜩 쌓인 종이를 보자마자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바쁠 텐데 미안하다. 이번 실기 시험 때 너를 대련 상대로 지목한 아이들이다.”
탑처럼 쌓인 종이 더미를 보며 덤덤하게 입을 여는 수석 교사님. 그 말씀에 절로 몸이 굳고 말았다.
저게 전부? 전부 나를 지목한 사람들이라고…?
‘너무 많아.’
소름이 돋는다 과장을 좀 보태면 2학년 마법부 학생들의 숫자와 동일한 종이─ 아니,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신청자가 많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어차피 대련은 딱 한 번이니 이 중 한 명만 선택하면 돼.”
그 말에 무심코 안심하고 말았다. 대련을 일대일로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연한 제약이 없었다면 모든 2학년 마법사들과 끝없는 대련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심과 별개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마법사들이 대련 상대로 지목하다니, 내가 그렇게 탐스러운 사냥감으로 보인다는 건가? 아니면 무슨 원한이 있어서? 어느 쪽이든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착하게 살았는데…’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될 줄은 몰랐다. 혹시 난 지금까지 헛된 인생을 산 걸까…?
“너무 깊게 생각하지는 마라. 너와 대련을 하는 걸 일생의 영광이라 생각하고 달라붙는 거니까.”
내 표정이 어두워지는 걸 보셨는지, 수석 교사님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마법사들은 아주 사소한 깨달음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존재지. 그런 녀석들 옆에 마종공 각하의 유일한 제자가 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그, 그런가요?”
“그래. 스승의 흔적은 제자에게 남는 법이다. 그 제자의 마법을 직접 겪는다면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
나도 학생이었다면 너를 지목했을 거다─ 라는 말까지 덧붙이시기에 겨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렇구나. 원한이나 호승심 같은 게 아니라 순수히 내 마법을 온몸으로 겪고 싶어서 그런 거구나.
‘더 위험하잖아.’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사람으로서 가지는 원한이 낫지, 마법사가 가지는 탐구심은 더욱 위험하다.
마법부 학생으로 지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마법사들을 봤는데. 다들 평소에는 정상적이지만, 마법 관련 문제가 되면 인격이 변한 것처럼 진지해지고 저돌적으로 변한다. 분명 마법사는 언제나 이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들었는데도.
‘누구를 골라야 하지?’
그렇기에 고민되었다. 눈이 뒤집혔을 학생들 중 누구를 골라야 후환이 없을까.
물론 대련 상대가 되지 못했다고 원한을 가지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원한이 없어서 어떤 방법으로 행동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원래 미지에서 오는 공포가 제일 심하다고 하잖아.
‘아.’
그리고 그 고민은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샤를 올리드, 정말 뛰어난 실력의 기사더군. 올해도 그 친구와 붙고 싶어서 바로 신청했다!”
동아리실에서 류티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작년 대련에서 붙었던 인연을 올해까지 이어갔던 그 끈기.
좋아, 나도 그렇게 하자. 어차피 골라야 한다면 아는 사람이 좋겠지, 응.
***
올해 실기 시험은 작년과 동일하게 진행되었다. 빌라르를 비롯한 삼국 전력들은 혹시나 하는 사태에 대비하여 여기저기 퍼지고, 나와 교장은 모든 대련장을 직접 확인하고 다니는 방식.
게다가 다들 경력자라 그런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움직였다. ‘여기에 사람 있으면 좋겠네.’ 싶은 곳을 지나가면 딱 삼국 전력과 마주칠 정도로. 그러면 괜히 흐뭇하더라. 유능한 사람들하고 같이 일하면 이렇게 좋아.
아무튼 교장과 함께 대련장을 누비다가 류티스와 샤를이 붙는 곳에 도착했고─
“허, 대단하군요.”
“예, 아주 훌륭한 학생입니다.”
한 기사의 눈물겨운 투쟁을 보고 말았다.
치열하게 검을 맞대는 류티스와 샤를. 그러나 자세히 보면 류티스의 공격은 꾸준히 샤를에게 닿았고, 샤를의 공격은 류티스가 막을 수 있는 경로 위주로 쏟아졌다.
그렇다고 샤를이 일방적으로 털리고 있다고 보기에는 치명타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접전 중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부상 같은 느낌.
‘뭐 저런 놈이 다 있지.’
작년에도 봤지만 올해 다시 봐도 놀랍다.
그래, 고의로 지는 건 간단한 일이다. 일부러 상대의 검로에 사지 중 하나를 들이밀면 끝나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러면 상대가 모를 수 없다.
그러나 샤를은 해냈다. 상대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만족스러운 승부를 했다고 느낄 정도로 치열한 접전을 보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은 물론 상대에게도 큰 상처를 주지 않는다. 저걸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경이로울 정도다.
‘슬슬 끝나겠군.’
하나둘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한 샤를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남들이 보기에는 열세에 몰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한 수를 내던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할 만큼 한 샤를이 적당한 타이밍에 쓰러지기 위해 작업에 들어가는 거다. 한 수는 성공하면 역전이나, 실패하면 그대로 끝이니.
“이런, 아쉽군요.”
“예, 미세한 차이였습니다. 성공했다면 다시 접전까지는 갔을 겁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 교장마저 탄식을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실패했다.
‘1류다.’
그리고 나는 보고 말았다. 쓰러진 샤를이 진심으로 미소 짓는 모습을.
저 미소 역시 남들이 보기에는 결과에 승복하는 아름다운 자세로 보이겠지.
‘…황실 교육관으로 넣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된다. 강한 기사를 찾기는 쉽지만 저런 기사는 찾기 어려운 법. 황족들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는 교육관 같은 거 하면 딱이겠는데.
“이번에도 훌륭했다! 다음에도 부탁하지!”
대련장 위에서 울려 퍼지는 모 빨갱이의 끔찍한 선언이 지금만큼은 반가웠다.
아카데미에서 3년이나 왕족과 대련한 전문가, 대륙 전체를 뒤져도 찾기 힘든 타이틀이다. 왕족을 상대했으니 황족을 상대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터.
다음에 전승공하고 상의 좀 해봐야겠다. 전승공 입장에서는 외손주들을 가르칠 사람이니까.
공교롭게도 류티스의 대련이 끝나자마자 에리히의 대련이 다른 대련장에서 시작됐다. 작년에도 이랬는데, 얘네 학생 번호가 앞뒤로 붙어있기라도 하나? 내 입장에서는 보기 편하니 상관없지만─
“진짜 멋졌어! 에리히가 제일 빨리 끝난 거 아니야?”
너무 붙어있어서 그런지 대련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대련이 끝나있었다. 에리히 옆에 착 붙어있는 세라의 말처럼 역대 최단 기록일 거다.
“운이 좋았지. 평소라면 더 걸렸을 거야.”
눈을 반짝이는 세라에게 작게 미소를 짓는 에리히. 하지만 표정이 미묘하게 굳은 것이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다.
‘뭐지.’
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저놈 왜 저러냐. 평범한 승리도 아닌 최단 기록 승리에, 상처도 하나 없는 퍼펙트 승리. 이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승리할 수는 없을 텐데?
…뭐, 너무 신경 쓰지는 말자. 대련이 아니라 다른 문제로 고민 중인 걸 수도 있으니까.
***
세라가 기뻐하고 있어서 최대한 웃고 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못하다.
겨울 방학 동안 영지에서 수련에만 몰두했다. 나름 괜찮은 성과를 얻었고, 아카데미에서는 류티스 정도만 아니면 누구라도 이길 거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5합 이내에 끝내려고 했는데.’
7합이나 걸렸다.
‘어깨를 포기해야 했나.’
사실 5합 이내에 끝낼 방법이 있기는 했다. 부상을 각오하고 접근했다면 바로 끝냈겠지.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부상을 피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따로 수련을 해야겠다.
검술부 대련장에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마법부 대련장으로 향했지만, 그 곳에서 본 광경은 광기 그 자체였다.
“루이제! 루이제! 루이제!”
“미래의 부탑주님! 경기를 뒤집어버리신다!”
“루이제에에에! 작년에 썼던 마법 다시 보여줘어어어!”
지팡이를 허공에 흔들며 우렁차게 외치는 마법사 학생들. 군대 위문공연이 대충 이런 분위기이지 않을까.
이 미친 광경에 나는 물론 교장 역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실 마법부 대련장에 가까워질수록 술렁이는 분위기가 느껴져서 각오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루이제 대련 때 사람들이 몰리는 정도만 상상했지 이런 아이돌 콘서트를 예상한 건 아니다.
잠시 정신을 놓을 뻔하다가 주변을 살펴보니, 다른 대련장에 있는 학생들조차 대련을 멈추고 루이제에게 환호하고 있었다.
‘너네 뭐하냐.’
심지어 그런 학생들을 제지해야 할 교사들까지.
아니, 학생들을 그렇다 쳐도 교사들은 자중해야 하는 거 아닌가. 교사이기 이전에 마법사임을 선택한 건가 싶다.
“…굳이 우리까지 응원하러 올 필요는 없었겠는데?”
침묵 속에 류티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 류티스의 주둥이마저 잠시 닫혔을 정도로 지금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전율적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더 응원을 와야죠. 부원들이 없으면 루이제 영애가 얼마나 기가 죽었겠습니까.”
그런 류티스의 말을 오는 길에 합류한 아인테르가 받아줬다.
동의한다. 루이제가 딱히 관심에 굶주린 종자도 아니고, 이렇게 모든 마법사들이 열광하면 움츠러들 확률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익숙한 부원들조차 보이지 않으면 패닉 상태에 빠지겠지.
안타까운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