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305)
‘안 왔으면 어쩔 뻔했냐.’
정말 아인테르 말처럼 부원들이 없었다면 루이제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을 거다. 악의와의 싸움이 아니라 사생팬들과의 싸움을.
지금 보니 루이제의 대련 상대, 작년에 마종공의 고유 마법으로 탈탈 털렸던 걔다. 표정이 밝은 것이 올해도 루이제와 붙을 수 있어서 행복한 것 같다. 누가 보면 쟤가 이기고 있는 줄 알겠어.
“아, 저기 라테르도 있다. 먼저 끝났나 보네.”
에리히의 말에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릴 뻔했지만 애써 참았다. 그놈도 마법사인지라 이 광기에 일조하면 일조했지, 딱히 루이제의 멘탈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와아아아아아!”
“세 갈래! 세 갈래!”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관중들이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발동된 마종공의 고유 마법, 그 마법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온몸으로 처맞는 대련 상대.
역시 마법사는 죄다 미친 것들밖에 없다. 정상은 아주 극소수야.
‘머리에 마법밖에 없는 놈들.’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사가 이성의 상징이라는 건 이미지 조작이다. 애초에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하나의 학문에 자기 인생을 갈아 넣지 않았겠지.
마법사에 대한 편견 하나를 이겨냈다.
대련을 승리로 마무리 한 루이제는 모든 마법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대련장에서 내려왔다. 루이제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건 모두가 볼 수 있었지만, 미친 마법사들은 아랑곳 않고 환호성을 내지르더라. 예비 남편인 내가 지켜보지 않았다면 헹가래까지 하지 않았을까.
“오, 오라버니…!”
“고생 많았다.”
뛰다시피 우리에게 다가 온 루이제는 촉촉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 눈망울에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읽고 말았다. 그런데 나라도 그랬을 것 같기는 해.
“대단했다, 루이제. 작년에 비해 더 날카로워졌어.”
그 와중에 관중 속에 박혀있던 라테르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덕담을 던졌다.
머리의 열기가 식고 나니 자기가 얼마나 추했는지 자각한 것 같다. 부원이라는 놈이 루이제에게 위안이 되지는 못할 망정 광기 군단에 합류했으니까.
“…….”
애석하게도 너무 늦은 자각이었다. 내 품에 안긴 루이제는 그저 아무 말도 없이 라테르를 지긋이 응시했다. 성격 좋은 루이제 입장에서는 이 무언의 시선이 최대한의 원망이겠지. 라테르도 그걸 아는지 머쓱한 얼굴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오늘 일을 마음에 품고 늘 반성해라, 블루맨.
“그, 루이제? 나는 마법은 잘 모르지만, 그런 내가 봐도 정말 멋졌어!”
“고마워…”
다행히 상처투성이가 된 루이제의 멘탈은 세라의 위로로 회복할 수 있었다. 부원에게 입은 배신감은 다른 부원이 치료할 수 있는 거지, 아무렴.
***
실기 시험이 끝나고 뒤풀이 겸 도착한 동아리실. 루이제가 미리 만든 마카롱을 입에 넣었지만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복잡하다. 루이제의 대련까지 보고 나니 초조함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다 발전했구나.’
처음에는 광기 가득한 환호성에 짓눌려 움츠러든 루이제. 그러나 지팡이를 휘두르는 루이제는 당당하고 강인한 마법사였다. 비록 광기에 눌리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랬다.
친구의 발전은 기뻐할 일이다. 그 친구가 몇 년 후면 가족이 될 사이라면 더더욱. 그래, 분명 기뻐할 일인데─
‘나만 느린 건가.’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루이제만 멀리 나아간 것이 아니다. 류티스와 라테르의 경기는 직접 보지 못했지만, 당사자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작년보다 좋은 결과로 끝난 것 같았다. 마종공이라는 스승을 만난 루이제, 왕족으로서 뛰어난 교육을 받을 류티스와 라테르. 전부 나보다 멀리 나아가고 있었다.
물론 나도 발전은 하고 있다. 루이제를 따라다닌 1학기 때는 수련에 소홀했으나 그 후로는 최선을 다했다. 겨울 방학 때도 세라를 만나는 시간을 제외하면 수련에만 열중했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도 있었고, 류티스 정도를 제외하면 누구라도 이길 거라는 자신감이 생길 정도로.
반대로 말하면 류티스를 넘을 자신은 아직 없다는 것.
‘스승이 중요하기는 하네.’
홀로 나아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가문의 기사들은 더 가르칠 게 없다면서 손을 뗐고, 가주님에게 부탁하기에는 의회에 있는 시간이 더 긴 사람이라 어렵다.
이끄는 스승이 없으니 내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건지, 이 속도로 나아가는 게 맞는 건지 장담할 수 없다. 그나마 아카데미에서 가르침을 받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3년의 가르침. 심지어 크라시우스 가문에 최적화 된 가르침이 아닌 다수를 위한 가르침 아닌가.
“─히.”
어떻게 하지, 개인 교습을 해줄 사람이라도 구해야 하나? 그 사람도 크라시우스 가문의 검술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수가 아닌 일대일 가르침이다.
“에리히.”
“어?”
어깨를 토닥이는 감촉에 뒤늦게 정신이 들었다.
“왜 혼자 그러고 있어. 무슨 일 있냐?”
그리고 목소리를 따라 살짝 고개를 들자 쿠키를 들고 있는 형이 보였다.
민망하다. 형이 말을 걸 정도면 그만큼 표정이 안 좋았다는 거잖아.
“아니, 그냥. 뭐 좀 생각하느라…”
입을 열던 중 뒤늦게 깨달음을 얻어서 말꼬리를 흐리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멀리서 스승을 찾을 필요가 없지 않나?
크라시우스 가문에 걸맞는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 일대일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 실력도 좋고 나아갈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
‘형인데?’
딱 형이다. 나랑 같은 길을 걷고,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아득한 경지에 오른 사람. 내가 최종적으로 도착할 곳에 이른 이상향.
이렇게 간단한 정답을 잊고 있었다. 솔직히 형이 검은커녕 날붙이 들고 다니는 것도 본 적이 없어서 잊고 있던 거기는 하지만.
“저기, 형.”
“왜.”
다소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지만 형의 말투는 원래 저랬다. 오히려 선을 그어야 하는 관계일수록 예의를 갖추는 편이지. 아카데미에서 1년 동안 같이 지내다 보니 알게 됐다.
그러니 용기를 담아 말을 이었다. 그래,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마는 거다. 형이 동생 주제에 건방진 부탁을 한다며 팰 사람은 아니잖아.
“혹시 나 좀 가르쳐줄 수 있어?”
게다가 맞으면 그건 그거대로 좋다. 형이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몸으로 체득하는 거니까.
***
갑작스러운 에리히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가르쳐? 내가 널? 내가 무슨 능력으로?
“오, 고문 선생! 이제 제자도 기르는 겁니까?”
하필 에리히의 목소리가 작은 편도 아니라 다른 부원들의 어그로를 끌고 말았고, 특히 검에 환장한 모 빨갱이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류티스의 목소리에 작년의 추억이 본능적으로 떠올랐다. 반 대항전 때 힘 조절 실패로 피를 토하던 류티스, 사과 겸 병문안을 가니 다음에도 가르침을 부탁한다던 정신 나간 발언. 그런 놈 앞에서 가르침 운운하니 당연히 반응할 수밖에 없다. 징한 새끼.
“난 누구 가르친 적 없어.”
아무튼 에리히는 물론 류티스가 들을 수 있는 크기로 단호히 대답했다.
내가 에리히보다 강한 건 맞는데, 강한 것과 가르치는 건 별개의 문제다. 강한 사람이 잘 가르치면 교육 담당은 왜 있겠냐. 그냥 강한 사람이 가르치고 말지.
“그리고 괜히 내가 간섭하면 잘 가다가 넘어질 수도 있다. 지금까지 알아서 잘했잖아.”
이건 진심이다. 내가 가르치는 데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에리히는 객관적으로 봐도 잘 성장하는 중이다. 귀족들이 모인 아카데미에서 최상위권이라는 건 미래의 거물이라는 게 확정이라는 뜻.
류티스가 상대면 좀 애매하기는 한데, 애초에 기사왕국의 왕자로서 화려한 지원을 받을 류티스랑 비교 자체가 가능하다? 재능이 미쳤다는 거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서 그랬지만, 앞으로도 잘 될 거라는 보장은 없잖아.”
하지만 침통히 말하는 에리히를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창? 아니, 검잡이가 무슨 창이야. 너 괜히 주무기 오락가락하면 나중에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으니까.
검 하나 달랑 들고 북방에 보내졌을 때, 실전에서 구르고 구를 때.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나 불안해서 온갖 기술을 익히고 다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라드 말처럼 이도 저도 아닌 잡탕이 될 뻔한 짓이지만.
“앞으로 나한테 보급되는 술은 전부 너한테 준다.”
“넌 검보다 창이 더 어울려. 내가 장담한다.”
그래 놓고 바로 가르쳐 준 걸 생각하면 미친놈도 그런 미친놈이 없었어.
“…그래도 안 돼. 못 가르치는 놈이 건드리면 무조건 꼬여.”
아무튼 잠깐 마음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해는 하지만 도와줄 수는 없다.
내가 제라드 그놈한테 야매로 배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에리히한테 같은 길을 걷게 할 수는 없지 않나. 형이 불꽃길을 걸었으면 동생은 꽃길을 걷는 게 맞다.
“그러면 고문 선생, 에리히하고 대련이라도 해주는 건 어떻습니까?”
“대련?”
단호한 거절에 에리히가 입을 열지 못하는 사이, 류티스가 에리히 암살을 시도했다.
저게 미쳤나. 나하고 붙었다가 피까지 토한 놈이 다른 사람도 사지에 밀어 넣고 있어.
“원래 무인은 고수의 검로만 봐도 깨달음을 얻는 법입니다. 직접 가르쳐주는 게 힘들다면 에리히가 알아서 깨닫게 만드는 것도 좋겠죠.”
그러나 놀랍게도 류티스의 말은 그럴듯했다.
“게다가 고문 선생과 에리히는 형제 아닙니까. 에리히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면 고문 선생처럼 될 텐데, 도착점이 어떤 모습인 줄 알면 알아서 잘 할 겁니다.”
이어지는 말도 굉장히 그럴듯했다.
류티스를 향했던 시선을 다시 에리히에게 돌리자 에리히는 눈을 반짝이며 류티스를 보고 있었다. 의외의 지원군에 감동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흐으으으음.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
그런 에리히에게 슬쩍 물었다.
“어, 어!”
“나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에리히에게 턱짓을 했다. 이러니까 옥상으로 따라오라고 하는 느낌이지만, 이런 건 생각난 김에 처리해야지.
일단 대련은 안 된다. 만약 에리히도 류티스처럼 힘 조절에 실패하면 어머니를 볼 낯이 없다. 형이 동생을 피가 나올 정도로 패면 콩가루 집안이잖아.
‘아.’
괜찮은 방법이 떠올랐다.
나오라는 형의 말에 따라 건물 뒤편 공터로 이동했다. 평소에는 족구를 하느라 익숙한 공간이지만, 가르침을 위해 이 자리에 서있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이 몰려왔다.
“다 나오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그리고 공터 한가운데에 선 형이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공터에 있는 건 나와 형뿐만이 아니었다. 동아리실에 있던 루이제와 세라, 아인테르, 류티스, 라테르는 물론, 대련 중 생길 부상을 염려하여 마지막까지 실기 시험을 지켜보다가 돌아온 타니안, 마법부 학생들의 점수를 책정하고 복귀한 마종공까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모든 부원들이 모였다. 이 정도면 복도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합류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우연.
“하하,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고문 선생의 실력을 보겠습니까.”
“그게 뭐 재밌는 구경이라고.”
류티스의 말에 형은 심드렁히 반응했지만, 지금만큼은 류티스의 말에 공감한다.
형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전쟁에 직접 참전하기도 했고, 작년에는 나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류티스를 상대로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줬다. 맨손으로 상대를 바닥에 패대기치는 건 어지간한 실력 차로는 불가능한 일.
그러나 형이